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이유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고 믿는가? 지금부터 약 2000년 전,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못 박혀 죽은 그 분이 정말 3일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고 믿는가?
에모리대학교 대학원 재학시절에, 나는 같은 학교 안에 있는 신학교 채플에 참석했다. 종종 저명한 당대의 설교학자가 설교를 하는 곳이었다. 어느 날 학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연예인을 초청했다. 모노 드라마 연기자였다. 그날 <예수전> 또는 <예수의 일생>이라는 주제의 모노드라마는 “다 이루었다”는 말로 끝났다. 부활, 승리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내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로 부름을 받기 전, 애틀란타에서 목회를 할 때, 학구열이 높은 미합중국장로교회(PCUSA) 소속 목사 한 명을 교회 청소년 담당 교사로 임명했다. 일 년 쯤 지난 어느 날, 로마가톨릭교회 사제, 유대인 랍비, 장로교 목사 등의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기적들을 대부분 사실이라고 믿지만, 두 가지는 믿지 않는다고 했다. 흥미로워서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가 아이를 낳는 것,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조용히 사직시켰다. 미합중국장로교회(PCUSA)는 최근 동성애자 목사안수, 장로안수만이 아니라 동성애자 결혼도 허용하는 교단이다. 핵심진리를 믿지 않아도 유급 직원, 목사, 신학교수로 활동할 수 있는 제도를 가진 교단이다. 1930년대 프린스턴신학교의 좌경화 사건 떼 제도화 되었다.
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가 만난 신학자들 가운데 예수 부활을 믿지 않는 신학자들을 만났다. 그들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일은 없고, 한 번만 일어나는 일은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원칙은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이다. 과학은 반복적인 실험을 거쳐 나온 동일한 결과를 진리, 사실, 객관적 사실로 믿는다. 예수 부활을 사실로 믿으려면, 드물게라도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사례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부활 사건은 객관적인, 실증적인 검증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 탐색이 불가능하다. 시간은 한쪽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000전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의 빈 무덤이 우리의 객관적 사실 검증을 가능하도록 자신을 개방하지 않는다.
셋째, 성경이 부활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다. 논리학에서 말하는‘부적합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이다. 영어로 fallacy of appeal to illegitimate authority라고 한다. 사이비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라는 것이다. 신앙을 논하고 신학을 토론하는 교회가 천동설이 옳고 지동설이 그릇 되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은 오류이다.
넷째, 예수 부활 이야기를 담은 복음서들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러브레터일 수 있다. 러브레터, 연애편지는 과장이 심하다. 남자가 애인을 보고“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다”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그 여인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예쁘다’는 말이 객관적으로 사실인가는 따져볼 사안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존경하고 환상적인 존재로 바라보던 초기 기독인들이 그가 갑자기 죽자 살아난 것으로 착각하고, 부활했다고 믿고, 사실이라고 기술했다는 것이다.
다섯째, 광신자들이 환영(幻影) 이야기를 기록한 것일 수 있다. 추종하던 신도들이 부활을 너무나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상(虛像)을 보고 착각했을 수 있다. 시체는 군인들이 훔쳐갔거나, 예수께서 고통 때문에 기절했다가 차가운 지하 무덤에 들어가니 정신이 들어 깨어나 조용히 사라졌는데 말이다.
여섯째, 예수 부활 이야기는 초대교회가 종교시장에서 예수를 상품화 하려고 그리스도로 탈바꿈키고 그가 부활했다고 꾸며낸 것이다. 초대 기독교인들이 믿은 예수는 ‘고백의 예수’이지, ‘역사적 예수’가 아니다. 역사적 예수는 십자가에서 처형당했고, “다 이루었다”는 말하고 생을 끝냈다. 뉴욕의 모노 드라마 연기자가 <예수전>을 부활을 언급하지 않고 끝낸 것과 같다.
진보계 신학자들은 역사적 사실 증명으로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방식은 낡고 어리석고 미신적인 시도라고 본다. 기독교의 진정성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증명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오히려 위태롭게 만든다. 이러한 사상은 16세기 이후로 교회 안에 침투한 이성주의 계몽주의, 낭만주의, 실존주의, 해체주의, 상대주의 등의 영향이다.
현대 신학을 추종하는 교회들은 죽음의 병에 걸렸다. 사경을 헤매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요람이던 유럽, 북미,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은 쇠잔해졌다. 약 70년 동안 교회는 추풍낙엽 떨어지듯이 쇠락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 고목 곁에 새로운 순이 솟아나듯이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필요하다. .
예수 부활, 역사적 사실인가? 답을 속히 알고 싶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저서 <개혁신학과 창의적 목회> 가 이 주제에 대한 답을 담은 논문을 싣고 있다. 참고하기 바란다.
이 주제는 여러 가지 중요한 질문들과 관련되어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객관적 진리는 존재하는가? 하나님의 특별계시, 성령의 성경 저자들에 대한 영감 사역, 어떤 사람은 부활을 사실로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는 까닭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이제 천천히 한 가닥 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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