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2015.3.8. 야곱의우물 채플)
예수 부활, 역사적 사실인가?
―역사가의 눈으로 보는 부활 신앙―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가? 유서 깊은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했다고 믿는다. 성경이 신화를 기록한 책이거나 광신자들이 본 환영(幻影)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실들(facts)을 기록한 것이라고 본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초기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기독교의 진정성(眞正性)을 입증하려고 했다. 역사적 사건들의 실재성과 그것에 대한 증거가 기독교의 참됨을 증명하고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진보주의계 신학자들은 성경 이야기는 신화이며, 초대교회의 고백을 담은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쓴 과장된 이야기, 광신자들이 본 허상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고 본다.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라고 말한 바 없으며, 초대교회가 그리스도로 탈바꿈시켰다고 본다.
이러한 탈기독교적인 사상은 19세기와 그 뒤의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이 역사-비평 방법이라는 것을 동원하여 ‘역사적 예수’라고 하는 인물을 만들어 낸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은 ‘신앙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를 구분한다. 초대교회가 믿고 고백한 예수, 오늘날의 유서 깊은 기독교가 고백하는 예수는 2천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고 본다.
한편, 관념주의와 실존주의에 충실한 일련의 ‘기독교인들’은 역사를 가지고 기독교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을 역사의 증명을 통해 입증하려는 전통적인 방식은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을 위험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논의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이 역사적 사실인가 하는 질문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부활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이 가능하다면 그 사건을 검토하여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부활 사건은 반복되지 않으며, 역사가의 실증적인 탐색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때 그 장소에 가서 그 사건을 검증하거나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부활 사건의 사실(fact) 여부는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근거는 무엇인가? 부활 사건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가? 부활신앙은 ‘신앙의 문제’이지 ‘이성의 문제’(역사적 사실)는 아니라고 하는 주장은 옳은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기독교 신앙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자면 먼저 ‘역사,’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가를 규명해야 한다.
1. 역사와 역사지식
고려시대의 최이(崔伊)는 강화도에서 인류 최초의 인쇄술을 발명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어느 조선인은 사람을 수송하는 최초의 비행물체를 공중에 띄웠다. 세종대왕은 오늘날의 언어학자들이 경탄하는 위대한 문자 한글을 만들었고, 마르틴 루터는 1517년 만성절 전야에 95개조 신조문을 비텐베르크성채교회당 문에 붙임으로써 서양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역사’라고 일컫는다.
과거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하여 다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미심장한 사건 만이 역사가 된다. 2천 년 전 어느 날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다 역사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성난 군중을 보고 겁에 질려 우는 어린이, 신발이 벗겨져 맨발로 걷는 사람, 캄캄해지는 대낮의 변화에 겁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것들을 ‘역사’로 여기지 않는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아침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기침을 했다고 하자. 그가 각혈을 하고 그날 밤에 세상을 떠났다면 그 기침 사건은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이처럼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라도 중요하지 않거나 무의미하거나 사소한 것들은 역사가 되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에 발생한 의미심장한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족보나 연대기 같은 단순기록도 역사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미 있는 역사는 아니다. 중요한 사건만이 역사가 된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건이 왜 발생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려 준다. 역사가는 과거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을 지적으로 알아보기 쉽게 재구성한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자기의 가치기준과 관점과 이해에 따라 평가한다.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나 옛 문헌에 담겨 있는 정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형태의 증거들을 자신의 현재의 경험과 관점으로 재구성한다.
독일어는 ‘역사’를 두 개의 단어로 표기한다.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히스토리에(Historie)라고 하고 그것에 대한 실존적인 이해와 해석을 담아 재구성한 것을 게쉬히테(Geschichite)라고 한다.
예수라는 인물이 존재했고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사신 인정과 해석은 다르다. 유서 깊은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친히 인간이 되셨고, 대속제물이 되셨으며, 그 사건이 인류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근거라고 믿는다. 십자가 사건은 모반죄나 모독죄로 처형당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속죄사역이었다고 믿는다.
19세기 이후의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은 유서 깊은 기독교가 믿어 온 예수와 2천 년 전에 실제로 존재했던 예수가 같지 않다고 본다. 신약성경이 역사적 사실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종교심으로 가득 찬 광신자들의 ‘고백’을 담고 있다고 본다. 고백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일종의 과찬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예쁘게 보이지 않는 여인이라도 그를 사랑하는 남자의 눈에는 예쁘게 보인다. 그래서 ‘당신은 참으로 예쁘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신약성경은 그 시대에 그리스도를 따르던 자들의 ‘고백’과 무의식적인 거짓말을 담고 있다고 본다. 예수는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바 없는 데, 초대 기독교인들이 그를 지나치게 존경하여 신화화 했고, 종교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상품’으로 포장했다고 본다. 예수가 하나님이며 그리스도라고 하는 신앙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만들어 낸 상품으로 여긴다. 이러한 주장과 더불어 나타난 것이 ‘역사적 예수’이다. 고백과 허상 이야기를 제거하고 찾아낸 실제 예수라고 믿는다.
한편, 20세기에 들어서서 자유주의자들은 관념론적이고 실존주의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진보주의 신학자들은 부활 사건에 대한 게쉬히테의 의미에 집착하고 히스토리에에는 관심이 없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은 케리그마―설교를 통해 선포되었기 때문이지 합리적 이성으로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검증할 수 없는 과거의 사건에서 자신들의 신앙의 실존적인 의미를 찾는다는 점이다.
보수주의계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히스토리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역사적 사건의 게쉬히테의 성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믿으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이 되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회피한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역사지식을 소유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인식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 하는 역사지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알려졌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2. 실증주의적 접근: ‘역사적 예수’
19세기에 이르러 ‘역사적 예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신약성경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실증주의 연구 방법을 토대로 역사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접근한 대표적인 역사가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였다. 그는 역사를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역사란 인간의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증거를 수집하고 일차 자료들을 핵심 근거로 채택한 뒤에 자신의 선입관이나 편견을 개입시키지 않고 일어났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역사가의 덕목은 초연성, 불편성(不偏性),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며, 역사가가 이러한 자세로 접근, 연구하면 정확한 역사를 접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객관적인 서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실증주의 역사연구 방법으로 『영국문화사』(History of Civilization in England)를 저술한 헨리 버클(Henry Buckle, 1821-1862)은 갈릴레오의 등장 이후로 만물과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발견된 것에 힘입어 인간의 역사를 지배하는 철칙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믿었던 바를 입증하기 위해 역사를 탐구했다. 역사를 과학으로 보고 역사적 사실들에서 귀납적으로 어떤 철칙을 찾아내고자 했다.
실증주의의 창시자인 사회학자 콩트(Auguste Comte, 1798-1857)는 오직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함으로서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콩트 이후, 실증주의자들은 역사 사건을 지배하는 통일된 자연법칙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것이 당대의 역사연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
역사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찾아내고 편견 없이 역사를 ‘사실 그대로’ 기술하려고 한 실증주의자들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역사에서 어떤 철칙을 찾아낸 사람은 없으며, 자신의 연구결과가 ‘객관적’으로 진실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이 과학적 역사 탐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객관적’인 방법으로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 탐구하고자 했다. 복음서는 객관적인 역사지식이 아니며 광신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했다. 성경이 신화와 무의식적인 거짓말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비평적인 역사방법으로 접근하면 예수의 참 모습을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세 가지 그릇된 전제를 깔고 있다. 이것들 가운데서 하나만 잘못되어도 그것에 바탕을 둔 주장은 진리가 아니다. 첫째는 자율적 인간 이성의 능력을 확신하는 계몽주의이다. 계몽주의 시대의 아들들은 인간 이성이 진리에 대한 궁극적 시금석이라고 보았다. 이성을 최고의 재판관으로 삼아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자연주의(Naturalism)이다. 그들은 초월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실재를 부인했다. 유서 깊은 정통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초자연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기적을 일으키며 특별한 방법으로 진리를 사실대로 계시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자유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기독교’는 초자연적인 것을 믿는 신앙을 경멸한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으며,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 사건은 신화이며 광신자들의 종교 이야기와 환상을 재구성한 것으로 보았다.
셋째는 실증주의적인 역사방법에 대한 확신이다.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예수를 ‘실제로 있었던 그대로’ 탐색하고, 사실들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이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비평 방법으로 발견해 낸 ‘역사적 예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다. 대속죽음이나 육체부활과는 무관하며 초대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예수에 대한 신앙과 역사 서술과 해석의 상당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예수는 신적 존재가 아니며, 성육한 분도 아니며, 기독교의 초기 역사는 대부분 허구라고 보았다.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의 역사탐구는 복음서의 역사적 가치를 격하시킨다. 앞서 지적했듯이 광신자들의 고백과 환상과 고상한 거짓말을 담은 것으로 본다. 신약성경의 예수에 관한 기록을 편견과 사실무근의 ‘고백’을 재구성한 것이며, 자신들이 발견한 ‘역사적 예수’만이 객관적이고 편견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예수를 혹평하면서도 그들 자신들이 만들어낸 예수를 ‘객관적’인 또는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한 것을 ‘역사적 사실’로 믿는다.
19-20세기 예수 전기 작가들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인물을 그려냈다. 자신의 생각대로 환자의 얼굴을 고치는 성형외과 의사와 같이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인물이 2천 년 전에 존재했던 ‘역사적 예수’라고 믿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 종교다원주의자들, 예수 세미나관련 학자들이 말하는 ‘역사적 예수’는 2천 년 전에 존재했던 분이 아니다. 그들이 그릇된 전제와 방법을 따라 만들어낸 가상(假想)의 인물이다.
관점과 전제와 무관하게 연구, 해석, 서술할 수는 역사는 없다. 족보나 연대기는 예외이다. 역사는 물리학자들이 하는 방식의 사실 증명이 불가능하다. 계몽주의, 자연주의, 실증주의에 바탕을 둔 역사 연구가 ‘신앙의 예수’와 구분된 ‘역사적 예수’를 발견하고자 했으나,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한 것이 지나지 않으며 그러한 시도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었다.
3. 역사관념주의적 접근
20세기를 풍미하던 관념주의, 실존주의 역사연구 방법은 실증주의 역사방법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했다. 주관성을 배제한 역사연구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면서 실증주의적인 역사탐구를 완전히 거부했다. 역사적 사실을 ‘실제로 있던 그대로’ 기술하거나 그것에서 철칙을 찾아내거나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을 부정했다.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을 역사연구의 과제로 보는 것을 반대했다.
관념주의 역사관은 역사 그 자체에서는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역사가의 실존적인 내면성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역사가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고 역사가 재구성된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히스토리에’보다 ‘게쉬히테’에 몰두했다. 그 결과, 역사를 ‘객관적’으로 탐구하려는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채 역사연구에 임하면서도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이해의 지평을 펼친다고 생각했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연구 대상은 같지 않다. 자연과학은 인간 밖에 있는 것을 연구하며, 인문과학은 인간 안에 있는 것을 연구한다. 역사연구는 인간의 이해(verstechen)라고 하는 과정을 거쳐 과거의 행위를 재생하거나 재고하는 작업이다. 해석자는 저자의 원초적인 창조의 순간을 다시 경험한다. 자신의 현재적 경험에서 과거를 재생한다.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에 바탕을 둔 관념론은 역사가 개별적이며 유일하고 반복되지 않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역사는 살아있으며, 그것에 대한 연구는 사건의 내면과 외면을 탐사하는 작업이다. 사건의 내외 양면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일이다. 자연은 과학자에게 언제나 하나의 단순한 현상일 따름이지만 역사 사건들은 그 이상이다. 역사가는 역사 사건 그 자체에만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그 사건들을 통해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사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틸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와 콜링우드(R. G. Collingwood, 1889-1943)는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접근하면서 역사를 사상사(History of Idea)로 이해했다.
관념주의자들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이 시도한 그릇된 방법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여 기독교 역사 연구에 도움을 주었다. 이 움직임은 ‘예수의 종교’와 ‘예수에 관한 종교‘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진보주의계 신학자들의 시도로 이어졌다. 관념주의 시각을 가진 실존주의자들로 하여금 ‘객관적 사건’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주관적인 결단과 활동을 강조하는 역사연구에 관심을 갖게 했다.
역사탐구와 서술의 주관적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관념론적 접근은 역사이해에서 외부세계, 곧 객관적인 세계를 무시하거나 거의 배타적으로 여기면서 개인의 이해, 결단, 위탁이라는 내면세계만을 지향하는 폐단을 가져왔다. 관념론적 역사연구가 외적 사건과 함께 내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은 좋으나 내적 세계가 외적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실을 규명하는 것보다는 역사가가 가지고 있는 의도, 목적, 정책, 목표, 취향, 정서, 견해를 찾아내는 일을 역사가의 최고의 관심거리로 만들어버렸다.
독일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은 기독교가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고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난 사건은 오늘날의 기독신자의 실존적인 체험 속에서 지금 일어나는 것들보다 덜 중요하다고 보았다. 기독교 신앙은 골고다 언덕이나 빈 무덤에서 일어난 역사 사건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의 의미는 언제나 당신의 현실 속에 존재한다. 당신은 관찰자로서는 그것을 알 수는 없고. 단지 당신의 책임 있는 결단 가운데서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관념주의적 접근방법은 역사의 재구성적 성질과 주관적인 특징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기독교 신앙을 ‘객관적’인 사실에서 분리시킨다. 신앙과 역사를 격리시키려고 한다. 이성과 신앙, 믿는 바와 아는 것, ‘히스토리에’와 ‘게쉬히테’를 떼어놓으려고 한다.
불트만은 기독교 신앙이 역사 사건에 토대를 두게 되면 오히려 위험에 놓이게 된다고 보았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기독교 신앙의 대상은 역사성을 가진 예수가 아니고 케리그마(설교)를 통해 선포되고 실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예수이다.
불트만은 선포된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신자 사이에 여러 가지 불필요한 것들이 끼어있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의 핵심이 문화의 껍질 속에 채워져 있다고 보았다. 그의 ‘비신화화 신학’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성경에 기록된 것들을 글자 그대로 믿는 일은 어리석으며, 자연과학과 모순되는 성경의 이야기들을 모두 신화로 여겼다. 신약성경의 핵심 메시지에 대한 불트만의 탐구는 그 메시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의 껍데기를 벗겨내는데 초점이 있었다.
불트만이 생각하는 성경의 첫 번째 신화는 현대 과학과 모순되는 성경의 서술들이다. 진화론이나 지동설에 상반되는 것들이다. 그 다음은 현대 심리학과 모순되는 것들이다. 귀신들린 자들의 행동이나 초인간적인 악령을 언급하는 성경기사이다. 불트만이 말하는 ‘과학’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자연과학자도 절대적인 것으로 신뢰하지 않는 자연법칙이나 과학을 절대시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비신화화 이론을 전개했다.
불트만의 시각을 적용하면 유서 깊은 기독교의 중추 교리인 성육신, 동정녀 탄생, 속죄사역, 부활, 승천 등이 실제로 있었든지 허상이든지 간에 기독교는 그럴듯한 종교가 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부활사건은 부활신앙의 토대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동정녀 탄생, 육체부활과 같은 유서 깊은 기독교 신앙의 중추 교리는 덧없는 것들이다.
자유주의 기독교와 유서 깊은 기독교는 뿌리가 다르다. 19세기 자유주의들이 ‘역사적 예수’라는 새로운 예수를 만들어 낸 것처럼, 오늘날의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은 ‘새로운 기독교’(New Christianity)를 창안했다.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새 종교에 새 이름을 붙이지 않고 해묵은 이름인 ‘기독교’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랜 역사를 가진 종교의 평판, 특권, 터전을 새로운 종교의 것으로 삼는다.
4. 예수의 부활과 ‘역사적 사실’
이상의 논의는 역사적 사건이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부활이라는 사건이 과연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칸트의 인식론에 충실한 사람들은 역사의 상대적인 면을 강조한다. 역사관념주의와 주관주의는 역사를 주관적인 해석활동의 산물로, 사변적 작업 그 이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 역사지식은 인위적인 것이며 주관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순수하고 객관적인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변 작업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토대로 삼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가 소중하므로 역사와 같은 가변적이고 검증 불가능한 것에 기독교를 의존시키거나 종속시킬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자. ‘역사적 사건’과 그것에 대한 ‘이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게쉬히테’는 ‘히스토리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독교 신앙이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있다고 말할 때 ‘객관적’이라는 것은 관념론적 개념이 아니라 보편적인 상식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세상은 이러한 ‘객관적’ 정보를 토대로 하여 움직이고 있다. 이 객관성은 어느 한 장소, 어느 한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그것이 사실이라고 증거하는 정직한 증언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일어난 것을 목격하고 그것을 사실대로 전달, 보도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상식객관주의는 인간 이성의 제한성과 인문지식에 대한 상대적, 주관적 요소를 인정하면서도 사실을 사실대로, ‘있는 그대로’ 알리려고 하는 노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신념을 반영한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부활, 승천이 역사적으로 일어난 실제 사건이 아니라면 그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종교지식이나 교리를 신앙하는 것은 맹신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절대 객관주의 관점으로 역사에 접근하면 역사지식에 동원되는 주관적 이해와 재구성적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전해 준 누가복음의 저자는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서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눅1:1-4).
이것은 복음서 기자들이 성경에 기술된 역사사건을 ‘이해’라는 과정을 거쳐 재구성했음을 의미한다. 성령의 간섭 아래서, 유기적인 감화와 감동으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역사가 ‘이해’라는 과정을 거친다는 말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와 재구성에 미친 관점, 세계관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활동을 믿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제한성을 뛰어넘는 특별계시라는 방법으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지 않게 우리에게 알려지도록 했다.
성령은 역사가 안에서 역동적으로 유기적으로 역사한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성령의 지도 아래서 자신들이 인식한 역사지식을 정직하게 전했고, 서술했다. 하나님은 그 역사지식에 오류가 없도록 간섭했다. 성령의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활동은 성경 기록자들로 하여금 일어난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술하고 그것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서술하게 했다. 성경은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초월적 활동의 감동으로 기록된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정리하자면,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인가,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토대인가 하는 것은 상식객관주의(Common Sense Objectivism)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활동 아래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었을 뿐 아니라 그의 죽음이 인류를 위한 대속적인 사역이라고 서술한다. 예수는 부활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모든 잠자는 사람들의 첫 열매라고 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부활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직한 증언자들의 증언과 하나님의 영감을 받는 저자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예수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그것에 대한 해석은 기독교 신앙의 토대이다. 성경이 말하는 역사의 진실성은 특별 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진정성에 버금간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은 초자연적인 계시의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보편적인 역사의 범주에 속한다. 그것들은 상식적인 의미의 ‘객관적 사실’이다. 성령님은 성경 기록자들,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역사를 정직하게 사실대로 기록하도록 했다.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게 했다. 신화, 과장된 고백, 고상한 거짓말이 아니라 목격자들의 정직한 증언을 담도록 했다.
실증주의자처럼 역사의 주관적, 재구성적 요소를 무시하고 접근하면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와 무관한 ‘역사적 예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관념론자들처럼 역사지식의 주관성에 집착하여 역사의 사실성과 ‘객관성’을 무시하면 기독교 신앙은 허상을 붙잡는 것이 된다.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과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정직한 증언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해 준 것과 성령 하나님의 감화, 감동을 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개혁신학과 창의적 목회> (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6)에서 옮김
글쓴이 최덕성은 신학자이다. 교의학(비평적 사고, 철학과 신학, 신학서론,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교수이다.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쓰기>,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정통신학과 경건>, <신학충돌>, <교황신드롬> 등 약 20권의 책을 저술했다. 고신대학교-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였다. 미국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를 졸업했다.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1997-1998)였다. 현재는 브니엘신학교 총장이며 대학원 과정에서 신학-교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 자유주의 기독교와 유서 깊은 기독교는 뿌리가 다르다. 19세기 자유주의들이 ‘역사적 예수’라는 새로운 예수를 만들어 낸 것처럼, 오늘날의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은 ‘새로운 기독교’(New Christianity)를 창안했다.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새 종교에 새 이름을 붙이지 않고 해묵은 이름인 ‘기독교’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랜 역사를 가진 종교의 평판, 특권, 터전을 새로운 종교의 것으로 삼는다. - ㅎㅎㅎ(통쾌한 웃음^)
제가 '마음 먹을 때=많이 열 받을 때' 싸움을 잘하는 것은 분명 외가의 유전입니다.
그들은 항상 잘 싸웁니다 ㅎㅎ 기립박수 하고 싶습니다 !
그러니, 소요리문답을 개편하시지요~~ ^ 이번에는 작품과 작가 모두 '역사'가 될 출판사에 의뢰하면 되지요.
덜 명료해 지시기 전에 하십소서. '아직은 괜찮음'을 주께 드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