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칩 종말론의 종말
최덕성, [교황신드롬] (2014), 제25장을 옮김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2013) 마당에는 이 단체에 유감을 표하거나 항의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 규모 행사를 갖기도 했다.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사탄의 역사를 물리쳐달라고 애원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여러 가지 신앙과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오직 예수 구원’신앙으로 뭉쳤다. 이들 중 얼마는 이듬해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2014) 때도 항의 집회를 열고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기독교인들과 임박한 종말론주의자들이 반대 또는 항의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 가운데 하나가 베리칩(Veri Chip) 종말론 신봉자들이다. 시대를 분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을 베리칩 종말론에 적용하면서 자신과 교인들의 마음을 쥐어짜고 위기감을 가지게 했다. 공포감을 가지고 충성하고 빠르게 행동하게 한다.
베리칩 종말론자들은 성경을 사랑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믿는다. 이 점에서 그들은 ‘오직 성경’ 원칙에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오직 성경’ 신념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논리의 비약과 신학의 빈곤이라는 덫에 걸려 신앙 에너지를 덧없는 일, 무가치한 것에 소비하고 있다.
1. 베리칩 소동
근래에 이르러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 666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누그러뜨려지긴 했으나 아직도 확산되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종말론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강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베리칩이 짐승의 표이므로 절대로 몸에 이식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것을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며, 지옥에 간다고 주장한다. 2013년에 3월 31일 이전에 미국인들의 몸에 베리칩 이식이 마무리되고, 2014년부터 베리칩을 받지 않은 사람은 벌금형을 받고, 2017년부터는 국가가 강제적으로 주입시킬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베리칩과 관련된 미국 건강보험개혁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2010년 3월 23일에 서명했다. 이 법안의 원안은 환자의 병력을 모든 곳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환자의 몸에 붙이거나 삽입할 수 있는 장치를 언급한다. 미국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목적의 신체에 삽입하는 기구(device that is implantable)라는 문구를 담고 있었다. 가난 탓으로 건강보험을 가질 수 없는 미국시민 약 3,200만 명에게 정부가 의료혜택을 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법안에는 베리칩이라는 단어가 없다. 신체 속에 삽입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없다. 그리고 원안에 있던 “신체에 삽입하는 기구”라는 문구가 삭제된 채로 통과되었다. 미국 의회는 베리칩 강제 이식 계획을 통과시킨 적이 없다. “오바마 헬스케어 HR 4872”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이 베리칩 계획을 시도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내가 한 동안 설교를 맡아 봉사하던 애틀랜타의 어느 교회의 모 집사는 완벽한 한국말을 하는 화교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획기적인 의료 정보공유 기술을 미국정부가 수용하기로 내약되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동부 애틀란타시 시민이 서부 샌프란시스코시에서 동일한 의료기록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정보공유 기술이라고 했다. 어디서나 인체 정보를 손쉽게 관리하도록 고안한 전자 인식 기술, 지금 생각해 보니 베리칩이다.
베리칩을 인간 신체에 이식하는 사안은 인권침해의 위험성이 있다. 통치자가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자신들의 유익과 목적성취에 악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인권 단체들은 이것이 인권에 반한다는 까닭으로 베리칩 시행 계획에 이의를 제기했다. 민주 사회에서 개인의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본인이 동의할 때만 가능하다.
우여곡절 끝에 베리칩 계획 시행은 무산되었다. 2010년 3월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오바마 건강보험법 최종안 HR 3590 &HR 4872”에는 베리칩 종말론 추종자들이 확신을 가지고 극단적으로 주장해 온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
2. 베리칩 공포감
베리칩 종말론으로 위기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던 목사들은 그동안 이것이 지구의 종말과 적그리스도의 등장 신호라고 호언장담했다. “목회생명을 걸고 말하노니 확실하다”고 선전했다. 베리칩 종말론에 간한 책을 출판하여 인기를 끈 사람도 있다. 그러나 베리칩 종말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베리칩 종말론 소동 뒤, 주창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유구무언이다. 해명, 사과,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도 베리칩 종말론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어느 베리칩 종말론자는 2013년과 2016년 사이에 지구의 종말이 임한다고 예언하고 있다.
1970년대에 조용기 목사는 ‘유럽연합 10개국 종말론’을 주창했다. 10개국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즉각 그리스도가 심판주로 재림하고, 지구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했다. 설교자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고, 청중은 ‘아멘 아멘’ 하고 화답했다. 여러 차례 설교한 것으로 기억된다. 조용기의 ‘객관적 사실’에 대한 확신에 찬 ‘예언’이 유발시킨 공포감과 위기감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유럽연합 10개국 종말론’ 설교를 들으면서 다짐했다. “두고 보자, 유럽 연합에 10개국 가입이 마감될 때 정말로 지구가 종말을 고하는지, 만약 종말이 오지 않으면, 조 목사에 대한 존경심을 접겠다.”
시한부 종말론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여 기독교계에 피해를 입혔다. 여호와증인과 제7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는 예언한 날짜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지 않자, 한 그룹은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을 바구었다. 다른 한 그룹은 예수께서 공중까지만 재림하여 그곳에서 조사심판을 하고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1957년에 시작된 유럽국가 연합에는 2000년에 이르러 15개국이 가입했다. 2014년 현재는 27개국이 가입했다(그리스,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키프로스, 네덜란드, 몰타, 아일랜드, 포르투갈, 덴마크, 벨기에, 에스토니아, 폴란드, 독일, 불가리아, 영국, 프랑스, 라트비아, 스웨덴, 오스트리아, 핀란드, 루마니아, 스페인, 이탈리아, 헝가리,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체코). 희망하는 몇 나라가 후보국으로 가입을 기다리고 있다. 유럽연합은 중세기에 샤를마뉴 황제가 통일시킨 서로마제국의 재생이다.
1980년대에는 상품에 붙이는 바코드와 요한계시록의 666을 동일시하면서 ‘바코드 종말론’이 등장했다. 모든 사람이 ‘짐승의 표’인 바코드를 받게 될 것이고 그 때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했다. 이곳저곳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공포감,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에는 다미선교회(다가올미래선교회)라는 종말론 단체가 소동을 일으켰다. 천지창조 6,000년이 마감되면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고 지구가 없어질 것이라는 했다. 다미선교회는 ‘다가올 미래’를 계시 받은 자신들만이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할 것이라고 했다. 그날 추종자들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소재한 교회로 모여들었다. 공영 텔레비전이 이례적으로 이를 생중계를 했다.
그러나 예측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교주 이장림 목사는 구속 상태에서 10월 24일경 자신의 종말론이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주의 ‘저의’를 이해한 열성 신도들은 계속 휴거를 기다렸다. 다미선교회는 종말의 위기를 전 지구적인 것으로 보고 구원받지 못하는 인류와 구원받을 자신들이라는 구도로 나누는 대하드라마와 같은 스케일을 가진 점에서는 기존의 시한부 종말운동들과 어깨를 견줄 만 했다.
2010년대에 등장한 베리칩 종말론도 해프닝으로 끝났다. 미국이 베리칩을 강제로 국민들의 신체에 투입하거나 이식할 것이고 그 때에 예수께서 재림하고 지구가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구는 계속 시속 1,660킬로미터의 속도로 돌고 있다. A=440의 음파를 일으키면서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다. 거대한 소리를 내면서 달리지만 인간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거나 불확실한 무엇을 근거로 기독교인들의 위기감을 부추기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지구의 종말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게 함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 기독교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마다 신뢰를 잃는다. 호소력이 떨어지면 복음전도는 점차 어려워진다. 기독교 신앙은 진실한 정보에 기초해 있다.
나는 유럽연합 10개국 종말론 주창자 조용기와 바코드 666 종말론자 서 모 목사 그리고 베리칩 종말론자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잘못을 시인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위 종말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신임할만한 신학자나 성경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위 종말론들은 맹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맹신은 일종의 불신앙적 정신체계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논리적 비약과 신학의 빈곤이라는 덫에 걸려 있다. 맹신자는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성경해석을 거부한다. 그릇됨이 밝혀져도 자신의 ‘믿음’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인식구조 가 그들의 ‘오직 성경’ 신념을 통제한다.
3. 짐승의 표, 666
요한계시록을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계시록 본문을 21세기의 어느 현상과 1:1 대응 방식으로 배타적으로 해석함은 더욱 위험하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 666을 베리칩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베리칩 종말론의 빗나감은 요한이 말한 표를 이마나 오른 손에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리니”(계 13: 17)라는 말씀을 베리칩과 무조건적으로 동일시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릇된 해석은 현상을 성경해석에 적용하는 방식에서 출발한다.
전자기술이 발달하면 전 인류에게 개인에게 이식하는 바코드나 베리칩 보다 더 정교한 형태의 새로운 정보파악 기술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 기술은 갑작스런 사고 때 부상자의 의료 기록을 재빨리 접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통치자가 개인의 정보를 그릇된 목적에 이용할 수도 있다. 인권 침해를 이유로 베리칩 제도화를 반대하거나, 신속한 의료봉사를 목적으로 찬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기독인들의 반응과 선택은 다양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짐승의 수” 곧 “사람의 수”(계 13:18)인 666은 무엇인가? 짐승의 표를 이마와 오른 손에 받는 행위는 로마시대에 주인이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종의 표시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의 소 방목지에서는 지금도 소유주를 알리는 표를 소의 이마에 불도장으로 찍어 표시한다. “짐승의 표”란 이 세상을 찬탈하여 지배하는 어두운 세력에게 종노릇하면서 사는 것을 표현한다고 봄이 타당해 보인다.
유태인들은 숫자 7을 완전수로 보았다. 666은 완전수에 미치지 못하는 무엇이 지속적으로 나타남을 표현하는 상징적 숫자로 사용된 듯하다. 악의 계속적인 실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세 번 겹쳐 표현하여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은 자들의 지속적인 세상적 속성과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짐승의 표가 따라다님을 말하려는 듯하다. 악한 세상은 지속적으로 짐승의 표를 가진 것과 같고, 진실한 기독인은 그런 특징을 지니지 않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세상의 지속적 악함 또는 세상의 원리가 기독인에게 거듭 어려움을 줄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요한계시록 13장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세상 원리에 따라 살지 않으므로 어려움을 당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인정하고 살아가야함을 명심하라고 가르친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4. 최우선 과제, 하나님의 소원
주님의 임박한 재림을 알리는 징조들이 많다. 종교다원주의, 교회의 배교현상, 종교통합 움직임, 교황좌 아래로의 귀정으로 귀결되는 에큐메니칼 운동,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과 프리메이슨 조직은 어둠의 권세 잡은 자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핵무기와 방사능 핵 원소는 지구를 폭파시키고 인류를 멸절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인류를 위협한다. 지금도 후크시마원자력발전소에서는 세슘(Cesium)이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체르노빌 핵시설 파괴 때보다 10배 이상 강한 죽음의 원소가 바다로 배출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어패류를 먹을 때마다 섬뜩한 느낌을 갖는다.
기독인은 종말론 신앙을 가져야 하고, 시대의 징조를 간파하고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종말론에 대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정신이다. 종말기에 복음사역자들에게 주어진 최우선적 과제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종말론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길을 알리는 사도적 직무 수행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 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켜 호소하시는 말씀입니다(고후 5:17-21).
하나님의 소원은 창조자인 그분과 인간의 화해이다. 이 화해는 화목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딤전 2:4).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 분 밖에 없다(딤전 2:5). 종말의 때에 복음 전도자의 가장 우선적으로 매진하고 호소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이다.
5. 권면
베리칩 종말론 추종자들은, 유럽 연합 10개국 종말론과 바코드 666 종말론 추종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다.
베리칩을 종말론으로 공포심과 위기감을 고조시켜 온 교사들과 유구무언의 설교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다. 첫째, 오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둘째, 자신을 통제하여 오신(誤信)하게 만든 신념체계의 정체를 간파하는 일이다. 셋째, 통전적 성경해석과 진지하게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이다. 넷째, 하나님의 가장 간곡한 부탁 곧 화해의 복음 전도에 매진하는 사도적 사명 수행이다.
그리스도는 오늘 밤에도 재림하실 수 있다. 도둑처럼 예고 없이 오셔서 역사와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다. 종말의 날에 인류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베리칩 종말론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빵,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 직무 수행이다. 그리스도가 온전히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더 강력하게 임하는 기적을 간구하는 일이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전 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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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에 대한 기본시각을 갖추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