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WCC 바로알자』(2013) 표지
이형기·박성원 교수께 묻는다
기만(欺瞞)은 기독교 신앙과 윤리의 기본에 저촉되는 행위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부산총회)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만적인 주장들이 나타났다. 가장 심각한 것은 신학자들의 사실호도이다. WCC 한국준비위원회가 대량 제작하여 배포한 『WCC 바로알자』(2013) 가 담고 있는 WCC 강변의 글은 한국교회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오점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이형기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와 박성원 교수(영남장로회신학대학교)가 저술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신학자의 학문작업도 완전할 수 없다. 그러나 위 소책자의 사실호도는 학문적 견해차이나 판단착오나 신앙차가 아닌, 의도적인 거짓증거로 보인다. WCC 부산총회는 한국교회사에 기록될 큰 사건이다. 이와 함께 예장 통합 소속 신학자들의 사실호도―거짓증거는, 만약 사실이면, 한국교회의 혈관에 흐르는 기만성과 불순한 신앙 전통이 낳은 우롱 행위로 평가될 것이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필자에게도 적용된다. 필자의 판단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당사자들의 답변을 듣고 싶다.
비평적 학문 논의는 진실에 다가가는 수단이다. 신학자는 ‘교회의 교사’이다. 기독교 진리는 정확성과 정직한 정보전달에 기초한다. WCC 신학은 기독교의 존립, 기독교회의 사활, 기독인의 영적 생명에 관련된 사안이다. 그러므로 수고스럽지만 아래의 글에 학문적으로 반응해 주기를 기대한다. (최덕성)
참고: 아래의 글은 WCC 찬반토론회(정병준·최덕성, 2013.6.24., 브니엘신학교) 발제문을 소책자 『WCC 바로 알라』(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3)로 출간하였고 다시 피시(PC) 파일로 바꾸어 실은 것이다. 매킨토시로 작업-편집된 텍스트를 전환하면서 주석(註釋) 번호를 마지막 부분으로 처리하였다.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분은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유튜브 동영상 “WCC 찬반토론 1, 2”(www.youtube. com) 시청을 권한다.
WCC 바로알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가진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는 자신의 유해성에 대한 판단 가능한 결과를 내놓았다. WCC는 1960년대에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 공중납치 된 뒤 반기독교, 비성경적 방향을 향해 줄달음쳐 왔다. 유럽과 북미와 대양주의 교회들은 WCC 신학을 추종하다가 생명력을 상실했다. WCC는 ‘지형변화’ 곧 교회의 죽음을 가져오는 자유주의 신학을 제재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진리 안에서 일치’라는 성경적 에큐메니칼 원칙을 무시한다. ‘다양성 안의 일치’라는 세속적 원리를 따른다. 그 결과로 적(敵)이 집안―교회에 들어와 분탕질을 해도 막아낼 길이 없다. WCC 추종해온 주류 교회들은 퇴락하고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1
WCC 제10차 총회(이하 부산총회) 한국준비위원회가 발행한 『WCC 바로알자』(2013)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출 20:16)를 부제로 달았다. 이형기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와 박성원 교수(영남신학대학교)가 공동으로 저술한 책이다. 대량 제작 보급되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으며, 용공주의와 개종전도금주의와 무관하고, 성경의 권위 위에 굳게 서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은 한국 진보 진영 신학자들의 견해와 정면 충돌한다.2 그 주요 내용은 사실호도(事實糊塗)로 보인다. 사실호도와 거짓말은 같은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를 기만하는 것으로 보이는 신학자들은 넓은 의미의 개혁주의 전통에 속해 있다.
1. 공동선언문 사건
2013년 정초, WCC 제10차 총회에 대한 한국기독교 에큐메니칼 단체 대표자 4인이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신앙고백 문서는 진보계와 보수계 양 진영으로부터 정치적 야합문서라는 비판을 받았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 고백을 담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 서명자들이 공동선언문에 동의 서명하고 공동으로 발표를 했다고 하여 반기독교적이고 비성경적인 WCC 신학이 바꿔지지는 않는다.
위 공동선언문은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 공산주의와 인본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를 반대한다. 그리고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며 무오한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고백한다. 위 ‘4대 신학 조항’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정박지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기초이며 가시적 교회 일치의 최소한의 조건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NCCK)와 성공회대학교, 감리교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신학 교수들,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학자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공동선언문의 ‘4대 신학조항’이 WCC 신학과 정신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강력하게 거부했다. 이들의 격한 음조의 거부 성명서는 자신들의 반기독교적 ‘신앙고백’을 용감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공동선언문에 WCC 신학이 없다”고 하고, ‘쓰레기’라고 폄훼했다.
진보계 신학 진영이 개최한 에큐메니칼 신학 심포지엄(2013.2.4.)은 WCC 신학이 위 공동선언문의 내용과 불일치함을 확인했다. 이정배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있다고 말했다. “기독교적 정체성의 표현인 회심은 이웃 종교인들의 구원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육화되신 하나님께서 만유와 만인 그리고 이웃종교들 속에서도 현존하고 활동한다고 믿는 까닭이다”3고 했다. 예장 통합은 에큐메니칼 정책세미나(2013.2.15.)에서 공동선언문의 신학조항들을 폄훼했다.
공동선언문에 대한 반발은 이같은 한국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기독교와 WCC, 한국교회와 WCC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충돌, 패러다임의 차이를 드러냈다. 양측은 상극관계이며, 하나가 아니며, 결코 하나 될 수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국교회가 하나의 가족(one household)이라거나, 진보계와 보수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근본적으로 하나이라거나, 상호보충적 관계라고 하는 따위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며 근거 없음을 알려주었다. 교회일치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 교리 고백에도 불일치함을 확인시켰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이하 예장통합) 기관지는 WCC 신학에 대한 보수계 신학 진영의 반발을 ‘흑색선전’이라고 단정한다. WCC 신학을 호도해 온 한국기독교방송(CBS)과 예장 백석 기관지는 보수계 신학 진영의 비판을 ‘오해’라고 몰아붙인다. 그러나 공동선언문에 대한 진보계 신학자들의 거부 성명서, 에큐메니칼 신학 심포지엄, 예장통합 교단의 에큐메니칼 정책세미나 등은 WCC 반대 측의 핵심 주장들이 신뢰할 만하고, 사실에 충실하며, 근거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4
2. 신사참배자들의 전통
WCC 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삼환 목사는 이 단체가 신학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공언한다.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와 관련하여, WCC 내부의 소수의 신학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WCC 자체가 그러한 신학을 표방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5 진보계 신학 진영의 기독인들은 “김삼환 목사가 옳다고 하면 옳은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6
한국준비위원회가 발행한 『WCC 바로알자』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라는 부제를 달아 WCC 반대 또는 철회촉구 진영 측의 주장을 ‘거짓 증거’로 단정한다. WCC 반대자들, 거부자들, 비평자들은 거짓 증거자들이라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진실하고 정확한 정보와 신뢰에 기초를 둔 신앙고백공동체이다. 사실을 호도하고 거짓 증거를 하는 기독교 운동은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정당하지 않다. 양심의 판단, 교회의 판단, 역사의 판단, 하나님의 판단이 기다리고 있다.
여러 면에서 WCC 한국준비위원회의 행보는 일제말기와 해방 뒤에 보여준 친일파 목사들의 전력(前歷)을 연상시킨다. WCC를 환영하는 자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배교하고 교회를 훼파한 친일파 교회 지도자들의 영적 후예들이다. 이들의 거짓 증거는 일제말기에 종교적 사실을 호도하고, 우상숭배를 적극 권유하는 운동을 전개하던 친일파 선배들의 전통을 잘 반영한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자신의 역사를 날조하여 밀어붙이는 것과 궤(軌)를 같이 한다.7 WCC 부산총회가 제2의 신사참배 사건이라는 일각의 표현에는 일리(一理)가 있다.
3. 『WCC 바로알자』 (2013)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 바로알자』에서 공식 문서를 전거(典據)로 일일이 제시하여 객관성을 가진 글처럼 보이도록 접근한다. 그러나 그 핵심 주장들은 모두 사실호도 곧 거짓 증거이다. 이 글은 나무는 보면서 숲은 언급하지 않는다. 한 입에 두 혀를 가지고 있으며, 야누스의 얼굴처럼 두 얼굴을 가진 WCC의 특징을 무시한다. 억지주장, 궤변,8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우물에 독 뿌리기 식 논리로 일관한다.
이형기와 박성원의 강변 핵심 요지는 공동선언문의 ‘4대 신학 조항’과 일치한다. 이들은 WCC가 (1) 자유주의 신학과 무관하다고 한다. (2) 편협하지 않은 온전한 신학을 추구한다고 한다. (2) 사회선교만 하는 단체가 아니며 통전적 선교를 한다고 한다. (4) 이중의미의 언어세계가 아니라고 한다. (4) 자유주의 신학 일변도 단체가 아니라고 한다.
위 책의 핵심 주장들에 대한 분석에 앞서, 이들의 두 가지 궤변을 먼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교회의 보편적 속성에 대한 이형기와 박성원의 관점이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사도신경의 우주적 공교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면서, “각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거룩한 교제로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그 보편적 교회성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로마가톨릭교회 교회관의 영향을 받은 WCC 교회관을 반영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재확인한 성경적 교회는 기본적으로 가시적 기구가 아니라 불가시적인 신앙고백공동체이다. 교회의 보편적 속성은 사도적 신앙을 공유하는 데서 발견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기독교의 중추적인 교리를 고백하는 교회는 세계교회와 가시적인 연결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 “WCC 에큐메니칼 운동이야 말로 에반젤리칼 운동이다”고 한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곧 복음적 운동이다. […]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한다. 이 궤변은 에반젤리칼하면서도 에큐메니칼하고, 에큐메니칼하면서도 에반젤리칼한 태도를 가진 예장 통합의 회색주의 태도를 대변한다.
궤변은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는 상태에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내뱉는 억지 주장이다. 완전히 그릇되지 않을 수 있으나 핵심이 틀린 주장이다. 에큐메니칼은 철저한 에반젤리칼이라는 식의 말은 흑이야 말로 진정한 백이며, 하늘이야말로 진정한 땅이라는 말과 같다. 남자야말로 진정한 여자이며, 정통은 진정으로 이단이라는 말과 같다. 자유주의 신학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주의 신학이며, 참이야 말로 진정한 거짓이라는 식의 논리적 오류이다.
사진: 『WCC 바로알라』(2013) 표지
4. 종교다원주의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종교다원주의와 무관하다고 강변한다. “WCC는 기독교 신앙에 굳게 서서 종교 간의 대화를 도모한다. WCC가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말은 거짓 증거이다”고 선언한다. WCC가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 간의 대화를 하지만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 기독교 신앙을 벗어나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한 거짓 증거이다. 이 말은 김삼환이 “WCC 내부의 소수의 신학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WCC 자체가 그러한 신학(종교다원주의)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다”고 한 말과 일치한다.
종교다원주의는 현대판 자유주의 신학이다. WCC 연구가 정병준 박사가 지적하듯이 “종교다원주의란 ‘하나님에게 이르는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10 예수 그리스도―기독교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役事)가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총을 기독교에 제한하지 않아야 하며, 타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하는 ‘신학’ 사상이다.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7개의 공식 문서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로 표방한다.11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without setting limits to the saving grace of God). 창조주 하나님은 어느 때와 어느 장소에서도 자신을 증언하지 않은 적이 없다.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분명한 개인적 헌신에 제한하는 신학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구원의 신비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양떼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 성령 하나님은 ‘살아 있는 신앙인들’(the people of living faith, 타종교인들)의 삶과 전통 안에서도 활동한다고 솔직하게 확언한다고 말한다.
WCC의 홈페이지에 지금도 실려 있는 “바아르선언문”(1990)은 종교다원주의를 분명하게 선언한다. WCC 제7차 총회(캔버라, 1991)가 보고를 받은 이 단체의 공식문서이다. WCC가 지향하는 만인보편주의 구원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에 대한 종교다원주의 신조를 아래와 같이 분명하게 선언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게 된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서도 나타나지만, 이제 이 제한들은 초극(超克)되었다. [우리는] 구원이 보편적이며, 타종교 신앙인들 곧 살아 있는 신앙인들의 삶과 종교 전통 안에도 성령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다고 선언한다. 전 인류가 우주적 그리스도 곧 다양한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12
부산총회가 선포할 WCC의 새로운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지형변화 속의 선교와 전도”(2012)도 종교다원주의를 선언한다.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총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신앙인들’ 곧 이슬람, 불교, 힌두교, 도교 신봉자의 삶과 전통 안에서 활동하며, 그 하나님은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에 우리보다 앞서 가서 계시며, 하나님은 피선교지에 우리보다 앞서 가서 계시며, 따라서 우리의 과업은 그곳에 이미 존재하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이라고 한다.13
기독교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믿고 고백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가? WCC에 따르면, 꼭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까닭이 없다. 종교단원주의는 WCC가 종교 간의 대화 마당과 구원론 논의에서 줄기차게 표방한 이단 사설(邪說)이다. WCC가 전임 신학자를 고용하여 20여 년 동안 계발한 신학사상이다. WCC에 따르면, 기독교 선교와 선교사의 과제는 불교인에게 성불(成佛)에 전념하라고 권하고, 힌두교인에게 자기가 섬기는 신들에게 더 충성하라고 격려하고, 무슬림에게는 ‘알라’에게 더욱 매달리라고 충고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선교’ 곧 인간화, 인권운동, 혁명투쟁, 환경보호, 인도주의 활동만 하면 된다.
종교다원주의는 상대주의 진리관, 만인보편구원주의, 종교혼합주의와 얽혀 있다. 종교대화주의는 기독교의 진리를 양보하거나 포기할 각오를 가지고 대화에 임하는 상대주의 인식론에 기초해 있다. 기독교의 진리의 상대적 가치만 인정하는 계몽주의 철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WCC는 이와 같은 구도에서 기독교와 역사적 종교들의 통합 또는 혼합을 지향한다. WCC 캔버라총회(1991) 개회식에서 정현경 박사가 펼친 초혼제 푸닥거리 한 마당은 WCC의 종교혼합주의를 예술적 퍼포먼스로 정교하게 표현한 계획된 행사였다. 이 행사는 WCC의 종교혼합주의 사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형기와 박성원은 초혼제와 관련하여 종교다원주의·종교혼합주의가 WCC 안의 소수 신학자들이 개인적인 사상의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WCC는 이 단체의 최대의 화두가 된 초혼제에 대한 해명의 글을 발표한 적이 없다. 초혼제는 WCC가 자신의 신학 흐름과 종교운동의 방향성을 정확하게 제시하려고 치밀하게 계획하여 연출한 행사였다.
WCC는 기독교 공동체를 넘어서는 종교 신학을 모색한다. “우리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 인격적 위임에만 국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야 할 필요를 인식한다”(a need to move beyond a theology which confines salvation to the explicit personal commitment to Jesus Christ. “Baar Statement”)고 한다. WCC는 기독교 공동체를 넘어서는 종교공동체 곧 ‘폭넓은 에큐메니즘’(wider ecumenism)과 ‘거대 에큐메니즘’(macro-ecumenism)을 거론한다.14 종교혼합주의 맥락에서 모든 역사적 종교를 아우르고 일치시키고 싶어 한다.
5. 용공주의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용공주의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WCC를 용공단체로 낙인찍은 일은 미국의 극우반공주의자 칼 매킨타이어와 그가 이끄는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 그리고 이들의 사주를 받은 남아공 인종차별백인정권”의 행위라고 한다. 매킨타이어는 WCC의 용공주의 정책과 활동을 비판한 사람이지 허위사실을 거짓으로 꾸며내어 낙인찍은 자가 아니다.
WCC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용공주의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용공주의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1960년대 초에 수용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정책 때문이다. WCC는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시각으로 기독교 복음을 이해해 왔다. 이러한 기조(base)에서 세계 여러 지역의 혁명 활동과 해방 투쟁 사업에 거액을 지원했다.
WCC는 1970년에서 1978년까지 인종차별투쟁사업(Program to Combat Racism)에 미화 3백 6만여 불을 제공했다. 1978년에는 로디지아 애국전선 게릴라들에게 미화 8만 5천불을 원조했다. 나미비아의 게릴라 부대인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에 미화 12만 5천불을 지원했다. WCC가 쿠바에서 훈련을 받고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마르크스주의 게릴라들에게 재정을 지원하고 정치적으로 지지한 것은 명백한 용공주의 활동이다. WCC는 사상적으로 무력사용을 정당화 하는 지경까지 나아갔다.
WCC의 용공주의 활동을 최초로 본격적으로 연구한 어네스트 레훼버(Ernest W. Lefever)는, 조지타운대학교 교수 시절에 저술한 『암스테르담에서 나이로비까지: WCC와 제3세계』(1981)15에서, WCC가 매우 위태로울 정도로 마르크스주의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한글로 번역되었다. WCC는 레훼버의 지적에 법적 학문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WCC가 출판한 『세계교회협의회 40년사』는 그가 지적한 내용들을 인정하면서도 WCC의 행적을 변호한다. 미국 국무성 인권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레훼버의 정보와 지적이 신중하고 정확함을 시사한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아르민 보엔스 박사(Armin Boyens, 연구원)는 1961년부터 1966년까지 WCC 제네바 본부의 핵심 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WCC의 용공주의 활동을 탐색한 연구서에서16 이 단체의 전 총무 유진 블레이크와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WCC 총무들이 공산권 국가에서 일어나는 헤아리기 어려운 인권 문제들을 무시하고 용공주의 활동을 했던 행적을 자세히 소개한다. WCC가 역사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투쟁으로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신학을 수용한 점과 인종차별 반대투쟁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용공주의 활동을 한 전력이 사실임을 공개한다. WCC가 미국에게는 투쟁적이었고, 동구권 공산국가들에게는 매우 친절했다고 지적한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게하르드 바지에르 교수(Gehaard Basier, 교회사)는 WCC의 용공주의 활동에 관한 저서에서 주류 회원교회들이 마르크스주의 혁명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역사를 상세히 기술했다. WCC가 마르크스주의 혁명의 대리인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WCC 미국 지부격 단체인 NCC-USA(Federal Council of Churches, FCC)의 공산주의 활동과 재정지원 사실을 상세히 밝힌다.17
WCC의 용공주의 활동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가 냉전시대와 똑같을 수는 없다. 반공이 친미는 아니며, 친미가 반드시 반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WCC와 용공주의가 무관하다고 하는 이형기와 박성원의 주장은 사실호도이다. WCC 한국 지부 격 단체인 NCCK는 주한미군철수를 외치고 ‘반공의 죄를 참회한다’고 고백했다. WCC의 용공주의 경향은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종북 좌파 기독인들이 WCC 신학을 적극 환영하는 경향과 일맥상통한다.
6. 개종전도금지주의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결코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한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개종전도금지를 선포했다는 비판은 “WCC의 생성 동기나 역사나 현재의 선교 노력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고 한다. WCC가 [씨를] 뿌리는 임무는 교회가 모든 인간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WCC가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했다고 하는가?” 하고 개탄한다. WCC는 “양 훔치기 식 전도방법”을 염려하여 ‘개종금지’를 말한다고 하는 억지를 부린다.
WCC가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18 1997년에 선언했다. 그 핵심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의 미신적인 신앙 습속을 비난하지 말라, 개신교회의 구원관 곧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더 우월한 교리라고 주장하지 말라, 형식상 또는 명목상의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 신자들에게 구원론 중심의 개종전도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가 선점한 지역에서 복음전도를 하거나 교회설립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선교’만 하라고 한다.
첫째, 다른 교회(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역자 주)의 교리, 신앙,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구체적으로 대화하려 하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비판하거나 비웃는 행위, 성상을 받는 모습을 우상숭배라고 비난하는 행위, 마리아와 성인을 향해 우상이라고 비웃거나 죽은 자에 대한 기도를 비난하는 행위.(중략)
셋째, 자기의 교회가 다른 교회의 드러난 약점과 문제에 비해 높은 도덕성과 영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행위.(중략)
여덟 번째, […] 나아가서는 특정한 교회가 주장하는 구원관을 더 우월한 교리라고 주장하는 행위. 19
WCC 신학은 항상 점진적으로 반기독교적이고 비성경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 개종전도금지주의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관계에서 선언되었다. WCC 부산총회가 보고를 받아 선포할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지형변화 속의 선교와 전도”(2012)는 이것을 ‘이웃 종교인들’ 곧 타종교인들에게도 적용한다.
개종주의(Proselytism)는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 메시지에 역행한다. 전도를 할 때에 타종교인에게 예의를 갖추는 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각 종교가 가진 사탄문화까지 존중할 까닭은 없다. 그런데도 WCC는 모든 문화―종교의 가치를 존중하며, 이른바 복음은 특정 그룹―기독교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만인보편구원주의)이라고 한다. 종교다원주의에 근거하여 “우리의 임무는 하나님을 선교지로 모셔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계시하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20이라고 선언한다.
‘개종전도금지주의’라는 용어는 WCC의 반개종주의(Renounce Proselytism)와 선교유예(Mission Moratorium)를 하나로 묶어 한글로 옮긴 신조어이다.21 이 단체의 선교정책을 정확히 담아낸다. 공동선언문 사태 때 한국 진보계 신학자들과 NCCK와 기독교장로회는 개종전도금지주의에 반감을 표했다. 공동선언문 내용이 WCC 신학과 불일치하며, 특히 WCC의 반개종전도와 선교유예 원칙 곧 개종전도금지주의에 일치하지 않다는 까닭이다.
7. 성경의 권위
이형기와 박성원은 성경을 “하나님을 만나는 책”으로 규정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라는 표현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is)고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become)고 보는 바르트주의 성경관을 반영한다. 이 성경관에 따르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수단,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이 아니다. 문학서와 역사서와 같다. 따라서 무오하지 않다. 바르트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적 차원으로 격하시킨다. 기독교 복음의 절대성을 주관화, 상대화하는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진보계 진영 신학자들은 성경을 66권에 제한시키는 공동선언문의 고백을 질타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성경’(가경 7권 포함)을 존중해야 한다는 까닭이다. WCC가 영리하게 고안한 ‘전통론’(몬트리올보고서, 1963)을 근거로 로마가톨릭교회 교회관을 사실상 인정, 묵인한다. 반면에 개신교 신앙의 정박지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원리를 내팽개쳤다.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관점을 수용하고, 바르트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급진주의 신학 성경관을 종합한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중은 교수는 동료 교수 이형기가 역사적 장로교 신학과 성경관을 고백하지 않으며 ‘에큐메니칼 성경관’을 지향한다고 지탄한다. WCC 에큐메니칼 성경관을 양두구육(羊頭狗肉: 양 대가리 간판을 걸고서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에 비유한다.23
이형기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선언’을 작성하면서 정통신학 패러다임을 버렸다고 밝힌다. 정통신학에서 바르트주의 신학으로 신학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WCC의 문서들을 번역하면서 다시 에큐메니칼 신학으로 자신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한다.24 김중은의 불만은 동료 교수 이형기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한국장로교회의 신앙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역사적 기독교가 고백해온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불신주의’로 일컬어지는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을 따른다는 뜻이다.25
이형기와 박성원은, WCC가 성경의 권위를 부인한다는 말은 낭설이라고 한다. WCC가 “어떤 신학적 주장을 할 때 성경을 인용하면서 성경적 근거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WCC의 성경인용 방법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성경 인용 방식을 고스란히 따른다. 아전인수격(我田引水) 격이며 견강부회(牽强附會: 이치에 그릇된 것을 억지로 합리화함) 식이다. 예컨대 WCC의 새로운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2)가 강조하는 만물의 생명, 생명 충만을 요한복음 10장 10절을 근거로 인용한다. 이 본문이 말하는 ‘생명’은 WCC가 말하는 자연적인 목숨, 모든 생명체들이 가진 생명(bios)이 아니다. 성경 본문에 따르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한 목자의 대속사역의 결과로 얻어지는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zoe)이다. 영원한 생명은 무시하고 자연적인 생명에만 초점을 둔 WCC 선교관은 성경적이 아니다. 따라서 이 단체가 성경의 권위에 굳게 선 단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WCC 교회일치운동에 가담하면서도 개신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계시론, 성찬론, 사도직 계승론과 관련하여 교회의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형기는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논문지에 기고한 글에서 바티칸이 ‘갈라진 형제들’에게 ‘다시 돌아오라’는 기존의 입장을 바꾸어 개신교와 로마가톨릭교회의 [대등관계의] 일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26 이는 사실호도이다. 정병준도 한국천주교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2011.5.12.)에서 이형기와 동일한 그릇된 주장을 펼친다.27
로마가톨릭교회의 직전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2007년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기존의 교회론을 바꾸지 않았고 바꿀 의도도 없었다고 성명했다. 개신교회는 유효한 성례를 가진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영국국교회는 예외이다. 교황 무류 교리를 가진 로마가톨릭교회는 교리와 신앙에 관한 선언을 바꿀 수 없다. WCC는 로마가톨릭교회를 사실상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사도직 계승교리, 성전(聖傳)교리, 마리아론, 성찬론, 성인을 향한 기도,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연옥설 등을 문제 삼지 않는다.
8. 결합의 오류
WCC는 가시적 교회일치를 목표 삼아 여러 교파의 고백적 전통들을 수용하는 ‘고백적 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했다. WCC는 ‘하나님의 선교’라는 미명 아래 사회 문제 해결에 전력투구한다. 인권, 인간화, 구조악 타파, 인종차별 철폐, 피조세계 보전 등에만 관심을 가진다. WCC의 전매품과 같은 이 탁월성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의 퇴락과 황폐화에 이바지했다. 포용주의(inclusivism)라는 우상에 포로가 되고, 신앙무차별주의(indifferentism)라는 함정에 빠지게 했다.
WCC의 장점으로 보이는 ‘다양성 안의 일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 소뿔을 바로 세우려다가 소를 죽임, 흠을 고치려다가 도리어 일을 그르침)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교회의 생명력 상실을 가져왔다. WCC를 추종해 온 주류 교회들을 퇴락시켜 빈사 상태에 이르게 했다.28 WCC는 ‘진리 안의 일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교리적 울타리가 없다. ‘다른 복음’과 연합하는 오류를 범한다. WCC는 이단 규제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결합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는 성질이 다른 것들을 하나로 결합시켜 일을 그릇되게 만드는 잘못된 판단이다. 예컨대 맛있는 한식, 일식, 중국식, 프랑스식 음식을 하나로 섞으면 먹기 곤란한 음식이 된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을 합치면 칙칙한 검은색이 된다. 인기 있는 배우들이 총출연하는 드라마라고 하여 재미있는 극이라는 보장이 없다. 신학적 다양성 수용은 기독교 난제 곧 교회의 가시적 분열 해결의 능사(能事)가 아니다.
WCC의 ‘다양성 안의 일치’는 결합의 오류라는 덫에 걸렸다. WCC가 로마가톨릭교회와 가시적 교회일치를 목적으로 고안한 ‘전통론’(몬트리올보고서, 1963)은 결합의 오류의 대표적인 예이다. 로마가톨릭교회를 사실상 인정해 주고, 기독교 신앙의 정박지인 ‘오직 성경’ 원리를 내팽개치는 결과를 낳았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지향하는 복음주의 진영 교회와 일치하거나 함께 에큐메니칼 운동을 할 수 있는 길을 가로막았다.
WCC 에큐메니칼 영성은 기독교의 사멸(死滅)을 향해 질주하는 고속도로이다. 유럽, 북미,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의 생명력 상실과 퇴락의 일등공신이다. WCC의 해묵은 구호인 “교리는 갈라지게 하지만 봉사는 하나 되게 한다”(Doctrine divides, service unites)는 사실상 교회의 죽음을 재촉해 왔다. ‘진리 안에서 일치’라는 성경적 에큐메니칼 원칙을 배제한 ‘댜양성 안의 일치’운동인 WCC 교회일치운동은 빛 좋은 개살구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여러 갈래로 나뉜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점을 기치로 삼아 출발한 WCC는 기독교 신앙의 정박지를 벗어났고, 교회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자유주의 신학자, 이단을 제재하는 장치 없이 무분별하게 가시적 에큐메니칼 운동을 펼친다. 진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비극적이다. WCC가 말하는 지형변화(changing landscape), 곧 교회의 퇴락이다. 교회가 사멸하고 기독인이 없는 데서 누가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고 ‘하나님의 선교’를 하며 사회정의를 외칠 것인가?
9. 지형변화, 죽음의 순례
부산총회가 선포할 WCC의 새로운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 지형변화 속의 선교와 전도”(2012)는 ‘지형변화’를 강도 높게 언급한다. 기독교인 분포의 중심축이 유럽, 북미, 대양주에서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로 바뀌었다고 한다. 복음의 요람지역의 교회들이 퇴락하고 사실상 조종(弔鐘)을 울리고 있다는 말이다.
엉뚱하게도 위 선교-전도 선언서는 지형변화를 이민 현상과 관련시킨다.29 유럽, 북미, 대양주의 기독교인 인구가 줄어든 원인을 이민 탓으로 돌린다. 위 지역 기독교인들이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3세계에 기독교인 수가 증가했다는 말인가?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다. 복음의 요람이던 지역 교회들의 급속한 퇴락을 ‘지형변화’라는 말로 부각시키면서도 그 까닭을 똑바로 규명하지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고, 대책을 세우지도 않는다. 유럽 지역의 교회를 박멸시킨 WCC는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교회마저 박멸시키려고 한다.
교회의 퇴락과 지형변화는 ‘새 생명’ 창조 역사와 직결되어 있다. 위 선교-전도 선언서의 주제는‘생명’과 ‘생명 충만’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생명’은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zoe)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이 가진 제한적이며 유한한 생명(bios)이다. WCC 개념의 생명, 생명 충만은 아프리카의 토속종교 사제나 인도의 구루(Guru)나 한국의 박수와 무당도 환영할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는 종교통합을 향하여 활짝 열린 대로(大路)이다.
WCC의 새로운 선교-전도 선언서의 알파와 오메가는 ‘하나님의 선교’이다. 이 사상은 세상사 활동을 선교와 전도의 주 과제로 본다. 총 112항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위 선언서는 기독교 선교-전도 선언서가 반드시 담아야 할 내용은 배제하고, 담지 않아야 할 내용은 포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영생의 도리,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 구원의 기쁜 소식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이신칭의. 영생의 도리를 말하지 않는다.30 반면, 이단 사설인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 구속사와 세속사,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사회, 복음전도 사역과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를 구분하지 않는다. 성령의 일반은총 차원의 역사와 특별은총 차원의 역사를 구분하지 않는다. 위 문서를 ‘기독교’의 선교-전도 선언서라고 일컬음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한국준비위원회는 역대 WCC 총회 장소를 탐방하는 ‘빛의 순례’ 행사에 거액을 투입하고 있다. WCC 부산총회를 전 세계에 알리고 동시에 높아진 한국교회 위상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을 목적이라고 한다. WCC 총회의 발자취는 교회의 생명력 상실과 퇴락과 죽음의 역사이다. 지형변화 곧 교회의 죽음을 재촉한 역사이다. 종교다원주의, 진리상대주의―종교대화주의, 종교혼합주의, 사회구원지상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용공주의, 로마가톨릭주의, 가시적 교회 일치주의, 신앙고백 형식주의, 성경불신주의 등 반기독교적인 신학을 발전시켰다. WCC의 역대총회들이 발전시킨 신학은 기독교 신앙을 궤멸시키고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간 맹독(猛毒)이다. 이 신학을 추종해 온 주류 교회들은 생명력을 잃었다.31 한국준비위원회의 ‘빛의 순례’는 교회의 죽음을 재촉한 ‘어둠의 순례’라 일컬음이 옳다.
10. 이단
이정환 목사(예장통합 총회 기구개혁위원회 위원장)는 정치적 야합의 결과인 공동선언문에 대한 진보계 진영의 거부 파동을 목격하고서, 자기 교단이 WCC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앙고백과 WCC의 신학이 다르다는 까닭이다. 연합과 일치를 앞세워 66권 성경 외에 외경(7권)까지 인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연합과 일치가 중요하지만 기독교의 본질적인 것까지 희생하면서 할 수는 없다. 예장통합에 속한 약 8천 개 교회들과 약 2만 명의 목회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WCC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32 이정환은 예장통합이 건전한 역사적 기독교 신학을 가진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에큐메니칼 진영의 서광선 박사(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부산총회를 반납하자고 제안한다.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신앙, 개혁주의 신학이 WCC 신학,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학과 상반된다는 까닭 때문이다. 부산총회 건이 물의를 빚고 있고,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으므로, 한국 개최 계획을 취소, 반납하자고 한다.33
한국준비위원회가 ‘빛의 순례’의 시작을 이스라엘의 해변도시 가이샤라에서 가졌다. 왜 WCC 첫 총회가 열린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하지 않았는가? 세계선교의 기틀을 놓은 예루살렘 공의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정신에 따라 WCC 부산총회를 개최하여 세계선교에 이바지하겠다는 의도였다. 예루살렘공의회는 교리 곧 구원 진리를 다루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행위나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고 결정했다.34 니케아공의회(325), 니케아-콘스탄티노플공의회(381), 에베소공의회(431), 칼케돈공의회(451)는 모두 기독교 교리를 다루었다.
이형기는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와 현대 WCC 총회를 등식화 한다. WCC 총회를 고대 공의회의 연장으로 부각시킨다. 이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 전자는 비진리에 등을 돌리고 성경적 진리를 지향하는 교리중심의 공의회이다. 후자는 성경적 진리에 등을 돌리고 비성경적 사상을 향해 줄달음치는 반기독교적 성격을 가진 총회이다.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오늘날의 WCC 총회와 그 신학을 검토하면 어떤 결론을 내릴까? ‘다른 복음,’ ‘이단,’ ‘적그리스도’라고 선언할 것이 분명하다. 공동선언문의 ‘4대 신학 조항’을 거부하는 자들, 사실호도의 궤변으로 교회를 기만하여 생명력을 상실하도록 하는 신학자들,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을 발간한 WCC 한국준비위원회와 그 관계자들에게 저주(anathema)를 선언할 것이다.
한국교회 이단 전문가들은 이단과 사이비기독교에 대하여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다. 그러나 WCC의 이단 여부를 따지는 이단연구가는 없다. 대어(大漁)는 놓아주고 피라미만 잡은 격이다. 과연 한국교회 안의 이단시비 가 성경과 진리성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도 구원이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고 선언하는 WCC를 오히려 적극 환영하고, 혈세 국비 지원을 마다하지 않으며, 지극 정성으로 섬긴다. 한국교히의 이단 논의가 진리성이 아니라 힘 논리, 정치성, 다수 판단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WCC는 이중의미의 언어세계이다. WCC가 말하는 구원, 선교, 전도, 회심, 증거, 하나님의 나라, 생명, 정의 등 신학 용어들은 역사적 기독교 개념과 같지 않다. WCC는 이단 사설을 표방한다. 이 단체의 이단성을 판단하는 한국교회공의회 구성을 제안하는 바이다.
맺음말: WCC 공식 문서가 말한다
WCC의 공식문서들은 이 단체가 역사적 기독교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필자의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2012)와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2013)가 이 주제를 상세하게 논의한다.
한국 진보 진영 교회들은 유일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감사하여 바친 헌금을 가지고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려고 달려드는 적을 위하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있다. 유일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바친 헌금과 혈세 수 십 억 원을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고 신앙고백공동체를 쇠퇴시키는 이단적 집단을 위하여 사용한다.
WCC 부산총회와 관련하여, 한국교회는 복음 진리가 아니라 시류(時流)와 인기에 영합하고 돈의 힘에 따라가고 있다. WCC 들러리 서는 교회 지도자들은 일제말기 친일파 목사들의 행각을 연상시킨다. 한국준비위원회가 발간한 『WCC 바로알자』는 사실호도와 거짓 증거로 채워져 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거짓말을 함) 격 주장은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심대한 범죄 행위이다.
WCC는 1960년대에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 공중납치당했다. WCC를 따라가던 주류 교회들은 생명력을 상실했다(최덕성,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제14장 “교회의 퇴락: 왜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는가?” 439-454를 보라). WCC의 선교-전도선언서는 ‘지형변화”를 강하게 언급한다. WCC 따라가던 유럽과 북미와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이 퇴락했고, 사실상 조종을 울리고 있음을 시인한다.
이러한 WCC의 신학을 알리는 저술활동과 WCC부산총회철회촉구운동 등은 한국교회를 지키려는 사도적 직무에 충실한 노력이다.
거짓의 아비는 사탄이다. 사탄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을 종으로 삼기도 한다. 이형기와 박성원의 위 경우가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WCC 바로알자』의 사실호도 곧 거짓 증거는 신학적 견해차 또는 학문성 차이로 보아 용납할 사안이 아니다. 기독교의 사멸과 한국교회의 생명력에 직결되어 있다. 시류에 따라 언제든지 거짓말을 하고 궤변을 내뱉는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과 맞닿아 있다. 예장통합은 장로교회이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자격을 갖춘 신앙고백공동체라면 개혁주의 교회의 권징 원리와 치리 규례에 따라 사실호도, 거짓 증거, 교회 기만을 서슴지 않는 신학자들을 제재할 것이다.
주석
1최덕성,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05)를 보라. 성경적 에큐메니칼 운동의 원리를 상론한다.
2김삼환 목사(한국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영주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길자연 목사(세계복음주의연맹 한국대회 위원장), 홍재철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가 서명한 문서이다.
3이정배, “‘타종교’와 이웃종교‘ 사이: 종교다원주의 문제,” WCC 공동선언문에 대한 신학적 대응 3, 『뉴스앤조이』 (2013.2.7.).
4공동선언문 사건은 최덕성,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3)에서 상론한다.
5송병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향한 비판의 근거에 대한 역사적 고찰,” 결론. 인터넷 자료 (n.d.).
6WCC 지지 그룹의 다수가 “김삼환 목사는 복음주의적 설교자이다 그가 독성을 가진 단체의 총회를 한국에 유치하고 개최에 앞장설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신부님이 에이즈에 걸렸겠어?” “예쁜 버섯에 독이 들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식의 논리적 모순 곧 범주착각의 오류(category mistake)이다.
7장로회신학대학교는 1948년에 출범했다. 몇 년 전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거행했다. 최덕성,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서울: 지식산업사, 2005), 제12장 “장신대학과 총신대학”에서 상론한다.
8예컨대 자주 등장하는 “전혀 잘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WCC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WCC의 복음이해와 깊이가 얼마나 깊은 잘 모르는 이해부족이다,” “WCC를 전체적으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사실관계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등이다.
9예컨대, WCC 반대자들이 “WCC 안에는 이슬람, 불교, 심지어 시민단체도 가입되어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다”고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이러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하는가?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attack on straw)일 수 있다.
10정병준, “WCC에 대한 오해와 부정확한 비난들” (2009), 인터넷 공간에 실려 있는 자료 (n.d.).
11① “Guidelines on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1979), para.11; ② “Mission and Evangelism: An Ecumenical Affirmation” (1982), para.41,45; ③ “Baar Statement: Theological Perspectives on Plurality” (1990); ④ “Towards a Common Understanding and Vision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1997), para2.6; ⑤ “Mission and Evangelism in Unity Today” (2000), para.58, 59, 63, 64. 65, 66, 67; ⑥ “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s” (2012), para.80, 83, 94, 97, 110; ⑦ “Committee of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Report” (San Atonio, 1989), para.29.
12정병준은 이 문서가 “종교다원주의 문서이다”라고 시인한다(“WCC 찬반토론,”2013.6.24., 브니엘신학교, 유튜브동영상). “바아르선언문” 작성자 중 한 명인 폴 니터(Paul Knitter)는 유명한 종교다원주의자이다. 현재 유니온신학교(뉴욕)의 명예교수이다. WCC의 종교다원주의 사상은 칼 라너(Karl Rahner)의 익명의 그리스도론,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의 보편적 그리스도론(Universal Christology), 존 힉(John Hick)의 신중심주의 신학, 폴 니터의 궁극의 신적 실재론(Ultimate Divine Reality) 등이 종합되어 공식 신학 문서로 작성되었다.
13“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s” (2012), para. 80, 83, 94, 97, 110. 한글 번역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 지형변화 속의 선교와 전도”는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2013) 부록으로 실려 있다.
14WCC, “Towards a Common Understanding and Vision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1997), para.2.6. 정병준은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바아르선언문을 가지고 WCC를 종교다원주의로 몰지는 말아야 한다”고 한다.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문제도 WCC 내부에 일부 다원주의 신학자가가 있다고 해도 WCC는 균형을 유지해가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한다. 정병준, “세계교회협의회(WCC)를 향한 비판의 근거에 대한 역사적 고찰,” 인터넷 자료 (n.d.); 정병준, “WCC에 대한 오해와 부정확한 비난들,” 인터넷 자료 (2009).
15어네스트 레훼버, 『암스테르담에서 나이로비까지: WCC와 제3세계』, 전호진 역 (서울: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1). Ernest W. Lefer, Amsterdam to Nairobi: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nd the Third World (Washington DC: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1981). 최덕성,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제5장 “용공주의: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적인가?”(151-186)에서 상론한다.
16Armin Boyens, “Okumenischer Rat der Kirchen und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zwischen West und Ost,” Nationaler Protestantismus und Okumenishche Bewegung: Kircheliches Handeln im Kalten Kreig, 1945-1990 (Berlin: Duncker &Humblot, 1999), 3-321.
17Gerhard Besier, “Protestantismus, Kommunismus und Okumene in den Vereinigten Staaten von Amerika,” Nationaler Protestantismus und Okumenishche Bewegung: Kircheliches Handeln im Kalten Kreig, 1945-1990, 323-654.
18WCC, “Towards Common Witness: A Call to Adopt Responsible Relationships in Mission and to Renounce Proselytism” (1997).
19WCC, “공동의 증거를 위한 소명,” “개종강요: 역(逆)증거,” WCC,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김동선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92-93. 위 WCC, “Towards Common Witness”(1997)를 번역한 것이다.
20“Together towards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 para.110.
21필자가 “개종전도금지주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거역할 것인가?”(한국개혁신학회 제30회 정기학술논문발표회, 2011.5.14.)에서 처음 사용했다. 이 글은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187-216에 실려 있다. 요약문은 최덕성, 『WCC 무엇이 문제인가?』(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2010)에 실려 있다.
22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이 주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계시의 원칙을 하나로 보면서도 ‘기록되지 않은 성경’이라는 전통을 성경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23김중은, “21세기 한국장로교회의 진로와 신학노선에 대한 인식과 전망: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2005. Wholistic Theology, PCTS, 2010, http://hopeinx.tistory.com/36.
24이형기, 『나의 신학수업의 패러다임의 이동』 (서울: 한들출판사, 2005).
25최덕성,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제10장 “성경불신주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321-360)에서 상론한다.22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이 주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 계시의 원칙을 하나로 보면서도 ‘기록되지 않은 성경’이라는 전통을 성경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26이형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로마가톨릭교회의 에큐메니즘과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연구: 종교다원주의 맥락에서 WCC의 ‘신앙과 직제운동’에 비추어서,” 『신학과 사상』 64 (2009 겨울), 251.
27정병준, “20세기 로마가톨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관계: 공동연구위원회(JWG)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제11회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 주제: WCC(세계교회협의회) 제10회 총회가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에 주는 의미(2011.5.12.), 4. 이형기와 정병준의 위 주제에 대한 비평적 논의는 최덕성,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2012), 432-436에서 상론한다.
28최덕성,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제14장 “교회의 퇴락: 왜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는가?”(439-454)는 미합중국장로교회(PCUSA)와 영국감리교회와 영국국교회의 퇴락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중심으로 상론한다.
29WCC, “Together toward Life: Mission and Evangelism in Changing Landscape”(2012), para.5.
30위 선교-전도 선언서는 딱 한 번 “전도는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과 제자도를 향한 개인적 회심으로 초대”(para.81)라고 서술한다. 복음주의자들을 의식하여 요식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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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최덕성,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 제14장 “교회의 퇴락: 왜 교회들이 죽어가고 있는가?”(439-454)에서 상론한다.
32이정환, “예장 통합, WCC, NCCK 탈퇴해야: 예장통합 신앙고백문과 WCC 정면 대치” 『로앤처치』 (2013.3.7.).
33서광선, “WCC 총회, 취소하고 반납할 것을 제안합니다,” 『에큐메니안』 (2012.3.4.), WCC 총회와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열린 공청회(2013.2.28., 상동교회당, 서울)에서 주장했다.
34이형기와 박성원은 예루살렘공의회가 교회 분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것처럼 그릇되게 설명한다.
최덕성, [WCC 알라] (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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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박성원 교수님의 답변이 없으면, 최덕성 교수의 주장이 옳은 것이 되고 역사는 통합측 신학자들이 끔찍하게 교회를 기만한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신학자들이 교회에 거짓증거를 했다는데, 가만히 있을 건가? 구렁이 담 넘듯이 슬며시 빠져나가지 말고 정면 대응하심이 교수 학자 명예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