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와 초혼제, 무관한가?
WCC 바로알기 20
1. WCC는 정현경 박사의 초혼제와 무관한가? WCC는 종교혼합주의를 지향하지 않는가? WCC는 하나님의 구원이 오로지 기독교에만 있다고 말하는가? 종교혼합주의, 종교통합주의, 종교다원주의 그리고 종교 간의 대화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WCC에 묻는다. 초혼제는 이러한 WCC의 사상들을 무속신앙 퍼포먼스로 표현한 상징적인 사건이 아닌가?
2. 예장 통합 제106회 총회는 WCC와 정현경 박사의 초혼제와 무관하다는 것을 공식 천명했다. WCC는 정현경 박사의 초혼제와 무관하고 또한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는 문서 <복음과 에큐메니칼 신앙: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뿌리와 정체성>(2021)를 공인했다. 정현경의 초혼제와 관련하여 WCC가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라는 비난을 받지만 그것은 오해라고 한다. 이 단체의 타종교 대화(inter-faith dialogue) 활동 곧 교회가 여러 종교들과 사회 봉사 목적으로 대화를 하고 연대 활동을 한 것이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주의라는 오해를 가져왔다고 한다.
3.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신학 교수 소기천 박사는 2021년 11월 13일과 23일에 경기도 파주에서 모인 어느 모임에서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하는 요지의 강연을 했다. 이 영상은 "장신대 소기천 교수의 양심선언"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에 실려 있다. '양심선언'이란 예장 통합 소속 목사이며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로서 이를 감추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 양심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이제라도 공개적으로 고백한다는 의미이다.
4. 소기천이 양심선언의 근거로 삼은 문서는 WCC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종교다원성과 기독교인의 자기 이해"(Relgious Plurarity and Christian Self-Understanding, 2006)라는 글이다. 이 문서의 핵심은 종교다원주의이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로 인해 어떤 공동체도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신비를 소진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47항)라고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이며,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므로, 기독교인이 타종교에 구원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제한을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상대화 하고, 타종교를 환대해야 한다고 한다. 추후 상세히 소개하려고 한다.
5. 예장 통합의 위 소책자는 금주섭 박사, 정병준 박사 등 6명의 글을 담고 있다. 예장 통합이 WCC를 탈퇴하지 않으며, 복음적 신앙 과 에큐메니칼 신앙을 동시에 지향한다고 밝힌다. 복음적 에큐메니칼과 WCC 중심의 진보계 에큐메니칼은 패러다임이 다르다. 예장 통합은 두 가지 서로 대립적인 것을 모두 지향한다. 이 맥락에서 위 소책자는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으며, 초혼제와 무관하다고 한다.
6. 금주섭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는 WCC 제네바 본부에서 여러 해 선교전도위원회 총무라는 유급 직원으로 일을 해 왔다. 위 책에 실은 글에서 “종교 간의 대화는 기독교가 소수 종교로서 박해받는 지역에서 교회와 성도의 신앙의 자유와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 선교이다“(위의 책, 50)라고 말한다. 이웃종교 간의 대화 프로그램은 박해받는 지역의 기독교인들을 보호하는 장치라고 한다. 그리고 WCC 캔버라 총회(1991)의 초혼제는 "WCC와 무관하다"고 말한다(50쪽).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거나 정현경의 초혼제가 이 단체의 종교혼합주의적 퍼포먼스라고 함은 음모라고 한다. 금주섭은 "WCC 오해와 진실 6 WCC는 종교다원주의인가? 정현경의 초혼제는?"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동일한 주장을 펼친다.
7. 정병준 박사(서울장신대학교 교회사)는위 책에서 "정현경 교수의 주제 발표에서 일어 난 초혼제는 개인의 행동이었고, WCC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하다"(위의 책, 66)고 한다. 종교다원주의라고 오해를 받는 “종교 간의 대화는 기독교가 소수 종교로서 박해받는 지역에서 교회와 성도의 신앙의 자유와 보호를 위한 활동”이라고 한다. 정병준은 2013년 6월에 브니엘신학교에 최덕성과 함께 가진 WCC 공개 토론회에서 “초혼제가 새로운 성령론을 모색하려는 [WCC의] 하나의 시도였던 면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8. 이춘복 목사(경기중앙교회)는 예장 통합 교단 총회의 에큐메니칼위원회 위원이다. "WCC 오해와 진실”이라는 제목의 주일 설교(2021.05.24.)에서 WCC는 초혼제와 무관하다고 한다. 그래서 캔버라 총회가 회무를 마무리하면서 초혼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성령을 분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사실이다. 성령은 십자가와 부활을 지시하고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증거한다. 이러한 기준들은 우리가 다른 종교들을 접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성명했다고 한다.
9. 과연 WCC가 정현경의 성령론과 초혼제에 대하여 공식 반박 성명을 했는가? 이춘복이 언급하는 WCC 문서가 정현경의 초혼제와 관련하여 발표된 것인가 총회를 마치면서 정현경의 기조 강연 요지 곧 “모든 영은 같은 영이다”라는 논지에 대한 반박인가? 그렇지 않다. 이 총회의 제4분과 토론 보고서가 성령을 규정하면서 언급한 문구이다. "영들은 분별되어야 한다"면서 "성령을 분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사실이다. 성령은 십자가와 부활을 지시하고 그리스도가 주이심을 증거한다"(93항)라고 했다. 예장 통합 에큐메니칼위원회 위원들은 이 문구를 정현경의 초혼제와 그의 혼합주의 성령에 대한 WCC의 반박문이라고 함은 이를 아전인수격으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10. 정현경의 초혼제가 WCC와 무관하지 않은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WCC 총회 개회식장은 아무나 올라가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총회는 정교하게 준비된 행사만 연출한다. 둘째, WCC 총회 프로세스가 초혼제가 이 단체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총회 개회 훨씬 전에 이 단체의 주지를 대변해 줄 신학자들에게 기조 강연을 부탁하고 그 요청을 받은 저명한 인물들이 강연을 한다. 셋째, 정현경은 WCC 개회 기조 연설자(major speaker)였다. WCC는 초혼제와 종교혼합주의 성령론을 담은 기조강연문을 참석자들에게 배포했다. 넷째 정현경은 초혼제 퍼포먼스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신학적’ 이론을 기조 강연문으로 발표했다. WCC의 신학 흐름과 일치하는 초혼제 성령론을 설명문이었다. 다섯째, '성령'을 주제로 모인 제7차 총회(1991)는 WCC가 공식 문서로 받아들인 '바아르선언문'(Baar Statement, 1990)을 기초로 개최되었다. 이 총회의 신학과 토론의 목표인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적 기조를 확고히 다지는 것이었다. 여섯째, WCC는 초혼제에 대한 지난 30년 동안의 거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혼합주의 무속종교 행사와 자신이 무관하다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11.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 여러 개의 공식 문서들이 종교다원주의를 담고 있다. 추후 WCC 공식 문서들, 1989년의 샌아토니오 문서, 1990년의 바아르선언문, 2002년의 종교다원성과 기독교의 자아정체성, 2013년의 선교와 전도선언문 등을 가지고 이를 증명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예장 통합과 그 교단 소속 신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주장은 사실과 불일치한다.
12. WCC는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혼합주의를 종교다원성(religious plurality, religiosity)이라는 용어 안에 담는다. 종교다원성의 핵심은 종교다원주의이다. 이형기 박사(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는 WCC가 종교다원성은 인정해도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한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를 종교다원성(religiosity) 활동이라고 한다. 이형기의 주장도 사실과 불일치한다. WCC는 "우리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종교다원성이라는 용어로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담아낸다.
13. 초혼제는 WCC의 종교혼합주의 퍼포먼스, 성령론 시연(試演)이었는가? 이 질문은 이 단체의 신학사조, 흐름, 사건, 증언, 문서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고려해야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 WCC 초대 총무 비셔트 후프트(Willem Adolph Visser‘t Hooft, 1900-1985)는 "그렇다, 종교혼합주의 퍼포먼스였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14. 비셔트 후프트, WCC를 조직한 핵심 인물이다. 10년 동안 준비위원회 총무로, 18년 동안 WCC 초대 총무로 활동했다. 이 단체의 사상, 신념, 흐름, 현상, 구도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이 단체의 종교혼합주의와 만인보편구원주의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의 개념을 분석하여 강연을 하고 그것을 책으로 발간했다.
15. 정현경의 초혼제는 비셔트 후프트가 걱정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가 실현된 증거이다. WCC가 지향하거나 표방하는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주의의 열매였다. 비셔트 후프트는 1985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로부터 6년 뒤에 일어날 탈기독교적인 신학과 행태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WCC의 종교통합주의,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 등을 간파하고 있었다. <에큐메니칼운동의 미래>는 이 단체가 탈기독교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음을 걱정하는 내용의 글을 담고 있다.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의 꽃인 초혼제 같은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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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통합주의
(비셔트 후프트의 증언 1)
WCC 바로알기 21
1. WCC의 초대총무 비셔트 후프트 박사는 WCC 에큐메니칼 활동과 그 신학과 흐름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저서 <에큐메니칼운동의 미래>에서 이 단체의 종교통합주의,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를 걱정했다. 종교다원성과 종교간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탈기독교적인 방향을 염려했다. 이 단체가 자기가 생각하는 바와 다르게 탈기독교적 방향으로 치닫고 있음을 걱정했다. WCC 종교혼합주의와 정현경의 초혼제와 같은 탈기독교 행태를 예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비셔트 후프트는 네덜란드인이다. 가족 명은 헤트 호프트이다. 그의 이름 ‘비셔’ 다음에 아포스톨로피(’)와 ‘t’를 붙여 성을 비셔트 호프트라고 부른다. 소문자 ‘t’는 네덜란드어 정관사 ‘het’의 약자이다. 그의 이름은 비헬름 아돌프 비셔 헤트 호프트이다. ‘het'를 붙이지 않으면 비하하는 뉘앙스를 지닌다. 그래서 이름과 정관사와 성을 함께 붙여 ’‘비셔트 후프트’라고 부른다.
3. 비셔트 후프트는 1900년에 네덜란드 할렘에서 출생했다. 스위스 제네바의 명예시민으로 살다가 1985년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WCC와 로마가톨릭교회의 관계 1920년에서 현재까지"(WCC-Roman Catholic relations from the 1920s to the present)라는 긴 개요서의 2차 검독을 마친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
4. 비셔트 후프트는 네덜란드개혁교회 목사후보생이었다가 1936년에 제네바 개혁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네덜란드 레이든대학교에서 목회자 수업을 했다. 레이든대학교에서 1928년에 사회복음주의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제목은 “미국 사회복음주의의 배경”(The Background of the Social Gospel in America, Haarlem: H.D. Tjeenk Willink &Zoon, 1928)이다.
5. 비셔트 후프트는 WCC와 1938년부터 인연을 맺었다. 네덜란드 우트리히트에서 열린 WCC 결성 준비모임에서 총회 준비 임시 총무직을 맡았다. 1948년에 WCC 창립총회에서 총무로 임명받았고 제3차 총회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했다. 1966년에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WCC 명예 회장으로 주요 위원회에 참가했다. 약관 38세로 WCC 산파역할을 맡은 임시총무 기간(1938-1966)을 포함하면 28년 동안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주역 인물(a pivotal figure)이었다.
6. 오늘날의 WCC 총무는 주로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초대총무 비셔트 후프트는 WCC의 흐름과 신학사상 그리고 기본 정신을 세세히 알고 있었다. 그의 강연과 글은 정확도를 인정받으며, 전거로 인용되어 왔다. 명철, 상상력, 지도력, 경험, 용기, 꿈을 실현하는 탁월한 언어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7. 비셔트 후프트의 저서들 중 흥미로운 책은 세 권이다. 첫 번째는 <WCC 기원과 형성>(The Genesis and Formation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Geneva: World Council of Churches, 1982)이다. 두번째는 종교다원주의와 만인보편구원주의를 다룬 <다른 이름은 없다: 종교혼합주의와 기독교 만인보편구원주의 사이의 선택>(No Other Name: The Choice between Syncretism and Christian Universalism(London: SCM, 1963)이다. 세 번째는 우리가 인용할 <에큐메니칼운동의 미래>(Has the ecumenical movement a future (Christian Journals Limited. 1974,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이다.
19. 비셔트 후프트의 <다른 이름은 없다: 종교혼합주의와 기독교 보편주의 사이의 선택>(1963)은 WCC의 종교혼합주의(Syncretism) 성향을 다룬다. 자신은 종교혼합주의를 환영하지 않으며 이 단체가 그것과 만인보편[구원]주의를 지향함을 밝힌다.
8. 비셔트 후프트에 따르면, WCC의 주 흐름 가운데 하나인 혼합주의는 유일하게 완전한 종교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역사적 종교는 신적 실재(divine reality)에 도달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라고 믿는다. 종교는 경험에 기초해 있다. 종교혼합주의는 종교통합주의와 직결되어 있다. 종교통합주의는 모든 종교적 아이디어들과 경험들을 가능한 많이 조화시켜 인류를 위한 하나의 보편적 종교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종교혼합주의와 종교통합주의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9. 에큐메니칼 운동의 역사가 기독교 신앙의 세 가지 필수 요소를 보여주었다. 첫째는 교회가 하나이며 보편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신념이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역사적 사건이며 그가 역사의 중심이라는 견해이다. 세 번째는 기독교 만인보편주의(Christian Universalism)이다. 복음이 담고 있는 독창적인 것(sui generis) 곧 만인이 화목 교리를 중심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관점이다. 이 세 가지의 필수 불가결하고 상호 의존적이며, 에큐메니칼 운동을 거쳐 WCC 안에서 뭉쳐지고 실현되었다고 한다.
10. 비셔트 후프트는 WCC 총무 직에서 은퇴 후인 1972년에 네덜란드에서 “베르켈바하 반 데어 스프렌켈” 강연을 했다. WCC와 관련된 걱정, 말하기 어려운 점, 내적인 고민 등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WCC 운동의 공식 문서와 공석 대화에 드러나지 않는 측면들을 진솔하게 밝혔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세계 종교들과 관련하여 에큐메니칼 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종교 다원 세상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를 밝혔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교회의 의제를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세상의 의제를 따라야 하는지 등을 논했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점증(漸增)하는 신랄한 비판들을 마음으로 수용하면서 진솔하게 자기의 견해를 밝힌다.
11. 위 “베르켈바하 반 데어 스프렌켈” 강연을 100쪽 분량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 (HAS THE ECUMENICAL MOVEMENT A FUTURE , Christian Journals, 1974)이다. 1994년에 한글로 번역 출간되었다(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
12. 저자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제도적 정체(停滯)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라는 제목 아래서 WCC가 제도주의(institutionalism)라는 희망 없는 길을 가고 있다는 비판에 답한다. 에큐메니칼 운동 참여자들은 제도적 형태를 갖는 것을 반대하며 또 창립총회는 중앙화된 통치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거절했다. 그러나 “제도적, 법적인 권력을 갖지 않는 공의회 공동체(conciliarity)” 곧 “하나의 교회(Una Santa, one holy)”라는 기본적인 특징으로 가진 기구로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55쪽). 하나의 교회라고 하는 공의회적 공동체는 단일교회와 무엇이 다른가?
13. 비셔트 후프트는 “종교 세계에서 에큐메니칼 증거”라는 제목의 글은 WCC의 종교혼합주의(syncretism)를 설명한다. WCC는 출범기부터 종교대화주의와 종교혼합주의에 열려 있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리스도 중심의 에큐메니즘에 머물러야 하는가, 다양한 종교들을 모두 수용하는 종교공동체로 나아가야 하는가? WCC는 이 주제를 두고 후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14. 비셔트 후프트는 하버드대학교의 철학 교수 어네스트 호킹 박사(Ernest Hocking)를 거듭 언급하면서, WCC 에큐메니칼 운동이 기독교의 유일성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72쪽)고 한다. 종교 간의 대화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하고 묻고, WCC 안에 통용되는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한 여섯 가지 유형을 소개한다(74쪽 이하). 이 유형들과 이해들이 혼재(混在)한 상태였다고 한다.
15. 비셔트 후프트는 WCC가 제도주의로 고착될 위험은 적다고 하면서 종교혼합주의로 번질 위험을 걱정한다. 그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WCC 안에 혼재한 여섯 가지 유형 중 첫 네 가지 방향으로 가지 않기를 바랬다. 현실은 그의 그의 기대와 같지 않았다.
16. 비셔트 후프트가 걱정하는 것에는 단일의 보편적 종교를 창설할 시간이 왔다고 보는 종교 간의 대화 곧 종교통합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그가 심히 걱정하는 것은 WCC의 종교간의 대화의 핵심 개념이 종교 간의 차이가 사라져야 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WCC가 말하는 종교 간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진정한 종교 통합, 종교 혼합을 위해 모든 종교는 자기를 희생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에 공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대화이다.
17. WCC 중심부에 꽈리를 틀고 자리 잡고 있는 종교통합주의 시각은 WCC의 신학에 영향을 미친 하버드대학교의 철학교수 어네스트 호킹 박사(Ernest Hocking)의 종교통합주의 사상에 기초해 있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기독교의 유일성에 대한 전통적인 믿음을 버려야 한다는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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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 호킹의 종교통합주의
(비셔트 후프트의 증언 2)
1. 어네스트 호킹 박사는 / WCC 종교통합주의 사상과 흐름에 막강한 영향을 주었다. 인도 마드라스 탐바람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1938)에서 타 종교들에 관한 중요한 선언을 했다. 예루살렘선교대회(1928)가 거론한 기독교와 타종교의 관계 주제를 다루면서 타종교에도 깊은 종교적 경험과 위대한 도덕적 성취가 있으며,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타종교인들에게 드러내 보여 왔다고 선언했다. 세계선교대회는 WCC의 전신이다. 1961년에 이 단체와 통합되었다.
2. 호킹은 <선교의 재고>(1932)에서 탈기독교적인 종교통합 사상을 다음과 같이 드러낸다. “중국의 유교, 인도의 힌두교, 일본의 신도(Shintoism)는 모두 그 나름대로 그 문화와 전통의 구심점을 이루고 있으므로 여러 종교 간의 관계는 앞으로 점진적으로 함께 진리를 탐구하는 형태를 취해야 마땅하고 선교사는 이러한 비기독교적인 여러 종교의 멸망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와 계속 공존하면서 궁극의 목표를 향하여 성장하기 위하여 서로 자극하며 가장 완전한 종교적 진리에 있어서의 일치를 기대해야 한다.” 호킹은 동양종교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고 기독교 선교는 유교도들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유교도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전통적 기독교 선교관의 포기를 요구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선교의 재고이다.
3. 탐바람세계선교대회(1938)의 종교대화주의와 종교통합주의 선언은 WCC 제7차 캔버라 총회에 보고된 “바아르선언문”(1991)이 담고 있는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주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바아르선언문의 종교다원주의 사상은 WCC 이전과 이후에 줄기차게 이 단체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비셔트 후프트의 걱정은 정현경의 초혼제가 보여준 WCC의 종교혼합주의, 종교통합주의 흐름을 예견한 것이었다.
4. 종교혼합주의가 기독교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곳은 1930년대의 미국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 아래서 일단의 아메리카 침례교도들이 외국선교를 재평가해야 한다면서 외국선교 연구기관을 만들었다. 연구는 미북장로교회(UPCUSA, 현 PCUSA)를 포함한 일곱 개의 미국 주요 교단들과 부호 존 록펠러의 재정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다. 호킹 팀의 연구와 탐방 결과를 모아 출간한 책은 『선교재고론-일백년 뒤의 평신도의 평가』(Re-Thinking Missions A Laymen's Inquiry After One Hundred Years, 1932)이다.
5. 호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의 중요성과 기독교 교리의 가치를 부정한다. 기독교 복음화는 ‘사랑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봉사’ 활동이다. “선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세계정복을 꿈꾸는 복음주의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의 삶과 생활방식을 나타내고 […] 전통과 급격하게 단절되는 긴장을 극소화하려고 노력하는 대사(大使)여야 한다”고 한다.
6. 호킹에 따르면, 선교의 목적이 성경적 진리를 ‘전하는’ 일이 아니다. 선교는 타종교 신앙인들과의 ‘대화’에서 함께 진리를 찾는 활동이다. “종교들 사이의 관계가 지금부터는 점차 진리를 공동으로 찾아가는 모양을 취해야 한다.” 기독인과 타종교 신앙인을 구분하지 말고 대화해야 한다. 영원한 형벌의 교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이 교리는 기독교계로부터도 외면당한다. 예수는 위대한 종교 교사이며, 기독교 신앙생활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따위는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7. 호킹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역사적 기독교 진리―교리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중생(重生)은 정신적 영향력이며, 모든 종교는 동가(同價)라고 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유교, 신도교는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8. 호킹의 연구보고서는 미국에서 격렬한 찬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보수계 교회들은 반발했고,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교회들은 찬사를 보냈다.
9. 미북장로교회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주목할 만한 신학논쟁을 시작했다. 폭탄을 터뜨린 사람은 소설 『대지』(大地)의 저자이며 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Pearl Buck)이었다. 그는 중국에 파송된 선교사의 딸이다. 상해에서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되어 어느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펄 벅은 호킹의 보고서를 모든 기독인들이 필독해야 하고, 모든 선교부들이 시행해야 할 탁월한 선교지침이라 극찬했다.
10. 미북장로교회를 강타한 신학논쟁과 교회갈등은 칼빈주의 대 현대주의, 정통신학자 대 자유주의 신학자 간의 격렬한 신학충돌로 전개되었다. 신학의 차이로 발생하는 교회의 갈등은 ‘별들의 전쟁’이었다. 소수 신학자들 사이의 신학사상의 대립은 정치권력과 권모와 술수를 동원하고 언론매체를 장악한 현대주의―자유주의 신학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무방비,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는 다수 ‘칼빈주의자들’을 포섭했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11. 프린스턴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정치력을 발휘하여 프린스턴신학교를 장악했고, 근본주의 5대 교리를 한낱 신학 이론에 불과하다고 보면서, 이를 신앙하지 않는 사람도 미북장로교회 안에서 유급 교역자 또는 신학교수로 일할 수 있다는 결정을 끌어냈다. ‘별들의 전쟁’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승리로 끝나고 미북장로교회의 갈등은 잠잠해졌다.
12. ‘별들의 전쟁’과 신학충돌이 가져다 준 평화는 위장된 비극의 시작이었다. 교회의 생명력 상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보균자와 동침한 것과 같았다. 결과는 나타난 교회의 급속한 퇴락과 죽음 증상은 반세기 뒤에 완연해졌다. 신학적 다원주의와 포용주의 그리고 WCC 에큐메니칼 운동을 화두(話頭)로 삼아온 이 교회의 신도 수는 약 반세기 뒤에 절반 이하로 축소되었다. 2011년에는 동성연애자가 목사로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교회법을 개정했다. 2021년 현재는 동성결혼을 교회법으로 합법화 하고, 교인 수는 극도로 줄어들었다.
13. 비셔트 후프트는 WCC 안에 혼재한 종교 간의 대화 개념에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타종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모르지만 그들도 모두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대화가 받아들여지고 있었다고 한다.
14. 비셔트 후프트가 언급하는 것은 로마가톨릭교회 신학자 인스부르크대학교의 칼 라너(Karl Rahner)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이다. WCC 초대 총무는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사상이 WCC 안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WCC의 과제는 “종교의 어둠속에서 [잠자는] 그리스도를 깨우는 것”(후프트, 76)이었다고 한다.
15. 비셔트 후프트 자신은 WCC 안에 혼재된 첫 네 가지를 환영하지 않으며, 나머지 두 가지를 선호한다고 한다. 자신은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한 역사적인 기독교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비셔트 후프트는 이 대목에서 WCC가 역사적 기독교에서 이탈할 것을 예견한다. 이 단체가 종교혼합주의, 종교통합주의, 종교다원주의, 초혼제로 발전하고 뻗어날 가능성을 시사한다. 비셔트 후프트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미래에 대한 예견을 날카롭다.
16. 종교혼합주의와 종교다원주의는 부자지간이다. WCC는 비셔트 후프트가 걱정하고 예견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비셔트 후프트가 걱정한 네 가지 종교 간의 대화 개념들 곧 종교혼합주의와 종교통합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이 과정에 등장한 것이 초혼제였다. 정현경의 종교혼합주의 퍼포먼스였다. 이 단체는 1980년대에 이르러 종교다원주의를 담은 문서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종교 간의 대화와 종교다원성이라는 이름 아래서 실세를 행사하고 있는 종교통합주의,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는 WCC가 지닌 태생적인 특징이다.
17. 비셔트 후프트가 말하는 WCC 안에 혼재되어 있는 여섯 가지의 종교 간의 대화 개념들은 무엇인가?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유유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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