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의 성공조건: 윤리적 우위
임종구 목사
칼뱅과 제네바교회 이야기 (기독신문 2017.3.21.): 제네바 회에는 목회자윤리규정 있었다
칼뱅이 주도한 개혁파가 제네바에서 살아남아 개혁교회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었던 여러 이유 가운데는 신학적 우위도 있었지만 동시에 윤리적으로도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칼뱅의 제네바목사회는 대외적으로 몇 가지 어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먼저 베른의 종교적 간섭이었다. 베른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신학을 강요했다.
그래서 베른영토에서 사역하는 제네바목사들은 예정설을 설교했다는 것만으로도 투옥되기까지 했다. 또 소위 정치목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시의회와 결탁하여 개혁파목사들을 괴롭혔다. 심지어 1555년에는 아예 제네바에서 프랑스 목사와 프랑스 신자들을 모두 죽이려는 음모가 발각되기까지 했다. 특히 제네바의 수구세력이었던 애국파, 방종파는 칼뱅과 결사항전에 가까운 갈등과 대립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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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네바 시민권조차 없었던 칼뱅과 개혁파목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마침내 수구파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개혁파가 주도적으로 제네바개혁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윤리적인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출발은 1541년 교회법령에 목사의 윤리규정이 있었고, 권징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541년 법령에는 교회의 4가지 질서를 말하면서 목사의 의무, 목사의 시험, 목사의 소속, 목사의 선출, 목사회의 모임, 교리문제의 해결절차를 말하고 나서 목회자의 징계를 언급하고 있다. 바로 목회자 윤리규정인 것이다.
1541년 법령은 34개 항목을 언급하고 있고, 1561년 법령은 34개 법령을 첫째, 목회자에게 전혀 용납될 수 없는 범죄와, 둘째, 형제애적 경고를 한다는 조건에서 어느 정도 참아낼 수 있는 악덕으로 나누어 명시하고 있다. 1561년 법령에 명시된 목회자 윤리규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류에 속한 것들-이단, 분리, 교회질서에 대한 거역, 민사 처벌에 합당한 명백한 신성모독, 성직 매매 및 모든 타락한 선물, 다른 목회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술책, 합법적인 휴가 및 정당한 볼 일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교회를 방치하는 것, 사기, 위증, 음란, 절도, 음주벽, 법적 처벌에 해당하는 싸움, 고리대금, 법에 금지되고 추문을 일으킬만한 놀이, 춤과 그 유사한 풍기문란, 국가 비방 죄, 다른 이로 하여금 교회를 분리하게 하도록 하는 범죄 등이다.
둘째 부류에 속한 것들-성경을 이상하게 다루어 소동을 일으키는 태도, 쓸데없는 문제들을 추구하는 호기심, 어떤 다른 교리를 꺼내 놓거나 교회에서 인정되지 않는 교리를 만들어 내는 태도, 성경을 연구하는 일과 특히 성경을 읽는 일에 태만한 것, 아첨에 가까운 악덕을 책망하는 일에 대한 게으름, 천박한 익살, 거짓말, 중상모략, 음담패설, 욕설, 경솔함, 나쁜 간책, 인색함과 지나치게 째째함, 상식을 벗어난 분노, 소란과 싸움, 의복이나 몸짓 및 행동에서 목회자에게 합당치 않는 문란함 등을 적고 있다.
또 시행규칙으로는 민사범죄의 경우, 정부당국에 의한 관례적 통상 형벌 외에도 그 목사는 반드시 면직시킨다. 또 신학적·신앙적 문제일 경우 1차 심의를 치리회에서 조사하고 범죄사실을 당사자가 승복하면, 치리회는 그들의 견해와 판결문을 첨부해 시의회에 보고하고 징계의 최종판결은 시정부당국에서 실시한다. 단순한 경범죄의 경우 교회의 판결로 종결된다.
또한 이런 권징을 올바르게 유지하기 위해서 목회자들은 3개월마다 서로에게 지적할 말이 없는가를 특별히 관찰하여 고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제네바목사회 회의록(RCPG)에는 36건의 고소와 관련된 기록되어 있는데, 목사의 고소건이 13건, 일반인의 고소건이 8건이 있었다.
회의록을 살펴보면 주로 신학적 문제로 사건이 시작되어도 조사과정에서 윤리적인 문제까지 함께 다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정치인들의 윤리문제에 대해서도 제네바교회는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징계했다. 아미 페랭(Ami Perrin)의 경우 부인 프랑수아의 저속한 춤 사건이, 피에르 아모(Pierre Ameaux)의 경우 술과 이혼문제가, 필리베르 베르틀리에(Philibert Berthelier)의 경우에도 윤리적인 문제로 징계를 받았다. 목사들의 징계를 보면 필리프 드 에클레시아(M. Philippe de Ecclesia)의 경우 결혼문제와 고리대금업 협의로, 장 페롱(Jean Perron)은 성폭행사건으로 면직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성만찬을 앞두고 기소사건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적어도 어떤 사건이든지 성찬 전에 해결함으로써 성찬이 기만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 윤리적으로 신뢰를 잃은 목사를 해임하고 다시는 목사직을 회복할 수 없도록 추천서 발급을 거부하는 것도 성찬의 성결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또한 고소와 면직만이 전부가 아니라 예방적 노력으로 형제애적 견책, 즉 목사의 범죄예방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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