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교회론의 미혹 (미완성 메모 수준)
'선교적 교회' '선교적 교회론'이라는 용어가 선교학자들, 신학도들, 선교사들 사이에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선교적 교회,' '선교적 교회론'의 '선교'의 핵심은 현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역이다. 역사적 기독교가 지향해 온 교회의 선교가 아니다. 복음전도와 예수의 십자가 보다는 인간사, 세상사에 매진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선교적 교회'의 태동은 세 가지 배경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유럽 기독교의 쇠락, 몰락이다. 둘째는 WCC의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다. 전자는 기독교가 직면한 위기를 모면할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요청이고, 후자는 '선교'를 복음전도, 영혼구원,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인간사, 세상사 해결로 보는 개념이다. 셋째는 예수의 십자가의 의미를 믿지 않고 구원의 도리를 고백하지 않는 형식적 기독교인들, 명목상의 신자들이다. 십자가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의 할 수 있는 '선교'는 사회복음주의, 기독교 윤리실천, 세상사 해결 등에 지나지 않는다.
4세기 이후 국가와 결합되어 있던 유럽의 국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면서 부터 자동적으로 기독교인으로 간주되었다. 유럽 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월한 기독교 문화를 지닌 기독교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기독교 왕국(Christendom)을 유지해 왔다.
기독교 왕국 아래서 교회의 선교는 지리적으로 유럽을 벗어나 이방 지역의 이방인들에게 복음과 서구의 우월한 기독교 문화를 전파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예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을 개종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
계몽주의 이후,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근거한 거센 세속화와 근대주의의 도전 앞에서, 1500여 년 넘도록 지탱해 온 유럽 기독교의 ‘기독교 왕국'(Christendom)이라는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식민지들이 독립하고, 각 민족의 독자성, 고유성, 민족주의, 전통 종교 등이 발흥했다. 다양한 인종들이 유럽으로 몰려들었다. 점차 유럽의 기독교 문화는 해체되고, 다 종교 다 문화 사회로 급속하게 전환되었다.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 있다고 보는 종교다원주의가 확산되었고, 역사적 기독교는 주변 세력으로 밀려났다.
유럽 교회는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새롭게 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선교적 교회’이다. '선교적 교회'란 전통적 개념의 '선교하는 교회'라는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
유럽 교회의 퇴락과 기독교 사회의 몰락은 '기독교 왕국'에 바탕을 둔 교회 확장이라는 역사적 선교 개념에 변화를 가져왔다. 교회의 선교가 무엇이어야 하며 그 선교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대두 된 것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1952년 국제선교회(IMC) 빌링겐(Wllingen) 대회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요한네스 호켄다이크가 주창했다. 전통적인 개념의 선교 곧 교회 중심적인 선교에서 세상사를 선교의 전부로 여기는 ‘하나님의 선교’가 환영을 받았다. 선교의 초점과 주체에 대한 개념이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서 세상사 해결로 바뀌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창조자 하나님을 선교(mission, 일)하는 분으로 설정한다. '선교'는 일(mission)을 의미한다.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은 그 선교하는 하나님에게서 세상 가운데 보냄을 받은 선교적 존재로 여긴다. 이 개념은 교회의 본질이 ‘하나님의 선교’ 곧 하나님이 하는 일을 돕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개념에서 비롯된 '선교적 교회'라는 표현의 '선교적'(Missional)은 선교 지향적이나 선교 중심적이나 부지런히 선교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중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며, 회중 곧 교회를 세운다는 등의 뜻이 아니다.
‘선교적 교회’의 '선교'는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위해 일을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자유주의 신학 개념의 '하나님 나라'의 현존 곧 정의, 평화, 생명, 화해, 일치 등 인간공동체 건설을 뜻한다. 그러한 개념의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 사역에 충실한 교회의 활동을 뜻한다. 이 맥락에서 '선교'는 교회가 보냄을 받은 곳에서 성육신적 섬김을 통해 이상적인 세상을 이루어가는 일이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의 핵심 요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 나라, 글로컬 문제해결, 포스트모던 사회와 문화가 직면한 것들을 해결하는 활동들이다. '선교적 교회'는 세상을 개선하고, 윤리를 실천하고, 제도를 바꾸 등 '제자도' 실현의 목표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사, 세상사 해결에 전념한다.
'선교적 교회'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교회가 선교사, 재원, 기술, 정보를 선교지에 보내어 하나님이 하는 일 곧 전 피조물 통치의 사역를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사, 세상사에 매진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핵심 활동이라고 본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의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자기 파송 곧 성자의 성육신과 성령을 세상에 보내시고 또 교회를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의 일을 돕게 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선교적 교회'와 자유주의 신학의 ‘하나님 나라’ 개념은 일치한다. 하나님의 선교의 목적은 온 땅과 열방과 온 우주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일이다. 구약성경은 약속과 종말론적 소망인 하나님 나라를, 신약성경은 현존과 성취와 완성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의 목적은 교회 확장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이 땅에 성취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 주창자들은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지만 그 사명을 감당해 해야 할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교적 교회'의 본질을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일을 돕도록 교회가 지원을 하고 인력, 재정, 기술, 정보를 제공하는 일로 여긴다. '선교적 교회'는 세상사, 인간사를 해결에 주력하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론자들은 '교회'를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 곧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세상사, 인간사 해결을 통한 정의, 평화, 화해, 일치 등을 도모하도록 보냄을 받은 공동체로 본다. 교회당 건물이나 회중의 숫자나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보낸 삶의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 곧 인간사, 세상사 해결에 매진하는 교회로 여긴다.
‘하나님의 선교’가 하나님의 존재에 근거하듯이 '선교적 교회'도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에 근거한다. 선교적 삶 곧 하나님 나라 현존과 하나님 나라 증인의 삶이란 정의 평화 화해 일치 환경, 기후 등 생태학적인 과제 해결에 매진하는 것이라고 본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의 주체를 교회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주체라고 본다. 교회의 본질을 하나님으로부터 세상 가운데 보냄을 받은 선교적 존재로 인식한다. '선교적 교회'는 세상사 해결과 함께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 초점을 둔다.
'선교적 교회' 주창자들은 전통적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이분법적 발상 곧 교회와 선교, 교회와 세상, 교회와 선교지를 구분하는 발상을 극복하려 한다. 이들은 '통전적 선교'를 강조한다. '선교적 교회'는 보냄 받은 세상 가운데 계속해서 인간사, 세상사 해결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 활동을 하는 신앙공동체이다.
선교적 교회론자들은 '선교적 교회'를 세울 목적으로 첫째 영혼구원이나 복음진리 전파나 교회 성장에 초점을 둔 목회 전략에서 탈피하도록 촉구한다. 교회의 본질 곧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의 교회의 본질에 충실하다.
둘째 교회의 존재 목적을 복음 전도, 영혼구원, 개종 전도, 교회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 곧 세상사, 인간사 해결과 윤리적 실천으로 이해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취에 둔다.
셋째는 '하나님의 선교'가 하나님의 존재에서 나오듯 교회의 선교도 하나님의 존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넷째는 교회를 신앙고백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사 해결에 주력하는 '선교적 교회'로 바꾼다. '선교적 교회'는 WCC가 지향하는 세상사 해결을 선교의 핵심 과제로 삼는다. 교회의 선교는 전 피조물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일 곧 세상사, 인간사를 해결하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십자가와 구원의 진리 선포를 도외시한다
근년에 진보계 신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공공신학, 통전적 신학, 마을목회 신학, 해방신학은 ’선교적 교회'와 마찬가지로 WCC의 '하나님의 선교'의 아류이다. 구원의 복음과 십자가의 도가 서야 할 곳에 인간사, 세상사를 둔다. 교회의 제한된 에너지를 세상사에 소진하게 하며 결국 교회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선교적 교회' '선교적 교회론'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통전적 선교'라는 구실 아래서 교회를 쇠잔하게 해 왔다. 예장 통합이 지난 반세기 동안 외치고 힘써 온 통전적 선교는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로망이었다. 통전적 선교라는 구실로 강조되는 선교적 교회, 선교적 교회론은 하나님의 선교 이론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쇠락과 죽음 그리고 '지형 변화'를 몰고 온다. '선교적 교회론'의 미혹을 비평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교회의 죽음, 영혼의 죽음에 이른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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