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린 몬로
예수님의 터치
미국의 전설적 여배우 메리린 몬로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미혼모인 어머니의 버림을 받고 대리 양육하는 포스터 홈(Foster Home)을 전전하며 자랐다. 신문 기자가 그에게 “힘든 성장과정을 거치는 동안 사랑을 받아 본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일곱 살 때 어떤 부인이 화장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부인이 귀엽다고 나의 뺨에 연지를 톡톡 쳐 줬을 때 꼭 한번 사랑을 느꼈다”고 했다.
그 유명 배우가 얼마나 사랑을 못 받고 자랐는지를 짐작케 하는 가슴 아픈 대답이었다. 화장용 연지로 자신을 귀엽게 터치해 준 것이 그녀에게 유일하고 잊지 못할 사랑의 터치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외롭게 자란 몬로는 끝내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머니와 가족들의 사랑의 터치를 많이 받고 자란 자녀와 그렇지 못한 자녀의 정서적 안정성에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이미 임상학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다. 후자의 경우에 폐쇄적 성격과 우울증으로 진행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사랑의 터치와 포옹은 정서적 안정 뿐만 아니라 피부가 더 많은 산소를 흡수하게 해 주며 체내에 헤모글로빈을 증가시키고 혈압도 떨어지게 한다고 의학자들은 말한다.
구약성경에 부모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 안수기도를 하며 사랑의 탓치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들에게 가르쳐 주신 사랑의 자녀양육 방법이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가르치신 후 팔복산에서 내려오실 때였다. 한 문둥병자가 갑자기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여 저를 깨끗게 해 주옵소서” 간청했다.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를 터치하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을 때 그 병자는 즉시 치유함을 받았다 (마 8:1-3).
한때 미국에서는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 한국에서는 소록도에 격리될 정도로 문둥병은 경원의 대상이었다. 고대사회는 더욱 그러했다. 격리는 물론이거니와 문둥병자를 손으로 만진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문둥병자를 터치하셨다. 굳이 손으로 만지지 않고 그냥 말씀만으로 고칠 수 있을 터인데도 그렇게 하셨다.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왜 그러셨을까? 오직 그 불쌍한 문둥병자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연민과 사랑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애틋한 사랑과 연민은 “내가 원하노니”라는 그의 말씀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예수님의 이적 기사는 단순히 병 고침만 말하지 않고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촛점을 항상 맞추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서 문둥병은 죄로 인해 비참한 상태에 처해있는 인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손으로 탓치할 수 없을 정도로 불결한 문둥병은 죄 때문에 부패한 인간의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 오셔서 사랑으로 터치해 주시고 구원하신다. 정말 놀라운 은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의 사랑의 터치를 받을 때 나는 영육 간에 더욱 건강해 지고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세계적으로 애창되는 복음송 “He Touched Me”(주 손길)은 이를 노래로 옮긴 것이다. “He touched me, Oh He touched me. Something happened. And the joy that floods my soul. He made me whole!”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사랑으로 터치하시길 원하신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탓치를 받으며 살자. 그분의 사랑의 탓치는 우리 삶속에 구원과 회복의 기쁨이 넘치도록 해 주실 것이다.
황현조(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목사), <뉴욕중앙일보 목회칼럼 2017.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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