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유비쿼터스 세상
나는 ‘386 세대’ 이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 한 때에 컴퓨터에 관한 아무런 지식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는 컴퓨터 실행 능력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선천적으로 기계와 친하지 않았다. 그래서 컴퓨터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악기들조차 내게는 지루한 사물들이었다. 그러한 특성을 지니다보니 지금은 온갖 분야에 필수적인 컴퓨터와 온라인이 ‘내게 너무나 먼 당신'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란데도 나는 언젠가부터 오프 라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정보통신 환경 조성’ 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추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온라인 세상을 꿈꾸어 왔다. 요즘의 전문 용어로 '유비쿼터스'(Ubiquitous) 세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 19 바이러스’라는 세기의 전염병이 돌면서 도래한 절대적, 필수불가결한 ‘온라인 선택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한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오프 라인 존재로, 보혜사 성령을 온라인과 같은 특성을 지녔다고 생각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 이스라엘이라는 선택된 땅의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사역했다. 반면, 성령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셔서 만백성에게 임하시고 그 분의 뜻을 나타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양육해야 했고,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에게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도록 했다. 그리고 십자가 사건 이후 부활 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 내가 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내가 너희가 보는 것 같이 다시 올 것이며 그 보다도 너희에게 더욱 유익 한 것은 보혜사 성령께서 너희들에게 올 것이기에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다.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 하시고 제자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어 주의 복음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되었고, 순교를 마다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을 감당 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주의 영이 임하여 예수를 주라 부르는 구원 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은혜 시대, 성령 시대이다. 은혜의 끝자락인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위에서 말 한 성령님이 오심으로 (1) 능으로도 힘으로도 아닌 여호와의 신으로, 우리의 능력이 아닌 신의 능력의 임함이 일어났고 (2) 예수께서 육체를 입음으로 시공간의 제약과 제한이 주어져 모든 사역의 한계가 있던 것이 성령이 오심으로 누구든지 어디서나 주의 이름을 부르면 예수의 영이신 성령께서 오셔서 인생을 이끌어 가시니, 시공을 초월한 복음 전파의 역사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장 예배는 우리가 다함께 할 수 없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만 온라인은 누구든지 어디서나 함께 모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현장만큼 이나 강력한 집중력과 열정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점들은 제기 될 수 있겠으나 성령님이 오심으로 복음이 확장 되듯 지구촌 곳곳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용이함과 확장력이 있다고 본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온라인 활용이 필수적이 되어 버린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성찬에 대하여 어떻게 받아 들여야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찬반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성찬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시대는 바야흐로 온라인의 활약상에 상당히 의지해야하는 시기에 이르렀기에, 좀 더 심도 깊고 유연한 사고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갑작스런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정부가 대면 예배를 금지 시켰고, 이로 인하여 교회에서는 많은 혼란이 발생 하게 되었다. 대면 예배를 끝까지 사수 해야 한다는 편과 전염병 예방 차원과 정부의 취지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편으로 나뉘어, 교회 내에서 양편으로 갈리는 현상도 발생하게 되었다.
코로나 19로 말미암아 교회의 일상적인 예비 곧 대면 예배가 금지 되어 교계 안에서도 우왕좌왕 하고 있다. 온라인 예배 방법이 있었기에 다행이다. 이 방식은 차선책으로 성도들의 예배 활동을 도울 수가 있었다. 온라인조차 없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물론 예배의 질은 떨어졌겠지만 그런 점은 차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예배 덕분에 가정 예배가 회복되어졌다. 가정 예배는 결코 싶지 않은 습관 이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 가정 예배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몇 년째 진행 되고 있는 ‘다니엘 기도회’ 경우를 보면, 오륜교회와 만 사천여개 교회 및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가 함께 할 수 있는 것 또한 온라인의 힘이라고 본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무형교회와 유형교회로 나뉜다. 우리는 무형교회의 구성원들이다.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심으로 우리는 거듭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라 칭함을 받고 의롭다 여김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 ‘우리’가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자들의 모임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그 모습이나 상황이나 형태가 어떠하던지 교회 인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가정에서 적당한 장소에서 그러다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점차 체계가 잡히고 조직이 형성되면서 유형 교회의 형태가 되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림은 부당한가? 그렇지 않다. 이것도 예배의 한 형태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예배의 모습과 자세는 어떠할까? 진정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드려 질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교회론적, 예배학적 답이 기대된다. 어떤 경우에든, 온라인 예배의 필요성은 끝이 없어 보인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만큼 새로운 기술력, 기획력, 영성 등 갖추어야 할 것들과 갖추어야 할 자세들이 많이 요구 될 것이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머리로는 온라인 예배를 반기지만 이미 익숙해져 있는 현장 예배가 더 편한 게 사실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모이는 것이 마땅한 예배의 모습이며, 이와 병행하여 온라인을 활용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형태 일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고 오늘날처럼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에 예배를 사수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온라인 예배의 활약상을 기대하며 준비가 필요하다.
이쯤에서, 교회의 변천 역사가 궁금해진다. 교회론 강의(담당 최덕성 교수) 제7강 '교회 정치 제도의 변천사'를 들으면서 이 주제에 대한 이해를 넓혀 본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감리교회의 감독 정치, 침례교와 초대 교회의 회중 정치, 독립 교회의 회중 정치, 장로교회의 회중 정치와 감독 정치의 절충안으로 노회 중심 정치 등의 다양한 모습의 교회 정치 제도 강의를 들으면서 시대적, 상황적, 전통적 등등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조직을 이루는 기구의 형태가 다르고 불완전하지만, 각 기구의 정치 형태에 따라 유형교회가 움직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언급한 것은 유형교회의 정치 형태이긴 하나 이와 같이 예배의 형태는 그 시대와 상황과 필요와 요구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시사 되고 있다고 본다.
인류는 유비쿼터스 세상에 진입했다. 마치 화성이나 금성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과 같다. 직접 대면 하지 않아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이나 의사소통을 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 세상에서 유비쿼터스 방식 또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과 세례식을 거행하는 것은 부당한가? 이 문제는 각자의 중심이 얼마나 간절하고 진지한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긴박한 상황이 아니다 보니 온라인 예배에 대한 진지함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유비쿼터스 기술의 소중함과 온라인 예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 예배의 단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기술력이나 통제 시스템 등이 더 창의적이면서도 현장 예배를 능가할 대책 마련이 요청된다.
구체적인 온라인 예배에 대한 전문성 있는 대안과 보안책을 제시하고 싶으나,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할 만큼의 현장적,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는 ‘온라인 예배와 온라인 성찬 그리고 온라인 세례에 대해 긍정적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막연하지만 교단, 교파 등으로 분열되는 까닭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를 간파하였다. “나는 옳고 너는 그릇되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보니 진리 문제는 뒤로 밀렸다. 나는 서로 간의 싸움이 계속 되는 교계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옳고 그른 것으로 따지기 보다는 서로의 필요를 보완해 주는 관계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정보와 프로그램을 정리 정돈 하여 그 내용을 필요한 자들에게 제공 하고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님의 몸을 이루듯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연계를 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방송센터를 운영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이른바 ‘기독 정보 영성 센터’와 같은 이름으로 사역을 하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나를 예수방송(JSTV) 센터로 인도했다. 나는 그곳에서 6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를 했다. 숱한 정보들이 교류하고 있는 방송 센터에서 다이내믹한 정보 정리와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예배와 프로그램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접수하여 정보 처리를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예배가 매일 드려지는 센터인 만큼 이곳을, 탁월한 영성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많은 영혼들이 쉼을 누리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연계시키는, 현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앞서 얘기한 것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임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기본적인 방송 센터 조직 편성에 ‘전도팀’ 과 ‘중보기도 팀’을 두 날개 형태로 자리매김을 하고 ‘현장적 예배와 신학 마당’을 주요 골자 내용으로 무게 중심을 잡고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정보들을 배열할 생각을 꿈꾸게 되었다. 이 모든 상황들을 카메라에 담아 실시간 또는 녹화를 통해 지역 및 국내로 나아가 세계가 집중 할 수 있도록 기술력, 기획력, 영성 등을 갖추어 ‘유비쿼터스 환경’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성비 높은 선교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해왔다.
오늘날 갑작스레 발생한 코로나 19 사태로 말미암아 유비쿼터스 세상의 도래가 널리 알려지고, 온라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길이 마련되었다. 나의 희망과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확증하게 되었다. 유비쿼터스 세상을 주도할 새로운 기술과 접근방법은 코로나 19 사태를 대비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사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과의 영적 전쟁 터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군사들이 승리할 수 있는 첩경이다.
오늘날의 교회가 유비쿼터스 영역을 큰 폭으로 환영하고 적극 수용한다면 세계적 대역병 같은 난감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또한 교회가 온라인 영역을 평정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거룩한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온라인 예배(온라인 성찬과 온라인 세례 포함)를 꿈꾸어 본다(엡 6:12).
강민주 (브니엘신학교 신학원 2학년)
편집자 주: 브니엘신학교 신학원 목회학 석사(Master of Divinity) 과정, 최덕성 교수의 <교회론> 과제로 제출한 '학술 에세이'이다. 하나의 명료한 주장-논지를 가지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차례 차례 제시한다. 브니엘신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학수업, 비평적 사고훈련, 학술 에세이 쓰기, 목사후보생 교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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