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박물관
로마가톨릭교회와 구원에 대하여
이영진 교수(호서대학교)
1. 신학에 처음 입문해 들어온 학생들에게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교수님, 가톨릭은 구원을 받습니까?”라는 물음이다.
2. “그걸 왜 나한테 묻나요?”ㅡ하고 웃어넘기지만, 그 질문은 마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하고 묻는 베드로의 질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저기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구원을 받겠습니까?”라고 묻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3. 역사적으로 교회는 두 단계에 걸친 강력한 분열을 겪는다. 첫 단계는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이 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 사이에서 일어난 분열이다. 유럽의 동쪽이라 하여 동방교회로 불리게 된 이 교회는 그리스, 불가리아, 폴란드, 러시아, 체코 등의 지역을 거점으로 신학과 교리가 희랍어(그리스어)로 되어 있으며 희랍의 철학적 요소 특히 신플라톤주의 정서가 짙으며 동방정교회(正統敎會, Orthodox Church)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스스로 정통교리 수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4. 반면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명칭이 그러하듯 이태리 로마의 바티칸 교황청의 지휘를 받는다는 정체성이 가장 도드라진 표지였다. 지역적으로 유럽의 서쪽에 해당하는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이에 해당했다. 교리나 신학은 동방교회와 달리 라틴어로 기록되었다.
6. 양자 간에는 색깔 차이가 있다. 동방교회가 수도원주의를 중심으로 신비주의 색이 묻어난다면 서방교회는 심리학에 의거한 신학적 지향성을 보인다. 또 동방교회가 매우 합리적인 분석과 종합에 능하고 형이상학적 정통주의가 발달했다면 서방교회는 제도와 조직이 발달해 있고 신앙과 체험을 중시해왔다. 그리고 동방교회는 영생의 문제를, 서방교회는 죄의 문제에 천착한다. 그러나 두 교회의 진정한 분열은 다름 아닌 성상숭배 문제로 점철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상(이콘) 숭배가 금지되고 성상파괴 운동이 전개된 반면 로마 교황청은 이를 비난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성상파괴 논쟁의 실체는 황제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교황청에 좋은 명분이 되었던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조건이 교회의 권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리를 서방교회에서 독자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두 교회의 분열 시점을 1054년으로 꼽는다.
7. 그리고 약 500년이 안 가서 두 번째 분열이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유념할 것은 이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난 분열이라는 사실이다. 동방교회가 아니라. 분열의 요인은 (1) 면벌부[지옥 갔는데 다시 천국 갈 수 있다는] 문제, (2) 교황 교권 중심의 중보 체계, 이 같은 교의적 문제 외에도 (3) 각종 사회 정치적 부패 요인들이 작용한 개혁이 바로 이 두 번째 분열이다.
8. 상기의 두 단계 분열을 통해서 지구상에는 세 종류의 기독교가 존재하게 되었는데, 앞서 가장 처음에 언급한 동방정교회, 그리고 우리가 보통 천주교라 부르는 ‘가톨릭’, 그리고 끝으로 우리 ‘개신교’이다. 우리나라 천주교 곧 가톨릭은 서방교회 브렌치인 셈이다.
9. 한국 사람은 대개 개신교를 가리켜 기독교라 부른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는 저 세 종류의 교회를 일컫는 통칭이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한국 개신교는 자신들만을 ‘기독교’라 부르고 가톨릭은 가톨릭이라 부르게 되었느냐, 그것은 언제나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를 대결구도 속에서 이해하는 학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10. 개혁이란 자고로 어떤 대결의 구도가 아니라 내적 혁신을 이르는 술어이다. 그것은 루터를 위시한 초기 개혁 세력이 스스로를 ‘신성한 만국의 교회’(the One Holy Universal Church) 혹은, 심지어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라 칭했던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개혁은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서부터,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목적으로 놓고 전개되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혁세력이 스스로를 개신교(Protestant)라 부르게 된 것은 무려 한 세기가 거의 흘러간 17세기경부터이다.
11. 따라서 “가톨릭은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질문은 어려운 질문이라기보다는 수준이 다소 저열한 학습에 길들어진 질문이라 규정할 수 있다.
12. 배도자를 찾는 중이라면 500년 묵은 프로테스탄트 내에도 얼마든지 있는 까닭이다.
13. 개신교도가 로마가톨릭에 관해 논할 때는 반드시 상기의 유래를 전제하고 논거를 잡기를 권면 드린다.
이영진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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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오류를 단죄하며
(존 엑크가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낸 조서)
EXSURGE DOMINE
오, 주님, 일어나시어 당신의 심판을 내려 주소서. 한평생을 어리석게 보내는 자들을 크게 꾸짖으소서. 여우떼가 당신의 포도밭을 파괴하고자 들고 일어났으니,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당신께서 당신의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때, 승리한 교회의 표상으로서 베드로에게 당신 교회의 으뜸이자 당신의 대리자로서 당신의 포도밭을 지키고 다스리는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그 포도밭을 숲속의 멧돼지들이 파괴하려고 하며, 모든 야수가 열매들을 다 먹어 치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 베드로여, 일어나시어 앞서 제가 말한 당신께 위임된 이 사제직을 거룩함으로 가득 채워 주십시오. 전체 교회의 어머니인 거룩한 로마 교회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당신이 당신의 피로써 거룩하게 만든,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직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당신께서는 로마 교회에 대항하는 거짓 교사들이 생겨나고, 스스로를 파멸로 재촉할 분파들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들의 혀는 불이고, 부단히 활동하는 마귀이며, 죽음의 독약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은 분쟁과 오만함을 부추기며 진리에 반대하는 거짓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울러 간구하오니 성 바오로께서도 일어나소서. 당신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으로 교회를 가르치셨고, 성 베드로와 같은 순교로써 교회에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 옛날 거룩한 사도들에게 부당하게 날아왔던 돌들이, 이제는 나의 전임자들이신 거룩한 교황님들께 맹렬하게 날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가르침을 거스르고, 간구하는 대신에 비난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자는 극도로 지독한 사설을 늘어놓으며 우리에게 비난을 일삼고, 그로 인하여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행태에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예로니모 성인께서는 이단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단자들은 궁지에 몰리면, 특히 자신들의 주장이 비난을 받게 되면 혀에서 뱀의 독을 내뿜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이 설복 당하게 되면 감히 모독적인 말들을 내뱉는다.” 그자도 이러한 이단자와 똑같은 부류의 사람입니다.
성 바오로여, 당신께서는 신앙을 위협할 이단자들에 대하여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전구 덕분에 이단자들은 그 시초부터 이미 멸망해가고 있으며, 이리처럼 성장하지도 세력이 강해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성인들과 이세상의 모든 교회도 모두 일어나기를 청원합니다. 교회의 참된 성경 해석을 왜곡하는 것 외에도 거짓의 지아비에게 홀려 마음의 눈이 닫힌 자들이 일부 있습니다. 고대 이단자들의 관례를 본받아 자신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그들은 성령의 가르침이 아닌 개인적 야심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성경을 번역하여 마치 사도 시대부터 전해진 것인 냥 이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곡해하고 그 권위를 손상시켰습니다. 그 결과, 성 예로니모의 말씀에 따라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요, 사람의 것이며, 더 나쁘게도 악마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