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브뤼겔 - 아버지 작
교회: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
피터 부뤼겔(Pieter Brueghel, 1525 c.-1569)은 16세기의 네덜란드 출신으로 풍경화를 전통적인 역사화와 종교화의 경지로 끌어올린 화가로 유명하다. 농부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회화 장르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부뤼겔은 초기에 민간 전설이나 습관, 미신 등을 테마 삼아 그렸다. 브뤼셀로 이주한 뒤로 농민전쟁기간의 사회 불안과 혼란 그리고 스페인의 가혹한 압정에 대한 결렬한 반항을 표현하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 소박하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농민을 높은 휴매니즘 정신과 예리한 사회 비판의 눈으로 관찰하여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로마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전쟁으로 찟기고 상처난 당대 사람들의 삶 이모저모를 풍경화로 표현했다.
브뤼겔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세상을 떠났다. 출신지 네덜란드 발음으로 그의 이름은 '피테르 브뢰헬'이다. 부뤼겔은 1551년에 안트베르펜의 화가 길드에 가입한 뒤 이탈리아로 여행을 하고 3-4년가량 그곳에 머물렀다. 이 여행은 그의 작품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초기 작품들 중 다수는 플랑드르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여행 뒤 플랑드르 풍경에 이탈리아적 요소들을 결합했다.
브뤼겔이 처음으로 연대를 기록한 작품은 로마에서 그린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가 있는 티베리아스 호의 풍경'(1553)이다. 1555년에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와 어느 출판사를 위해 판화 연작 '거대한 풍경'(1555)을 제작했다. 그는 지식인 모임에 가입했다. 1559년에는 인문주의 사상에 따라 그의 이름에서 철자 'h'를 뺐다. 같은 해 부뤼겔은 '사육제와 사순절 사이의 싸움'(1559)을 그렸다. 이 작품은 구도 자체가 복잡하고 광적이며 혼란스럽다. 왼편에는 술집을 오른편에는 교회를 기묘하게 대립시켜 놓았다. 복잡하고 광적이며 혼란한 시대상을 드러낸다.
부뤼겔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강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는 제목의 위 그림이다. 당대의 교회, 종교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눈먼 자 그룹 안에 기생하는 눈 뜬 자의 모습, 십자가를 목에 걸고 남을 따라 넘어지는 길, 멸망의 길을 가는 자들을 묘사한다. 광장과 역전의 시위대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게 하고, 다원주의,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 기독교가 교회를 쇠잔하게 하는 현실을 사실적인 눈으로 들여다 보게 하는 혜안, 통찰을 제공한다.
대한민국 사회와 교회는 혼란스럽다. 저마다 옳다고 한다. 과연 옳은지 의문스럽다. 우리의 사회는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의 대립,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과 보수계 국민의 저항으로 얼룩져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매우 법적이지 않은 것을 판단의 근거로 삼아 역사의 물줄기를 뒤바꾼다. 한국교회는 혼동을 경험하고 있다. 진리와 비진리, 옳고 그름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풀이되고 힘으로 결정되고 있다. 피고인석에 앉아야 할 자가 재판석에 앉자 자신에게 무죄를 선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회와 교회의 현실을 사실적인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브뤼겔의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사회, 교회와 여러 모로 비슷하다. 예수 구원의 복음이 없는 기독교가 성행한다. 교회가 비복음적인 것을 복음이라고 가르친다.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구덩이에 빠져들고 있는 듯 하다.
아래의 글은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 이영진 교수가 쓴 것이다. 부뤼겔의 위 그림을 설명하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해석한다.
2. 브뤼겔이 살던 브뤼셀은 스페인 관할 도시로 개신교에 대한 폭정이 있던 지역이다. 이 그림을 그린 시기에도 대규모 박해가 있었다.
3. 브뤼겔은 종교개혁 화가로 알려진 탓에 주로 로마가톨릭에 대항하는 종교개혁 가치로 소개되곤 하는 편이다. 실제로 다소 위험한 그림들은 스스로 소각도 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4.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대목을 주제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에 등장하는 맹인은 총 6명이다. 각 맹인의 눈의 상태가 다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5. 첫 번째 맹인은 악기를 들고 가다 넘어진 듯 하다. 바로 뒤따라가던 두 번째 맹인이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것 같다. 자세히 보면 그의 눈은 움푹 파여 있다[*댓글 첨부 그림 1 참조]. 세 번째 맹인의 눈은 회색으로 덮여 있는 것이 흑내장으로 알려진 증상이다[*댓글 첨부 그림 2 참조]. 네 번째 맹인은 각막백반 증상이라고들 평한다[*댓글 첨부 그림 3 참조]. 그런가 하면 다음 맹인은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앞을 못본다[*댓글 첨부 그림 4 참조]. 그리고 마지막 맹인은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 이 그림에 대한 해석 몇 가지가 있다. 세 가지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7. 우선 그림 중앙에서 약간 비껴서 오른쪽에 위치 해 멀리 보이는 교회를 지목한 해석이 있다. 이 교회를 경계로 맹인들의 속죄 상태에 대한 차이라는 해석을 가한다. 교회를 경계로 오른 쪽 두 사람은 죄를 회개하지 못한 것이며, 왼 쪽의 맹인 네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아직 회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식이다.
8. 다른 해석이 있다. 그것은 교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해석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중세교회의 부덕은 ‘면죄부’로 정점을 찍은 바 있다. 이 해석의 힘을 실어주는 듯 교회 주변에 시든 나무가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댓글 첨부 그림 5 참조].
9. 그리고 또 다른 해석은 심플하게 그냥 이 그림은 종교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당대 브뤼셀에 있던 건축물을 그린 것이라는 논평이다. 하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건축물이나 풍경 소개를 했다면 이 이상스러운 맹인의 대열이 왜 앞에서 부각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 나는 이 세 가지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그림의 해석은 그런 것이 아니다.
11. 이 도상의 진정한 해석은 바로 맹인들의 눈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12. 각막백반이라는 병은(우측에서 네 번째 맹인) 혼탁한 각막의 얼룩점으로 인해 빛이 잘 투과되지 못해 보지 못하는 경우의 맹인이다. 또, 백내장의 하나인 흑색 백내장은(우측에서 세 번째 맹인) 안구 전체에 색소 이상이 와서 전반적으로 시력이 흐려지는 맹인이다. 그런가 하면 다섯 번째 맹인은 모자를 질끈 눌러 써서 보지 않고 걷고 있다. 가장 끝에 있는 사람은 눈을 그냥 감은 듯하다.
13. 이 그림 전체 도상에서 해석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맹인은 바로 다섯 번째 맹인이다(좌측 끝에서 두 번째).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사람은 진정한 맹인인지 알 수가 없다. 모자로 자신의 눈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14. 이 자는 맹인이 아니다. 맹인의 대열에 숨어든 기독교인이다. 아마도 개신교 사제인 것도 같다. 왜냐하면 이 자만이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댓글 첨부 그림 4 참조].
15. 그 가짜 맹인을 중심으로 이 전체 도상을 다시 훑어보면 ㅡ특히 맹인 대열을 관찰하면ㅡ 가장 앞에 있는 맹인이 인도하는 게 아니라 그 다섯 번째 가짜 맹인이 이 대열을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맹인도 아닌 작자가 맹인들 어깨에 손을 얹고 걷는 것이다.
16. 여기서 진정한 맹인은 두 번째 맹인이다. 오로지 이 사람만이 고개를 관객 쪽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맹인은 안구 자체가 아예 없다. 의사가 제거를 해버렸거나 아예 어떤 형벌에 의해 뽑혔을 가능성도 있다. 이 사람이 앞에서 소리로(악기) 인도하던 자의 쓰러짐과 자기를 뒤따라 오는 맹인들의 중간에서 허망하게 서 있다.
17. 브뤼겔은 이미 중세 보편(가톨릭) 교회를 넘어 개신교가 분파를 이루면서 야기시키는 허망한 속임수를 지적하고 있으며, 이것은 오늘날로 읽을 때, 특히 19대 대통령 탄핵 사태에 중심 행렬에 있는 개신교와 그 사제들을 적시하고 있기에 충분하다.
19. 아버지의 그림의 본질을 이해 못했거나,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개신교 대상 상업용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일부로 빼버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