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심판 교리와 유보적 칭의론
김세윤 교수(풀러신학교)의 ‘유보적 칭의론’은 로마가톨릭교회 칭의론의 '짝퉁'일 뿐만 아니라 이단으로 분류되는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조사심판' 교리와 궤를 같이 한다. 행위구원에 귀착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성과 한량 없는 은혜에 눈멀게 한다.
한국 안식교회는 조사심판 교리 때문에 내홍을 겪고 있다. 충돌은 ‘엔도르핀 박사’ 의사 이상구 선생이 ‘조사심판’ 교리가 ‘오류’라고 지적하는 두 권의 책을 출간한 데서 시작되었다.
안식교의 유대인 시간 계산법에 따른 안식일 엄수, 금기 음식물 기피, 구약 계명 준수는 기독교 전통을 넘어선다. 율법주의 특징을 보인다. 신약성경은 도외시하고 구약성경에 충실한 집단이라는 인상을 준다. 안식교는 자파의 선지자 엘렌 지 화잇 여사의 직통 계시, 직통 예언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예정된 종말의 날에 심판을 시작했다고 믿어 왔다. 안식교는 기다리던 재림일에 지구의 종말이 임하지 않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조사심판’을 하고 있다고, 말을 바꾸었다. 예수께서 1844년 10월 22일에 하늘의 성소에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서 속죄(atonement)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가려내는 조사심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안식교는 재림을 강조한다. 그리고 '안식교'라는 명칭보다 재림교회라는 이름을 선호한다. ‘조사심판’은 재림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심판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기록한 책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조사심판에서 의인으로 판결나는 사람은 의인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고, 회개하지 않고 용서받지 못한 채 살아 온 사람은 그 책에 기록된 조사 결과에 따라 그의 이름이 생명록에서 지워진다.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안식교의 임박한 재림 강조와 조사심판 교리는 신도들로 하여금 정직하게 살고 윤리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게하는 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죄를 낱낱이 회개하고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자극한다.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이르지 않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게 한다. 필자가 만난 안식교 신자들은 대체로 정직하고 진실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율법과 계명에 충실하게 살려고 했다. 정직하고 철저한 면에서, 안식교 신자들은귀하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이다.
조사심판 교리는 김세윤의 '유보적 칭의론'과 마찬가지로 행위구원에 귀착된다. '조사심판'은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낯선 용어이다. 성경적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성, 구원하는 하나님의 주권 은혜의 진리에 눈멀게 한다. 하나님의 의를 불완전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결국은 하나님을 불완전한 존재로 간주하는 종착점에 이른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 진리의 장엄함, 오묘함,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율법주의자, 행위구원론자라고 지적당하게 한다.
이상구는 구약성경의 음식물 규례에 기초한 안식교 신앙을 토대삼아 ‘뉴스타트 운동'을 펼쳐왔다. 그는 한국사회에 안식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는데 이바지했다. '안식교 전도사' 이상구가 ‘조사심판’ 교리를 부정하고 나서자 내홍의 깊이와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다. 이상구가 저술 출간한 <십자가와 조사심판>(2016), <화잇이 다시 한 예언>(2016)은 안식교회의 존립을 흔들 정도의 위협적인 주장이며 ‘정면도전’이다.
이상구에 따르면, 안식교 여선지자 화잇의 ‘1844년 조사심판’ 예언은 오류이다. 화잇도 이 오류를 깨닫고 1888년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교는 여전히 오류 있는 화잇의 예언을 오류 없는 진리로 믿어오고 있다. ‘조사심판’ 교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참 선지자에게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전제와 선입견 때문이다.
이상구 칭의론의 핵심은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다 이루었다)되었다고 믿는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의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재림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재림’은 안식교의 트레이드마크이다. 따라서 이상구의 주장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아킬레스를 건드린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신 구원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화잇이 1844년에 예언한 ‘조사심판’에 따르면, 각 개인의 구원은 예수의 재림 때 확정된다. 그 재림은 1844년에 일부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국에 있어야 할 자들이 아직도 땅 위에 살고 있는 것은 모순이다. 안식교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다시 재림의 때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새 주장에 집요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화잇이구원을 미래에 체험할 사건으로 돌리는 조사심판을 예언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체험하지 못한 탓이다. 곧 마음 안에 이루어진 재림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구의 결론은 안식교가 재림에 연연하는 것은 이신칭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 안식교회가 운영하는삼육대학교의 신학과 교수들은 이상구의 칭의론, 조사심판 교리 부정을 ‘이설’이라고 선을 긋고 정면 반박하고 있다. 안식교회는 여러 가지 형태로 집안 단속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강한 반박에도 불구하고 이상구의 주장에 대한 속시원한 반박의 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 상태로 나아가면, 이상구의 주장이 옳다면, 안식교는 딜레마에 빠진다. 먼저 안식교를 지탱해온 선지가 화잇과 그의 예언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안식교가 존재해야할 이유가 없어진다.
아래의 글은 안식교회 내홍과 관련된 <교회와 신앙>(2017.01.02.)에 게재된 것이다. 글쓴이 곽정환 목사는 전 재림교 목사, 현 예장 합동 목사이다. 글쓴이 곽정환 목사와 <교회와 신앙>의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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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교, ‘조사심판’에 대한 시비곡직
필자는 삼육대학 대학원 신학과(태릉)와 재림교 국제대학원(AIIAS 필리핀)을 졸업하고 20년을 재림교 목사로 사역을 했으며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양지)를 졸업하고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에서 사역하였다. 재림교가 바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세워지는 교회다움을 더 회복하고 참된 개혁이 있기를 기도하는 사람 중에 하나로 이 글을 쓴다.
이상구 저서의 파장
심장이 멎으면 멎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사라진다. 혈액형은 바꿀 수 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 재림교에게 ‘2300주야’와 ‘조사심판’ 교리는 ‘심장’이고 ‘피’인가? 교리적 발전을 인정하는 교단이니 성경과 다르면 조정할 수도 있는 것이지 왜 교회가 죽고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하는가? 왜 그래야 하는가?
이단시비에 휘말려 있는 한국 재림교 백여 년 역사에서 안식교의 대내외적 신인도를 이상구 박사만큼 제고시킨 의사도 없고 건강 전도사로서 선교에 이처럼 탁월하게 이바지한 의사도 없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코 짧지 않는 40여년 시간 동안 이상구 박사가 재림교단의 지도자들과 영적인 파트너가 되어 대학과 각종 집회와 지역 교회에서 행한 강연과 설교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이젠 브랜드화 된 뉴스타트의 영향력으로 이상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 그가 최근(2016년 6월)에 펴낸 두 책 <십자가와 조사심판>, <화잇이 다시 한 예언>으로 인하여 재림교는 메가톤급 파장에 휩싸이는 듯하다.
전국적으로 행하는 2016년 기도주일 내용도, 2017년 사경회 교재도 이 책에 대한 방어하고 공격하는 것은 물론 재림교 본부인 한국연합회의 요청으로 삼육대학(원) 교수들을 중심으로 ‘1844, 1888, 그리고 조사심판의 신학적 조명’이라는 주제로 논문 발표와 함께(이하 책은 ‘조명’으로 표기함) 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2016.12.17.).
이상구만의 독보적 사역
이상구는 의사이지만 단순히 가운 입은 진료실 의사가 아니라 현대의학이 포기한 시한부 환자들에게 알약 대신 신구약(성경)을 처방하고 영적인 검(말씀)으로 집도하는 영적인 의사이기도 한 점이 독보적이다.
당장 타들어가는 육적 생명은 물론 영적인 생명까지 동시에 소생되어야 할 절박한 강의실에서 그가 진정한 생명의 힘인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
의사로서 그저 의학 얘기만 하지 어쭙잖게 목사들의 영역인 신학적인 쟁점까지 건들어서 괜히 이런 사달을 자초하는가? 라며 핀잔하는 이도 있지만 죄에 대한 현대적인 표현은 바로 중독이 아닐까?
구약성경에서 질병 완치 검증은 제사장이 했으며 신약성경에서도 한 번은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 9:5)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쌩으로 굶겨대고 온 몸을 두들기며 안수하고 개구리처럼 방언하는 삼류 기도원 방식이 아니라 순전한 말씀의 선포로 치유의 역사는 복음적인 교회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본다.
육신의 병 이전에 그 뿌리가 되는 심령의 문제를 다루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죄 문제이다. 그러므로 강론에서 죄의 처리 문제, 즉 속죄(복음) 문제는 비껴갈 수 없다. 이런 치열한 현장에 몸담았던 그가 장고의 고뇌 끝에 마침내 내린 양심고백서 같은 선언이 바로 두 책으로 보인다.
과연 이 책들에 관하여 재림교 본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못 궁금했는데 사실은 진지한 대화 속에서 한국 재림 교회에 변화가 있기를 나름 기도하며 바랬었다.
재림교 본부의 응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재림교 본부는 이상구 박사의 진지한 신앙적 고백을 마침내 이설과 오류로 규정하고 교단에 대한 반기로 여겨 강단금지령과 접촉금지령을 내렸을 뿐 아니라 모든 성도를 대상으로 더 이상 그에게 물들지 않도록 사상을 단속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느낌이 든다.
“조명” 서문의 내용
“이상구 박사는 ... 두 권의 책을 출판하여 재림교회의 핵심적인 교리들이라고 볼 수 있는 대속죄일과 십자가 그리고 조사심판에 관하여 재림교회의 공식입장에 철저히 위배되는 견해를 공표하면서 재림교회를 공격하고 엘렌 G. 화잇의 선지자적 권위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는 일을 도모했다.”(조명, 4)
신학자도 아닌 평신도 이상구의 책을 놓고 재림교회를 대표하는 신학교수들 다섯 명이 연구논문을 발표할 정도니까 이 책이 가져왔고 또 가져올 파장에 그만큼 위협을 느낀 방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40년이나 같이 했던 동료를 하루아침에 흉악한 이리, 사탄의 공격, 함정이라고 함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그런 이리(?)를 40년간 몰라보고 함께했던 재림교의 시력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조사심판 교리는 기독교사에서 도통 낯선 개념
하계상 교수(삼육대 구약신학)는 ‘성소신학의 대속죄일과 조사심판’ 교리를 두고 재림교회가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라고 했는데 등장 초반부터 비성경적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다. 무슨 기여를 어떤 기독교에 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재능이 탁월하고 업적이 뛰어나도 주체사상을 조금이라도 흠집 내는 바늘만한 시도에도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즉결 처형이다. 고모부 장성택이 그렇게 가지 않았는가? 조사심판은 재림교의 주체사상인가? 아니면 관심법으로 많은 사람을 무고히 죽였다는 궁예의 철퇴인가? 재림교에선 조사심판 교리에 태클을 걸면 목사라도 당장 신임서 회수이고 누구라도 배교자로 규정하고 '아웃'시켜 버리는 중대한 오류자이다. 어떤 면에서 재림교에서 조사심판은 단두대 교리다. 이의를 달면 사라져야 한다.
진행된 심포지엄 모든 발제자들은 한결 조사심판교리야 말로 심장같은 핵심이고 혈액같은 귀중한 교리라서 무너져서도 안 되고 양보 할 수도 없는 교리라고 입을 모아 설파했다. 그러나 이는 재림교라는 찻잔 안에서의 얘기다.
지구상에 ‘2300주야 교리’, ‘조사심판 교리’ 는 예수님의 성육신 이래 사도시대, 초대교회 교부시대부터 중세시대를 지나 지금까지의 기독교 교회 역사에 재림교 외에는 없다는 점을 왜 애써 외면하는가?
삼위일체처럼 성경에 명시적으로 없어도 성경적 개념이라면 그런 교리를 만들 수 도 있고 그런 특수 교리가 한 교단의 기둥 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조명을 선명하게 받고 유구한 기독교 역사를 통해 검증된 보편타당성과 조화를 이뤄야 힘 있는 기둥(교리)이 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성경 전체에서 볼 때 2300주야(조사심판) 교리는 한 교단이 그저 변방의 교리로 가질 수는 있지만 성경의 심장(기둥) 교리는 될 수 없다.
성경에서 ‘심판’이란 개념은 중요한 신학적 주제와 근간(根幹)이지만 재림교가 이해하고 주장하는 방식의 ‘조사심판 교리’는 영양가 없는, 아니 유익보다 해독성이 많은 비복음적 요소가 다분하다.
‘조사심판’이란 단어가 따로 존재할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 심판사상은 또렷이 있지만 조사심판은 분명히 없다. 제대로 된 국가에서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심판이라면 그 과정에 조사(심리)가 있는 것은 기본이다. 조사 없는 심판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이런 상식을 뒤로하고 도대체 ‘조사’와 ‘심판’이라는 두 단어를 조합하여 사전에도 없는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굳이 만들어 담아내고자 한 신학(사상)이 무엇인가?
성경에 또렷이 나와 있는 ‘심판’이라는 단어(개념)만 가지고는 왜 무엇이 부족하여 재림교회는 이상한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따로 만들어 등장시켜야 했는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것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아직 못 봤다. 단언컨대 이 조사심판 개념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간 개념이다(고전 4:6).
그렇기에 이국헌 교수(삼육대 역사신학)는 이 교리를 두고 “재림 교리 교리사에서 등장한 가장 어려운 질문들 중에 하나”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가 명시한대로 조사심판 교리는 등장 초반부터 재림교회 안팎에서 일어난 도전은 끈질겼고 심각했고 지금도 이단 시비 논쟁의 중심에서 불꽃 튀는 교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재림교가 불신자 선교에 힘쓰기도 바쁜데 왜 이 교리로 형제여야 할 교단들로부터 이단 시비에 휘말리는 태풍을 자초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조사심판 교리는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말아야 할 중요 교리가 아니다. 하든 않든 재림교회 조사심판 교리는 교회 현장에서는 이미 낡은 유품이고 책에만 존재하는 사문화된 교리가 된지 오래다. 일선 교회에선 필요성도 잘 느끼지 못하고, 가르치면 유익보다는 부담(해독)이 더 많은 것으로 증명된, 유효 만료된 교리임으로 어떤 식으로든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이상구 박사의 책을 비판하기 위하여 발표된 심포지엄을 계기로 다섯 교수들이 제기한 소논문을 중심으로 재림교 조사심판 교리에 대한 시비곡직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자 한다. 부디 깨어있는 지성과 진지한 양심으로 올바른 이해에 모두가 이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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