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2016.10.08 08:36

노래하는 백조

조회 수 112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정 삭제
노래하는 백조


“백조는 죽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데 이는 나쁜 것이 아니라네. 어떤 이들은 노래조차 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네.” (Coleridge, Samuel Taylor, 1772-1834 영국의 낭만파 시인 )

어른들은 늘 말씀하였다. 최선을 다해라. 성실하게 살아라. 열심을 내라. 어른의 말이 아니어도 우리는 삶이 결코 녹녹지 않음을 알고 있다. 허리띠 졸라매고 바쁘게 살다 보면 하늘을 쳐다볼 여유조차 없이 지나갈 때가 많다.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가 깃발처럼 나부껴도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다. 사는 게 전쟁 같은 시절에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현역에서 물러난 노년에는 하늘을 쳐다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만큼 애쓰며 살아왔으니 이제 삶을 돌아보며 즐거움을 느낄 여유는 좀 가져도 되지 않을까? 공자는 이런 말을 하였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고 있어도, 즐거움은 그 가운데 있다.” (술어 편 15장) 노년에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가난 가운데서도 즐기자는 뜻이 아니다. 공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즐거움의 원천이 현실 상황 때문에 바뀌지 말라는 뜻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즐기지 말란 법은 없다. 돈 많으면 행복하고 즐겁지만 돈 없으면 불행하고 괴로운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인생의 짐을 지고 산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인생의 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재벌은 걱정근심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그도 사람인지라 기분 나쁠 때가 있고, 괴로울 때가 있고, 걱정할 때가 있다. 통장 잔액에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기에 감당해야 할 짐이 있고 힘들어 하는 것은 똑같다.

부자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얼마나 인색하고 잔인한지 모른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보다 훨씬 못되고 악할 수 있는 게 부자다. 그러므로 돈의 여유보다 더 중요한 게 마음의 여유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콩 한 알이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다. 아무 일 안 하고 이름만 걸어놓고 받는 월급이 400억 원이어도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형제가 형제를 비난하고 욕하게 된다.

노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의 여유만큼이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길가에 살포시 고개 내밀고 있는 작은 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 순간 그는 행복하다. 나뭇잎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천천히 걷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그는 행복하다. 가끔 커피숍에 들려서 커피 한 잔을 즐길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하다.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커피, 연갈색 크레마의 부드러움을 한 모금 마실 때 정신을 번쩍 깨우는 각성 효과를 즐길 줄 안다면 그 자체로 즐겁다. 커피숍은 젊은이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쳐다보는 노년의 모습은 차라리 아름답다.

네팔에서 트레킹할 때다.  늘 책상에만 앉아있던 내가 하루 8시간씩 걸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발바닥에 불이 나는 것 같아서 더는 걸을 수 없어 길바닥에 드러눕기를 수차례 하였다. 가이드가 빨리 가야 숙소에 도착한다고 재촉해도 땅과 하나가 된 몸은 떨어질 줄 몰랐다. 한번은 길 가에 가느다란 나무로 쪽의자를 만들어 놓고 커피를 파는 가게에서 쉬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털썩 주저 앉은 내 모습은 영락없이 패잔병 같았다. 온 몸은 먼지투성이였다. 그런데 멀리서 노부부가 손을 잡고 마치 산책하듯이 가볍게 걸어오고 있었다. 피곤한 기색도 없었다. 노부부 역시 차 한 잔을 시켜놓고 내 옆에 앉았다. 젊은 나도 힘들어 헉헉거리는 이 트래킹 코스를 산책하듯 걷는 노부부가 너무나 놀라워 사연을 물었다. 70이 다 된 노부부는 은퇴하고 남은 생애를 즐기기로 작정하였다. 무언가 쫓기듯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이 되는 한에서 여유 있게 걸었다. 가이드도 없이 걷는 노부부는  하루 한 시간 걸을 때도 있고, 두 시간 걸을 때도 있다. 피곤하다 싶으면 어느 곳이든 머물러 쉬면서 자그마한 시골 동네를 구경하였다. 노부부는 걷는 게 목표가 아니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즐기는 것이 목표였다. 그들은 떠나면서 내게 말하였다. “젊은이. 자네도 은퇴 후에 우리처럼 여유를 가지고 즐기며 살아보게.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워.” 난 그 노부부가 더없이 부러웠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다. “마음이 즐거우면 종일 가도 피곤을 모르지만, 마음이 슬프면 얼마 못 가서 피곤하여 주저앉는다.”

우리는 인생의 결말을 알고 있다. 모두 똑같은 종착점으로 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빨리 달려가고, 어떤 사람은 여유 있게 간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좀 더 여유롭게 가는 것이 훨씬 나을 듯싶다. 특별히 노년의 시기에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지 않으면,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예수님은 공중에서 지저귀는 새를 쳐다보기도 하고 길가에 피어 있는 백합화를 보며 감격하셨다. 시편 저자는 노래하였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 시편 저자는 하늘을 바라보고 힘을 얻었다. 자연은 은혜의 수단이다.

일 년 중 가장 청명하고 맑은 날씨를 보이는 이 가을 가끔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를 가짐이 어떠한가?
t1.daumcdn.jpg
?

  1. 영성있는 선교사를 기대한다.

    영성있는 선교사를 기대한다. 가끔 선교사들이 귀국하여 선교보고를 한다. 솔직히 나는 선교사들이 얼마나 큰일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는지 듣고 싶지 않다. 그들이 선교 현장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는...
    Date2016.10.20 By로뎀 Reply2 Views1051 file
    Read More
  2. 태국교회의 국왕예배

    태국교회의 국왕예배 세계 최장수 재위 기록을 지닌 태국 국왕이 2016년 10월 13일에 서거했다. 향년 88세. 푸미폰 아둔야뎃. 1946년 6월 9일부터 70년 126일 간 왕위를 유지해 왔다. 국왕은 입헌군주제 국가의 수장임에도 태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를 극...
    Date2016.10.19 Bydschoiword Reply1 Views1908 file
    Read More
  3. 노래하는 백조

    노래하는 백조 “백조는 죽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데 이는 나쁜 것이 아니라네. 어떤 이들은 노래조차 부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네.” (Coleridge, Samuel Taylor, 1772-1834 영국의 낭만파 시인 ) 어른들은 늘 말씀하였다. 최선을 다해라. 성실하게 살아라....
    Date2016.10.08 By배경락 Reply0 Views1129 file
    Read More
  4. Pick Me Up

    Pick Me Up 명절 때 TV 프로그램은 정말 볼 것이 없다. 집중해서 보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TV는 켜놓았다. TV가 뭐라 하든 상관하지 않고 우리는 서로 지나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여행한 이야기, 읽었던 책 이야기, 자신에게 큰 감명을 준 스승 이...
    Date2016.10.06 By로뎀 Reply0 Views972 file
    Read More
  5. 초기 인류는 천재였다

    초기 인류는 천재였다 석기 시대 사람들은 정말 원시적이었을까? 뉴욕 주립대 고고학 교수인 존 시어(John Shea)는 과학 전문지 <사이언스 Science>에서 석기 시대인은 현대인처럼 똑똑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호모 사피...
    Date2016.09.30 By로뎀 Reply0 Views1136 file
    Read More
  6.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어디일까? 비행기의 일등석 곧 퍼스트클래스일 것이다. 국제선 비행기의 일등석은 비행기 좌석의 3퍼센트에 해당한다.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의 부유...
    Date2016.09.30 Bydschoiword Reply0 Views2833 file
    Read More
  7. 아름다움은 앎이다

    아름다움은 앎이다 “가장 낭만적인 사랑은 도덕적 품성이 아니라 헤어스타일, 얼굴, 옷맵시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 톨스토이 로마신화의 비너스(Venus,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Aphrodite)는 사랑과 미와 풍요의 여신이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아름다...
    Date2016.09.29 Bydschoiword Reply0 Views3041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Nex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