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
최덕성 교수의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2000)을 읽고/ 권민영 목사
1, 개요
나의 존경하는 스승 최덕성 교수는 자기 시대의 사명을 다하는 신학자이다. 교회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명한 목소리를 외치는 지식인이며, 올곧게 사는 신앙인의 모델이다. 그는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시점에 한국교회의 과거사 청산의 중요성과 사회의 교사다운 양심회복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2000)을 출간했다.
저자는 일본기독교의 참회고백, 양심선언을 소개하면서 한국교회의 과거사 청산과 참회고백을 촉구한다. 교회의 양심회복과 역사바로세우기의 주제를 한국교회의 부조리한 현실과 직결시킨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부조리와 교회분열, 도덕성 상실, 치리회 질서 와해, 신행불일치 현상, 양심의 교사다운 권위의 상실 등은 따지고 보면 직접, 간접으로 일제와 일본기독교가 남긴 것들이라고 한다. 남북분단과 갖가지 병폐 그리고 북한의 기아도 따지고 보면 일제가 가져다 준 것이라고 한다. 일본기독교의 참회고백 문서들이 이점을 언급하지 않는 사실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먼저 프랑스가톨릭교회의 참회선언(1997)과 과거사 청산, 제2차 세계대전 전범 재판을 소개한다. 이어서 일본기독교단의 미완성 참회고백, 일본개신교 참회고백, 일본기독교 단체의 참회고백, 일본가톨릭교회의 참회고백, 과거사에 대한 일본교회의 태도, 일본교회의 전쟁책임·전후 책임의식, 일본교회의 죄책고백과 당면 과제 등을 다룬다. 일본의 특별한 손님들이 과거사를 청산을 거부하는 한국교회들을 방문하여 참회고백문을 전달한 해프닝을 다룬다. 끝부분에서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이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다룬다.
저자는 부록에 여러 가지 참회고백문들을 일목요연하게 수록했다. 이 1차 자료들은 현대교회사, 아시아기독교사, 일본교회사, 한국교회사 이해에 매우 소중한 문서들이다. 프랑스교회와 독일교회의 참회고백문, 일본개신교 참회고백문, 일본기독교단체 참회고백문, 일본가톨릭교회 참회고백문 등을 수집하여 엮은 것에서 저자의 집요한 탐구력과 학문적 탁월성을 말해 준다.
부록 제1부는 프랑스교회·독일교회 참회고백문을 수록한다. “프랑스가톨릭교회: 제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에 대한 참회선언,” “독일개신교회: 스튜트가르트 죄책선언” 등이다.
부록 제2부는 일본개신교 참회고백문들을 수록한다. “제2차 대전 동안의 일본기독교단의 책임에 대한 고백(일본기독교단),” “일본기독개혁파교회 창립30주년 기념 선언: 교회와 국가에 대한 신앙선언(일본기독개혁파교회 1),” “선교 협력에 즈음한 죄 고백과 사죄(일본기독개혁파교회 2),” “한국·조선의 기독교회에 대하여 행한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죄의 고백과 사죄(일본기독교회),” “전쟁책임에 대한 신앙선언(일본뱁티스트연맹),” “전쟁 책임에 대한 회개(일본뱁티스트동맹),” “전후 50년을 맞이하면서 전쟁의 반성과 평화 실현에 대한 성명(오끼나와뱁티스연맹),” “제2차 대전 동안의 일본나사렛교단의 책임에 대한 고백(일본 나사렛교회),” “선교백년 신앙선언: 내일의 교회를 향하여(일본복음루터교회),” “전쟁에 대한 공식 견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제23장과 일본국 헌법의 평화주의와의 관계(일본장로교회)” 등이다.
부록 제3부는 일본기독교 단체 참회고백문들을 수록한다. “제2차 대전 동안의 일본교회의 죄책에 대한 우리의 회개: 전후 50년을 맞이하여(일본복음기독교회연합: JEA),” “전후 50년을 맞이하여(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JNCC), “전후 50년을 맞이하는 일본의 그리스도인의 반성과 과제(초교파 9단체: “가톨릭 동경대교구 야스쿠니문제 실행위원회; 일본우화회; 동경지구메노나이트교회 연합; 동경미션연구소;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평화·핵문제위원회;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야스쿠니신사문제 위원회; 일본복음주의신학회실천신학부; 일본복음주의동맹 사회위원회; 일본메노나이트형제센터),” “우리 교회의 역사적, 영적 상태에 대한 죄책 표명(전일본초교파 기독교도 죄책고백자 일동),” “메이지학원의 전쟁책임, 전후책임 고백(메이지학원대학교),” “전후 50년에 즈음하여 ( 『시(時)의 징(徵』 동인)” 등이다.
부록 제4부는 일본가톨릭교회 참회고백문을 수록한다. “평화를 위한 결의: 전후 50년에 즈음하여(일본가톨릭교회),”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전후 50년을 맞이하여,” “일본 가톨릭정의·평화협의회 성명(전일본가톨릭교회정의·평화협의회)” 등이다.
일본인 와따나베 노부오 목사는 한국교회에 관심이 많은 신학자이다. 그는 일본인은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을 인격 상실의 표로 여긴다고 한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참회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일본인의 체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다루는 여러 그룹의 참회고백을 함으로써 일본교회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 교회들과 궤를 같이 하는 역사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국가 권력을 향하여 교회가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자신의 성결성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와따나베 노부오의 글을 소개하면서, 자신이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을 접하면서 오히려 한국교회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과연 일본교회의 참회고백문을 주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하고 고민한다. 친일파 인사들이 주도하던 해방 직후의 한국장로교 총회는 우상숭배의 죄를 참회하자고 한 자들을 독선주의자라고 비난했고, 신앙의 승리자들을 교단 밖으로 축출했으며, 한국장로교의 첫 번째 분열을 낳았기 때문이다. 교회사가들은 옥중에서 순결한 한국교회를 보전하고 일제의 패망을 외치다가 출옥한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이 자기 의를 과시하고, 교회의 거룩성에 집착한 나머지 분리해 나갔다고 역사를 날조했다. 과거사 청산과 참회고백 문제로 발생한 한국장로교회 제1차 분열사(예장 고신)는 아전인수격으로, 견강부회식으로 기술되었다.
저자는 일본기독교의 특징과 현재를 소상히 파악하는 작업은 한일교회의 선교와 협력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일본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골이 깊은 양국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동역자로 재출발하려면 서로를 이해하고 보다 정확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 절실하다.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은 한국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일본교회처럼 참회고백, 양심선언, 과거사 청산을 통해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 거듭나야 할 것을 촉구한다. 교회가 민족과 사회를 위한 양심의 교사 역할과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첫걸음이 무엇인가를 제시한다.
저자는 프랑스가톨릭교회와 일본기독교계에 일어난 양심선언 붐이 새 천년기를 맞는 한국교회의 우선적 과제가 무엇인지 말해 준다고 한다.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청산해야 할 과제는 반세기 전에 교회가 저지른 여러 가지 끔찍한 범죄와 광복 이후에도 참회 없이 불행한 전통을 반복해 온 한국교회의 족적들을 되돌아보는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맥락에서 한국교회가 직면한 딜레마, 역사의 아이러니를 소개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행악자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회 고백을 하지 않아도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가? 교회 그 자체가 범죄하고 행악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는 신자들이 잘못을 범할 때 치리(권징)를 한다. 그러나 교회 그 자체가 공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묻는다.
3. 프랑스가톨릭교회의 참회선언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은 서론적으로 프랑스가톨릭교회의 “제2차 세계대전과 유태인에 대한 참회 선언”(Declaration de Repentance, 1997)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신앙 선언이 즉각 친나치 프랑스인 전범 처리 문제로 전환되었고, 참회고백이 과거사 청산이라는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하면서 독일 국민 생활 전반에 걸쳐 철저한 나치화를 단행하던 1940년에 독일 지식인, 종교인, 대학. 신문은 항서를 냈다. 탄압이 심각해지자, 논리 정연한 지식인의 진리에 대한 외침이나 정의를 위한 기독교 신학자들의 외침이 사라져버렸다. 인간의 상태에 대해 그토록 낙관적이던 자유주의 신학은 철저히 나치와 야합했다. 폐쇄, 몰수, 감금 같은 대압력을 강행할 때, 노동자연맹, 대학신문, 신학잡지, 사상지도 그 뒤를 따랐다.
이때 정통주의 신학을 따르던 개신교 목사, 신학자 그리고 그들의 동지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이길 자가 누구냐?”고 외치며 청년 히틀러의 길을 정면으로 막아섰다. 이들은 지하교회, 독일고백교회 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곧 감옥으로 끌려갔다. 저자는 자유주의 신학=야합, 정통주의 신학=항거 공식을 제시한다. 스튜트가르트 죄책선언(Stuttgart Affirmation of Guilt, 1945)은 전쟁이 끝난 뒤 이 사건을 솔직히 참회한 독일교회의 고백문이다. 죄책선언과 함께 친나치 성직자들은 상당한 참회 기간을 가졌다. 교직에서 물러났다. 스스로 3년의 공적 참회 기간을 가졌다. 교회가 그들을 다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면서 참회했다. 이 기간에 독일교회는 지하에 있던 “고백교인들”이 주도했다. 참회선언은 자유주의와 정통주의의 단절과 양극화 그리고 독일교회의 분열을 막았다.
프랑스는 참회하지 않은 채로 지내왔다. 점차 여론에 떠밀려 참회를 하게 되었다. 대통령 자크 시라크는 1995년에 이르러 “대량 학살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라고 말함으로써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새 천년기를 시작하는 즈음에 정의의 소리, 양심의 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완악함과 태만을 고발하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가톨릭교회가 보여준 것처럼 이제 한국천주교회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 민족 앞에 “고백성사”를 해야 할 과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명동성당 지하실에 은밀히 보관된 친일 사료들도 대중에게 공개하고, 한국천주교회의 친일 행각을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한다.
하나님의 은총이 참회를 전제 조건으로 하며, 권징이라는 제도가 공의로운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이다. 프랑스가톨릭교회의 참회선언은 교회법에는 공소시효가 없고, 교회의 범죄에는 참회고백, 양심선언의 시효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의 범죄는 공동체적인 사건이므로 과거사 청산과 참회 고백은 공동체적 과제이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해결해야 할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고 한다.
프랑스 시민들의 양심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빌미로 프랑스 역사의 “윗물”을 흐려놓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비를 빌미로 정의가 와해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픈 역사를 덮어두자”는 우파 인사들의 조직적이고도 집요한 반격 속에서도 프랑스가 지금까지 나치 협력자에 대한 단죄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역사의식이 향상된 까닭이다. 그리고 반인도적 행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법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교회의 참회고백은 프랑스로 하여금 전후에 자국의 자존심을 지탱해온 드골주의 신화가 만들어낸 자기 최면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드골이 프랑인의 추앙을 받게 된 것은 이렇게 하여 자국을 전승국으로 인정받게 했으며, 나치독일에 점령된 4년 동안에 히틀러의 파시즘에 협력한 민족 반역자들을 엄정하게 처단하여 선과 악에 대한 가치 기준을 확고부동하게 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프랑스가톨릭교회의 상황은 같은 시기의 한국교회 상황과 비슷하다고 한다. 참회내용은 타국의 침략과 이족의 강요 아래에서 이루어진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금세기가 만들어낸 가장 양심적인 법률 용어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말이다. 기억은 정의이며, 망각은 불의라고 규정한 엘리 위젤을 언급하면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되풀이하고 만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짐해 주었다고 한다. 프랑스가톨릭교회의 참회선언은 자율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양심선언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함성과 비난에 굴복한 불가피한 교회의 조치였다고 본다.
4, 일본기독교의 참회고백
일본교회는 천조대신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높다고 고백해 왔다. 일본 교단, 교파들은 전쟁 말기에 ‘일본기독교단’이라는 이름으로 통폐합되었다. 1945년 7월 말에 한국의 모든 개신교파가 해체되고 일본기독교단 소속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이란 이름으로 통폐합되어 이 기구에 예속된 바 있다.
일본기독교단은 전후에 일련의 고백문을 발표한 바 있다. 참회고백이라기보다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교단이 저지른 전쟁 협조와 우상숭배의 죄를 하나님의 섭리로 돌리고, 외세의 일본 간섭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은 괴상한 패전 고백문이었다. 교단 대표 도미타는 교회가 일왕에게 목숨을 바치지 못한 것을 참회했다. 일본기독교단은 지금까지도 신도주의적 성격과 전통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이를 ‘사무라이기독교’라고 일컫는다.
일본기독교단은 1967년 부활절에 “제2차 대전 동안 일본기독교단의 책임에 대한 고백”을 발표하고 그것을 한국교회를 비롯한 아시아 교회에 발송했다. 이참회고백문은 교단 창립 과정과 전쟁 동안에 교단의 이름으로 저지른 잘못을 자각하고, 주님의 은총과 이웃의 용서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교단의 성립과 존속에서 자신들의 연약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역사하시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면서 깊은 감사를 올리며 아울러 두려움과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저자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기독교의 참회고백이 지니는 의미와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자면, 일본교회의 체질과 지금까지 과거사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첩경이라고 한다. 일본기독교는 신도주의를 근간으로 국가 건설과 세계 지배의 기초로 삼은 신도 이데올로기를 기독교 교리나 우상숭배 금지 계명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일본기독교는 일제 말기에 국가의 지침을 순순히 따랐다.
저자는 이 맥락에서 일본인 신학자 와따나베 목사의 일본인과 일본기독교의 특징을 소개한다. ① 일본인은 책임회피 체질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② 과거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하자면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이나 일본교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진실한 역사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③ 역사 왜곡, 역사 날조가 심하다. 일본은 일제가 만행을 저질렀던 침략 전쟁을 전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④ 전쟁 시기에 일본교회가 과연 존재했는가, ⑤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도 여전히 교회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일본교회가 전쟁 중에 저지른 죄를 지금의 교회가 참회해야 하는가? 저자는 “그렇다”고 한다. 교회가 과거에 저지른 죄를 오늘의 교회가 짊어져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 개개인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지체이며, 세대를 넘어 연결되어 있고,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체감으로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이 신앙적인 차원에서만 아니라 천황제와 신도주의 그리고 신사참배가 다시 극성을 부리고 있는 일본과의 국제관계에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에서 기독교는 외국종교, 서양종교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일본 기독교는 일본 시민권을 얻고 토착화하려고 노력을 하는 가운데서 무기력하게도 기독교 본래의 신앙을 변절시켰다. 사무라이 기독교로 전락했다. 교회는 국가의 하청 기관으로 변모했다. “국가가 있고 교회가 있다,” “천황은 신성함으로 침범하지 못한다.” “한 알의 밀은 나라를 위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상이 체질화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 일본기독개혁파교회를 비롯한 몇몇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교단들은 새로운 참회고백문을 채택했다. 부록에 수록된 참회고백문들이다. 저자는 독일교회가 전후에 과거사에 대해 참회고백을 했음을 의식하여 마지못해 발표한 듯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참회고백은 언제나 소중한 신앙고백이라고 평가한다.
5. 특별한 손님들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역사청산과 관련된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한국교회가 광복 때부터 지금까지 과거사 청산, 역사바로세우기, 양심회복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조직 기구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던 친일파 인사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신비”와 민족 해방을 면죄부로 삼아 스스로를 용서했다. 나라의 광복을 배교, 우상숭배, 비인도적 처사 등, 각종 행악에 대한 면죄부로 삼았다. 참회를 해야 할 자들이 “과거를 잊자”고 했고, 용서를 구해야 할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위대성을 빌미로 자기를 용서해 버렸다.
그런데 일본 그리스도교회 의장 다까이 다까오 목사와 교회 대표자들은 1991년 가을 신사참배의 죄를 참회하는 내용의 소속 교파의 사죄문을 들고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들을 찾았다. “한국조선의 기독교에 행한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죄의 고백과 사죄”라는 제목의 참회고백문을 한국장로교 주요 교단 총회에 전달했다. 선교 협력 관계에 있는 한국의 예장 통합, 합동, 대신, 기장 각 총회와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에 전달됐다. 총회가 열리고 있을 때였다.
이 교단들은 과거사 청산을 하지 않고 참회고백을 거부해 왔다. 일제조차도 깜짝 놀랄 정도로 솔선수범 배교, 백귀난행을 저지르던 한국교회와 친일파 범죄자들이 “해방”과 하나님의 은총의 신비를 빌미로 자신의 과거사를 스스로 용서했었다. 그러므로 일본교회가 전하는 참회고백문을 총회 석상에서 받아들인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저자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닮은꼴이라고 한다. 해방된 한국사회는 민족정기를 회복할 기회를 놓쳤고, 교회는 신앙의 정기를 회복할 기회를 놓쳤다. 반민특위의 해체사건과 교회의 출옥성도들 제거 사건은 모두 다수파의 불법적인 행위로 인한 것이며, 뒤집힌 가치관, 잘못된 방향설정, 그리고 오늘의 사회적, 교회적 병폐와 혼란을 야기한 “첫 단추”라는 점에서 정확하게 일치한다.
일본교회가 자기 나라의 전쟁에 협력한 것이 잘못이었다면, 한국교회가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자기 민족을 억압하는 이족의 침략 전쟁에 협력한 것은 더 큰 죄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런 일을 하고서도 이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었다. 한국교회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일제 말기의 우상숭배와 백귀난행, 민족배신, 비인도적 행위 등 각종 죄악을 공적으로 청산하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마땅히 해야 할 참회 고백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과거의 범죄 전력을 감추기 위해 역사를 날조하거나 명시된 교회의 질서를 위반하고 여러 가지 불법을 자행했다. 우상숭배를 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명한 선교사에게 해벌을 통보하고, 면직당한 채로 순교한 목사의 복권을 결정하여 선언하는 등, 개혁교회의 기초를 허무는 미신적 행사를 자행했다. 일본인의 역사왜곡과 과거사 청산에 대한 무반성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또 일본교회의 참회 고백과 사죄는 환영하면서도,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사는 은폐해 왔다.
저자는 일제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던 한국의 교계 지도자들이 광복 후에도 한국교회를 주도하면서 일본도 아래에서 터득한 생존의 “슬기”로 자신들을 애국자로 행세해 왔다고 한다. 아무런 참회 고백 없이 다시 교권을 거머쥐었다. 저명한 한국교회 사가들은 이들의 시각에서 교회사를 기술했다. 행악을 “슬기”로 평가하고, 일제 말기에 신앙을 지켰던 자들, 출옥성도들을 극도로 폄하했다. 이러한 역사날조는 민족을 앞세우는 민족교회사관이라는 이름하에 주로 이루어졌다. 교회가 양심의 교사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사가들의 뼈를 깎는 통절한 반성과 자기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 친일파 시각 일색으로 기술된 한국교회사는 이제 조종을 울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이 교회가 민족이나 국가의 시녀가 아니라는 자각을 표방한다. 지금까지 “나라가 있고 교회가 있다”, “하나의 밀알은 나라를 위하여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민족주의, 국가주의, 민족교회 시각에서 탈피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일본교회가 자신의 사무라이기독교가 잘못이라는 것을 각성한 것이다. 민족교회사관은 일본교회를 교회답지 않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사무라이기독교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고 지적한다.
7. 마무리 글
저자는 한국교회가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의 조롱을 당한다고 말한다. 한국교회의 올바른 양심회복을 위해 회초리를 든 자의 심정으로 이 분야에 많은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기독교와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양심회복이 이루어져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면 일본교회와 한국교회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며 일본 선교의 더욱 더 활짝 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서평자는 이 책에서 저자가 한국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읽었다. 과거사 청산, 양심선언, 참회고백의 필요성 천명은 교회를 사랑하는 일이다. 저자가 일본 근대화 시기인 메이지유신 시대에 일본 정부가 일본그리스도교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시대의 연구는 일제 침략 시대의 일본기독교와 현재의 일본 기독교의 모습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권민영 목사는 백석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과정(역사신학 전공)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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