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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 끝없는 유혹

 

(서울: IVP, 2001)

 

황호찬 (세종대학교 교수)

 

1장 다르게 사는 사람들

 

성장 지상주의 정책과 이로 인한 고도 산업 사회로의 신속한 진입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많은 귀중한 것들, 예를 들어 정직, 사랑, 책임의식 등을 희생시켰다. 경제 발전으로 우리의 호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씀씀이는 헤퍼졌지만, 인정은 메마르고 거리는 삭막해져 간다. 회칠한 무덤같이, 겉으로는 호화롭고 웅장한 빌딩들이 치솟았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라는 죽은 자의 뼈와 같은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다(23: 25-27).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정신없이 치닫고 있는 이 길이 혹 영원한 멸망으로 이르는 길은 아닌가? 이러한 영혼의 절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분주하고 시끄러운 세상 소리 때문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심각한 영적 불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 책에는 이러한 영적 질문들이 깔려 있다. 필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다르게 살도록 지음 받았으나 그렇게 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identity)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한다. 특별히 매일의 경제 행위에 비추어서 이 주제를 조명해 볼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경제 행위는 인간의 다른 행동과는 달리 인간 생존 자체를 결정짓는 데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쉽게 비리, 속임, 부정, 탐욕이 용납되는 영역으로 자리 잡아 왔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지 그 기준이 분명치 않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은혜만을 누리려고 할 뿐,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기를 거부한다. 본 회퍼는 싸구려 은혜야말로 현대 교회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 말했다. 싸구려 은혜란 회개 없는 용서, 훈련 없는 세례, 제자도(discipleship)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시며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없는 은혜, 한마디로 말하면 희생 없이 쉽게 교회에 다니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인의 삶에는 상황윤리가 너무나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상황윤리가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어차피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알 수도 없고, 설령 안다 해도 다 지키지 못할 터이니 상황에 따라서 적당히 살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이 싸구려 은혜와 상황윤리 속에서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길을 자신 있게 권면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과연 다르게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또 왜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그리고 왜 그 일은 그토록 어렵기만 한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물질의 욕망이 충족되면 행복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는 결정적인 결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이들이 추구하는 대상이 유한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물질적인 욕망보다는 인간관계에 역점을 두기도 한다. 이들은 돈보다는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원만한 인간관계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측은히 여길 뿐 아니라, 이들을 돕기 위해 삶을 바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탕에 깔려 있지 않은 인간관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정적인 요소(속임수, 배신 등) 때문에 실망하고 상처받기 쉽다. 인간 중심적인 휴머니즘은 인간의 근원적인 사악함으로 인해 언젠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되었다.

 

이와는 아주 다르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삶의 최우선에 두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돈이나 인간관계보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물질도 인간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도 다 중요한데, 문제는 우선순위이다. 만약 우선순위가 뒤바뀐다면, 즉 그 무엇이 마땅히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상이다.

 

2장 돈이란 무엇인가?

 

한 통계에 의하면 성인의 경우, 하루의 약 60-70퍼센트를 돈과 관련된 생각으로 보낸다고 한다. 돈은 과연 현대인의 신()이라 할 만하다. 그러면 대체 돈이란 무엇인가? 돈이 영적인 문제를 야기시키는 이유는, 그 이면에 하나님과 사단이 서로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될 수도 있고 사단으로 말미암은 저주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13:2: 14:23: 8: 18: 왕상 3: 13: 12; 살후 2:9)

 

루이스(C.S. Lewis)우주에 중립 지대는 없다. 한 치의 땅, 한 순간마저도 하나님과 사단이 동시에 그 권리를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려 한다. , 하나님도 적당히 섬기고 사단도 적당히 섬겨 어느 주인으로부터도 저주받지 않고 모두로부터 복을 받고자 한다. 예수의 말에 따르면 역사상 최초로 야훼의 경쟁자로서 사회를 지배했던 거짓신은, 전적으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 즉 돈이었다. 그렇다 인간이 돈 문제에 대해 무기력한 이유는 돈에 이와 같은 신적(神的)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돈에는 인간을 조종하여 하나님까지도 대적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영적 능력 이상으로 재물을 소유한 자에게는 돈이야말로 그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폭탄과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돈이 누구에게로부터 오는 것인지, 그 주인이 누구인지, 왜 이런 돈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등을 계속해서 스스로 질문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만물이 선하다면, 돈도 좋은 것이어야 한다. 즉 물질은 인간의 행복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직접 인간에게 허락하신 선한 것이다. 그런데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돈에 대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오해를 하게 되었다:

 

오해 1 : 내가 번 돈은 내 것이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사유 재산권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다음과 같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20:17). 사실 사유 재산권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권리다. 따라서 내가 번 돈은 내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성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사유 재산권이 절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재산권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공공의 이익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협약은 강자의 뜻대로 작성되거나 일방적으로 파기되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성경은 사유 재산권을 인정하되 절대적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구약 시대의 희년 제도에는 토지 매매에 대한 제한 규정이 있다. 빚으로 땅을 잡았다 하더라도 50년째 해에는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25). 이는 땅이 본래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만물의 궁극적인 소유주는 하나님이므로 우리의 소유권은 의존적이고 임시적이다. 돈 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다 주님의 것이다(18:4). 태어나면서부터 돈을 소유한 사람은 없으며 죽을 때 돈을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없다. (1:21)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내가 번 돈은 내 것인가? 그러나 그 돈을 벌게 한 원인자(原因者)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하나님이 바로 돈을 벌게 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제공자이시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은 주어진 원재료에 가공이라는 노력을 덧붙여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말뿐만 아니라 사고와 행동에서까지 인정하면, 놀랍게도 우리는 그 때부터 돈에 대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나는 맡겨진 재산에 대해 관리자로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자유는 없다. 관리자는 자기가 맡은 책임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

 

오해 2 :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사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돈으로 자식을 키웠으나 자식은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인다. 돈으로 사랑과 우정을 산 것 같았지만 그런 사랑과 우정은 쉽게 떠난다. 돈이 있다고 해서 죽음을 영원히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진리에 이를 수도 없다.

 

오해3 :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

 

탐욕은 만족을 모른다는 특성을 지닌다. 돈을 향한 끝없는 탐욕은 인간에게 지워진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족쇄와도 같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1:8)”.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5: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소유=행복이라는 등식이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부자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가정이 잘못된 이유는 인간에게 내재 되어 있는 탐욕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부자는 가진 것 때문에 더 불안할 수 있다. 더욱이 부자들의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성경은 가난 자체를 아름답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특별히 사랑을 베푸신다. 그것은 가난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며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은 주님을 더욱 절실히 찾는다. 당장 오늘 저녁 끼니가 없을 때, 그야말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을 때,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 심정은 절대적이다. 그렇다면 누가 더 행복한 자인가? 이는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행복의 척도와 원천은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부자일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불행한 자이며, 가난할지라도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행복한 자이다.

 

오해 4 :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

 

타락으로 인해 나타나는 잘못된 현상들 중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돈만 있다면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호의호식할 수 있으니 어찌 하나님이 필요할 것인가?(8:12-14).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샘을 찾지 않는 한, 참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 한(1:9), 돈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 없다(1:28). 주님에게 돌아오는 길이야말로 돈 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된다.

 

3장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추수의 비유 (13:24-30)는 정직하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씩 땀으로 맺어지는 점진적 과정이 하나님의 방법임을 가르쳐 준다. 짧은 시간에 많이 벌고자 하는 마음은 탐욕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장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앞날에 대해 대비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일에는 다음과 같은 7가지 유혹이 따라다닌다:

 

유혹 1 :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 (기업 경영의 목적)

 

그리스도인이 돈을 버는 이유는 단지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기본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6 : 25).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때때로 경제적인 목표를 낮게 세우려는 유혹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상을 이와 같이 낮추는 것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중대한 책임 회피다. 그리스도인들이 돈을 버는 목적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돈을 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혁신적인 사고로 창의력을 계발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웃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을 생산하고 인간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에게 일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데, 당신이 일할 기회를 이웃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의 임무는 잃어버린 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이웃에게 일터를 제공하는 것은 일의 참된 의미를 회복하기 위한 한 방법이 된다.

 

유혹 2 :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도 된다. (재화와 서비스)

 

돈을 버는 데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아무 물건이나 만들어서 아무렇게나 팔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떤 물건을 만들어서 어떻게 팔아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침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다음에 제시하는 세 가지 기준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안목을 제공하여 줄 것이다:

 

* 기준1 : 환경파괴

 

* 기준2 : 가치관, 습관, 태도,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 - 담배는 암을 비롯하여 많은 병을 유발한다. 영양 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미개 발 국가의 어린이들이 콜라 같은 음료수를 섭취하는 것은 건강에 결정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음란 비디오는 성도덕을 문란하게 한다.

 

* 기준3 : 불건전한 소비문화의 조장 여부 -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판매 전략을 세운다면 그러한 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소비지들에게는 소비가 하나의 유혹이 되고 종국적으로는 재정적 파탄을 불러일으키는 빌미가 될 것 이다.

 

유혹 3 :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경영 정책)

 

하나님이 그의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첫 번째 원리는 정의로운 경영이다. 정의로운 경영을 위한 첫 번째 관건은 공평한 경영이다. 소비자에게는 그들의 몫에 해당하는 정당한 분깃, 즉 폭리를 취하지 않고 적절한 가격으로 상품을 공급하며, 종업원에게는 차별없이 적정한 임금을 주고 대우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4:1).

 

두 번째 관건은 정직한 경영이다. 근본적으로 정직성이 무너지면 모든 상거래의 기초가 무너지게 된다. 기업이 잘못된 정보를 고의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거나, 불리한 정보를 공시하지 않는 것은 정직한 경영의 모습이 아니다. 정직한 경영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이 겪는 가장 큰 갈등은 탈세에 관한 문제다. 탈세는 분명히 죄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말씀하셨다. 국가에 소속될 돈을 훔치는 죄는 제8계명을 범하는 행위이다. 국내의 어느 기업은 이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첫째, 사업의 결과보다는 과정의 승리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기대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 둘째, 어렵더라도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것이 세금을 통한 소득의 재분배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셋째, 비록 세금이 과중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해결책 역시 하나님 안에 있다는 믿음으로 세금 문제에 정직성을 유지한다.

 

사랑의 경영이라는 원칙은 임금 결정과 종업원의 고용 및 해고 때의 원칙이라는 두 영역에서 잘 드러난다. 20:10-12의 비유는 임금을 받는 입장에서 보면 공평의 원칙에서 위배되는 것 같으나 임금을 주는 입장에서 본다면 사랑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한 데나리온이라는 임금은 노동자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이었다.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경영주라면 어떤 형태로든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직원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종업원을 해고할 때는 자신이 주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불만스러운 면에 대해 대화를 했는가, 교정할 수 있는 기회와 기간을 주었는가 등등.

 

유혹 4 : 당신이 망해야 내가 산다. (경영철학)

 

경쟁자를 제거하지 않고서도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데, 바로 유물론적 사상으로부터 관계론적 사상으로의 전환이다. 개체의 존재 이유를 전체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개념에 의하면 공동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개체의 위치가 정의되며, 협력의 당위성과 공동체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비록 개체 사이에 경쟁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의 승리 없이 한 개체만의 승리는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소위 승승(勝勝, win/win)의 개념이다. 이 경우 인간 사회는 더 이상 제로-(zero-sum)게임이 아니고 모두에게 플러스를 가져다주는 포지티브 섬(positive-sum)게임이 된다. 사회는 변하고 있다.

* 기업의 목적이 변하고 있다 - ‘이익대신에 비전을 기업의 목적으로 정의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비전의 의미는, 최상의 상품과 서비스의 창출, 고용 증대, 생활의 질 향상 등 실로 다양하다.

 

* 소유권개념이 변하고 있다 -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기업의 운영과정이나 운영의 결과에 대한 투명성과 나눔이 보장되지 않고는 우리는 모두 한가족’, ‘회사를 내 몸같이라는 구호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리더십 개념이 변하고 있다 - 새 시대는 변혁적 지도자를 원한다. 지도자가 주어진 상황을 바꾸고 추종자에게 일하는 동기를 부여하며 동시에 일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키워주는 리더십을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이라 한다.

 

* 미래의 기업은 창의력에 달려 있다 - 미래는 창의력이 있는 사람, 그런 조직에 의해 이끌어질 것이다.

* 미래의 기업은 공동체 의식을 요구한다 - 성경은 모든 일을 혼자서 하기보다는 여럿이 같이 하는 공동체적 개념을 지지하고 있다.

 

유혹 5 : 채찍이 당근보다 낫다. (경영자)

 

이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성경적 경영자의 모습을 살펴보자.

 

* 성경적 경영자는 선한 목자다 - 첫째, 선한 목자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안다. 하나님으로부터 기업 경영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그 일을 수행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자, 그가 바로 경영자다. 둘째,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양 또한 목자의 음성을 안다.(10:3-5) 성경이 쓰인 당시에는 수십만 명이 넘는 종업을 가진 회사나 교회를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을 안다라는 뜻은 종업원을, 조직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보지 않고 이름을 기억할 만한, 가치 있는 인격체로 보아야 함을 뜻한다. 셋째, 선한 목자는 양들의 접근을 허용한다. 넷째, 선한 목자는 양들과 운명을 함께 한다. 성경적 경영자는 양들과 함께 기뻐하고 같이 울며 양들을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는 마음으로 회사를 경영한다.

 

* 성경적 경영자는 섬기는 자이다 - 예수님은 낮아지는 것이 곧 높아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섬김의 길, 바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2:8-10)

 

* 성경적 경영자는 비전의 사람이다 - 비전이 없으면 주어진 여건을 잘 관리하는 유능한 관리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경영자는 될 수 없다. 또한 현실에 뿌리는 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전이 아니다. 양을 인도하는 목자는 양들의 상태를 늘 점검하여야 한다. 갈 길이 바쁘다고 혼자만 달려가서는 안 된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늘 대화의 창구를 열어 두어야 하고, 기업의 비전이 무엇인지, 경영층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종업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책임이 있는 것이다.

 

* 성경적 경영자는 기도의 사람이다 - 바쁜 경영자일수록 기도의 시간을 떼어놓는 일은 중요하다. 루터는 나는 오늘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만큼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한다고 고백했다.

 

* 성경적 경영자는 겸손의 사람이다 - 자기의 권한을 부하 직원에게 위임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후임 지도자를 양성해야 하며 부하직원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신뢰에는 실패에 대한 허용까지 포함한다.

 

유혹 6 :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종업원)

 

성경에서 말하는 선한 양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긍심과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하고, 충성스러워야 한다.(고전 4:2) 또한 선한 양은 목자와 동역자임을 인식해야 한다. 먼저 그의 상관을 존경의 대상으로 보고(2:9), 서로가 상호협력 관계, 곧 승승관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맹종과 다르다. 또한 동료에게는 경쟁으로 인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기술, 능력 및 경험을 팀의 목적을 위해 기꺼이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조직이나 상관의 가치관과 목표에 더 이상 동조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할 때에는 과감히 그 조직을 떠나야 한다. 이것은 제일 마지막에 취할 방법이다.

 

유혹 7 :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구조적 특성)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이미 사단의 덫에 걸린 것이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동료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또한 기업이라는 거대한 조직 내에서 개인의 운신의 폭은 매우 제한적이다. 인간은 너무나 약하며 구조적인 악은 너무나 강하다. 그러므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에 의지하여 동료의 도움을 구하는 겸손과 구조적인 악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4장 어떻게 돈을 쓸 것인가?

 

돈을 벌든지 쓰든지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에 얽매이지 않고 돈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6가지 유혹이 따른다:

 

유혹 1 : 대강 살아라

 

놀랍게도 헌신된 신앙인일수록 이러한 유혹에 더 많이 직면하게 된다. 염려와 계획은 다르다. 염려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는 표증이지만, 계획은 우리에게 주어진 재물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기 위해 세워야 하는 선한 청지기의 직무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장래의 일을 계획 없이 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비유로 가르쳐 준다.(14:28-30)

 

가족에 대한 계획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예산 수립이다. 첫째, 예산을 세울 때는 현재의 부채, 저축한 돈, 예상지출, 총소득 등을 최대한 계량화하여 계획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예산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장기목표와 단기목표를 설정한다. 셋째, 현금 흐름의 잉여분이 증가되도록 한다. 현금 흐름의 잉여분이란 총수입에서 단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출된 비용을 차감한 잔액을 말한다. 넷째, 현금 흐름의 통제는 예산의 수립 및 집행이라는 모든 과정을 통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예산과 실제 지출을 자주 비교한다. 신용카드는 될 수 있는 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남은 돈은 은행에 예금한다.

 

유혹 2 : 무엇이든지 사고 싶은 대로 사고, 쓰고 싶은 대로 쓰라

 

현대는 소비의 시대로 특징지어진다. 돈이 없다면 빚을 내어서라도 사라고 유혹한다. 물건을 사는 동기가 없어서 안 될 필요(needs)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욕구(wants)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사치나 과시를 위한 욕망 (desires)에 의해서인지를 구분하는 일은 바람직한 구매 활동에 도움이 된다.

 

* 올바른 소비생활을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지침 - 첫째, 건전한 소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건전한 가정생활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 모두는 이웃에게 의존하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에 비싼 옷을 입고 간다든가 고급차를 타고 가는 것은 비록 그 사람이 정당하게 돈을 벌어서 정당하게 산 것이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다른 교인들이 시험에 빠질 수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셋째, 물건 구입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올바르게 살기 위한 수단임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세일 기간에 백화점에 가지 못할 때 마음이 불안해질 정도라면 스스로 소비 습관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넷째, 환경을 파괴하거나 공해를 유발하는 제품이라면 사용을 재고해야만 한다. 다섯째, 생필품 이외의 물건을 산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 하나님은 후히 주시며 즐기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시다.(딤전 6:17)

 

* 충동적 구매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 - 구입 결정을 지연시키는 행동 지연 법칙을 적용하라. 이 물건이 나에게 혹은 우리 가정에 정말로 필요한가? 가격은 적절한가? 싼값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제품이 신 모델인가? 특히 컴퓨터와 같은 제품은 싸게 살 수 있다 해도 그것이 몇 달 안에 구 모델이 될 것이 확실하다면 할인 받은 금약은 구 모델의 감가상각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일 물건이 진정한 할인 가격으로 판매되는가? 세일 품목은 고객을 유혹하다 다른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수단일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사려는 물건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가? 특히 이 질문은 새 제품과 중고 제품을 비교할 때 필요하다. 제품에 치명적인 결합은 없는가?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실감했던 경험은 없는가? 만약 필요 이상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 정말 그것이 당신의 내적 필요를 만족시키는가? 제품의 기능과 제품을 만든 회사를 검토하고 조사해 보았는가?

 

유혹 3 : 빚을 얻어서라도 사고 싶은 것은 사라

 

부채를 얻으려면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돈을 빌리는 비용보다 빌린 돈으로 얻는 경제적 효익이 더 커야 하고, 빚을 갚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영학에서는 장래성이 있는 기업이라면 부채를 얻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다만 빚 독촉에 밤잠을 설친다거나 과중한 중도금 납입에 따르는 중압감 등의 비용은 수치로 표현하기 곤란하므로 빚을 얻더라도 이런 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빚을 얻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빚이 있다는 것은 돈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징조다.

 

유혹 4 : 세금은 될 수 있으면 내지 마라

 

세금을 부당하게 더 냈다면 몰라도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제8계명에 나오는 도둑질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세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세금은 억울한 지출이 아니고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이다(13:7) 세금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 효익(economic benefits)에 대한 대가이다. 합법적으로 낼 세금만 내고 절세할 수 있다면 절약한 돈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악법이 있다면 이를 여론화하여 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유혹 5 : 많이 받고 적게 주라.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받는 것, 특히 많이 받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나눔의 복이다. 예수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20:35).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대상29:14). 나눔은 하나님의 은혜다. 믿는 성도들에게는 나눔이 곧 투자이다. 나눔으로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나눔에 의한 투자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는”(6:20) 곳에 두는 투자이기 때문이다. 나눔의 투자는 시간이 걸려야 열매를 맺는다. 당신이 뿌린 씨앗은 자라고 있는 중이며, 10, 20년 아니면 당신이 죽은 후에라도 열매를 맺을 것이다. 물론 나눔을 물질로만 제한하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참다운 나눔이란 물질만이 아닌 우리의 모든 것, 곧 시간과 지식과 정열과 비전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의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초대 교회와 구약 시대 특히 희년제도에서 보여 주었던 공동체를 다시 건설하는 데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의 마음에 탐욕이 있는 한, 인간의 마음속에 사단이 자리 잡고 있는 한,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국가차원에서도 세계 차원에서도 군비축소, 버리는 음식 관리 등을 통해 구조적인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헌금은 다음의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당연히 내야 하는’(should give) 헌금으로 십일조가 여기에 해당된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지만 그 분은 우리에게 주신 소득의 한 부분을 특별히 구별하기를 명하셨다. 둘째로는, ‘낼 수 있는'(could give)헌금이다. 이 헌금에는 희생이 따른다. 예금, 휴가비, 주택자금 등을 희생하여 낼 수 있는 헌금이다. 셋째, ’내고자 하는‘(would give)헌금이다. 당장은 여우가 없지만 계획을 세우고 믿음 가운데 작정하는 헌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첫째, 힘대로 나누어야 한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11:29). 둘째,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전16:2). 셋째, 책임 있는 나눔이 되어야 한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행동은 그가 얼마나 용의주도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먼저 그는 디도를 보냈다(고후8:6). 다음에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고(고후8:10-11), 그 다음에 다른 형제들을 미리 현장에 보냈다(고후9:3).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다(고후9:4). 넷째, 나눔의 동기를 항상 점검해야 한다. 우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뿐이고(10:8),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도구로 쓰일 따름이다. 영적 교만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다.

 

유혹 6 : 빨리, 많이 벌어라.

 

기업을 경영할 때 빨리 그리고 많이 벌고자 하는 유혹이 있음을 앞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마찬가지로 가계에서 돈을 저축하거나 투자할 때도 동일한 유혹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를 혼란시키는 것은 저축, 투자, 투기, 도박 등의 경계선이 어디인지 불분명하다는 점과 성경이 이를 어디까지 허용하느냐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물론 그 경계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그가 속한 교회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저축이나 정부채권을 구입하는 것은 위험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시간에 대한 보상이고, 투자는 시간과 위험에 대한 보상이며, 투기는 적정한 수익 이상을 기대하여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며 투자하는 행위다. 이에 비해 도박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라기보다는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얼마나 짧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느냐에 따라 투자의 종류를 다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은 짧은 시간 내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다. “손으로 모은 것(재물)은 늘어가느니라”(13:11). 즉 조금씩 조금씩 모으는 재산이 커진다는 뜻이다. 주위에서 낭패를 당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단시일 내에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28:22). 둘째, 사람들은 짧은 시간 내에 돈을 벌려고 할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많은 돈을 벌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구나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왜 투자하는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동일한 투자라 하더라도 투자 동기나 방법에 의해 투자의 정당성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투자를 하는 이유는, 첫째로 남에게 더 베풀기 위해서다. 즉 주기 위해서 투자한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일정한 재산을 맡기신 이유는 이를 잘 투자하여 이윤을 남기게 하기 위함이다. 이윤을 남긴다는 말은 열심히 일을 하여(혹은 투자하여) 얻은 이익으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투자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가족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다.

 

다음과 같은 동기에 의한 투자는 비성경적이다. 첫째는 탐욕이다. 둘째, 투자하는 동기가 철저하게 자기만을 위한 이기심일 경우다. 셋째, 단지 돈을 버는 재미로 투자하는 경우다. 부동산에 투자하여 자기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는 주식 투자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주식 투자는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려는 것이고 돈 버는 과정 역시 사행성이 상당히 내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몇몇 개인의 자금으로 충당할 수 없을 때 기업은 주식을 공모하거나 사채를 발행하여 여러 사람의 자금을 모아 사업을 추진하고, 사업 규모를 확장함으로써 고용 증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주식을 구입하는 그리스도인은 수익도 한 목표가 되지만 더불어 주식투자로써 그 회사의 소유주가 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투기성 투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투기성 투자는 주식 시장의 가격 변동에 기인할 뿐 그 회사의 진정한 수익력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따라서 해당 기업의 주식 가격이 수익력을 반영하게 될 때, 누군가가 이에 대한 손실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투자를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재정 상태를 정확하게 점검해야 한다. 재정 상태에 따라 투자의 전략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투자해야 할 것인가? 성경을 보면 다음과 같은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들이 있다:

 

(1) 아무도 미래를 예견할 수는 없다. 내일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설령 주가가 오른다 하여도 그 증식된 재산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2) 투기를 피하고 짧은 시간 내에 일확천금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라.

 

(3) 보증을 서지 마라.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돈을 빌려 주거나 거저 주라.

 

(4) 투자에 대한 위험을 평가하라.

 

(5) 마음이 편치 않은 종목에 투자해서는 안된다.

 

(6) 빚으로 투자하지 마라.

 

(7)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라.

 

(8) 투자를 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투자에 대한 원가다.

 

(9) 투자 대상의 다각화를 도모하라. 이것이 위험을 방지하는 최선의 길이다. 수익률은 낮지만 위험이 적은 종목과, 수익률은 높으나 위험이 높은 종목을 적절히 혼합하여 투자 종목을 다양화하여야 전체적인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통상적으로 미국 같은 경우 20-25개 정도의 주식에 분산 투자하면 주식 시장의 체계적인 위험을 제외한 비체계적인 위험은 회피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좋은 투자 대상으로는 주택, 임대업, 보험 상품, 퇴직 연금, 정부 발행 채권 등을 들 수 있으며, 좋지 않은 투자 대상으로는 선물()거래, 귀금속, 골동품, 동전, 우표, 주식 등을 들 수 있다.

 

5장 우리 시대의 영웅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0:14)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1:7)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은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현대인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많이 알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실제로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성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분주한 가운데서도 단순하게 살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함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내 자신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며, 이웃에게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단순한 삶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삶의 목적과 행동이 일치한다.

 

둘째, 자족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자존이란 그리스도 안에서의 만족을 의미한다.

 

셋째,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다. 부족한 데서 말미암는 무감각이나 넘치는 것으로 인한 방탕이 아닌 절제이다. 부족하면 비굴하기 쉽고, 넘치면 교만하기 쉽지만 치우치지 않으면 긍지가 된다. 그러므로 단순한 삶은 의지적 행동이며, 부단한 노력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넷째 평안과 여유가 있다.

 

다섯째, ‘단순한 삶가난한 삶과 구별된다. 가난한 사람도 복잡하게 살 수 있고 부자도 단순하게 살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30:8-9) 성경은 단순한 삶을 획일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각각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 단순한 삶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할지 모르지만 절대적인 기준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부자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두 부자라면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에 대한 경고는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6:24, 1:11, 18:24, 5:1) 청지기의 비유는 하나님이 부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난한 자보다 부자는 그에게 맡겨진 돈을 잘 투자하여 이익을 남겨야 한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할 수 있는 한 돈을 많이 버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많은 돈을 저축하십시오. 할 수 있는 한 그 돈을 모두 남에게 베푸십시오.”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창출하면 자기뿐 아니라 종업원, 소비자, 지역 사회 등 모든 이웃에게 혜택을 줄 수 있게 된다. 크신 하나님께 크게 구하라.

 

성령이 충만한 자에게 돈은 더 이상 유혹이 아니다. 현대는 영웅이 없는 시대다. 우리에게는 따를 선생이 필요하다. 주님처럼 바울처럼 나를 따라 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들이여,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서라. 당신이야말로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야말로 비전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조차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참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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