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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제임스판성.jpg  

 

킹 제임스 판 성경만 읽어야 하는가?

    

 

킹 제임스 판 성경만이 유일무이하고 무오 무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른바 '킹 제임스 판 성경주의자들'이다. 킹 제임스판  성경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성경을 사탄의 성경이라 하고, 심지어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아닌 다른 성경을 읽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 킹 제임스 판 성경을 제외한 모든 성경들을 당장 쓰레기통에 던지고 불태워야 하는가?

 

'킹 제임스 판 성경주의자들'의 주장은 결정적인 논리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킹 제임스판 성경(영어)과 킹 제임스 성경을 한글로 옮긴 한글 판 성경을 동일시하는 '동일시의 오류'(fallacy of identification)이다. 

 

한글로 번역된 이른바 '한글 킹 제임스 판 성경'은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아니다. 한글로 번역되는 순간 킹 제임스 판 성경은 더 이상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아니다.  "한글 판 킹 제임스 성경"이라는 표현은 '동일시의 오류'라는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킹 제임스 판 성경주의자들'의 배타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성경들은 모조리 불태워야 한다.

 

킹 제임스 판 영어성경의 시원인 존 위클리프와 윌리엄 틴데일은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대중이 읽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킹 제임스 판 성경에만 권위를 부여하는 배타적 발상은 위클리프와 틴데일의 성경 번역 원리와 확신에 역행한다.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정신과 원리를 헛된 것으로 만든다.

 

아래의 글은 페이스북 공간에 실린 어느 글을 옮긴 것이다. Joshua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킹 제임스판 성경만 읽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을 쓴 글을 간추린 내용이다. 이 글은 문서 비평학자들이 사용하는 고서 검증법을 토대로 킹 제임스 성경의 역사적 정황들을 검토한다.  (1) 사본의 시기, (2) 사본의 양, (3) 사본의 정확도를 살펴본다.  참고할 만한 글이기에 옮겨 싣는다.

    

사본의 시기: 몇몇의 킹 제임스 주의자들은 킹 제임스 성경이 현대 성경보다 400년이나 앞섰음을 내세워 킹 제임스 판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려고 한다. 물론 출판 시기만 놓고 말하자면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월등히 우위에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최근에 번역되어 나오는 현대 성경들은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사용한 사본들보다 더 오래 되고, 더 정확한 사본들로부터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킹 제임스 판 성경은 10세기 이후에 기록된 사본들만을 사용하여 번역되었다. 성경이 완성된 후 거의 900년이 지난 후에 필사된 사본을 가장 이른 사본으로 사용하여 번역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 성경은 2세기의 사본부터 사용하여 번역되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고고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사용했던 사본들 보다 더 오래되고 정확한 사본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킹 제임스 판 성경이 번역될 때에는 땅 속이나 동굴 속 항아리 단지에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본들이 고고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세상에 얼굴을 드러낼 수 있었고, 성경 번역자들은 그러한 사본을 면밀히 연구하여 현대 성경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그렇다. 킹 제임스 판 성경이 현대 성경보다 약 400년이 앞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성경은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사용한 사본보다 약 900년이나 앞선 사본을 사용하고 있음을 잊지말라.

 

사본의 양: 현대어 성경을 번역하려고 사용한 헬라어 사본들은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사용한 사본들보다 백배 이상이나 많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백배 이상이나 된다. 킹 제임스 판 성경을 번역하는데 사용된 사본은 오직 6개뿐이지만 현대 성경을 번역하는데 사용하는 사본은 헬라어 사본만 5,000개 이상이다. 그 종류와 양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2006년에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피러스: 118대문자 필사본: 317소문자 필사본: 2,877성구집: 2,433개 이다.

 

이처럼 헬라어 사본들만 봐도 총 5,745개나 된다. 라틴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의 번역본까지 치자면 10,000개가 족히 넘고, 성경 인용문구만 찾아도 1,000,000,000개가 넘는다. 현대 성경은 보다 정확한 번역을 위하여 이 모든 자료들을 참고하지만, 킹 제임스 판 성경은 오직 6개의 사본만을 사용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사본을 많이 참고하면 할 수록 필사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 뿐 아니라 어떤 문서의 필사 정확도를 검증하는데에도 동일하다. 이러한 자료적 정황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킹 제임스 판 성경은 오직 6개의 사본만을 사용했기에 5,000개 이상의 사본을 사용하는 현대 성경보다 정확도 검증에서 월등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본의 정확도: 킹 제임스 판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이 사용한 6 개의 사본들은 거의 대다수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거의 대다수라 함은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소수의 번역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이유는 분실된 사본들의 족보 사본들은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손실된 사본이 담고 있는 단어, 어휘, 특성 등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모아 킹 제임스 판 성경의 번역 정확도를 검증하면 실망스러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킹 제임스 판 성경을 번역하는데 사용된 사본들은 순수한 사본이 아니라 서기관들이 첨가한 단어나 문장 등이 있는 사본이었던 것이다.

 

킹 제임스 판 성경주의자들이 자랑처럼 하는 말이 있다. “킹 제임스 판 성경에는 일반 성경에 없는 단어나 문장이 들어있다!” 사실이다. ? 서기관들이 첨가해 넣은 단어와 문장들이 있는 사본에서 킹 제임스 성경이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킹 제임스 성경만이 무오무류하고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 아니라 더해진 내용이 들어있는 사본으로부터 번역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요한의 콤마가 아니던가? 물론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고, 더 자세히 전달하기 위하여 단어와 문장을 첨가한 서기관들의 의도는 칭송 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성경 필사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아무것도 보태거나 빼지않고 있는 그대로 필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일반 성경에 없는 부분이 킹 제임스 판 성경에 있다고 해서 킹 제임스 판 성경을 예찬하는 것은 엎드려 절 받는 격인게다.

 

킹 제임스판 성경은 처음 인쇄된 이후로 100,000군데 이상 수정된 개정판들이 출간되었다. 더욱이 1982년에는 더 많은 개정을 통한 뉴 킹 제임스 판 성경이 출간되었다. 킹 제임스 판 성경주의자들은 이러한 개정본 출간의 이유를 고어(古語)로 되어있는 킹 제임스 판 성경을 읽기 힘드니까 현대어(現代語)로 바꾼 것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뉴 킹제임스 판 성경을 비롯한 수많은 개정판들은 킹 제임스 판 성경과 어휘만 다른 게 아니라 단어와 문법까지 다르기 때문이다. 어휘를 고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단어와 문법까지 고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에 의거하여 킹 제임스 판 성경주의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맺는다. 킹 제임스 판 성경이 무오, 무류하고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왜 단어와 문법을 바꾼 뉴 킹 제임스 판 등과 같은 개정판들을 출간하는가?

      

 

최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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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둘리 2015.11.05 16:34
    글 감사합니다.
  • ?
    dschoiword 2016.02.28 21:26


    킹제임스 성경유일주의 망상


    기독일보, 2016. 2. 27.

    권동우 지음, <킹 제임스 성경유일주의 망상>(CLC) 서평/ 조덕영

    성경에 대해

    웨스트민스턴 신앙고백 제 1장은 성경에 관한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거기에는 인간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 왜 반드시 성경을 필요로 하는 가와 성경의 영감과 범위와 신적 권위 그리고 성경이 각 민족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할 필요성 등이 압축된 언어로 소개되어 있다. 또한 성경 해석의 정확무오한 법칙은 성경 자체(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라는 것과 모든 종교상의 논쟁들을 결정하고 모든 회의들의 결정, 고대 저자들의 의견, 사람들의 교리들, 개인의 정신이 검토될 때 최고의 심판주(審判主)는 다른 이가 아니라 오직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심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모든 번역된 성경을 배제하고 오직 킹 제임스 성경만이 영감된 성경이라는 매우 우려스러운 주장들이 국내에서도 나타났다. 정말 그러한가?

    킹 제임스 성경이 번역된 내막

    영어 성경이 나오기 전, 영국에서는 '고대 라틴어 성경'과 '벌게이트 성경'이 공식 예배에서 사용 되었다. 그러니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예배에서 사용되는 성경의 내용을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이에 점차적으로 일반 대중들의 언어로 된 성경이 긴요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 대중들도 성경을 직접 읽을 권리가 있다고 계몽한 벌게이트 역의 대본인 위클리프 영역(英譯) 성경(Wycliffe's Bible, 1380-1382)이 등장한 이후, 킹제임스 성경(KJV, The King James Version)의 모태가 된 틴데일 성경(1525-1535)으로부터 1611년 KJV가 나오기까지 성경 영역의 역사는 복잡한 경로를 거치게 된다. 문제는 한 번도 이 흠정역(欽定譯, KJV)이 교회나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흠정역만이 성령이 역사한 유일한 역본이라든가 흠정역만 읽어야 구원 받는 다는 등의 고집은 타당하지 않다. 한글흠정역이 나오기 전 우리 한국 성도들은 모두 구원 받지 못했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마치 마귀는 하나님보다 능해서 성경조차 강력하게 변개 시켜 흠정역 이전의 모든 하나님 백성들을 지옥으로 끌고 갔다는 논리가 된다면 사단은 하나님보다 능한 아주 무섭고 능력 있는 존재가 되고 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이 추락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 한 없이 초라하고 능력 없으신 분으로 매도되는 아주 이상한 신학이 등장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지전능 교리와 충돌한다. 그 뿐 아니라 라틴어도 모르고 그 어떤 성경도 모르던 흠정역 이전의 영어권 신자들도 모두 구원 받지 못했다는 괴상한 모순에 빠져버리게 된다.

    1603년 제임스 1세는 성경에 오역(誤譯)이 많아 원전(原典)의 의미를 바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청교도 지도자 존 레이놀드(John Reynold)의 진언을 받아들여 54명의 왕실 작가들을 중심으로 흠정역 성경을 준비하게 된다. 당시 레이놀드는 옥스퍼드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의미를 가진 코르푸스 크리스티 대학(Corpus Christi College)의 학장이었다. 당시 제임스 1세는 칼빈주의자들이 보던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신약=1557, 구약=1560)을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주교 성경(The Bishop's Bible, 1568)도 국왕 자신이 주도한 새로운 성경으로 대체되기를 바랐다. 즉 제임스왕 흠정역(KJV)은 제임스 국왕의 사심(私心)이 일부 들어있는 성경이었다.

    이 새로운 성경 번역을 위해 1607년 54명의 왕실 작가들이 선정되어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6개 팀이 참여하게 된다. 케임브리지의 두 사람이 역대상에서 전도서와 외경까지를 맡았으며, 옥스퍼드에서 선발된 둘은 이사야에서 말라기, 사복음서,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을 맡았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에서 선발된 두 명은 창세기에서 열왕기하와 로마서에서 유다서까지를 할당받았다. 54명 중 주교 성경의 개정 작업에 실제 참여한 사람은 47명이었다. 가능하면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문에 일치하도록 했고 만일 틴데일, 매튜, 카버데일, 휫처치, 제네바 등의 번역본이 성경 사본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주교 성경을 따르도록 했다. 사본은 하나의 사본이 아닌 당시 사용가능한 여러 사본을 근거로 삼았다. 12세기에서 15세기까지 확인 된 신뢰성 있는 사본들은 모두 참조하였다. 또한 완곡(婉曲)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는 원전의 내용을 충분히 간결하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가 없는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단어들을 설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난외의 주를 달지 않도록 했다.

    새 번역본의 제 3판은 1611년에 나왔다. 그 후 찰스 1세의 집권 기간 중 장기 회의에서는 소위 흠정역 성경 개정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여 1629, 1638, 1653, 1701, 1762, 1769년과 그 후 두 차례의 후기 재판에서 사소한 개정이 이루어져 왔으며 마지막 3차 개정본은 옥스퍼드의 브레이니(Blayney) 박사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이것은 1611년 판과 비교할 때 약 75,000군데나 수정되어 있었다. 새로운 성서 사본들이 발견되면서 KJV의 개정역(ERV, 1881-1885)은 1870년 캔터베리 종교회의를 거쳐 필립 샤프 위원장으로 하여 완성된다. 이렇게 KJV도 단번에 완벽하게 기계적으로 번역된 책이 아니었다. 언어의 변천과 새로운 사본들을 참조하면서 많은 믿음의 일꾼들이 참여하여 사소한 수정과 변경이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흠정역 성경을 너무 유일무이한 성경이라고 절대시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흠정역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은 좋으나 다른 성경은 모두 사단이 변개했다는 식의 주장은 결코 성경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한글 흠정역은 초창기 급하게 제작되느라 문제가 많았다. 즉 한글 번역과 교정 상 문제가 많았다. 필자가 확인했던 그 초기 한글 번역본은 아주 부끄러울 정도로 교정 상 문제가 많았던 번역본이었다. 즉 충분한 검토나 교정 없이 졸속 번역되고 졸속 교정되었다는 증거이다.

    완전한 번역이란 없다(킹 제임스 성경은 완전한가)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KJV 자체도 성경 원본이 아닌 이상 완전한 성경은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탄닌(T(h)annin)은 성경 12책에 29번 나오는 단어이다. 이 단어에 대해 KJV는 tannim(14회)을 dragons(12), dragon(1), whale(1) 등으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고, tannin(9회)은 dragon(5), serpent(2), whale(1), sea-monsters(1) 등 4 가지로 번역되고 있다. tanninim(5회)은 dragons(3), serpents(1), whales(1) 등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되고 thannoth(1)는 dragons­of(construct state)로 번역되고 있다. 용과 고래는 그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 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르게 번역되었다는 것은 성경 독자들이 해석에 있어 결정적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KJV도 원본이 아니라 사본과 다른 역본을 참조한 역본에 불과하므로 당연히 이렇게 허점이 있는 것이다.

    성경 번역의 의미

    성경의 원본이 없다는 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연구에 있어 늘 겸손해야 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암묵적으로 알려준다. 물론 하나님은 사본만을 남기시면서도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큰 오류 없이 깨달을 수 있도록 조치하셨다. 하지만 언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것이고 바벨탑 언어 혼잡 이후로 늘 변화해 왔다. 50년 전 사람들이 생각하던 오렌지족과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오렌지족의 개념은 전혀 다르다. 50년 전 된장녀와 지금의 된장녀도 전혀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500년 전 조선 시대 사람들과 지금 우리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대화한다면 사극 드라마처럼 서로 간에 자유롭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통에 큰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렇게 언어는 늘 생명체처럼 변신한다. 따라서 성경은 시대의 언어 변천을 따라 새롭게 번역될 당위성이 생기게 된다. 개역 성경의 어투만 해도 우리 세대는 좀 더 거룩한 말씀처럼 여겨져서 익숙하고 좋으나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고리타분하고 어색한 어법으로 느껴져서 그 내용이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개정판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개역개정판이나 다른 한글 번역본들이 탄생한 배경이기도 하다.

    <개역 성서>는 1910년 신구약 공인역이 완역(신약은 주로 외국 선교사들이 번역, 구약은 흠정역과 중국어 성서 참조) 되자, 신문명수입으로 한국의 언어가 급격히 변화하는 과정에서 비평판 원문이 나왔다는 이유로 성경 개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12년 여러 선교사들과 한국 목사, 장로들이 하나가 되어 위원회를 구성하여 25년이라는 오랜 각고(刻苦)의 기간을 가진 끝에 완성(1937)한 성경이었다. 해방 이후 1949년 새로운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1952년 10월 교정판이 나왔다. RSV와 네슬-알란트 판이 많이 참고 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의 개역개정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모든 섭리 과정을 무시하고 일부 사람들이 한글 성경은 사단이 변개한 것이라는 식으로 무시하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에 대한 기본을 모르는 소치가 아닐 수 없다.

    킹 제임스 성경은 많은 성경 역본 중 한권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주전 586)로 가면서 가져간 사본이 맛소라 사본으로 발전하며 에스라가 귀환하면서 바벨론에서 가져온 사본과 팔레스틴 땅에 남아있던 사본을 대조하여 원시 사마리아 수정본을 만들고 애굽 알렉산드리아에서 발전한 고대 70인역 등이 발전하면서 구약 성경이 완성되어 갔고, 신약은 알렉산드리아(애굽, 이디오피아 등)와 동방 지역(가이사랴, 안디옥 등)과 서방 지역(이탈리아, 바티칸, 고올,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나타난 사본들이 남아 있다. 이들이 라틴역으로 발전하고 영어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갔다. 제임스왕 흠정역(KJV, The King James Version)이 훌륭한 영역(英譯) 성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오직 KJV만 바른 성경이고 다른 것들은 사단이 변개한 성경이라는 식의 주장은 분명 무리가 있다. 따라서 흠정역이 좋은 번역본이기는 하나 흠정역만 고집하는 것은 너무 편협된 신앙이요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본다.

    본 책을 강력 추천하며

    이번에 이 같은 '킹제임스 유일주의 운동'의 문제를 지적한 탁월한 저서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킹제임스성경연구소 권동우 대표 저, CLC간)이 출간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총 11장과 2개의 부록으로 이루어진 본 책은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문제점들(1), 역사(2장), 제임스왕과 영국국교회(3장), 킹제임스에 영향을 준 성경들(4장), 번역자들(5장), 킹제임스성경 번역(6장), 초판에 드러난 번역자들의 신학사상(7장), 서문과 난외주(8장), 평가(9장), 공인본문의 의문들(10장), 바른 성경관(11장)을 다루며 킹제임스성경의 그리스어 원문 비교와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서문과 번역자들이 독자에게 주는 소감을 부록으로 다루고 있다.

    특별히 이 책은 '킹제임스 유일주의 운동'이 20세기 안식교 교리보존을 위해 시작되어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그 경로를 잘 추적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운동의 파장은 넓고 강하며 때때로 그 운동의 효과가 매우 파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러 기독교 단체들을 불화와 갈등에 이르게 했으며 일부 단체들은 이 사안으로 인해 실제로 분리되었다. '킹제임스 유일주의 운동'의 파장은 세계 선교 현장에까지 미쳐 국내 교회들 안에 곤란한 문제들을 야기 시킴은 물론 일부 해외 선교사들까지 분열과 반목 가운데 나눠지게 만들었다.

    정말 불행한 일은 이 같은 모든 분열이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즉, 성경의 최초 원본(original autographs of Scripture)이 특정 역본이나 특정 계열, 또는 특정한 영어역본에만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비성경적 기초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 국내 사본학의 권위자인 신현우 박사는 "상대방의 증거는 숨기고 자기들의 증거만을 제시하는 부정직한 논법으로 대중을 현혹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며 본 책을 추천하고 있다. 이 운동의 문제에 대한 탁월한 비판서가 이번에 나오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 환영할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 책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는 진실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분들께 감사하며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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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2016.03.31 11:17
    개역성경문제점 요약

    이제는 성경 문제에 눈을 뜹시다

    ●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사탄, 천사들, 마귀들, 사람, 짐승, 성경, 천국, 지옥, 구원 등에 관한 「개역성경」의 진술을 통해 성경 번역의 대본과 번역자들의 사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해 주시고 섭리로 보존해 주신 말씀에 대해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올바른 교리를 세우기 위함이다(딤후3:16).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 사탄과 마귀들, 사람의 구원과 멸망, 천국과 지옥, 올바른 교회 등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성경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같이 중요한 크리스천의 표준이 시간에 따라 바뀌며 그 안의 내용이 편집하는 사람에 의해 임의로 삭제되고 변개된다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지금 이 시간에도 인본주의 학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해마다 많은 성경 역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이제는 '저승'이라는 불교 용어를 버젓이 사용하는 '에큐메니칼 성경'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분은 혹시「개역성경」을 읽으면서 “없음”이라는 단어가 나옴으로 인해 의아해 본 적은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만을 보존하시지 않고 자신의 말씀들(words) 즉 '단어들'을 보존하신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킹제임스 흠정역).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들(단어들)을 보존하려 하시는 것만큼이나 마귀도 자신의 사람들을 사용하여 자기 뜻에 맞게 성경을 변개해 왔다. 역사는 성경 사본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줄기를 통해 전해져 내려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사도 바울의 안디옥 교회에서 나온 성경신자들이 보존해 준 '프로테스탄트 성경'이 하나의 줄기이며 알렉산드리아의 인본주의 철학에 따라 성경을 비유로 해석하며 성경신자들을 핍박한 사람들이 만든 '카톨릭 성경'이 또 다른 하나의 줄기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보존한 '프로테스탄트 본문'을 버리고 '카톨릭 본문'을 선택하고 있다. 그 결과 '믿음+행위', '성경+전통'을 가르치는 천주교의 오염된 교리와 예수님의 신성을 무시하며 지옥을 부인하는 등 배도한 인본주의자들의 비뚤어진 사상이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에서 활개를 치게 되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성경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이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해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여기서는 한국 교회가 그 동안 절대적으로 수용해 왔던 성경인 「개역성경」의 유래와 문제점을 분석해 보려 한다. 사실 한글「개역성경」(혹은 개역 개정판)이나 영어 「NIV」, 「NASB」, 「Living Bible」 등이 한결같이 '카톨릭 본문'에서 나왔으므로 이 책자의 분석 내용은 모든 현대 역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디 마음을 열고 하나하나 스스로 확인해 보기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크리스천들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주신 온전한 말씀을 우리말로 온전하게 보존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한국 교회의 밝은 앞날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개역성경의 유래와 문제점

    1877년에 로스 등이 한글성경 번역작업을 착수한 이래 1911년에 신구약성경인 「성경전서」가 출간되었고 그 뒤 1938년에 「성경전서」의 개정판인 「성경개역」이 출간되고 1961년도에는 「성경개역」의 개정판인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이하 「개역성경」)이 출간되었다. 「개역성경」은 문장이 간결하고 우아하고 웅장하여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의 독보적인 성경으로 자리매김해 왔으며 성도들의 신앙형성에 긍정적으로 이바지한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본문 선택과 번역자들의 사상에 기초한 용어 선택을 살펴보면 기독교 교리와 신학 및 믿음의 실행 등에 큰 폐해를 끼쳤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두 종류의 성경본문

    대다수 성도들의 추측과는 달리 성경 번역에 필요한 본문은 한 가지가 아니고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누가 어떤 본문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그 번역 성경의 질과 내용이 크게 변하게 된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순수한 말씀을 주셨으나 마귀는 자기 뜻을 이루려고 인본주의자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켜 왔으며 그 결과 두 종류의 본문이 존재하게 되었다. 마귀가 늘 하나님을 모방하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일이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허구가 아니라 실제 역사에서 일어난 사실임을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사14:12-14; 고후11:13-15).

    (A) 구약성경본문
    구약성경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는 유대인들이 순수하게 보존한 「마소라본문」(Ben Chayyim Masoretic Text)이 거의 모든 성경 번역의 대본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특권 의식을 가진 유대인 마소라들이 심혈을 기울여 본문을 보존했기 때문에 이 본문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37년에 히틀러 수하에서 일하던 키텔(Rudolph Kittel)이 「마소라본문」을 페이지마다 평균 15-20 군데씩 수정하여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iblia Hebraica)를 편찬했는데 이 본문은 후에 1967/1977년판 「슈트트가르트 비블리아 헤브라이카」(BHS)로 개정 출간되었다. 「개역성경」, 「신국제역본」(NIV), 「신미국표준역본」(NASB) 등 모든 현대 역본의 구약은 이「BHS」를 기초로 하여 번역되었으므로 그 안에는 이러한 개정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즉 마소라 본문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고 어느 마소라 본문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구약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B) 신약성경본문
    신약성경의 경우 천주교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신약 교회가 지난 1900 년간 그리스어 「공인본문」(Textus Receptus, TR 혹은 「수용본문」)을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는데 이 본문은 다수사본에 근거했기 때문에 「다수본문」이라고도 하며 가장 널리 사용되었기에 「보편적 본문」이라고도 하고 천주교회의 「서방본문」과 대비되어 「비잔틴(동방)본문」이라고 하며 루터와 칼빈 등 개혁자들이 한결같이 이 본문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종교개혁본문」이라고도 한다. 한편 천주교회는 처음부터 「소수본문」만을 고수해 오고 있는데 「소수본문」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이 본문을 지지하는 사본은 몇 개 되지 않으며(전체 사본의 1% 정도) 이 사본들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마 교황청 도서관에 전시용으로 보존되어 온 「바티칸사본」과 시내산 동방 정교회 수도원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시내사본」이 있다. 바로 이 두 사본에 근거해서 1881년에 영국의 웨스트코트와 호르트는 「공인본문」을 무려 5,604 군데나 수정하여 소위 그리스어 「수정본문」(Revised Text)이라는 개악된 본문을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이 「공인본문」에서 삭제하거나 추가하거나 변개한 단어는 무려 9,970 개나 되며 이것은 신약성경본문에 나오는 140,521 개 단어의 7%나 되는 것이다.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이후에 1898년에는 네슬레가 「티센도르프의 제8판」과 「위마우스의 제3판」과 함께 신약성경본문을 편집하여 「네슬레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이라는 본문을 만들었다.



    두 도시 이야기

    성경 본문/사본 역사에 대해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경 본문이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는 사실을 금방 인정할 것이고 시리아의 안디옥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이런 본문들의 출처임을 또한 쉽게 알게 될 것이다.

    (A) 알렉산드리아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제가 영토를 확장하고 죽은 뒤에 그의 왕국은 시리아의 셀류시드 왕국과 이집트의 톨레미 왕국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 결과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에 끼여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외세의 각축장이 되었고 특히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대왕 통치 때에는 유대교 탄압 등으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내려갔으며 이들은 곧바로 유대교와 그리스의 인본주의를 결합하여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영적으로 신비적으로 해석하며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뜯어고치는 이른바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만들어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이 자기들의 믿음을 확립하기 위해 변개시킨 본문이 바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소수본문」인 것이다.

    (B) 안디옥
    주후 1세기 경의 안디옥은 로마 다음 가는 큰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피해 도피한 성도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받은 곳이고 안디옥 교회는 사도 바울을 파송한 교회이며 이방인들의 복음 사역을 위해 가장 크게 기여한 교회이다. 로마 시대 동서 교역의 중심지이던 바로 이곳 안디옥에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 등이 필사되어 여러 곳으로 퍼졌는데 이곳 성도들이야말로 성경을 한 글자 한 글자 보존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은 사람들로 이들이 보존해 준 본문이 바로 시리아 안디옥의 「다수본문」인 것이다.



    성경의 판결

    오직 성경만을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행의 표준이요, 최종권위라고 믿는다면 성경이 이집트에 대해 경고하는 바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이집트에서는 결코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명백한 성경의 판결인 것이다. 그렇게 지혜가 많던 솔로몬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집트에서 물건과 사람을 가져오다가 실족하여 결국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았던가?(신17:16; 왕상3:1; 왕상10:28-29) 솔로몬보다 지혜로운 자가 누구란 말인가? 부디 성경의 판결을 믿기 바란다. 이집트에서는 결코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



    개역성경 본문

    로스의 성경을 필두로 한글 성경은 한결 같이 천주교 「소수본문」에 근거하여 번역되었다(다시 한 번 이집트를 기억하기 바란다). 「개역성경」의 구약은 1901년의 「미국표준역」(ASV)에 기초하여 번역되었는데 ASV는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수정본문」에 기초한 영국의 「개역성경」과 그 내용이 같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한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등도 모두 천주교의 이집트 본문을 사용하여 번역되었으며 번역의 대본인 본문이 같으므로 문체만 다를 뿐 그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성경을 읽다가 각주에 "어떤 사본에" 혹은 "더 오래된 사본에"라는 말이 나오면 이 사본들이 바로 대한성서공회가 전심으로 추앙하는 천주교 사본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교황, 마리아, 연옥, 사제(신부), 면죄부, 행위 구원 등 비성경적 요소로 가득한 기관, 성경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성도들을 죽인 단체에서 성도들을 위해 올바른 성경 사본을 보존해 왔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대한성서공회를 움직이는 연합성서공회의 지도자들이 천주교 사제들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디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의 말을 믿지 말고 성경의 판결을 믿기 바란다. 이집트 사상을 이어 받은 로마(바빌론)에서는 결코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계17-18장).



    개역성경 용어

    성경 번역이나 해석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개념으로 단어들을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에 성경이 한글로 번역될 때 중국, 인도의 이교도 사상과 토속 샤머니즘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작업을 수행하였고 그 와중에 이런 비성경적 사상들이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여 「개역성경」에는 기독교 개념으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단어가 많이 들어 있다. 한 예로 ‘귀신’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우리말 큰사전」은 귀신을 가리켜 ‘사람이 죽은 뒤의 넋’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 중국 등에 편만한 이교도 사상으로 성경은 결코 이런 개념을 수용하지 않는다. 바른 본문에서 바른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번역하여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읽혀 온 킹제임스 「흠정역성경」은 정관사 ‘the'가 붙은 마귀 즉 유일한 사탄 마귀와 그의 천사들인 마귀들이 있다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음에는 성경 번역자들의 본문 및 용어 선택이 신학 및 교리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였다.

    1. 한 하나님인가, 한 분 하나님인가?
    삼위일체야말로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특이한 것이며 사실 이 교리로 인해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마땅히 삼위일체를 가르쳐야 할 성경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믿음을 가르친다면 그 결과가 어떨 것인가?

    개 역 :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역번역: God is one person. 딤전2:5)
    흠정역 : 한 하나님이 계시느니라(영어 KJV: There is one God.)


    「개역성경」처럼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여호와의 증인들 주장대로 하나님은 한 분 즉 아버지 하나님만 있게 된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결코 한 분이 아니며 아버지, 아들, 성령의 세 분으로 존재하시되 이 세 분이 하나인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야말로 너무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기독교의 근간이 무너지게 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분명한 말씀을 주셨다.

    흠정역 : 하늘에 증언하시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한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5:7).


    그런데 「개역성경」은 알렉산드리아 철학을 따라 이를 무시했다.

    개 역 :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2. 독생하신 아들인가, 독생하신 하나님인가?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 분을 제대로 알 때에야 비로소 올바로 구원받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개 역 :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1:18)
    흠정역 : 아버지 품 속에 계신 독생자


    ‘독생한다’는 말은 영어로 ‘only begotten'이며 이는 ’유일하게 낳은‘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개역성경」은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유일하게 낳은 하나님‘임을 보여 주며 이로써 또 다시 ’예수님은 피조된 하나님‘이라는 여호와의 증인들 교리를 지지해 주고 만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의 서기관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마저도 공격한다.

    개 역 :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눅2:33)
    흠정역 : 요셉과 아이의 어머니는 그가 아이에 관하여 말한 그것들로


    요셉은 결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가 예수님의 아버지라면 예수님은 타락한 인간의 피를 받고 태어난 죄인이 되고 만다. 또한 마귀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려고 무척이나 애쓴다.

    개 역 :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마5:22)
    흠정역 : 누구든지 아무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서기관들에게 노하셨는데 만일 이런 구절에서 ‘아무 까닭 없이’가 빠진다면 과연 예수님은 어떻게 될까?

    또한 「개역성경」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예수님의 피를 무시한다.

    개 역 : 우리가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골1:14).
    흠정역 :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하여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3. 하나님의 영인가, 하나님의 신인가?
    구약 시대에는 성령님께서 무엇을 하셨을까?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혹은 ‘주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등에 있는 성령님(the Spirit)은 구약에 28회나 나오지만 「개역성경」은 이를 다 ’신‘(god)으로 번역하여 구약에서 성령님을 제거했다.

    개 역 :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1:2).
    흠정역 :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하나님의 신을 역번역하면 ‘god of God'이 되며 사실 이런 식으로 번역된 성경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구약의 ’the Spirit'이 바로 신약의 ‘the Spirit' 즉 성령님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이 소위 ’신이 내린다‘는 강신의 무속신앙개념으로 성경을 이해하였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개 역 :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삼상10:10)
    개 역 :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삿6:34)


    이런 사람들을 향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흠정역 : 너희가 성경 기록들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하느니라(마22:29).

    4. 주인가, 여호와인가?
    한국 성도들에게 ‘여호와’라는 단어는 매우 친숙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4자음문자’(Tetragrammaton)라고 널리 알려진 히브리어 ’JHWH'(혹은 YHWH)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의 종살이를 끝내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처음으로 이 이름을 계시해 주셨다(출3:13-16; 6:2-8). 또한 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엄중히 명령하셨다(출20:7).

    흠정역 : 너는 주 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 주가 자신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명령을 매우 두렵게 생각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서 그분의 이름 ‘JHWH'를 대할 때마다 눈으로 그 이름을 확인하고 정작 읽을 때는 주를 의미하는 ’아도나이‘(Adonai)로 읽었다. 영어의 'Jehovah'는 히브리어 4자음문자 'JHWH'에 '아도나이'의 모음을 넣어 만든 'YaHoVaH' 혹은 'Yah-weh'를 음역한 것이며 「개역성경」의 ’여호와‘는 영어의 'Jehovah'를 음역한 것이다. 사실 대한성서공회 역시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구약의 마소라 본문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네 글자를 ‘주’(아도나이)라 표기했고 신약의 사도들이 신약을 기록할 때도 그 이름을 ‘주’(큐리오스)라고 기록했으며 루터의 독일어 성경도 이 이름을 ‘주’(헤르)로, 그리고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이 이름을 ‘주’(로드)라 번역했고 「개역성경」 신약도 이 거룩한 이름 네 글자를 ‘주’라고 번역했다(성서공회).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대한성서공회가 「개역성경」의 구약을 번역함에 있어 신약을 번역할 때와는 달리 주님의 거룩한 이름 ‘여호와’를 그대로 음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취하게 해 놓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마땅히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많은 성도들이 아무 때나 아무 의미 없이 취함으로써 그 이름의 위엄과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기도할 때 심각하게 나타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주요 원인은 「개역성경」의 구약이 영어 성경 중 유일하게 'JHWH'를 ‘주’(LORD, 전체 대문자)로 표기하지 않고 ‘여호와’로 표기한 「미국표준역」(ASV, 1901)에 근거하여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이 「미국표준역」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세계역」과 마찬가지로 웨스트코트와 호르트의 천주교 소수본문에서 나온 것으로 20세기 초반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들의 교리를 확증하기 위해 가장 선호하고 애용한 성경이다. 참고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자 그 이후에 나온 「신미국표준역」(NASB, 1971)은 급히 이를 수정하고 다시 원래의 성경 전통으로 돌아가 ‘여호와’ 대신 ‘주’(LORD)를 쓰고 있다.

    이 문제는 또한 교리적으로도 중요한 차이를 가져온다. 구약의 ‘주’(LORD)를 ‘여호와’로 표현하면 성경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주의 날’ 즉 재림에 관한 개념이 변하게 된다. 다시 말해 동일한 날을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날’로 하고 신약에서는 ‘주의 날’로 하면 그것들이 동일한 날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기록하면서 언급한 주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이다(롬10:13).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은 구약의 대언자 요엘이 기록한 말씀과 같으며(욜2:32) 이를 통해 바울은 신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구약의 주 여호와임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엘서의 ‘주의 이름’을 「개역성경」처럼 ‘여호와의 이름’이라고 하면 성경의 일관성이 깨지면서 성령님께서 요엘과 바울 두 사람의 기록을 통해 주의 깊게 의도하셨던 바를 독자들이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다행히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한 「표준새번역」이 「개역성경」과는 달리 전 세계 대부분의 성경처럼 바른 전통을 따라 구약에서 ‘JHWH'를 ’주‘로 옮긴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5. 루시퍼인가, 계명성인가?
    이사야 14장은 에스겔 28장과 함께 사탄 마귀의 정체와 타락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유일하게 사탄 마귀의 이름을 보여 주는 구절을 변개시켜 그 정체를 가리고 있다.

    개 역 :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사14:12)
    흠정역 :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루시퍼는 ‘빛을 나르는 자’를 뜻하며 고후11:14은 사탄을 가리켜 ‘빛의 천사’로 가장하는 자라고 말한다. 「개역성경」은 이렇게 사탄의 이름을 가리고는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그를 계명성 즉 새벽별이라 부르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새벽별이라고 하지 않는가?(계22:16) 현재 뉴에이지 추종자들은 바로 이 구절을 이용하여 사탄이 타락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타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개역성경」 역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며 성도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다. 사탄 마귀는 계시록12장에서 그 정체가 용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성경에는 용이 35회 등장하는데 「개역성경」은 이를 감추기 위해 여러 구절을 뱀(신32:33), 이리(욥30:29), 시랑(시44:19) 등으로 처리해버렸다.

    6. 천사인가, 사자인가?
    천사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존재이며 지금처럼 뉴에이지 사상이 득세할 때에는 특별히 천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천사는 성경에 295회 나오는데 「개역성경」은 이 중 177회를 천사로, 67회를 사자로 번역했다. 천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의 천사’(the angel of the LORD)인데 「개역성경」은 이를 다 사자로 번역했다. 구약의 ’주의 천사‘는 다른 천사와 달리 특별한 경우에만 나타나는 중요한 인물이며 성육신 이전의 예수님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이런 중요한 개념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으면 교리상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개역성경」은 마귀의 천사들 역시 사자들로 번역하여 마치 마귀에게는 그를 추종하는 천사들이 없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소위 ’배교의 결정판‘이라 하는 NIV 등도 주의 천사와 마귀의 천사들을 제대로 번역했다.

    개 역 :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마25:41)
    흠정역 :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뉴에이지는 아기천사, 여자천사 등을 가르치지만 성경의 천사는 모두 남자이며 아기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천사를 다루는 부분의 ‘man’ 혹은 ‘men’은 반드시 남자로 번역해야만 한다(창19:5).

    개 역 :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흠정역 : 네게 온 남자들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그들을 알리라.
    여기 나오는 남자들은 바로 천사들이며 소돔 사람들은 바로 이 남자들(천사들)과 성적 접촉을 갖고자 했던 것이다(유7의 낯선 육체). 그래서 영어에서는 동성연애를 ‘sodomy’, 동성연애자를 ‘sodomite’라 부른다.

    7. 마귀인가, 귀신인가?
    개역성경의 귀신은 어떤 존재인가? 원한을 품고 구천을 떠돌아다니는 할아버지 귀신, 할머니 귀신, 처녀 귀신인가?

    개 역 :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고전10:20)
    귀신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보면 무릎을 치지 않겠는가? 믿지 않은 사람들이 기일이 되면 상을 차려 놓고 조상귀신들을 불러오는 것이 참으로 이 구절과 잘 맞지 않는가! 과연 성경이 조상귀신을 가르친단 말인가?

    흠정역 : 그러나 내가 말하건대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희생물로 드리는 것들은 하나님께 희생물로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리나니


    「개역성경」이 ‘제사하는 것’이라 번역한 단어는 ‘sacrifice'인데 이 단어는 우리 조상들이 조상 귀신을 부르는 제사와는 전혀 다른 개념의 용어로 희생물을 드린다는 뜻이다. 그래서 구약의 소제, 화목제 등도 제사가 아니라 음식 헌물, 화평 헌물을 드린다고 해야 맞으며 모든 영어 성경이 ’burnt offering' 혹은 ‘burnt sacrifice'라 번역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조상들이 무지할 때에 조상신을 섬기려고 드린 제사와 성경에서의 희생 헌물을 드린다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성경은 죽은 자가 가는 곳이 천국 아니면 지옥이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구천이니 음부니 하는 허구의 장소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 준다(눅16 참조). 즉 죽은 사람의 넋인 귀신은 성경에 없다는 말이다. 많은 신(gods)이 있고 유일한 하나님(God)이 있으며, 많은 아들(sons)이 있고 유일한 아들(the Son)이 있으며, 많은 마귀(devils)가 있고 유일한 마귀(the devil)가 있다는 것이 바른 성경의 가르침이다.

    8. 살아 있는 혼인가, 살아 있는 영인가?
    사람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영, 혼, 몸으로 구성된 삼위일체이다(살전5:23).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구절이 창2:7인데 「개역성경」은 여기에서도 전 세계 모든 성경과 달리 특이하게 번역을 하여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개 역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흠정역 :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


    성경이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사람이 몸(흙)과 영(생명의 숨)이 합쳐진 혼이라는 것인데 「개역성경」은 이를 부인하며 그 결과 영이 없는 사람(창1장)이 있고 영이 있는 사람(창2장)이 있다는 이중 아담론을 확립해 주고 말았다. 사람이 산 영이면 죽지 않는데 그러면 도대체 무슨 부활이 필요하며 살려 주는 영이 필요하단 말인가?

    개 역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흠정역 :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성경에는 혼이라는 단어가 535회 나오는데 혼을 믿지 않는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은 히4:12같이 꼭 혼이 나와야만 말이 되는 구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혼을 영혼이나 자(者) 등으로 바꾸어버렸다.

    개 역 :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출12:15)
    흠정역 : 누룩 있는 빵을 먹는 혼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9. 짐승의 영인가, 혼인가?
    과연 성경은 짐승에 대하여 무어라 말하는가? 성도들의 믿음과 실행의 표준이요, 최종 권위인 성경 말씀을 살펴보자.

    개 역 :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1)
    흠정역 : 누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느냐?


    「개역성경」은 난외주에 여기의 ‘혼’은 히브리어로 ‘영’이라 못박고 있다. 도대체 히브리어가 영이면 본문에 영으로 해야지 왜 혼이라 했을까? 그 이유는 번역자들의 사상 때문이었다. 그들은 도저히 짐승에게도 영이 있음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래서 자기들의 사상대로 혼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 구절의 영은 히브리어 ‘루아흐’를 번역한 것으로 ‘루아흐’는 영, 바람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사람, 짐승과 관계가 있으므로 마땅히 영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전3:19에 있듯이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같이 숨을 가졌고 영을 가졌음을 분명히 보여 주며 노아의 대홍수 때에도 사람과 짐승 등 코에 생명의 숨을 가진 육체만 죽임을 당했고(창2:7; 6:17; 7:15; 7:22) 민22장에서는 발람의 나귀가 영을 가졌으므로 천사를 알아보고 말을 하는 일이 생겼다. 비록 짐승이 영은 가졌으나 천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는 상관없이 죽으면 그 영이 땅으로 내려간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10. 대언인가, 예언인가?
    성경 번역 시 중요 용어는 반드시 용어색인(concordance)이 되도록 일관성 있게 번역해야 성도들이 성경을 성경으로 풀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성도들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스트롱이나 영이 만든 용어색인이 있어 제대로 성경을 공부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어떤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살펴보려면 용어색인을 이용하여 그 단어의 용례를 처음부터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불행히 「개역성경」은 이러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예로 ‘prophecy’ 혹은 ‘prophet’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이 단어들은 성경에 500회 이상 나오며 성경 기록 그 자체와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대 영어사전을 살펴보면 이 단어의 주된 의미가 ‘예언하다’이므로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은 이것들을 앞날을 예견하는 ‘예언’, ‘선지자’ 등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남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대언’(代言)이며 성경의 용례 역시 전적으로 이를 가리킨다. 그래서 심지어 「개역성경」도 출7:1, 겔37:4, 계19:10 등 열 구절에서는 부득이 대언으로 바르게 번역했다.

    개 역 :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출7:1)
    개 역 :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37:4)


    성경은 분명히 성경기록 그 자체가 대언임을 보여 주지만 「개역성경」으로는 도저히 이를 알 길이 없다.

    개 역 :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


    여기의 예언 역시 앞날을 예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대언으로 주신 말씀을 뜻한다. 앞 뒤 문맥이 분명하지 않은가?

    흠정역 :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
    이처럼 중요한 단어를 선지자니 예언 등으로 번역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 내에서도 고린도 교회의 은사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여 많은 교인들이 입시, 입사, 이사 때마다 예언기도 받으러 기도원의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신약시대에도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사용하셔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그것은 대언의 말씀이지 결코 예언의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고전12-14장의 대언, 대언자를 다 예언, 선지자로 번역하여 기복무속신앙을 부추기고 있다. 구약 대언자들의 말씀 중 여러 부분이 미래를 다루므로 대언에 예언의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언이라는 말은 이미 그 의미도 다 포함하고 있다.

    11. 왕국인가, 천국인가?
    한 국가의 통치제도는 누가 그 권력을 행사하는가에 따라 변하게 된다. 다시 말해 백성들 개개인이 통치 권력을 행사하면 민주국이 되고 왕이 홀로 통치하면 왕국이 된다. 그러면 성경 속의 하나님의 통치 체제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람들처럼 여러 사람의 뜻을 물어 민주적으로 통치하실까? 아니면 홀로 주권을 행사하시며 자신의 뜻대로 통치하실까?

    신구약 성경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왕국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엡1:6; 12; 14). 그래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개념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도 동방에서 온 지혜자들이 “유대인들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으며(마2:2) 그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도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신 것이다(마4:17).

    그런데 이 중요한 구절을 「개역성경」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번역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는 천국은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인데 과연 그 당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제 너희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가 되었다.”고 선포하신 것일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흠정역 :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개 역 :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사실 「개역성경」으로는 이 구절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개역성경」이 '나라'로 번역한 그리스어 ‘바실레이아’는 왕국이며 여기서 예수님이 의도하신 왕국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문자 그대로 실제로 땅에 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왕국 즉 하늘의 왕국인 것이다(마4:17; 단2:14).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왕국을 유대인들에게 제시하신 것이며 결코 천국을 제시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왕국을 의도적으로 거부했고(마23:37-39) 이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전해진 것이다(롬11:30-31).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선포될 복음도 천국 복음이 아니고 바로 이 왕국의 복음이며(마24:14)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던 것도 바로 이 왕국의 회복이었다.

    흠정역 :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행1:6)
    개 역 :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 구절을 또 다시 오역하여 그 의미를 완전히 가려 버렸다.

    한글 성경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경에서 왕국으로 번역된 'kingdom'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모두 342회 나오며 원래는 왕권을 의미했으나 후에는 주로 왕이 다스리는 통치 체제 즉 왕국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런 중요한 단어를 ‘나라’나 ‘천국’ 등으로 일관성 없게 번역했으므로 「개역성경」으로는 성경의 핵심 주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인본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악용하여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개 역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
    그런데 여기의 너희는 누구인가? 바로 이것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한 바리새인들이 아닌가? 그러면 예수님께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저주까지 하신 바리새인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단 말인가? 여기 나오는 나라 역시 왕국이다. 이것을 왕국으로 번역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으며 따라서 문맥에 전혀 맞지 않는 영적 해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국이 성립되려면 무엇보다도 왕이 있어야 하며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내가 왕으로 너희 가운데 와서 거하니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왕국’(kingdom)을 '천국'(heaven) 혹은 ‘나라’(country)로 바꾸는 것은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를 완전히 가려 버리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12. 성경에 오류가 있는가, 없는가?
    성경은 사람의 책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영감으로 기록하신 책이므로 모순이 없다. 만일 그 안에 모순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위태롭게 된다(막1:2-3 참조).

    개 역 :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이 구절은 말3:1과 사40:3에 있는 말씀을 마가가 인용한 것이다. 그런데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는 구절은 이사야의 글이 아니고 말라기의 글이며 따라서 이것을 대언자 이사야의 글이라고 하면 성경에 오류가 생기게 된다. 「흠정역성경」은 정확하게 ‘대언자들의 글에’라고 기록하고 있다.

    13. 신약시대에 성직자 계급이 있는가, 없는가?
    구약과 신약시대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신약시대에는 더 이상 성직자 계급이 없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priest)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했으나 주 예수님께서 한 번 완전한 희생을 드린 이후에는 더 이상 중간 중재자가 필요 없고 신자 모두가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만인 제사장).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런 사실을 가리려 하고 있다.

    개 역 :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2:15)
    흠정역 :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으니 내가 그것을 미워하노라.


    그리스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여기 나오는 니골라당은 '성도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로서 구약시대의 제사장(priest)처럼 성도들을 통치하려는 자들이다. 신약 교회가 생기자마자 이런 무리가 생겼으며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런 자들의 교리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천주교는 아직도 구약시대의 종교로 남아 자기들의 성직자를 'priest' 즉 제사장이라 부르고 있고 성직자 계급주의를 철저히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런 체제를 유지하려면 결국 이처럼 중요한 구절을 삭제해야만 한다. 성도들은 결코 천주교 사제를 신부(神父)라 부르면 안 된다. 이는 곧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성경이 금하는 것이다(삿17:10; 마23:9). 그런데 목사(pastor)들이 천주교 사제처럼 행세하려고 로만 칼라 의복을 입고 긴 옷 입기를 좋아하며 심지어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세습을 시도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이들을 향해 우리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것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

    14. 하늘들인가, 하늘인가?
    우리말에서는 하늘의 복수형인 하늘들 같은 표현을 잘 쓰지 않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복수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개 역 :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2:1)
    흠정역 : 이같이 하늘들과 땅과 그것들의 모든 군대가 완성되니라.


    「개역성경」은 참으로 간결해 보이지만 그 내용은 부실하다. 이런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임을 보여 주시기 위해 복수를 쓰신 것이다. 고후12:2를 보면 성경에는 최소한 첫째, 둘째 셋째 하늘이 있으며 다른 영어 역본들도 이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이런 신학을 무시한 채 대부분의 중요 복수 단어를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 「개역성경」의 간결성은 성경의 정확성을 희생하면서 얻은 결과이다. 성경이 이처럼 부실하니 그 부실한 기초 위에서 부실한 기독교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15. 지옥인가, 음부인가?
    마귀는 지옥을 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 믿지 않으면 음부에 갑니다.” 혹은 “스올에 갑니다.”하면 알아들을 사람이 있겠는가?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죽어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과 지옥으로 갔으며(눅16:19-31, 이 구절의 음부도 음부가 아니고 지옥임)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낙원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 즉 천국으로 옮겨졌으나(엡4:8-10; 고후12:2-4; 고후5:8; 히11:40) 지옥은 여전히 지옥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죽은 사람은 곧장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지옥은 성경에 54회 나오는데 「개역성경」은 이 중에 구약에 나오는 31번의 지옥을 모두 스올로 번역했고 신약에서도 13번만 지옥으로 번역하고 나머지는 음부로 번역했다. 그렇다면 스올 혹은 음부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말 큰사전」은 음부는 저승인데 저승은 죽은 혼령이 가서 사는 세상으로 구천, 유명이라고 말한다. 즉 「개역성경」은 토착화 신앙을 위해 불교 용어를 쓴 것이다.

    개 역 :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잠15:11)
    개 역 :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잠27:20)


    이런 이교도 사상이 「개역성경」에 그대로 반영되어 교리와 신학에 참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 「흠정역성경」은 정확하게 ‘지옥과 멸망’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개역성경」의 번역자들은 이에서 그치지 않고 지옥의 실상을 성경에서 제거해 버렸다(막9:44,46 ‘없음’ 처리)

    흠정역 :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16. 믿음인가, 행위인가?
    만일 사람이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다면 기독교나 다른 종교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행위로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친다(롬3:23). 그런데 「개역성경」은 천주교 사본에 근거하였기에 자꾸 행위로 어렵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개 역 :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막10:24)


    그러나 바른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흠정역 : 얘들아, 재물을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심히 어렵도다!


    믿는 이들의 구원은 한순간에 일어나는가? 평생의 과정인가?

    개 역 :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흠정역 :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새로 태어난 신자들이 먹어야 할 순수한 젖이 무엇인가? 「흠정역성경」은 그 젖이 바로 성경 말씀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 사실을 고의로 숨기고 구원으로 자라나야 한다고 말함으로 천주교의 평생 행위 구원론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종교 체제 하에서는 사람이 평생토록 죄의 종이 되어 사제의 말에 순종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개 역 :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요3:36)
    흠정역 :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개역성경」은 조상들의 은덕으로 자손들이 천대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출20:6 참조)

    개 역 :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흠정역 : 내 명령들을 지키는 수천의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푸느니라.
    수천 세대라는 것은 원문에도 없고 알렉산드리아 서기관들이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첨가한 것이다. 앞 뒤 문맥과 성경의 구원 및 은혜관이 무엇을 지지하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믿기는 믿되 헛것이나 이방신을 믿으면 허사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이런 것을 약화시킨다.

    개 역 :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
    흠정역 : 나를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을 가졌느니라


    천주교 사제의 권위는 고해성사에 달려 있는데 「개역성경」은 개악된 본문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죄를 고백하라는 천주교 교리를 또 지지해 주고 있다.

    개 역 :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약5:16)
    흠정역 :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이런 비교를 통해 독자께서는 분명히 「개역성경」과 「킹제임스흠정역성경」과는 명백히 많은 차이가 있고 이런 본문 차이에 의해 성경의 기본 교리들이 불가피하게 바뀌게 됨을 보았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가? 이제는 성경 보존 문제에 관한 오랜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온전하신 말씀을 보존하고 그 말씀을 선포하여 영혼을 구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모든 단어를 기록하시고 모든 단어를 보존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다.

    오 주여, 이 땅에 바른 성경이 자리를 잡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 ?
    dschoiword 2017.02.11 01:53

    킹 제임스판 성경만 읽어야 하는가?


    서철원 교수


    지금 한국교회에서 시비되는 중요한 논의 중 하나는 흠정영역 곧 킹 제임스번역성경이 가장 완벽한 성경으로 모든 계시의 내용을 다 담고 있어서 이 성경대로 믿어야만 완전한 신앙생활을 할수 있다는 시비다.

    더욱이 “개역 판은 심히 부패되었으므로 개역성경은 교리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하는 심히 황당하고 억지스런 주장을 제기하여 한국교회에 혼란을 많이 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이런 무식한 자들의 주장을 정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1611년 흠정역 번역자들이 이용한 사본의 편찬을 생각해보자. 15세기 문예부흥이 일어나므로 교회의 권위에서 벗어나서 원천에로 돌아가서 고전 본래의 가르침이 어떠했는지 살펴보기 바랐다. 그래서 16세기 최대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가 당시 알려진 6개의 사본들로 편집해서 1514년 헬라어 신약성경을 편찬하여 1515년 출간하였다.

    이렇게 편집된 헬라어 신약성경은 계시록 부분에서 6개의 절이 없으므로 라틴어 역인 불가타에서 헬라어로 번역하여 보충하였다. 또 사도행전 9:6절의 경우도 에라스무스는 라틴어 성경에서 번역하여 헬라어 성경을 보충하였다.

    이렇게 하여 최초로 헬라어 성경이 출판되었다. 이 헬라어 신약성경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호응이 좋아 1516년과 1519년 사이에 3, 300권이 유럽에 팔렸다. 반면 적대감도 강하였다. 캠브릿지와 옥스퍼드 대학은 에라스무스의 성경을 읽지 못하게 금하였다. 또 에라스무스의 가지고 있던 사본에는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이 없었다.

    또한, 참고했던 사본에는 요한의 콤마라고 불리는 요한일서 5:7절이 존재하지 않아 많은 공격을 받은후 사본 하나가 발견되면 추가한다는 약속에 의해 요한의 콤마를 삽입하였다. 그리고 3판 4판을 낼 때, 콤풀루툼 본문에 근거해서 에라스무스는 90여 곳을 고쳤다. 이 성경본이 판을 거듭할수록 더 고쳤지만 대중판으로 보급되어서 수납된 본문 혹은 전승본 또는 공인본문(Textus Receptus)으로 알려지게되었다.

    이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에서 1611년 영국의 킹 제임스 번역본이 나왔다. 이 전승본의 제 2판에서 루터의 독일어 번역본이 나왔다. 종교개혁 교회의 대부분의 번역본도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나왔다. 16세기 중반에 로베르 에스티엔느 (Robert Estienne, 라틴어형으로 Stephanus)는 헬라어 성경 3판을 내면서 14개의 헬라어 사본과 콤플루툼 다국어역에서 인용하고 베자 사본에서도 인용하여 난외에 실었고, 또 비평장치들을 난외에 실었다.

    이 판본이 영국에서 권위본이 되었다. 그후 베자 (Beza)와 엘제비르 형제 (Elzevirs)도 전승본을 출판하므로 표준본 혹은 권위본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후에는 초기 고대 사본들을 선호해서 전승본의 일부분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밀(Mill)은 거의 3만개의 다른 독본들을 발견하였고 에드워드 웰스 (Edward Wells)는 엘제비르 편찬 성경본문에서 210곳을 버려 고대 사본들에 근거한 완전한 신약성경을 편집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리챠드 벤틀리 (Richard Bentley)는 전승본의 40곳 이상을 버렸다.

    그리고 4세기 이전(380 AD 이전)의 사본들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다니엘 메이스(Daniel Mace)는 다양한 독법들이 전승본보다 우월하다고 하여 전승본을 버렸다.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Johannes Albrecht Bengel)은 신약성경에 3만 곳 이상 다른 독법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랬다. 그 후 에드워드 하우드 (Edward Harwood)는 전승본의 70% 정도는 버렸다.

    그러나 본격적인 사본 편집과 대조 작업은 요한 그리스바흐(Johannes Griesbach)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전승본의 기본이 된 비잔틴 판본들이 후기 (12세기 이후) 것이고 많이 부패했으므로 고대 사본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바흐는 전승본을 버리기로 하였다.

    그후 칼 라흐만 (Karl Lachmann)은 원본을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380년 이전의 기독교 사본들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고대 사본 발굴과 편집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19세기 프리드리히 폰 티센도르프 (Friedrich Tischendorf)이다.

    그는 신약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을 찾으므로 신약의 원본을 찾기로 하였다. 그는 시내산 수도원에서 불쏘시개로 없어지게 된 시내산 사본 (codex Sinaiticus)을 발견하였다. 또 그는 많은 헬라어 성경의 사본들과 편집을 출판하였다. 그의 목표는 신약성경의 원형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내산 사본의 증거에 더 무게를 두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사무엘 트레겔레스(Samuel Tregelles)는 영국교회로 하여금 전승본에 대한 편애에서 돌이키게 하였다. 그는 최초의 사본들의 증거에 의해서 최종적인 판본을 내기 바랐다. 19세기 후반 브루크 웨스콧 (Brooke Westcott)과 죤 호르트 (John Hort)는 원 헬라어 신약을 출판하였다.

    그 다음 단계로 두 사람은 여러 사본들의 서로의 관계를 검증하였다. 사본들을 모아서 발생관계에서 생각하였다. 부패된 본문을 믿을 만하게 회복하는 것은 본문들의 역사에 근거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비잔틴 사본들은 비잔틴 제국에 널리 퍼져있지만 원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있다는 사실이었다. 전승본이 비잔틴 사본들 곧 시리아 본문의 가장 늦은 형태이라는 것을 확증하였다.

    또 웨스콧과 호르트가 분리해낸 사본들 중에서 서방 유형을 골라냈는데 그 사본들은 극히 초기의 사본들이어서 2세기 중반 이전에 기원한 것으로 확증하였다. 이 증거들이 말키온과 타치안과 유스틴, 이레네이우스 힙폴리투스 텔툴리안과 치프리안 등이 사용한 것을 증명하였다.

    웨스트콧트와 호르트는 시리아 본문 곧 비잔틴 사본들은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다 제거해서 유창함과 완벽함을 추구한 것임을 밝혔다. 새로운 생략은 드물지만 새롭게 삽입한 것들이 많아서 완벽한 본문이 되었다고 하였다.

    웨스트콧트와 호르트는 시내산 사본과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이 원본에 가장 가깝다고 보았다. 이 두 본문들이 서로 합치하는 것이 강하여 원본에 가장 가깝다고 보았다. 그래서 두 사본의 독법을 참된 독법으로 받아야한다고 보았다. 그 반대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 한 그러하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두 사본의 독법은 결코 배척하면 안 된다고 보았다.

    웨스트콧트와 호르트는 비잔틴 사본의 본문이 다른 그룹의 사본의 본문보다 더 후기의 것으로서 다른 사본들과 융합된 독법을 드러냈음을 증명하였다. 또 어떤 니카야 공회의 이전 교부도 비잔틴 사본을 인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다른 사본들과 대조해서 읽으면 이 비잔틴 사본이 원본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다 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웨스트콧트와 호르트의 시리아 사본 곧 비잔틴 사본 비평은 교회지도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그들이 작성한 신약성경의 본문의 비판적 작성은 새로운 세기를 여는 작품이었다. 그들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순수한 사본들을 제시하였다.

    이 후에는 대형 신약성경에서 소형 보급형으로 바뀌었다. 에벌하르트 네슬(Eberhard Nestle)이 티센도르프의 신약본문과 웨스트콧트와 호르트의 신약성경 또 바이스(Bernhard Weiss)의 신약성경을 대조해서 만든 신약성경이 포켓판으로 정착되었다. 여기에 신약본문 사본들에 대한 정보를 실었다.

    그 후에는 에르빈 네슬(Erwin Nestle)판 신약성경의 포켓판과 또 네슬 알란트(Kurt Aland)와 공동 편찬한 네슬- 알란트 신약성경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높은 정확도로 신약본문들의 정보를 대량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1966년에는 국제위원회가 십여년 일하여 다섯 개의 성서공회가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하여 학생들과 성경번역자들이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이 신약성경판은 1440개의 다른 사본적 독법을 수록하였다.

    1514년 처음 헬라어성경이 출판된 이래 20세기까지 천여 출판본이 나왔다. 지금은 거듭 수정 증보된 네슬-알란트 판이 학자들 사이에 두루 사용되고 있다. 1514년 첫 헬라어신약성경이 나온 이래 사본들이 꾸준히 연구되어 거의 첫 원본에 가까운 헬라어성경이 나왔다.

    400년에 걸친 사본들의 대조와 편집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흠정영역의 원본이 된 에라스무스의 편집 신약성경은 비잔틴 사본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잔틴 사본들은 후기 사본들이고 삽입과 추가가 많아 부패된 판본으로 밝혀졌다.

    그러므로 킹 제임스 성경의 원본인 전승본(Textus Receptus)만이 유일한 정확 무오한 사본에 근거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리고 400년간의 사본 연구로도 신약의 첫 원본은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사본들의 내용이 97%가 첫 원본과 일치하는 것으로 추정 판정하고 있다. 그럼 킹제임스성경에 들어있는 13곳의 내용은 필사자들의 추가였다고 보아야한다.

    서철원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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