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례요한의 고향 마을의 고대 정결의식용 미끄베 ⓒHaaretz
세례대인가 침례탕인가?
유대인의 정결예식은 세례 형식이었을까, 침례 형식으로 행해졌을까? 기독교의 세례와 유대교의 정결의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대인은 미끄베라는 곳에서 정결의식을 행했다.
예루살렘 성 부근의 어느 대학교 안에는 미끄베라고 불리는 구약시대의 정결의식 용 ‘세례대’가 있다. 필자가 잠시 공부를 했던 학교 구내에 있다. 예배자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정결하게 몸을 씻는 곳이었다. 고대 성전 규례에 따르면, 부정한 일을 행한 자와 여인의 경우 월경 뒤 또는 출산 뒤 남편과 관계를 가지기 전에 미끄베에서 반드시 몸을 씻어야 했다.
미끄베는 구약시대의 정결예식과 신약시대의 기독교 세례 형태(mode of baptism) 연구에 도움을 주는 귀중한 고고학적인 유물이다.
미끄베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배수구(drainer)가 없는 점이다. 상당량의 물이 아래 부분에 고여 있다. 정결의식을 거행할 때마다 그곳에 물을 채워 온 몸이 물에 잠기는 형태의 정결의식 곧 '침례' 형태로 했을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끄베는 많은 물을 가져와 채우고 또 사용한 물을 퍼내는 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정결의식을 하는 곳이 아니다. 사막지대인 그곳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물이 없다. 빗물을 모아 일 년 동안 사용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 상태에서 많은 물과 여러 사람이 동원되어야 하는 침례 형식의 정결예식은 상상할 수 없다. 예루살렘은 사막지역이며, 물은 곧 생명이다.
미끄베는 온 몸이 물속에 들어가는 ‘침례탕’과 같은 욕조가 아닌 듯하다. 예루살렘 성 거주자들은 겨울철 곧 우기에 빗물이 커다란 물 저장고에 흘러들어 모이게 하여 그것을 한 해 동안 내내 사용했다. 미끄베들은 생수 샘물이 아니다. 빗물 저장고이다.
미끄베는 그 공간 안에서 소량의 물로 온 몸을 아주 간단히 씻는 형태의 정결예식용 세례대로 추정된다. 필자가 군사훈련을 받을 때 특수한 상황에서 옆구리에 찬 작은 물통의 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씻었던 적이 있다. 유태인들은 작은 물그릇을 사용하여, 이런 방식으로 미끄베에서 정결의식을 행한 것으로 보인다.
1940년대에는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성 요한 수도원 구내에서 정결례용 미끄베를 발견했다. 마사다에도 작은 규모의 미끄베가 있다.
최근, 약 20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미끄베가 예루살렘 근교 에인 케렘(또는 에인 카렘)에서 발견되었다. 미끄베와 계단은 모두 큰 기반암을 깎아내어 만든 것이다. 크기는 길이 3.5m, 넓이 2.4m, 깊이 1.8m이다. 미끄베 주변은 할라카에 명시된 정결규례를 따라 꼼꼼하게 회를 바른 흔적이 있다. 물이 고여 있는 그 안에서 주전 1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도기가 발견되었다. 주후 66-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멸망 당시 대 화재 사건 때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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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 카렘은 예로부터 유다 족속의 도시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베들레헴과 매우 가깝다. 세례요한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다. 십자군 시대에 만들어진 성 요한 교회당이 있다.
세례요한의 고향으로 알려진 이 마을은 구약시대의 벳하케렘(렘 6:1)으로 추정된다. 성경 누가복음 2장 39절 이하의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대화와 관련된 장소이다. 이 마을의 우물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난 곳으로 추정된다. 마리아가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한 뒤 세례요한의 어머니이며 친척인 엘리사벳을 찾아가 석 달간 머물며 쉬던 곳이다.
이 마을의 우물은 예수나 세례요한이 살았던 시대 곧 제2성전(헤롯 성전) 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마리아가 이 지역에 여러 달 머물면서 엘리사벳과 이용했을 것이다.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서로를 축복한 곳이 분명하다면, 세례요한의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와 그 가족이 사용했을 수도 있다.
미끄베 소유자 오리아 심쇼니 씨 가족은 몇 해 전에 집을 수리하다가 이것을 발견했다. 정부에 신고하면 재산상의 불이익을 당할까봐 주저하다가 최근에 공개했다 이스라엘 사적국은 이 가족에게 착한 시민 증서를 수여했다. 정부는 미끄베를 장차 관광 목적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신약시대의 세례는 대부분 잠수 개념의 침례가 아니라 적은 물로 온 몸을 씻고 머리에 약간의 믈을 붓는 형식의 세례로 시행되었다고 판단된다. 예루살렘 지역에는 하루에 3천 명이 '침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미끄베가 여기저기 널려 있지도 않다. 공중목욕탕이 없다. 시온성 아래의 실로암 연못은 약간의 물이 생수 샘에서 흘러나오는 곳이다. 예루살렘 성 주민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식수원이므로, 여기서 침례의식을 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필자는 1980년대에 세례 양식에 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 현지에서는 고고학 탐사를 했다. 유태인의 정결의식용 미끄베, 사도행전에 나오는 구스내시가 필립에게 세례를 받은 곳, 세례요한이 '물들이 많다'는 이유로 찾아가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 애논, 네게브사막의 노바투스교회당의 세례대(baptistry), 두라 유롭푸스의 교회당 세례대(현 예일대학교 예술박물관), 초대교회 시대에 만들어진 이곳저곳에 있는 세례대, 세례를 시행하는 모양이 그려진 이곳저곳 교회당의 벽화, 교회당 모자이크, 초기 카타콤 벽화의 ‘유아세례,’ 그리스도의 세례, <12사도들의 교훈집>을 포함한 고문서들을 가지고 세례의 형태를 탐사 연구했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초기 기독교공동체의 세례가 적은 물로 몸을 씻고, 머리에 소량의 물을 붓는 양식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잠수나 침수 형식의 의식이 아니라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죄를 정결하게 씻음을 상징하는 형태의 성례로 추정된다. 기독교의 세례와 유대인 정결의식이 관련이 있음은 거의 확실하다.
기독교 입교 과정에서 시행하는 ‘뱁티조’는 ‘침례’가 아니라 ‘세례’라고 일컬음이 한국어 용례에 알맞은 것으로 보인다.
최덕성
(이스라엘 고고학 전문가에게 부탁한다. 이견은 아래에 댓글로 알려주기 바란다).
최덕성은 신학자이다.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쓰기>,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정통신학과 경건>, <신학충돌>, <교황신드롬>, <KOREAN CHRISTIANITY> 등 약 20권을 저술했다. 고신대학교-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였다. 미국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를 졸업했다.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1997-1998)였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로부터 '신학자대상'(2001)을 수상했다. 현재 브니엘신학교 총장이며 교의학 석좌교수(201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