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웰 쿠친스키(Pawel Kuczynski, 폴란드) 작품
'동굴 우상의 노예'를 연상시킨다
고려신학대학원의 위험한 관행
충돌
학교법인 고려학원 산하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원장 임명을 둘러 싼 갈등이 단순히 끝날 것 같지 않다. 교수의 본분은 가르치고 연구하고 저술하는 일이다. 신학교수는 교회의 교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 적용하고 교회에 모범을 보이며 덕을 끼치는 자이다. 총회가 맡긴 목사후보생 양성에 전념한다. 그러나 이 학교의 다수 교수들은 집단 이기주의적 정치 행보에 열성을 쏟고 있고, 원장직 쟁취를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는 듯 비춰진다.
교수들의 주장
교수들의 주장의 핵심은 자신들이 추천한 교수를 이사회가 원장으로 임명하라는 것이다. 이사회가 교수회 또는 교수들을 섬기라고 한다. 섬김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막 10:45)을 법적인 사안인 이사회의 권한 행사에, 고용주와 피고인의 관계에 적용한다.
최근, 교수들은 “교수회” 이름으로 발표한 입장문(기독교보, 2015.3.14.)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이 이사회에 있다고 한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이사회가 나서서 갈등을 부추긴다”고 규탄한다. 자신들이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현재의 원장 선임 구조를 그대로 방치하지 말고… 지혜롭게 조정하라”고 한다. 단수 추천이든지, 복수 추천이든지, 자신들에게 원장 추천권을 달라, 이를 보장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사회의 주장
한편, 이사회는 교수들의 집단 행보가 항명(抗命)이며, 윤리에 저촉된다는 요지의 입장문을 발표했다(기독교보, 2015.3.7.). 교수들이 언론매체에 실은 글이 불경스럽다고 지적한다. “‘기도해보니 자신이 원장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교수, 원장에 선출되지 않자 ‘얄궂은 하나님! 복장 터지게 하는 하나님! 하나님께 삿대질하며 한바탕 항의라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교수들―실로 놀랍다”고 한다. “합법적인 결정에 집단 행동하는 것은 양식 있는 교수들의 할 행위가 아니다”라고 한다. 이사장과 이사들은 신학교수들이 교회의 교사답지 않으며, 함량미달이며, 윤리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반응
위 사건과 관련하여 고신교회 관련 언론매체들은 교수들 편에 기운다. 어느 목회자는 “싸움을 그치고 모든 모함, 모든 억울함을 짊어지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도록 하자”고 호소한다. 사태가 세상 법정으로 비화, 악화될까봐 걱정한다. 복수 추천을 하도록 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고신계 두 개의 인터넷 언론들의 보도문, 기고문, 논평, 사설은 이구동성으로 교수들을 동정하고 이사회를 규탄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나는 대중 여론은 이와 다르다. 위 언론들이 정치적 파당성을 따라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관행의 기원
교수들은 자신들이 원장을 추천하고 이사회가 형식적으로 임명을 해온 그동안의 ‘관행’에 호소하고 있다. 이 오랜 관행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며, 전통으로 고착시킬 좋은 관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필자는 이 학교의 원장을 추천하는 관행의 기원을 잘 알고 있다. 다수 교수들의 주장이 터무니없으며, 위험한 발상이며, 단호한 교정이 필요하다.
고려신학교가 출범한지 어언 70년이 가깝다. 교수들이 원장을 추천하는 관행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관행은 덕스럽지 않은 정치적, 신학적, 인본주의적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일부 교수들이 사사로이 무리지어 신학적 변질을 편드는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 데서 출발했다.
2005년에, 필자는 교수들의 원장을 추천하는 방식을 강하게 반대하고 부당함을 여러 번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고신 총회는 모 교수를 자유주의 신학자로 단정하고 교수직 해임을 총회에 요청하고 강의배정 중지를 학교에 요청했다. 그리고 교수들은 총회의 결정에 따라 신학사상을 검증받고 있었다. 그러자 이 신학적 변질 흐름에 관련된 교수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과 ‘패거리 행보’에 유리한 인물을 원장으로 추천하고, 추대되도록 애써 왔다.
까닭
당시 필자가 교수들의 원장 추천을 반대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본주의적이며 세속주의적이다. 신학교수들의 패거리 집단화를 부추긴다. 성경이 금하는 파당행위의 수단이다. 신학교수 어느 누구도 타락한 인성과 시기, 질투, 파당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둘째, 하나님의 주권 신앙에 상반된다. 성령의 인도에 조용히 순종하는 신학자다운 자세가 아니다. 셋째, 고신총회와 고려신학대학원의 신학적 변질을 가속화시킨다. 집단 이기주의 패거리 집단화는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위협한다. 넷째, 개혁신학 전통이 강조하는 ‘질서와 품위’(고전 14:40) 유지 교훈에 역행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은 일반 교육기관이 아니다. 신실한 신학교수는 가르치고 연구하고 저술하는 일에 전념한다. 감투나 직책을 탐하지 않는다. 교수들이 원장 선임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까닭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소중하게 여기고 이에 민감해야 할 학자들이 신학적 변질을 보장받는 제도 고착에 연연하는 점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자를 추천하여 이사회에 임명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신앙에 부합하지 않는다. 개혁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답지 않은 태도이다.
신학교수도 타락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다. 원장 직을 맡고자 하는 사람과 특정인을 원장으로 세워서 어떤 유익을 얻거나 신학적 지지를 받으려는 마음을 가지면 파당을 짓게 마련이다. 동료 교수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많은 표를 얻으려고 인본적이고 세속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권력 탐심에 사로잡히면 신학 정체성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자기를 반대하는 자나 자기와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소수 교수들을 왕따 시키고 궁지에 몰아붙일 수 있다.
악습
고려신학대학원의 행정은 조만간 정상화될 것이지만, 이 시점에 우리 공동체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원장 추천 관행은 악습(惡習)이다. 즉각 폐기해야 할 관습이다. 교수들의 원장 추천과 이사회의 요식적인 인준은 교회에 극단적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관행이다. 고신교회의 신학을 변질시키고 결과적으로 교회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 이 관행은 그것이 시작될 무렵부터 고려신학대학원의 갈등을 자아냈고, 현재의 갈등을 몰고 왔고, 이런 저런 형태로 고신 공동체 분열에 이바지하고 있다.
역사의 교훈
1920년대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의 좌경화를 이끈 교장 스티븐슨은 신학교 교장이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 역사적 인물이다. 그는 신학이나 교리보다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진리보다 현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교장직에 취임하면서 프린스턴의 정통신학 유산은 급속도로 허물어졌다. 역사적 성경관, 칼빈주의 교리체계, 개혁주의 신학, 복음에 대한 열정, 복음전도활동이 공격을 당했다.
프린스턴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 사이에 갈등이 치열해지자, 총회는 정치적 패거리 행보에 익숙한 교장 스티븐슨의 손을 들어주었다. 승리를 쟁취한 그는 총회 석상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땡큐”를 연발했다. 메이첸은 이 총회를 일컬어 장로교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모임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신학교는 좌경화되었고, 그 결과로 미국북장로교회는 생명력을 상실했다. 반세기가 지난 즈음에 이르러 교인 수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동성애자를 목사로 안수하며, 동성애를 용인하는 종교집단이 되었다. 이 주제는 필자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2005)이 상론한다.
고려신학대학원의 다수 교수들의 최근 모습은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하던 1930년대의 프린스턴신학교 교수들의 패거리 정치 행보와 비슷하다. 미국 북장로교회와 한국 고신교회, 프린스턴신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에 발생한 사건의 중심에는 모두 ① 자유주의 신학, ② 신학적 변질, ③ 교장―원장직이 자리 잡고 있다. 장소와 시대가 다를 뿐 양상은 흡사하다.
여우
신학교수들의 원장 추천 관행을 유지하고, 복수든 단수든, 추천권을 허락하거나 보장해 주면, 고신교회는 미국의 경우처럼 신학적 변질과 자유주의 신학을 향한 변질을 막을 수 없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교수들이 무리 지어 원장을 추천하고 이사회가 형식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요구대로 임명하는 식의 원장 선임 방식은 교회의 자유주의 신학화를 조장하고, 생명력 상실을 방임하는 것이다.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울타리를 스스로 허무는 것과 같다. 마지막 안전 장치를 스스로 제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교수서약서
원장 추천 관행이 본격화 될 무렵인 2005년경, 고신 총회로부터 자유주의 신학자로 규정된 고려신학대학원의 모 교수는 성경이 전설-민담 엮음이며, 바울서신이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말씀이 아니라고 했다. 자유주의 신학의 특징인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그 당시 위 신학자를 추종하던 교수들은 총회 석상에 유인물을 만들어 배부하고 또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그의 사상은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다"고 강변했다. 이번 항명 사건에 주도적 역할을 한 교수들은 총회 석상에서 이같은 발언을 한 바로 그 사람과 그 무리들이다. 신학적 좌경화 흐름을 옹호하던 교수들은 이번에도 원장의 동의 없이 무리를 지어 간담회를 하고 이사회에 대하여 신임 원장 임명 취소를 요구하고, 신임 원장에게 원장직 고사(固辭)를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필자는 이 학교 안에 정치적 파당 행태가 성행하고, 자유주의 신학 물결이 고신 공동체를 휘몰아치고 있을 그 무렵, 고신교회의 신학적 변질을 막을 의도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서약서” 제도를 권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개혁신학과 창의적 목회>, 2006). 서약 내용은 고려신학교의 첫 교수로 취임한 박형룡, 박윤선, 한부선 교수가 서약한 것과 거의 같았다. 현재 총신대학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가 신임교수에게 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교수서약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구약과 신약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실천의 유일의 규칙이라고 믿는다, 성경 무오성, 완전 영감성, 유기적 영감성을 인정하며 가르친다. “저술, 강의, 설교, 기타 활동에서 성경과 정통신학에 위배되는 사상을 담거나 가르치지 않을 것이며, 성경관과 교리체계와 장로회 원리에 상반되거나 어긋나는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암시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며, 넌지시 말하거나 묘한 관심을 갖도록 하지 않으며, 냉소적으로 소개하거나 언급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그리고 “이에 위배되는 사상을 가질 경우 의중유보(意中留保)하지 않을 것이며, 해직 정직 등 어떤 처벌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한다” 등이다.
고신 총회 직전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고신 총회 임원회는 “교수서약서” 시행 안을 총회에 상정했다. 총회는 이를 시행하기로 결정하고 이사회에 시행을 명했다. 이사회는 총장에게 보내어 시행하게 했다. 총회가 고려신학대학원의 신학적 변절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장치를 결의하여 이사회에 하달하고, 이사회가 이를 총장에게 보낸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문서는 이 시점에 행방불명 되었다. 신학대학원의 신학적 변질 흐름과 파당세력의 입김이나 압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은 신임교수에게 “교수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잔존 불씨
고려신학대학원은 신학적 안전지대가 아니다. 교수들은 국외의 다양한 신학 마당, 다양한 사상 풍토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이들은 고려신학대학원의 신학적 정체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어느 교수는 박형룡의 정통신학을 여러 차례 “극단적 근본주의”(ultra-fundamentalism)로 일컬으며 폄하했다. 개혁신학의 성경 영감설 특히 성경 무오성과 만전 영감설을 “낡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비하했다. 어느 교의학 교수는 언약신학을 잘 가르치고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언약신학은 케케묵은 사상이며, 요즘은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주제들에 대한 공개 토론을 제안한 바 있다.
어느 교수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전 조선신학교)에 강의 초빙을 받아 다녀와서 “한신대 신학대학원과 고려신학대학원은 교리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더라”고 말했다. 교수회 석상에서 한 말이다. 그는 강의실에서 “칼빈주의를 강조하는 교회치고 부흥하는 교회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단다. 어느 교수는 고신교회와 자매 관계 또는 교류관계의 교회가 운영하는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지향하는 네덜란드의 캄펜신학교와 미국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남아공화국의 포체스트롬대학교를 “돼지우리”에 비유했다. 고신 총회가 자유주의 신학자로 단정한 교수의 신학 입장을 지지하는 맥락에서 한 말이다. 어느 수강생이 자의적으로 녹음파일과 녹취록을 건네주기에 이를 알게 되었다.
어느 교수는 필자에게 과연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도덕적으로 존경할만하고 윤리적으로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만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은 믿기 어렵다고 했다. 종교다원주의적 발상을 거리낌없이 노출시켰다.
어느 교수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최 교수님은 바르트주의를 비판합니까? 바르트가 유럽을 자유주의 신학에서 구하지 않았습니까? 개혁주의 정통신학에 연연하면 한나라당 짝 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정통신학을 고집합니까? 이제라도 정통신학을 버리십시오.”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에 완패한 무렵에 한 말이다. 그가 말하기를 자신이 교의학을 가르치는 어느 동료 교수를 설득했더니 바르트주의를 비판하지 않고 바르트주의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바르트주의가 자유주의 신학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이며 성경관과 구원론에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 말을 한 교수는 조선신학교의 "김재준 교수는 자유주의 신학자가 아니다”고 주장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강의를 하던 중에 어느 학생이 "그것이 역사적 사실인가?"라고 묻자 이런 저런 말로 시간을 끌다가 "그렇다"고 답하지 않고 수업을 마쳤다고 한다.
학자의 폭넓은 학문적 관심과 대화하는 자세와 관용적 태도는 크게 탓할 바 아니다. 그러나 교회와 신학교가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공통의 신학적 정체성이란 게 있다. 유럽, 북미, 대양주 주류 교회들의 죽음과 기독교인 분포의 ‘지형변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필자는 고신교회 안에 성큼 진입한 재앙을 걱정하면서 서너 권의 책을 저술했다. 첫 권은 앞에서 언급한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2005)이고, 두 번째 책은 <정통신학과 경건>(2006)이고, 세 번째 책은 <신학충돌>(2012)이다. 이 책들은 원장 추천 관행을 필자가 반대하는 까닭과 그 관습을 폐지해야 할 신학적 근거와 역사적 교훈과 교회사적 가르침을 넉넉히 담고 있다.
교수회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집단인가? 대학교-신학대학원이 규정하는 교수회의 업무는 두 가지 곧 “학사와 학생지도에 관한 제반 사항”(제1조)뿐이다. 교수회는 원장을 추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원장 추천은 교수회의 업무가 아니다. 교수회나 교수들이 이사회가 결정한 신임 원장 선임을 무효화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넌센스이다. 보직 교수들이 일시에 집단적으로 사임을 한 것은 누가보아도 학교 행정을 마비시키려는 고의성을 지니고 있다. 교수들이 성명서를 발표하여 신임 원장에게 원장직 수락을 하지 않도록 압박한 것은 보통 사람의 이해, 상식을 훨씬 넘어선다.
신학대학원 원장을 교수들이 추천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적이라고 보는 발상은 착각이다. 미국은 민주주의가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이다. 그 나라에서 개혁주의 신학 전통과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는 신학교들, 리폼드신학교,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커버넌트신학교 등은 이사회가 인사권을 엄중히 행사하는 방식으로 교회와 신학교의 정통신학 정체성을 유지하고 좌경화와 변질을 막고 있다.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은 자유주의 신학자와 이단자가 강단에서 목사후보자들을 가르쳐도 단호하게 제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제재 장치가 없다. 교육부는 개인의 사상 차이 문제로 교수직을 해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신교회와 고신대학교 이사회가 원칙에 충실하지 않고 언론의 선통이나 힘의 논리에 밀려 신임 원장을 교수들이 추천하는 식으로 임명하는 관행을 용인하면 고신은 희망이 없다. 신학적 변질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교회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개혁
고신교회와 고려신학대학원은 자신의 존재의의를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위기는 기회이다. 현재 겪고 있는 내홍은 골 깊은 파당 짓기의 전통을 끝장내고 개혁주의 정통신학에 충실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독인답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신학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다..
고려신학대학원 사태가 집단 이기적 파당주의와 신학적 좌경화와 직결되어 있으며 교수들이 추천하는 자를 원장으로 임명하는 관행이 교회의 신학을 변질시킬 수 있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 아니다. 개인적인 상상이 아니다. 침소봉대가 아니다. 이것은 고려신학대학원과 고신교회의 역사와 당면한 상태가 말해주는 엄연한 현실이다. 고신교회와 고려신학대학원이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 지금이 그것을 결정해야 할 때이다. 이사회의 책임이 막중하다. 이사회가 인본적이고 파당적 인사행정을 하고, 무기력하거나 적당하게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신학적 판단력 상실하거나 거룩성을 상실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교회에 돌아 온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들이여, 위대한 신앙 선배들이 물려준 순교정신과 고신교회가 보장해 주는 에너지를 파당적인 정치 행보에 소진하지 말라. 신학적 변질을 보장받는 집단 이기주의 제도 확보 곧 원장 추천제 관행 유지에 시간과 삶을 탕진하지 말라. 세속적 가치, 속성, 발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 정신에 충실하라. 학교 안에 당파행위가 없다는 기만의 말을 중지하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기독인답게, 신학자답게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성령의 인도에 순응하라. 개혁주의 전통의 정신은 악습, 폐습을 주저하지 않고 개혁하는 데서 드러난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 함이 아니다. 허물을 들추려 함도 아니다. 고신교회와 고려신학대학원과 후배 교수들과 제자 신학자들을 사랑하기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독자들은 고려신학대학원 사태와 관련하여 교수, 교수회, 이사회가 지상에 발표한 원 자료들을 읽고 사안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올바르게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적인 일차자료 6개는 <리포르만다>의 아래 글 “역린(逆鱗)을 건드린 고신대 이사회”에 첨부되어 있다.
최덕성
글쓴이 최덕성은 신학자이다.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쓰기>,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 <정통신학과 경건>, <신학충돌>, <교황신드롬>, <KOREAN CHRISTIANITY> 등 약 20권을 저술했다. 고신대학교-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였다. 미국 예일대학교(STM), 에모리대학교(Ph.D.)를 졸업했다.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1997-1998)였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로부터 <신학자대상>(2001)을 수상했다. 현재 브니엘신학교 총장이며 교의학 석좌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