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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신드롬: 로마가톨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최덕성 교수의 <교황 신드롬: 로마가톨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2015)을 읽고/ 윤춘식


도대체 교회란 무엇인가?


최덕성 교수의 <교황 신드롬: 로마가톨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은 두 가지 카테고리를 다루며 동시에 두 범위를 모두 충족시킨다. 곧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주의에 대한 비평과 세계교회협의(WCC)의 내밀한 정체를 밝힌다. 그가 논구하고자 하는 비평의 정점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가면을 벗기는 일이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점을 논하는 기본구조를 가지고 단순히 비평만을 위한 담론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주지하는 WCC와 교황의 한국방문에 맞물린 불행한 만남, 로마가톨릭교회 세계관과 이해와 비평, 신학 담론을 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교회와 한국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하지 않고 죽음의 행진에서 돌이킬 수 있는 성경적 교회건설을 역설하고 있다. 본서는 저자가 사이버 공간에 발표한 글들과 보고문 그리고 온라인 신학저널에 게재한 글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WCC 부산총회(2013)에 직접 참여하여 확인하고 재고한 내용들을 간추리고 다듬은 글들을 담고 있다.


1. 교황, 신드롬, 저술동기


신드롬이란 실체가 없는 각자의 소망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시적 현상 또는 허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허탈감으로 바뀐다.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부산총회(2013)가 열린 이듬해에 교황 신드롬(syndrome)이 한국을 휩쓸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국을 방문하여 극진한 대접과 높은 존경을 받았다.


한국 기독교계는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는 교파나 교단이 다른 정도인가? 타종교와 다름없는 구별된 교리들과 행습을 가졌는가?


교황 프란치스코의 한국방문 때 최덕성 교수는 <교황 신드롬>(2014)을 시의성 있게 출간했다. 교회의 질문에 해답을 제공했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교리적 차이들을 명료하게 논의하고 제시했다.

 

서평자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지배적인 배경을 가진 남미에서 28년간 선교사로 사역했다. <로마가톨릭교회 세계관 이해>(서울: 쿰란출판사, 2008. 2쇄 참고)를 저술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읽은 최덕성 교수의 이 책은 국내만이 아니라 국외의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에게, 특히 로마가톨릭교회의 영향 아래 있는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하다. 영어로 번역되기를 희망한다.

 

저자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지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절대군주제 조직이며, 성경적, 역사적 근거가 없는 교리들에 집중한다고 밝힌다. 로마가톨릭교회와 WCC의 만남과 문제점들을 분석하는 이 책의 부제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WCC)이다.


WCC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교회들을 하나로 묶고 친교 목적으로 출범했다. 교회일치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개신교회들을 교황좌 아래로 이끌고 들어가는 '귀정'(歸正)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단체가 점차 복음적인 교회와는 불일치하는 방향으로 힘차게 달려 왔다. 성경과 초대기독교회의 형태로 되돌아올 수 없는 상태이다. "로마를 향한 열차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저자는 말한다. WCC가 로마가톨릭교회의 현 제도, 교리, 행습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며 교황좌 아래로 들어가는 형태의 교회일치운동을 말한다. 종교다원주의, 포용주의, 신앙무차별주의 형태의 WCC 운동은 예수께서 터를 잡고 사도들이 건물을 세운 신앙고백공동체의 모습에서 너무 멀어져 있다.


2. 저술의 목적


소위 <교황>이라는 단어는 폭넓은 의미망을 갖고 있다. '교황'이라는 개념, 역사, 범위, 위치, 역할, 덕목 등 사람마다 견해를 달리할 수 있다. 실상 무슨 글을 쓰고 싶을 때, 펜이 굴러가는 대로 서술하는 비판의 과부화현상도 있고 식상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본서는 세상에서 표류하는 단세포적인 비판이 아니라 비판 지식을 뛰어넘어 실재하는 역사의 블록을 쌓는 과업을 성취한 것을 담고 있다. 글은 곧 저자의 인격이며 지성이다.

 

저자는 이 연구를 일컬어 거대한 로마가톨릭교회와 WCC라는 두 조직체의 역린(逆鱗 : 용의 비늘)을 건드리는 것과 같이 부담스러운 작업이라고 언급한다.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진리의 증인들을 따라 용기를 내어 저술에 임한다고 밝힌다. 아울러 이 연구가 한국교회가 앞장 서 진정한 교회개혁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그 좌표를 제시한다. 신드롬은 실체를 맛볼 수 없는 각자의 희구를 한데 모은 허울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회오리바람과도 같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가시적으로 하나가 되려고 하는 WCC의 허상을 지적하고 이 단체가 개신교회들을 교황청 아래로 끌어가려고 하는 오류를 비평적으로 분석한다. 진심으로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저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저자는 성공 가능한 성경적인 교회개혁과 일치를 모색하고 있다. 훗날 언젠가, 개신교회 쪽으로 로마가톨릭교가 다시금 일치해오는 길을 열고자 하는 순진한 생각도 담고 있다. 최덕성 교수가 추구하는 이러한 순수한 힘은 아이러니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진지하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교회일치운동 발상 여부를 논할 수 있겠으나, 저자는 오랜 기간 동안 신학대학원의 교회사 교수를 지낸 책임 있는 신학자이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개혁을 권하는 학자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저자는 중세교회사를 다룬 <쌍두마차시대>(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2)에서도 동일한 목적을 초지일관 제시하고 있다.

 

서로 다룬 두 전통의 일치가 바람직할 수 있다. 다만 개혁이라는 조건 충족의 과제가 남아 있다. 서평자도 모세 오경을 연구하면서 아브라함 전통과 모세 전통을 분해하고 해설하는 과정에서, 두 전통이 필히 동일한 계시 맥락으로 서로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글을 집필한바 있다.


3. 저술의 희망

 

저자는 현재의 한국교회가 과연 주님이 '미래형 시제'로 장차 세우겠다고 말씀한 그 교회인지 의문이 생긴다고 자문한다. 그러면서도 그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며, 우리 사회와 민족의 등불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고 고백한다. 교회 아닌 어느 단체가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의 복음을 들려 줄 수 있는가! 어디서 사탄 문화를 정복하고 생명 문화의 기틀을 놓을 꿈을 찾을 수 있는가! 한국교회 안에는 교황이나 성인(聖人) 못지않게 진실하고 숭고하며 격조 높은 삶을 산 무명의 한국 구성원들이 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로 '미국 안에서의 한국인 오인호''고전교회(경남 하동) 김상재 초대 장로''오기병 장로'의 삶을 소개한다. 이들 신앙의 모범을 조명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위해 살다 간 생생한 삶 속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의 윤리실천을 무색케 하는 복음적 생애의 에센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걸인들이 세운 송덕비 이야기는 교황의 윤리적 실천에 열광하는 군중들도 이 분들의 숭고한 삶을 깨달을 땐 의미심장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최덕성 교수의 글은 상당한 해학과 실천의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한국교회 구성원 몇 사람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교황에게 붙여진 겸손, 검소, 개방 등에 버금가는 개신교계의 지도자들이 허다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단적으로 보여준 실례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는 아울러 존경받는 인물의 역사적 기록이 로만캐톨리시즘 같은 '인물숭배'(hagiography)가 되지 않기를 경계하는 마음도 싣고 있다.

 

4. 종교다원주의


최덕성 교수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당위성을 부정하는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한다고 지적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중재자는 예수 한 분뿐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교황이 이끄는 로마가톨릭교회는 미지의 신을 찾는 자,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 이슬람을 포함한 역사적인 종교의 추종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종교다원주의와 만인보편구원주의를 추구하는 점에서 로마가톨릭교회와 WCC가 일치한다고 변호한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태인과 무슬림도 구원받고, 미지의 신을 찾는 사람들, 양심에 따라 사는 자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만인보편구원주의'를 따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역사적 개신교회의 으뜸가는 차이는 구원론이라고 역설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행위구원 교리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표방한 만인보편구원주의가 특징적인 교리로 회자되고 있다. 역사적 기독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오직 예수'가 구원의 길이라 고백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이며 화해자라고 믿는다. ‘구원의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개신교회는 다만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 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5. 마리아론

 

로마가톨릭의 수사학교의 한 학기 커리큘럼에는 <마리아학>이 들어 있다. 개신교인들이 알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마리아학이 다른 신학과목들과 다른 점은 미래가 무궁무진하게 열려있는 미래학이라는 사실이다. 현재보다 훨씬 더 나쁜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느 국가나 지방에서 마리아의 출현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마리아학은 그 범위가 새롭게 확장되는 흐름 가운데 있으며, 개신교 신자들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마리아의 이름이 성녀 '파티마'(), '과달루페'(), 검은색 얼굴의 '아파레시다'() 따위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로마가톨릭교 신자들은 개신교회에서 마리아를 일상의 공경하는 여성으로 보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 반면, 개신교 신자들은 로마가톨릭 교인들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중보자의 위치나 치유자의 이름으로 삼위일체보다 위격에 두는 것을 매우 이상히 여긴다.


저자는 로마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구원의 중보자로 믿는다고 밝힌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은총을 받는 두 길이 존재한다. 예수와 마리아이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 버금가는 지위에 올라 있다. 따라서 '성사위일체'(聖四位一體)라 불릴 정도이다. 마리아는 신앙과 숭배의 대상일 뿐 아니라, 교회의 어머니로서 자리 잡았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마리아가 평생 동정녀로 살았고 원죄가 없으며, 자범죄도 범하지 않았고, 죽자마자 육체를 가지고 승천했다고 믿는다.


저자에 의하면, 마리아 교리는 구원자-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역할을 격하시키는 이단 사상이다. 마리아 숭배행위는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 어느 부분도 로마가톨릭교회의 마리아 교리와 성모숭배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마리아 숭배는 지중해 세계에 만연한 이교(異敎)의 여신숭배 사상과 행습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6. 교황청의 교황좌


로마가톨릭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리는 교황좌(敎皇座, The See) 이론이다. 교황은 로마주교의 법적권좌(ecclesiastical jurisdiction) 곧 교황좌는 국민과 군사와 국토와 재판권과 세상 정부를 가진 교황국가의 최고 권력을 일컫는 명칭이다. 교황은 로마가톨릭 교계(敎階)의 수위권(首位權)의 상징이다. 저자는 교황을 종교 권력과 세속 권력까지 장악하려는 로마가톨릭교회의 탐욕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이 무오(無誤)하다고 믿는다.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무엇을 결정하고 선포할 때 그에게 오류가 없다고 칭한다. 교황이 결정하고 성명·선포한 것은 절대적인 것이므로 교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타인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그 내용은 바뀔 수 없다. 후대의 교황도 칙령을 바꿀 수 없다. 교황무오교리의 유효성은 하나님의 계시와 동등하므로 절대적이며 불변하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준 최상의 교도권(敎導權)이므로 비판·항의·거역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최 교수는 교황이 무오하다는 발상은 교황직을 신성불가침 영역에 두어 로마가톨릭교회의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계급주의 제도의 안전한 유지를 도모하려는 이단 사설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교황 곧 로마교회의 주교가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했다고 하는 교리를 반박한다. 사도직 계승론·교황 수위권이 사도들의 사후(死後) 사도직이 그들의 협력자들에게 일종의 유언 형식으로 계승되었다고 주장한 가톨릭교회의 주장은 근거 없다.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에게 교황 수위권(Supremacy)이 맡겨졌고, 그 직책·직무가 후계자들에게 영속적으로 계승·전수되고 있다고 하는 주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통치 권력을 두령의 아들에게, 손자에게 계승시키고, 세속 사회가 왕권·황제좌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교황 수위권과 앞에서 다룬 교황무오교리는 교황·주교의 사도직 계승론과 맞물려 있다. 로마가톨릭교회 교회론 신학자 한스 큉은 성경이 교황의 수위권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큉에 따르면, 교회의 지도력이 사도들과 그들의 카리스마 사역과 관련되어 있음은 사실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역사적 발전이 개입되어 있다. 성직자와 평신도가 구분되고, 목회자단이 구성되고, 교회가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장로가 회중과 전 교회 영역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 뒤에 현대 개념의 주교가 등장했다. 주교 개념이 발전하여 주교단이 만들어졌다. 이 개념이 로마의 주교 곧 교황으로 연결된 것이다. 주교는 장로와 달리 더 광범위한 교회 지역을 관할했다. 그는 목회자(치리자)인 장로보다 위계적으로 우위에 있지 않았다. 주교와 장로의 계급질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성경에 호소하면서 로마교회의 주교교황의 수위권 이론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거절한다. 교회가 출범한 첫 두 세기 동안 만들어진 기독교 문헌 어느 부분도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이니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16:18)는 말씀과 뒤따르는 본문을 로마교회의 주교 곧 교황과 관련시키지 않는다. 이 본문을 베드로 개인과 관련시켜 언급할 뿐이다. 베드로는 여러 평등한 제자들 가운데 첫 번째 제자였을 뿐이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초기 예루살렘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지도자였다. 중요한 사실은 그 혼자만이 아니라, 12제자들이 함께 사도의 권위를 나누어 가졌다는 사실이다. 베드로가 절대군주체제의 독재자와 같은 권위를 가졌다는 증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저자는 베드로에게 후계자가 있었다는 증거는 신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교육받지 못한 갈릴리 지방의 유대인 베드로가, 교육받은 로마 시민(Civis Romanus), 특히 그리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헬라철학과 사상에 정통한 문화 시민들의 목회자가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한다.


7. 로마가톨릭교(천주교)와 개신교의 교리 차이


이 책의 제6장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라는 제목으로 개신교 신앙과 불일치하는 여러 가지 천주교 교리들을 요점적으로 상론한다. 2차 바티칸공의회 문서들과 교황청이 발간한 가톨릭교회교리서(1997)의 근거를 일일이 제시하면서 논의한다. 주로 구원론과 교회론에 관련된 아래의 10가지 핵심 교리들을 살펴본다.


(1) 원죄교리와 칭의교리


로마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본다. 원죄가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타락시키지 않았다는 전제를 가지고, 로마교는 원죄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바울과 어거스틴과 종교개혁자들이 이해한 인간의 전전부패를 가져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원죄는 탐욕을 가져왔고, 이것이 사람을 죄와 악으로 기우는 경향으로 이끈다고 가르친다. 세례가 그리스도의 은총의 생명을 주어 원죄를 없애고 인간을 하나님께 돌아서게 하지만, 악으로 기울게 하는 인간 본성에 미친 원죄의 결과는 인간 안에 집요하게 남아서 영적인 싸움을 치르게 한다고 계몽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윈죄 교리와 더불어 종교개혁자들이 중요하게 여긴 오직 믿음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 도리 곧 이신칭의(以信稱義), 이신득구(以信得救)의 진리를 부정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구원을 받는가? 로마가톨릭교회는 구원을 보장하는 칭의를 하나님의 은총(은혜)과 인간의 선행의 결합의 결과로 본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거절할 수도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그 자유의지로써 받아들이고 그것에 협력할 때 의롭다는 칭함을 받는다고 한다. "의화는 신앙의 성사인 세례로 주어진다"고 강조한다. 은총의 작용으로 인간은 하나님께로 향하고 죄에서 멀어져 위로부터 오는 용서와 의화를 받아들이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시행하는 회개가 우리를 의롭게 해 준다. 이 의화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뿐만 아니라,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고 보는 견해다.


트렌트공의회(1545~1563)는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 교리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말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은혜의 필수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칭의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화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며, 기독교신자는 자신이 현재 은혜의 상태에 있는지, 선택을 받았는지, 마지막 때까지 견딜 것인지,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위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imputation)에 의해서만 의롭다는 판결을 받는다고 말하거나,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호의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고 말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선언했다.


저자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소요리문답 제33문답을 인용하면서 칭의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주어지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여기심으로 받으시는 것이며,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킨 결과이며,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고 밝힌다. 바울의 칭의 강화(講話)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칭의론의화론이 옳지 않으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칭의론이 정당함을 뒷받침한다고 말한다.


(2) 교회관, 7가지 성례


로마가톨릭교회는 자신만이 참 교회이며, 그 교회 밖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은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톨릭교회를 세운 사실을 알면서도 그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탓"으로 그리스도와 로마가톨릭교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의 조건은 단순하다고 역설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네 집안이 다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16:31). "이 분의 힘을 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4:12). 이 복음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외쳐지고 전파되는 점에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를 가시적 조직체로 이해하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자신의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고 말함은 성경적 근거와 합리성을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이 교회의 7가지 성례성사를 거쳐 주어진다고 말한다. 이것들은 구원의 조건인 동시에 교회가 베푸는 은혜의 수단이다. 일곱 언덕의 도시 로마에서 발전한 로마가톨릭교회의 성례는 세례, 성찬, 견진(세례 재확인 의식), 고해, 결혼, 사제 서품, 종유(임종 직전 모든 죄를 사해 주는 예식)이다.


저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배타적 교회관과 7가지 성례는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는 자의 영생까지 신도가 사제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할 목적으로 고안된 영리한 종교 제도라고 밝힌다. 성경이 제시하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 뿐인 바, 세례와 성만찬이다. 이 성례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은혜의 수단이다.


(3) 세례


로마가톨릭교회는 세례를 죄의 정화(淨化)의 수단이며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방편으로 규정한다. 세례를 받으면 원죄와 자범죄를 용서받는다고 한다.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 받는다. 세례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 있지 않다. 곧 아담의 죄도, 본죄도, 죄의 가장 중대한 결과인 하나님과의 단절도 남지 않는다." 하나님은 "세례 받는 사람에게 성화하는 은총 곧 의화(칭의)하는 은총을 주신다"고 계몽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구원을 위한 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례는 복음을 듣고 이 성사를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구원에 필수적이다. []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세례 성사에 매어 놓으셨다." 세례는 하나님의 나라에 입국하는 통로이며, 이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전한다.


저자는 물세례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며, 인간은 오직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주로 고백하고 그가 수행한 대속사역의 공로를 의지해야 원죄와 자범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세례는 신자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의무사항이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음의 상징이며, 구원을 받아 언약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뜻하는 인호(印號, seal)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예수를 그리스도(구원자)로 믿게 된 사실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예식이다. 그 예식에 참여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이다.


(4) 성찬, 화체설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찬에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祝聖) 즉시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살과 피로 실제적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포도주와 피가 본질적 변화를 일으켜 사람의 살과 피로 바뀐다고 믿는다. 이는 하나님의 기적이며 신비에 속한다. 떡과 포도주가 본래의 성분을 유지하면서도 예수의 실제적인 살과 피로 바뀐다는 화체(化體)교리를 가지고 있다. 화체설은 9세기에 등장했다. 기독교가 로마화 되고 토속 신앙과 미신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자리 잡은 결과물이다.


저자는 마르틴 루터의 공재설(떡과 포도주 안에 함께), 쯔빙글리의 상징설(단순 기념), 존 칼빈은 영적 임재설(성찬과 참여자에게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을 소개하면서 로마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을 반박한다. 그리스도께서 성찬과 그것의 영적 의미를 깨닫고 참여하는 기독인에게 영으로 임재하는 사실을 강조한다.


(5) 희생제사 교리


로마가톨릭교회가 말하는 희생제사는 사제가 신도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베풀 때 그리스도께서 거듭하여 희생제물로 바쳐짐을 의미한다. 희생제사 교리는 로마가톨릭회의 배타적 교회관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개념인 셈이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제사와 사제가 집례하는 성찬의 희생제사가 동일한 제사라고 전한다. 성만찬이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한다"고 가르친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화체설과 희생제사 곧 성찬이 갈보리 언덕에서 행해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이해를 터무니없는 교리로 여겨 비판했다. 개인미사 거행, 미사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공덕이라는 관념, 성찬이 끝난 뒤에도 빵 속에 그리스도의 몸이 계속 남아 있다는 교리를 반대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단번에 자신의 몸을 바치셨다고 증언한다. 기독인은 단번에 자기를 제물로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덕분에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


저자는 성례가 마술과 같은 신비한 무엇이 아니라고 한다. 성찬 때마다 장소마다 사제가 축성하는 곳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처럼 거듭 희생제물로 바쳐진다는 로마가톨릭교회의 희생제사 교리는 사람들을 창검으로 개종시켜 기독교인으로 만들고 인민 대중을 종교권력에 복속시키려고 한 종교 권력의 세속적 지배야망의 결과라고 비판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미사는 구약시대 제사의 연장이다. 개신교회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예배를 드린다.


(6) 면죄권


로마가톨릭교회는 사제가 면죄권(免罪權)을 가졌다고 한다. 면죄권은 면죄부와 직결되어 있다. 면죄부는 헌금증서와 비슷하다. 바티칸은 1506년에 시작한 베드로대교회당 건축공사에 필요한 비용을 충원할 목적으로 면죄부 제작과 판매 포고령을 발표했다. 면죄부를 매입하면 죽은 뒤에도 구원을 받는다고 거짓 선도했다.


저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면죄권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없을뿐더러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가져온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옥에 있는 자들을 위해 면죄부를 매입하게 함은 종교적 사기행각이다. 다수의 성직자들은 이를 자신들의 재산증식, 사치, 호화, 방종에 사용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한다.


(7) 고백


로마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사죄권(赦罪權)을 사도들에게 부여했으며, 사도직을 계승한 사제들이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 원죄는 세례를 받을 때 용서를 받고, 세례 이후에 지은 죄는 사제에게 고백을 하여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이른바 고해성사를 받은 사제가 죄 고백을 듣고 용서를 선언하는 순간에 하나님도 죄인을 용서한다. '고해성사'를 교회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로 여긴다.


저자는 누가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가 하나님의 죄 용서함을 받는다고 가르쳤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죄 사함의 권한을 가졌다고 말한 적이 없다.


(8) 연옥, 죽은 자들을 위한 미사


로마가톨릭교회는 천당과 지옥이 아닌 저승이 있다고 믿는다. 완전히 순결한 자는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직행하여 영생복락을 누리고, 대죄를 지은 악인은 즉각 지옥으로 가서 영원 형벌을 받지만, 작은 죄를 지은 죄인들의 영혼은 연옥(煉獄)에서 정화(淨化)와 형벌을 받고난 뒤에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교도한다.


저자는 성경에 연옥교리가 없음을 밝힌다. 성경이 말하는 사후의 세계는 두 곳 뿐이다. 천국과 지옥이다. '낙원'(paradise)은 천국을 일컫는 다른 용어로 봄이 옳다. 연옥과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 관습은 성경이 아닌 외경 마카비 21245절에 죽은 자를 위해 돈을 사용함이 등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한다(8:1).


(9) 성인들의 중재 간구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인들(saints)이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해 일종의 중재기도를 한다고 믿는다. '통공'(通共: communion of the saints)이라는 가상의 공간(상태)이 있어 그리스도와 천국의 성인들과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만나 영적 유대를 나눈다고 주문한다, 성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중재 기도가 효력이 있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죽은 자들이 자신들의 살아 있을 때의 공덕에 의지하며 하나님께 빌 수 있다고 하는 교리는 성경과 초기 기독교공동체의 가르침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살아 있는 신자가 죽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과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함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직접적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다(4:16)고 증거한다.


(10) 사제 독신주의


로마가톨릭교회는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의무화한다. 사제 독신제도는 4세기 이후 점차 성행하다가 11세기에 이르러 교회의 제도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가 제1대 교황으로 내세우는 사도 베드로는 결혼을 했다. 가정이 있었다. 다른 사도들은 아내와 동행하며 복음을 전했다(8:14; 고전 9:5).


루터는, 사제의 독신생활 선택은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욕주의에 근거한 결혼금지 조항에 서약함은 복음에 상반된다고 제시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봉사하는 여부는 개인의 자유 선택 사안이다.


8. 종합적 평가


최덕성 교수는 <교황신드롬> 2부에 로마가톨릭교회와 WCC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토론과 격론, WCC 부산총회에 참여하는 까닭, 예수 그리스도, 부산에서 통곡하다, 함께 생명을 항하여, 종교다원주의, 복음주의자들의 오판, 이형기·박성원 교수께 묻는다, 지형변화, 교회일치의 조건, 하나님의 나라, 과연 무엇인가? 성별(聖別) 등을 다루고 있다. 본서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한국교회의 의욕을 일깨우는데 주력했다.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 "개혁교회는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정신으로 한국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동시적 개혁을 천명하고 있다.


저자는 교황신드롬때문에 교황의 행보 이면에 있는 끔찍한 모순과 부패와 비진리를 직시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추구하는 윤리적 교회 개혁 운동은 중세교회와 종교개혁시대에도 가톨릭교회 안에 존재했다. 성직자들의 도덕과 교회의 일부 제도개혁에 머물렀을 뿐이다. 저자는 로마가톨릭교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교리의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구원론과 교회론의 개혁이다. 로마가톨릭교회 안에도 "우리가 교회이다"(WE ARE THE CHURCH) 운동을 펼치며 교리개혁과 교회개혁을 동시에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이 로마가톨릭교회의 희망이라고 전한다.


저자는 교황신드롬이 남긴 것은 반어적이라고 역설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WCC 에큐메니칼 운동은 로마가톨릭교회를 포함한 교회들의 가시적 일치에 몰입한다. 로마가톨릭교회처럼 WCC는 교회의 본질과 존재의의를 가시적 제도와 조직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때에, 저자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근본적으로 구원공동체임을 직시한다. 교회의 사도성, 보편성, 단일성은 성경적 진리 고백에 달려 있다.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자들, 영접한 자들,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은 성별된 자들의 모임인 것이다.


아울러 <교황신드롬>은 기독교의 본질이 윤리에 있지 않음을 일깨운다. 윤리 부재의 기독교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음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이 있다. 회개, 믿음, 중생, 칭의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는 일이다. 이것을 배제하는 기독교는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가 아니라고 덧붙인다. 신학자의 책임은 자기 시대의 교회에 필요한 지적, 영적 해답과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것은 신학자가 교회의 교사로서 수행할 분복이다. 교회 현장에서 일어나는 주제를 학문 영역에 끄집어들여 진지하게 논의할 임무를 지니고 있다. 최덕성 교수는 우리 시대의 교회가 알고자 하는 질문에 답을 제공하는 여러 권의 책들을 저술한바 있다.


 윤춘식 박사는 아시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이며 남미선교연구원 원장이다. 문학평론가,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장 고신교단 선교부 소속 선교사로  남미 아르헨티나 원주민선교 사역과 교회개척 사역을 28년 동안했다. 스페인어판 크리스천타임스 발행인을 역임했다. 아르헨티나 토바부족민 중고등학교의 설립 이사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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