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없이도 구원받는다'는 로마가톨릭교회

by dschoiword posted Aug 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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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jpg


바티칸 광장



'예수 없이도 구원받는다'는 로마가톨릭교회


[특별기고]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② 만인보편구원주의 


 크리스천투데이, 2014.08.04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4063

        

▲최덕성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원론은 '예수 없이도 구원을 받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수를 믿지 않는 유태인과 무슬림도 구원받고, 미지의 신을 찾는 사람들, 양심에 따라 사는 사람들,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로마는 ‘만인보편구원주의’를 표방한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역사적 개신교회의 으뜸가는 차이는 구원론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행위구원 교리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표방한 만인보편구원주의가, 심각한 교리로 대두되어 있다. 역사적 기독교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 고백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이며 화해자라고 믿는다. ‘구원의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개신교회는 다만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개신교회 안에도 만인보편구원주의 사상을 가진 교회들이 있다. 자유주의 신학에 개방적인 진보계 교회들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이 사상을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총과 능력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만인보편구원주의와 WCC의 종교다원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것들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전혀 다르다. 예수를 믿어야 할 까닭, 당위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1. 구원의 길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는 현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를 확정지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교회 생활의 모든 분야가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의식 변화를 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 공의회는 교회의 자각과 쇄신, 신앙의 자유, 종교와 정치의 제 역할 찾기, 개별 민족과 사회 존중, 세계 평화, 개신교를 포함한 그리스도 교회의 일치, 타종교와의 대화, 예전 개혁 등 로마가톨릭교회의 현대화를 촉구했다. 한국천주교회의 조상 제사 수용, 각국의 토착화된 성모상 등장, 미사 집전 때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 사용, 평신도 역할 부상 등의 변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일어났다. 만인보편구원주의는 이 같은 변화의 물결을 따라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연구·토론·결정한 4개의 헌장, 9개의 교령, 3개의 선언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 담겨 있다.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바티칸이 제정한 <가톨릭교회교리서(1997)>도 중요한 문서이지만, 공의회 문헌은 가장 권위 있는 원 자료, 1차 자료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은 교황이 지배하는 로마가톨릭교회를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과 로마가톨릭교회를 일치, 등식화한다.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 곧 로마가톨릭교회 안에서 인간과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제14항).


‘교회헌장’은 자기 탓이 아닌 까닭으로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 사람들도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고, 구세주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바란다. “아직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타종교인들이 “가진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그것들은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제16항)”이라고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비그리스도교 선언’은 하나님이 모든 민족의 기원이며, 그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 계획은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고 한다(제1항). 힌두교는 신에게 귀의하여 인생고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한다. 불교는 자기 노력으로 궁극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길을 가르친다. 그 밖의 전 세계 종교들도 교리와 생활 규범과 신성한 예식 등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는 이들 (타)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 양식과 행동 방식 뿐 아니라 그 계율과 교리도 진심으로 존중한다. 그것이 비록 가톨릭교회가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가지로 다르더라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진리의 빛을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제2항)고 한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무슬림과 유태인들도 구원을 받는다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로마가톨릭교회에 따르면 무슬림은 살아 계시고 영원하며 자비롭고 전능한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사람들에게 말씀하는 유일신을 흠숭하며, 예수님을 예언자로 받아들이며, 또 마리아를 공경한다. 모든 사람을 부활시켜 공정하게 갚아 주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제3항). 유태인들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구원 계획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 “그들의 조상 덕택에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롬 11:28-29)”이라고 한다(제4항).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유태인의 책임과 관련하여, 공의회는 당시의 모든 유태인 생존자와 그 후손에게 그 책임을 차별 없이 지울 수 없다고 한다. 예수를 죽인 책임은 그 사건에 가담한 유태인 당사자들에게만 있다. 그러므로 모든 유태인들이 하나님의 버림받고 저주받은 백성인 것처럼 표현함은 잘못이라고 한다(제4항).


2. 비그리스도인의 구원


로마가톨릭교회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따라 알게 된 하나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한 무지, 불가피한 무지를 조건으로 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바티칸은 로마가톨릭교회라고 하는 ‘구원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비로마가톨릭 신자들과 “타종교의 추종자들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주님이신 예수님, 2000, 제22항)”고 선언한다.


개신교회 신자들, 비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정교회, 성공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교회 분열의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 당사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당사자가 아닌 경우, 곧 개신교회나 정교회 가정에서 태어나 로마가톨릭교회가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만 ‘불가피한 무지를 조건’으로 구원이 가능하다(교회헌장, 제14항-제16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따라 신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고 한다(제16항).


정리하자면, 예수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래와 같다. ①유태인: 조상 덕택으로 구원을 받는다 ②창조주를 알아 모시는 모든 사람들: 신을 믿는 모든 종교인들 ③이슬람 신도들: 아브라함의 신앙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 ④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미지의 신을 찾고 있는 사람들 ⑤진실한 믿음으로 신을 찾는 사람들 ⑥양심의 명령을 따라 신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⑦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등이다.


3.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


로마가톨릭교회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언급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교회와 무관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지 않는다.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로마가톨릭교회라는 제도와 교회 조직 안에 있는 사람 곧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결합된 사람일지라도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고 교회의 품 안에 ‘마음’이 아니라 ‘몸’만 남아 있는 사람”(교회헌장, 제14항)이다. 다시 말하면 온전한 마음을 다하지 않는 형식적인, 명목상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로마가톨릭교회를 세우신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거나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제14항)이다. 종교개혁자들과 개신교 교의신학자나 역사신학자가 이 부류에 속한다.


셋째,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가 허황된 생각에 빠지거나, 진리를 거짓과 뒤바꾸고 피조물을 섬기는 자, 하나님 없이 살다 죽어가는 극도의 절망에 놓인 사람이다(제16항).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다가 사탄에 미혹당한 악인들이다.


로마가톨릭교회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황청은 2000년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와 로마가톨릭교회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내용의 교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그 이후의 신학 선언들의 위험을 감지하고, 종교적 상대주의와 종교다원주의가 로마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진보적 로마가톨릭 신학자들과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주교들을 겨냥한 경고였다(주님이신 예수님, 제22항).  이 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딤전 2:4)”고 한다(제13항, 제22항). 만인보편구원주의 구원론과 예수 구원 유일성을 모호한 방식으로 결부시킨다(제13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로마가톨릭교회 밖에서 하나님을 찾고 양심대로 생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위 교서는 “교회 밖에서 영위되는 종교적 믿음(belief)은 여전히 다만 절대적 진리를 찾고 있는 종교 경험”(제7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마가톨릭교회의 구원관은 이처럼 야누스적이다.


4. 로마가톨릭 신학자들


타종교인들의 구원에 대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적 천명은 로마가톨릭 신학자들의 만인보편구원주의와 일치한다.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모든 사람의 죄 때문에, 자원하여 고난과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도록 했다. 따라서 교회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의 표지이며 온갖 은총의 원천으로 선포해야 한다(비그리스도교 선언, 제4항)”고 한다.


칼 라너(Karl Rahner, 1886-1968)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에서 가톨릭 신학을 가르친 신학자였다. ‘익명의 그리스도론(Anonymous Christology)’으로 유명하다. 라너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만인보편구원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신학의 핵심은 배교적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며, 이 땅에는 많은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너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총 아래 있다는 관점으로 기독교의 구원과 일반종교의 구원을 연계시킨다.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타종교들도 하나님이 자유롭게 주시는 선물인 초자연적 은총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 종교들 안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한다. 라너에 따르면, 모든 인류는 ‘익명의 그리스도’를 거쳐 각자 자기 나름대로 구원을 받는다. 타종교인들은 ‘익명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다(칼 라너, “익명의 기독교와 교회의 선교적 사명,”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 김승철 편저, 서울: 나단, 1993, 112). 하나님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능가하는 크고 위대한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은 기독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구원의 보편적 가능성을 창조행위 안에 존재론적으로 부여했다.


라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으며,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타종교인들에게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인다. ‘익명의 그리스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으로 라너가 의도하는 바는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키고,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구원을 연결시키는 일이다. 라너는 ‘하나님은 온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말로써,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익명의 우주적 그리스도, 보편적 구원자로 변형시킨다.


로마가톨릭교회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은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론’, ‘익명의 그리스도인론’을 ‘신학적 기만’으로 단정한다. 라너의 이론에서 기독교의 역사성은 전부 어디로 갔느냐고 지탄한다. 라너의 사고가 하나의 변증법이며, 그러므로 실제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밖에는’, ‘없다’, ‘교회’, ‘구원’ 등 이 모든 개념들을 마구 섞어 놓으면, 결국엔 정반대의 말도 할 수 있게 된다. 곧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 많은 구원받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니다. 라너는 이들이 모두 당연히 ‘익명의 로마가톨릭교인들’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않는다. 라너가 로마가톨릭교회 사제의 신분을 포기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이렇게까지 까놓고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한스 큉,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서울: 한들출판사, 1998, 111).


라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 1918-2010)는 스페인 출신 로마가톨릭교회 사제이다. WCC의 탈기독교적 신학 방향 설정에 이바지한 신학자이다. 그는 로마가톨릭교회 신자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종교 경험을 바탕으로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펼쳤다. 파니카는 ‘보편적 그리스도’와 ‘특수한 예수’를 나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지만 그 밖에도 많은 그리스도가 있다고 한다(Panikkar, 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 Maryknoll, NY: Orbis, 1984, 168).


파니카가 말하는 ‘보편적 그리스도’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힌두교의 라마(Rama), 크리쉬나(Krishna), 불교의 석가, 이슬람교의 마호메트, 유교의 공자 등이 역사적 인물로 나타난 그리스도들이다. 예수 그리스도, 무하마드 그리스도, 공자 그리스도, 모택동 그리스도, 김일성 그리스도 등 수많은 ‘그리스도’가 있다는 뜻이다.


파니카에 따르면, 일곱 가지 다양한 색깔이 모여 무지개를 이루듯 세계의 각 종교는 한 개의 ‘궁극적 신적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문화, 역사의 반응이다. 역사적 종교들은 빛이 스펙트럼을 통과하면서 발생시킨 파장들에 지나지 않는다. 각 종교의 고유소(固有素)는 타종교의 그것들과 더불어 신적 실재를 더욱 완전에 가깝게 드러낸다고 한다(파니카, 종교 간의 대화, 서울: 서광사, 1992, 26-27).


로마가톨릭교회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보편주의 목소리와 신학자 칼 라너와 라이문도 파니카의 사상에 담긴 종교다원주의 사상은 세계교회협의회(WCC) 신학 안에 메아리치고 있다. 특히 ‘바아르 선언문(1990)’과 지난해 부산에서 일방적으로 선포한 ‘선교-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2)’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5. 분석과 질문


기독인과 비기독인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종국에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면, 왜 하필이면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죄 사함, 중생,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구원 활동이 기독교 밖에도 있다면, 고난과 박해를 받으며 예수를 믿고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할 당위성이 없다. 한국과 같은 다양한 종교 사회에서, 태국과 같은 불교 국가에서, 이라크와 같은 이슬람교 국가에서, 중국과 북한과 같은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나라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꼭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할 이유가 없다.


만인보편구원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전도(顚倒)시킨, 뒤틀린 신학 이론이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본류에서 벗어난 신념이다. 신(神)의 보편적 부성(父性)인 사랑을 강조하여 모든 영혼이 조건 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신학은, 역사적 기독교의 고백과 성경적 진리에 반(反)하는 이단 교설(敎說)이다. 만인보편구원주의와 종교다원주의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필요성을 상대화하는 결정적인 함정에 빠진다.


바울은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길이 여럿 있다고 하는 발상을 거부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롬 10:9)”.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4-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둔 것 외에는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2:10-11)”. 바울의 이 같은 언명에는 ‘익명의 그리스도’,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 ‘보편적―우주적 그리스도(Universal Christ)’, ‘숨겨진 그리스도’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복음 전도는 거짓 신들을 버리고 참 하나님인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초청이다. 하나님과 화해하는 길은 성육(成肉)한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뿐이라고 호소하는 활동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졌지만 모든 인간이 자력으로, 양심이나 바른 삶이나 미지의 신을 추구하는 행위로 구원을 얻을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다. 구원의 길은 인간으로 강생한 하나님의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보여준 계시는 모든 인간적·종교적·사변적 노력을 허물어뜨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선언은 독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며(행 4:12),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계시한 진리이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만인보편구원주의 사상을 배격했다. 종교의 다원적 존재를 거부했다. 타종교에 대항하고 싸웠다. 타종교와 우상숭배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엡 4:4-6; 롬 1:20-22; 고전 8:4).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5-6)”.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아테네 사람들에게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To Unknown God)’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 17:23)고 한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면, 왜 바울 사도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외쳤겠는가? 어떤 종교든지 결국 같은 신을 섬기고 그 종교들이 구원의 길이라면, 왜 그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 “천지의 주재”,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이”를 소개하며 그 신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회개하라(행 17:30)”고 외쳤겠는가? 바울이 믿었던 신은 왜 이미 신들을 믿고 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바울을 보내어 무자비하게도 생명의 위협을 무릅쓴 고난을 감수하도록 허락했겠는가?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유일성을 명확하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안에서만 하나님의 구원이 있음을 선포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여러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보통명사가 아니다. 약 2000년 전 이 땅에 인간으로 강림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명사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만 붙은 독보적 이름이다. “옛날 임금 다윗 성의 낮은 마구”에서 태어나고, 나사렛이라는 시골 동네에 살고, 서른 세 살의 나이에 골고다 언덕에서 인류의 죄 문제 해결을 위해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고, 죽고 부활한 예수, 그분이 유일무이의 구원의 길이다.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 뿐”인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과 인간을 중재하는 유일의 구원자이다.


교황 프란치스코께 묻는다. 예수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 곧 로마가톨릭교회의 만인보편구원주의를 폐기한다고 선언할 용기가 없는가? 이단 사설(邪說)을 버리지 않겠는가?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한 ‘선전포고’를 취하하고, 성경과 사도적 복음에 충실한 역사적 개신교회와 일치를 도모하지 않겠는가?


<계속>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전 고신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1989-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