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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표절, 어떻게 피할까?
논문 표절이 사회적 주제로 자주 부각되고 있다. 국회 청문회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여러 해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관련된 모 국회의원의 논문표절, 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모 국회의원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등, 정치인, 관료, 법조인, 연예인, 방송인 등 적잖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논문 표절이 계속 확인되어 왔다. 최근의 신임 교육부장관 내정자의 논문표절과 대필은 예사롭게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 교육을 책임질 수장이 표절의 명수이면, 대한민국은 표절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다. 공직자의 논문 표절을 시비하는 그 국회의원들이 논문 표절에 휘말리고 있다.
표절은 타인의 업적이나 성과를 가로채는 동시에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자신의 창의적인 생각을 전개할 기회를 차단하여 자기발전을 가로막는다. 의도적 표절뿐 아니라 선행된 연구를 아무런 의식 없이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비의도적 표절과 자신이 이미 발표한 글의 전부 또는 일부를 마치 전혀 새로운 글 또는 다른 글인 것처럼 발표하는 자기작품 표절도 도덕성에 저촉된다.
기독교계 안에 성행하는 표절도 심각한 상태이다. 목회자들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은 유독 심한 것으로 보인다. 강남의 어느 목사는 박사학위 논문 표절로 몸살을 치렀다. 몇 개월 휴직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그 목사의 박사 학위논문 표절을 밝혀 낸 모 대학교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도 표절 범벅이라는 소문도 있다. 후임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조사를 은밀히 지시한 전임 목사의 설교는 표절에서 자유로운지 따져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표절(剽竊 : Plagiarism)은 남의 시, 노래, 문장, 학설, 주장, 글 따위를 자기의 것인 양 발표하는 일이다. 남의 것, 남의 성과(타인의 주장, 사상, 견해, 관점, 이해, 표현 등 포함)에서 빌려온 것을 마치 자기가 새롭게 발견한 것처럼 제시하는 도록(盜錄), 도작(盜作)이다.
한국의 베껴쓰기 문화는 한국문화의 바탕인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 베낄 뿐 창작하지 않는다)이라는 선언과 직결되어 있다. 글자 몇 개, 몇 문장, 몇 문단을 옮겨 적는 것 만이 아니라 주장, 개념, 사상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겨 적어 마치 자기의 말인 것처럼 적는 것도 표절이다.
비평적 사고 능력이 구축되면 표절은 자연히 사라진다. 최덕성,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쓰기> (서울: 지식산업사, 2005)는 생각하기, 논지, 비평적 사고, 논리적 오류 등을 다룬다. 영어의 CRITICAL THINKING에 해당하는 책이다. "표절 피하기"를 지도하는 책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많은 대학교들이 여러 해 동안 교재, 추천도서, 필독서 등으로 사용해 왔다.
아래는 "표절"을 다룬 위 책 372-374에서 옮긴 글이다. 이 책 제23장은 방증은 논한다. 인증, 간접인용, 직접인용, 재인용, 표절, 주석, 참고문헌 등에 대한 설명은 표절을 피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제23장 방증
23.2 표절
디즈니 월드가 가까이에 있는 도시인 미국 플로리다 주 템파 시에는 8개의 낱말로 구성된 긴 도로명이 있다. “The Reverend Doctor Martin Luther King Junior Boulevard.” 내가 본 도로 명 가운데 가장 긴 것이다. 인권 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을 기념하는 도로명이다. 킹은 보스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후에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한 것이라 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표절한 논문을 근거로 상아탑 최고의 학위를 수여한 보스턴대학교도 적잖은 수모를 겪었다. 표절의 정도가 심했던 것 같다. 킹이 학자가 아니기에 망정이지 학자로 활동하고 있었다면 이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표절(剽竊 : Plagiarism)은 남의 시, 노래, 문장, 학설, 주장, 글 따위를 자기의 것인 양 발표하는 일이다. 남의 것, 남의 성과(타인의 주장, 사상, 견해, 관점, 이해, 표현 등 포함)에서 빌려온 것을 마치 자기가 새롭게 발견한 것처럼 제시하는 도록(盜錄), 도작(盜作)이다.159
타인의 글이나 생각을 이용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인용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하자가 없다. 아래의 예문은 MLA Handbook for Writers (l992)가 소개하는 표절에 관한 설명이다.
[에밀리 딕킨스의 초기와 후기 시의 주된 관심, 곧 지배적인 주제는 계절성과 자연성, 죽음과 사후의 문제, 사랑의 유형과 형상 그리고 신적 예술로서의 시로 정의될 수 있다.]
이것을 인용문으로 처리하지 않고 만약 다음과 같이 옮겨 적으면 표절이다.
[에밀리 딕킨스의 시의 주된 주제는 자연과 계절, 죽음과 사후세계, 사랑의 다양한 유형과 단계들 그리고 신적 예술로서의 시 그 자체이다.]
그러나 아래같이 쓰고 그 출처를 주석에서 표기하면 표절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에밀리 딕킨스 시의 중심 주제는 자연, 죽음, 사랑 그리고 신적 예술로서의 시를 포함한다.1 [1William M. Gibson and Stanley T. Williams, “Experiements in Poetry: Emily Dickinson and Sidney Lanier,” in Liter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ed. Robert E. Spiller et al. (New York: Macmillan, 1974), I, 906.]
표절을 피하려면 독서카드를 작성할 때나 자료를 문서 작성기에 입력하는 단계에서 그것이 인용인지 자신의 부연 설명인지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잘 알려진 것은 인용부호를 사용하여 알리는 것만으로 족하다. 아래 예문의 굵은 글자 부분은 인용이면서도 출전을 밝힐 필요가 없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를 근세철학의 아버지로 만든 그 근대성은 그가 외친 유명한 명제에 내재해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환원하자면 나의 존재성을 보장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다. 나의 사유가 곧 나의 존재를 보장한다. ‘나’라는 존재는 생각의 주체(res cogitans)이다. 이 사상은 “하나님이라는 보편자가 개별자를 존재하도록 하기 때문에 인간이 존재한다”는 중세기의 해묵은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생각의 주체로서 ‘나’를 외친 데카르트의 사상은 실로 혁명적이었고, 당시의 권력을 쥐고 있었던 성직자들에게는 참으로 건방진 소리였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진정 서유럽 역사에서 근대적 자아관의 최초의 한 표현이었다.]
독자에게 잘 알려진 격언, 문구, 인용구 등에는 주석이나 출전이 필요치 않다. 짧은 시의 행, 잘 알려진 작가의 ‘풀 네임’과 신분 등은 밝히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성경전서: 신약성경』, 서울: 대한성서공회, 1962, p. 146),” “북한은 굶주리는 국민이 부지기수인데도 불구하고 남침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조선일보』, 2002, 5. 2)” 등의 친절한 전거 표기는 번거롭기만 하다.
1. 저는 한국교회의 성숙의 측도는 사실 논문의 진실성 여부와 직결된다고 봅니다.
목회자의 정직과 영성이 논문에 고스란히 담겨야 한다고 봅니다. 신대원 졸업논문부터 표절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요즘은 졸업 시에 논문을 안 쓰는 경향이 있다는데 아쉽습니다.
2. 논문지도교수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절대 대충 보고 싸인해서는 안됩니다.
저의 경험에 의하면, 첫 번째 제출한 글(first draft)에서 지도교수가 각주에 인용된 페이지의 번호를 붉은 볼펜으로 고쳐 놓은 것을 보고 기절할 뻔 한 적이 있습니다. 각주까지 학생이 인용한 책을 다 찾아보고 페이지 번호가 잘못된 것을 교정해 주는 지도교수가 한국에 있을까요? 일전에 미국 미드웨스트한인신학교 E-Learning 교수로 가르칠때 D.Min.과정의 논문 학생을 지도한 적 있어요. 저의 지도교수님에게 배운데로 했더니 그 학생(목사님)이 교무처에 신청하여 지도교수를 바꿔버리더군요. 학교는 제게 물어보지도 않고 지도교수를 바꿔줬고요. 참으로... 한국계 신학교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 그러니 그런 분들이 사역할 때 그 지성적 영성이 어떠하겠습니까?
3. 신학생/목회자들은 논문을 쓸 때 표절의 유혹을 받는다면 스스로 <거짓 선지자>임을 깨닫고 회개할 것이며, 교회와 성도를 위해서 목회를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가야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배수진을 치고 공부하기 바랍니다.
저도 논문 쓸 때 탐나는 도표나 차트, 통계표 등 많이 있었지만 모두 삭제하고 스스로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개혁주의 신학도가 논문에서 정직하지 않고 깨끗하지 않음은 신학교 시절 컨닝하면서 시험치고 교회에서는 진리를 외치는 것과 진배없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온갖 무시를 다 당하는 것은 <자업자득> 아니겠습니까? 정말 한심합니다.
4. 모든 표절은 교수와 학생의 공동범죄입니다.
교수님들은 정신차리고 지도하셔야 합니다. 외국에서 제대로 배우셨다면 그대로 하셔야 합니다. 대충 넘어가 준 학생들은 목회도 그렇게 대충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저는 믿습니다. 논문표절은 교수와 학생의 공범이라고 말입니다.... 학생들은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교수님들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새벽기도를 못가시더라도 논문 체크는 밤새워하셔야 합니다. 교수는 글을 읽으면 어느 부분이 이상한지 금방 알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