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철의 치유사역
헤븐리 터치 미니스트리(Heavenly Touch Ministry)에 대한 교계의 평가
김영한 교수 (전 숭실대)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
머리말
성경적인 칼빈주의는 오늘날에도 성령의 역사(役事)가 일어나며 성령의 은사(恩賜)도 주어진다고 믿는다. 이는 성경의 증언이며 역사적 교회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오늘날 일어나는 모든 성령 은사운동이 성경적이며 신학적으로 건전하다는 데는 유보적 판단을 한다. 성경적 칼빈주의는 사도시대와 함께 모든 은사가 중지됐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오늘날은 어떤 은사라 하더라도 사도성이나 정경적 계시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 뿐이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사도 요한은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시험하라”고 하였다. 필자는 이 글에서 오늘날 대표적인 3가지 성령 은사운동의 케이스를, 여태까지 제시한 영성신학적 기준에 따라서 조심스레 신학적 평가를 시도했다. 국외의 케이스로 토론토 블레싱운동과 신사도운동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신중한 논구를 했다. 이제 국내의 케이스로 손기철 장로의 헤븐리 터치 미니스트리(Heavenly Touch Ministry)에 대해 조심스러운 평가를 하고자 한다.
필자의 견해는 하나의 신학적 성찰에 불과하다. 결단코 필자는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 나름대로 오랫동안 해온 하나의 연구를 제시하면서, 진실을 여러 독자들과 조심스레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혹시 오해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진실에 따라서 시정될 수 있다. 필자는 한국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운동을 비판적이기보다는 가능하다면 긍정적으로 보기를 원하며, 이 운동이 좋은 결실을 가져서 복음 선교와 교회 성장에 이바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1. 손기철 장로 사역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
한국교회에는 1907년 회개의 대각성운동이 있었고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가 있었다. 그리고 정통 교단들(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에서 인정하는 신유사역자들이 있었다. 1920년대 김익두 목사, 1930년대와 해방 후 이성봉 목사, 1970년대 장로교의 현신애 권사, 감리교의 변계단 권사의 신유 사역 등이다. 그리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조용기의 치유사역에 관하여 인정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2000년대 한국의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에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초자연적 치유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손기철이 치유사역자가 되기까지의 내력은 그의 저서 여러 곳에 간간이 나타나지만, 『고맙습니다 성령님』 이라는 책에서 비교적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초판 98쇄, 서울: 규장, 2012) 간단히 살펴 보면, 그는 건국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나와서 미국 메릴랜드 대학과 조지아 대학에서 공부했다. 조지아 대학 시절에 그곳 한인교회에서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며, 거기서 성령 체험을 하고 방언도 하였다. 그 후 그는 박사학위를 마치고 모교에 돌아와 가르치면서 온누리교회(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에 나가게 되었고, 거기서 창조과학회를 알게 되어 열심히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99년에 교회의 임명으로 온누리교회 내적치유사역팀에 들어가 봉사하다가, 자기 자신이 내적으로 치유를 받고 성령의 은혜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9월에 지도 목사의 명으로 자신이 안수하며 치유기도를 시작하며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손기철은 2004년에 온누리교회 담임목사(하용조)의 허락을 받아 교회 안에서 월요치유집회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큰 반응이 없었으나 차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는 치유사역과 교수직을 겸하는 힘든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자신이 정말 치유사역자로 부름을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2005년에 안식년을 내어 미국에 가서 여러 은사 집회와 치유집회를 다니다가, 자기를 알지 못하던 어떤 치유사역자에게서 부르심을 확인받고 돌아와 다시 치유집회를 계속하게 되었다. 2008년에는 온누리교회를 떠나 독립하여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선한목자교회(담임 유기성 목사)에서 장소를 빌려 월요치유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그가 이끄는 헤븐리 터치 미니스트리(Heavenly Touch Ministry)는 한국독립교회및선교단체연합회 소속으로 되어 있다(손기철, 『기대합니다 성령님』 초판 11쇄, 서울: 규장, 2011, 16쪽 이하).
1) 김지찬 교수의 평가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에 대하여 연구해온 총신대 교수 김지찬은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손 장로의 치유사역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다. 손 장로에게 이는 ‘성령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정보’이다. 손 장로는 자신이 치유자가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이 치유자이심을 강조한다. 그는 단지 지식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를 치유하길 원하시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느낌으로, 봄으로, 읽음으로, 생각함으로, 말함으로, 꿈으로, 경험으로 ‘지식의 말씀’을 받는다고 한다.”(크리스천투데이, ‘왕의기도’ 연구자 총신대 김지찬 교수 인터뷰, “손기철 장로, 은사중지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입력: 2011.08.25. 07:00).
김지찬은 손기철 치유사역의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먼저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첫째로 성령의 임재와 사역에 대한 갈망을 부추기고, 둘째 교회의 민주적·민중적 분위기를 확산시키며, 셋째 기적과 치유등 신비한 것에 대한 관심을 제기하고, 넷째 중산층 기독교인에게 성령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성령 은사에 부정적인 태도를 지닌 전통적인 한국교회에 경종을 울리는 측면이 있다. 특히 상당수의 소위 ‘정통주의자’들은 말 뿐이지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를 열렬히 갈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위 정통주의자들은 예언의 은사가 중지되었다는 점만을 강조할 뿐, 수천 년 전에 히브리인들과 초대교회에 주었던 성경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왜 계시가 되는지를 생동감 있게 드러내지 못함으로써 일반 교인들의 갈증을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장로교회 교인들은 손기철 장로가 주장하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임재와 사역에 대한 갈망을 회복하면서 살아야 한다.”(크리스천투데이, ‘왕의기도’ 연구자 총신대 김지찬 교수 인터뷰, “손기철 장로, 은사중지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2011.08.25 07:00).
김지찬은 손기철의 치유사역에 있어서 우려할 만한 사항, 단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 문제는 첫째로, 기적이 과연 일어난 것인지 확인할 수 없고, 둘째로, 기적적 현상들이 항상 성령의 역사인지 알 수 없으며, 셋째,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 주관적인 직접 체험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고(김지찬, “손기철 장로의 신비주의 은사(치유) 집회, 어떻게 볼 것인가?” 총회신학부 편, 『바른 영성에 대한 개혁주의 신학적 조망』,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신학부, 2011, 302-308.), 넷째로 은사중지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기철 장로를 비롯한 은사주의자들은 칼빈주의가 오늘날 영적 은사는 완전 중지됐다고 믿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잘못이다. 칼빈주의는 사도시대와 함께 모든 은사가 중지됐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오늘날의 은사는 어떤 은사라 하더라도 사도성이나 계시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뿐이다. 또한 방언은 김우현 PD가 이야기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하는 은사가 아니다. 이미 후크마가 지적한 대로 예수께서도, 칼빈이나 루터도 방언을 한 적이 없다.”(류재광, ‘왕의기도’ 연구자 총신대 김지찬 교수 인터뷰, “손기철 장로, 은사중지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2011.08.25. 07:00).
이 비판적 기사를 읽고 그 모임에 직접 참가한 대전대 영문학과 외래교수인 송영옥 작가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체험담을 말하고 있다:
“통성기도가 진행되는 동안 손 장로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병명으로 열거하였다. 그 중 한 마디가 ‘오늘 저녁에 휠체어를 타고 온 그 사람을 성령님 치유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긴장되었다. 그 사람은 강대상 뒤쪽으로 들어왔고 손 장로는 볼 수도 없었을 것인데, 또 다른 사람이 왔는가… 등등 이러한 생각으로 잠시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다. 울부짖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왠지 마음이 찡해왔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데 내 마음이 왜 그렇게 아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모든 병든 이를 위해 함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손 장로는 통성기도를 중단시키고 마무리 기도를 드린 후 병을 치유받은 사람은 모두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까 그 휠체어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손 장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강대상으로 올라갔다. 손 장로는 그들을 안수하고 축복하였고 그날의 집회는 끝이 났다. 물론 나는 그 남자에게 일어난 기적이 김 교수 말대로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믿는 것은 ‘성령의 역사는 성경에 근거해 일어나는 것이고 예수의 생애 33년을 통해 계시된 로고스의 객관성을 드러냄’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드러냄은 로고스를 레마로 체험한 사람들을 통해서이다. 로고스(Logos)를 레마(Rhema)로 체험한 사람은 반드시 성경의 통제 하에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손 장로가 집회 도중 사용한 용어나 자신을 지칭한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을 못하겠다. 내 말의 의미는 김 교수가 지적한대로 그의 말이 ‘성령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정보’라든가, 자기 자신을 가르켜 ‘성령이 가르쳐주는 지식의 말씀을 받는 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게는 그러한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손 장로는 집회 내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머리로만 아닌 몸 전체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강조했다.”(송영옥, [기고] “그날, 손기철 장로의 집회 이야기, 총신대 김지찬 교수 인터뷰를 보고”, 크리스천투데이, 입력: 2011.09.15 06:58).
송영옥 작가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손기철의 치유사역은 성경에 근거하여 하고 있으며, 성경 말씀이 단지 과거의 종교 교과서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병든 자들을 고치고 위로하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전도에 공헌하고 있다. 손기철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치유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치유사역은 오늘날 신앙을 가진 자들과 아직도 믿음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성경 말씀 그대로 치유사역을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생동적인 체험을 가져다 준다.
2) 박영돈 교수의 평가
고신대 신대원 교수인 박영돈은 2010년 2월 22일 손 장로의 치유집회에 참석하여 그가 본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8시가 다 되자 손 장로가 나와서 설교를 시작했다. 전에 왔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손 장로가 설교하는 도중에 어디가 아픈 사람이 지금 치유를 받았다는 감동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다고 선포했다. ‘오른쪽 복사뼈가 아팠는데 통증이 사라진 사람은 나오라’고 하니 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왔다. 손 장로는 그를 단상 앞에서 뛰게 했다. 그리고는 젊은이를 향해 ‘주님, 영광으로 임하소서! 더! 더! 더!’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니, 그가 뒤로 벌렁 넘어져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자 회중의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다소 진부한 설교가 계속되는 동안 지루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다시 열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은 말씀의 능력이 아니라 신기한 현상의 위력이었다. 손 장로는 매번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치유되거나 치유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혹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다’고 말했다. 이번 집회에서 호명한 병자들은 다음과 같다. 치매가 있는 이, 얼굴에 흉터가 있는 이, 오른쪽 다리의 정맥류에 이상이 있는 이, 자궁근종, 안구건조증, 생리통, 변비, 폐기종, 식도염으로 고생하는 이, 오른 쪽 옆구리에 통증이 있는 이들이다. 손 장로가 그런 이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자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일어났다. 그는 또 다시 그들을 향해 ‘성령님, 임하시옵소서! 더! 더! 더!’ 하고 외쳤다. 그러자 어떤 이들은 무슨 능력에라도 압도된 것처럼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거나 쓰러져 버렸다.”(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한국교회 성령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88-89).
여기서 박영돈은 손기철 치유사역의 전시성과 위험성을 지적한다. 종교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있다. 신의 모습이 종교라는 매체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스러운 존재를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사역자는 이 장면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신적 존재로 착각하는 위험에 노출된다. 여기서 사역자는 하나님과 직통하는 신비스러운 초자연적인 영험한 존재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사역자는 청중을 압도하고 교묘히 조종할 수 있는 신비로운 도사(道師), 영매(靈媒) 내지 마술사(魔術師) 같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손 장로는 설교가 끝난 후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다. 그리고는 아무도 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다. 기도도 하지 말라고 했다. 갑자기 교회당 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는 한 손을 들고 ‘성령님, 임하소서! 더! 더! 더!’라고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용했던 회중 가운데 일어섰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퉁퉁거리며 들려왔다. 손 장로가 ‘성령님, 더! 더! 더!’라고 말할수록 자리에 주저 앉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쪽에서는 어떤 여자가 괴성을 지르며 히스테릭하게 울부짖었고, 저자가 앉아있던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자리의 한 할머니는 온몸을 뒤흔들며 발작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켰다. 여기저기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이 집회의 트레이트 마크인 ‘하늘의 터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한국교회 성령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90-91.).
여기서 박영돈은 손 장로가 행하는, ‘성령님, 임하소서! 더! 더! 더!’라는 읊조리는 행위가 성령이 주권적으로 역사하는 ‘하늘의 터치’라기보다는 인위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인간적인 터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성령의 사역보다는 사역자의 전시행위가 더 부각되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치유사역자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시작하다가,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여기에 타성이 생겨 처음의 감격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유지하기 위한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지닌 연약성이고 한계성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종교가 지니는 취약성이라는 점이다.
3) 현요한 교수의 평가
장신대 신대원 교수 현요한은 2012년 4월 기독교학술원 30주년 기념 영성포럼에서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에 대한 연구발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주기도문의 구절을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하나님 나라 신학에 대하여는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모든 사람의 치유는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된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임했는데, 하나님 나라에는 질병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치유는 당연한 질서일 뿐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에는 질병이 없습니다.’(손기철, 『고맙습니다 성령님』, 128.) 그러나 정말 모든 사람의 질병은 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이미 해결되었으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치유를 원하시므로, 이제 우리는 단지 치유를 믿고 나가기만 하면 모든 질병은 치유되는 것인가?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의 모든 질병을 모든 시점에서 다 보장하는 것인가? 그 자신도 자신의 집회에서 많은 사람의 병이 낫지 않은 채로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위의 책, 234).
그래서 그 자신도 ‘하나님, 왜입니까?’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질문이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날마다 더 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위의 책, 235). 여기에 얼마간 혼동스러움이 있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질병을 고치시기 원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고, 질병이 생긴 데에는 어떤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한다”(현요한,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과 신학에 관하여”, 기독교 학술원 30주년 영성 포럼, 2012. 4.6. 자료집. 14.).
현요한은 손 장로가 모든 질병이 치유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 장로 자신도 그의 치유사역에서 병을 고치지 못하고 돌아가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손 장로가 모든 질병이 치유된다고 믿는 이유는 그의 치유사역이 실현된 하나님 나라론에 근거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손 장로의 실현된 하나님 나라론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 차원을 도외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손 장로의 ‘왕의 기도’론도 이러한 실현된 하나님 나라론에 근거하며, ‘왕의 기도’는 간구가 아니라 하나의 선포로 실행된다.
현요한은 다음과 같이 손기철의 치유사역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생소한 모습을 지적한다.
“그가 소위 ‘왕의 기도’를 하는 방식은 매우 생소하다. 그는 집회에서 병자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한 후, 그야말로 선포를 감행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질병은 떠나갈지어다, 치유될지어다!’ 그리고 그는 집회 중에 치유받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거나 손을 들어 보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기도한다. 그 기도 방식은 더 생소하다. 그는 그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거나 혹은 안수를 하면서 기도한다. ‘성령님! 더, 더, 더, 더… touch!’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거기서 쓰러진다. …이런 식의 기도는 마치 손 장로가 성령님을 마음대로 명령하고 주장할 수 있는 존재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현요한, “손기철 장로의 치유사역과 신학에 관하여”, 21.).
현요한은 이러한 ‘왕의 기도’는 기도자의 신격화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손 장로 사역에서 자기 신격화 조짐은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그 위험성은 내재하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맺음말: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허한 자기성찰을 통한 교만과 욕심 죽이기(mortification) 요청
손기철 장로는 그의 치유사역을 성경에 근거하여 하려고 하고 있으며, 성경 말씀이 단지 과거의 종교 교과서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병든 자들을 고치고 위로하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전도에 공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 자체가 사람들이 믿고 구원 얻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기적이 과연 일어난 것인지 확인되는 것이 쉽지 않고 성령 기적적 현상들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항상 성령의 역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려되는 것은 손기철 장로가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 주관적인 직접 체험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다. 그리하여 손기철 치유사역의 전시성과 위험성이 지적된다. 치유사역자로서 그가 하나님과 직통하는 신비스러운 초자연적인 영험한 존재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든 치유사역자들이 당면하는 문제다. 사역자로서 그가 청중을 압도하고 교묘히 조종할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같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의 치유사역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생소한 모습이 있는데, ‘왕의 기도’는 기도자의 신격화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현재 손 장로 사역에서 자기 신격화 조짐은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그 위험성은 내재하고 있을 수 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은 오늘날 모든 치유사역자들에게 해당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여기서 치유사역자로서 하나님 말씀 앞에서 끝임없는 자기 비우기와 하나님 앞에서의 겸허한 자기성찰을 통한 자기 교만과 욕심 죽이기(mortification)가 요청되는 것이다.
손기철의 대표 유튜브 동영상 10개를 보면, 보여서는 안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글을 발표하시는 저명한 학자들께서 그만한 수고도 안하시고, 고래부터 반복하던 전혀 성경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주장들만 하시면 낮은 우리도 설득이 안되는 데 그들 기가 죽겠습니까?
제발. 그들 은사의 줄기의 기원이 어디인지 그런 것 좀 심도 깊게 연구하고, 또 은사를 경험하거나 그런 현장과 밀접한 학자들께서 연구, 발표 하시면 합니다. 그래야 객관성의 기본이라도 갖추는 것 아닐까요?
신유나 축사현장을 아예 본 적도 없거나, '성경이 가는데까지 가고~'라면서 '사도시대 이후 은사 폐지'를 주장하거나, 자기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성경에 있어도 못믿거나 무조건 부정하는 도마같은 학자들의 '은사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 주장이 무슨 권위가 있을까요? 그게 고학력시대 성도에게 무슨 실질적인 답이 되겠습니까?
'알파코스'가 온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가도록도, 그들의 애찬 음료에 '무언가를 타는' 기본 사실도 모른 체, 현장이 무질서하고 아름답지 못하다, 강사를 너무 추종한다, (성경에 있는 일도 부정하면서) 성경에 없는 현상이라는 이유만 되읊는 것은 이젠 그만하시면 좋겠습니다.
위의 학자들을 존경 안하는 것이 아니고, 현장을 알고 충분히 연구한 답을 주십사는 것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