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주일
이승구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말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전혀 변화가 없으므로 우리는 매주의 마지막 날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유대인들과 안식교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안식일 계명과 관련해서 다른 어떤 변화를 시사하는 말이 성경에 없으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이전의 안식일을 우리의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속과 그 구속 사역이 가져 온 변혁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견해에 반박하면서 왜 “안식일에서 주일”에로, 또는 “유대교적 안식일에서 기독교적 안식일”에로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 일의 함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안식일에서 주일에로의 변화의 내용과 그 의미
성경에 언제부터는 더 이상 유대교의 안식일을 지키지 말고 이제 새로운 날을 주일(주의 날)로 하라는 명시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유대인의 안식일을 우리의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속죄 사건과 그의 부활이 가져다 준 구속사적인 변화를 성경이 매우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제목 아래서 안식일에서 주일에로의 변화가 신약에서 아주 분명히 나타나고 있음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십자가에서의 구속과 부활이 구속사적으로 가져다 준 전환과 변혁
십자가와 부활은 그저 역사 가운데서 일어난 사건일 뿐만 아니라, 구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 사건이기에 이것이 구원 사건이라고 불리는 것도 그렇게 지나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부활은 신약 성경의 저자들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잘 의식하고 있었듯이 새 창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는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도 종말론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안식후 첫날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점차 이날이 우리 주님의 “부활에 대한 지속적 증언”(a standing witness)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의 구속사에서의 성취적이고 종말론적 의미를 깊이 생각한 이들은 더구나 신약 성경의 기록하게 하시는 성령의 영감(inspiration) 가운데서, 이제 구속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더 이상에 유대교적인 안식일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비교적 날카롭게 생각하지 않던 다른 초기 교회 지도자들에 비해서 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던 바울은 이 문제를 아주 분명히 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율법의 금지 조항들과 함께 유대교적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貶論)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
이는 적어도 바울의 가르침과 그에 근거한 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유대교의 안식일이 유대교의 다른 절기들과 함께 지켜지지 않았고, 이는 다른 율법의 요구들과 함께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율법의 성취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해줍니다. 따라서 십자가와 부활은 이제 예배 의식과 예배하는 날과 예배의 방법 등 모든 점에서의 폭 넓은 변화를 가져오게 한 가장 놀라운 구속사적인 사건입니다.
2) 우리 주께서 부활하신 날이 “주의 날”이라는 의식의 생성과 보편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구약의 안식일이 지향하던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서 모든 날이 다 안식일이 된 것일까요? 그래서 이제는 모든 날이 다 같은 날로 여겨지는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일주일 중 하루를 “주의 날”로 구별하여 생각하는 의식이 있었고, 점차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의 날”(主日)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의 가장 현저한 예가 밧모섬에 있는 요한의 다음과 같은 진술입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10). 만일 모든 날을 다 주의 날이라고 생각하였다면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주일 중 어느 하루가 주의 날로 지칭된 것인데, 이는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3) 안식후 첫날, 즉 주의 날에 모여서 예배하는 일의 보편화
이날 모여 예배하는 일은 요한 계시록에서 이 날을 “주의 날”로 언급한 것 보다 더 오래 된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에는 교회가 안식후 첫날 떡을 떼려고 모였다는 시사가 나타나 있습니다(행 20:7).
고린도 전서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예배하는 일이 매주일의 첫날, 즉 안식 후 다음 날이었음에 대한 시사가 있습니다: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 이 모든 일들은 모두 우리 주께서 부활하신 날인 안식후 첫 날, 즉 주의 날에 예배하는 일이 보편화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 기록 이후 시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초기 교부들은 주일을 예배일로 특별하게 여겼고, 321년 콘스탄틴 대제의 칙령에 의해서 주일은 쉬는 날로 여겼고, 4세기의 유세비우스(Eusebius)에게서는 안식일 예배로부터 주일 예배로의 분명한 전환에 대한 명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세기 이후에는 이날 예배하는 것을 더 잘 보호하고자 주일에 쉬도록 교회법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확연히 나나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초기부터 기독교회는 주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일에 모여서 예배하여 온 것입니다.
2. “주의 날”과 “기독교적 안식일”
이렇게 안식 후 첫날을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날”이라고 불렀고, 그런 뜻에서 이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하였습니다. 안식 후 첫날 모여 공예배를 하던 처음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에 작용했던 여러 요인들 가운데서 이 날 주께서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는 이날 우리의 주님께 경배한다는 의식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안식일에 성전에나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예배하는 일이 사라지게 되었고, 점점 더 유대교적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이루신 하나님의 뜻에 반(反)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스도 잘 표현하는 바와 같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처음에는 두 날을 다 지키기 시작했을 것이고, 점차 주의 부활의 날의 거룩함이 비할 데 없이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점들을 깊이 의식하게 된 사도와 사도적 교회는 이제는 더 이상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여 온 새로운 피조계 안에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모든 날들이 다 같은 날들입니까? 성경에서는 한편으로 우리 주께서 이미 우리에게 구약의 성도들이 고대하던 안식이 주어진 것으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에 사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것이라고 합니다(히 11:40).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실제적으로 신약에 사는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던(히 11:39) 구약의 믿음의 영웅들보다 더 놀라운 위치에 선 것이고, 하나님 나라[天國]가 임한 이 상태에 은혜로 이미 이 하나님 나라[天國] 안에 들어 와 살고 있는 우리는 비록 지극히 작은 자들이기는 하지만 구약의 입장에서 가장 큰 자인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마 11:11).
이렇게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성도들이 바라고 고대하며, 매 안식일마다 그런 상태가 우리어 지기를 고대한 안식의 상태 안에 들어 와 있는 것입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히 4:3). 그리스도의 구속이 이런 안식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온 안식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것도 또한 분명히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라고 말하며, 또한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히 4:11)라고 권면하기도 합니다.
이는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그 이유를 밝힘으로, 이는 우리에게도 안식과 관련한 ‘아직 아니’의 측면이 있어서 지금도 힘써 안식에 들어 갈 일이 남아 있는 것처럼 부지런히 주의 뜻을 순종해 가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여기서 이미 안식에 들어 와 있으나 또한 아직 온전히 들어가지는 않은 자들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아직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던 자들이었으니, 이는 안식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재림 이후의 성도들의 상태는 온전히 안식에 들어간 자들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 이전의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으나 “아직 아니”의 측면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안식을 가져다주시는 방식이 바로 이중적 성취의 방식, 즉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말미암은 구속 사역에서 이루시고,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그 사역의 극치에 이루게 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재림 때까지는 안식 후 첫날이 “주의 날”이라는 의식을 소개해 줍니다. 그런 뜻에서 모든 날들이 다 주의 날이기는 하지만 안식 후 첫날, 우리 주께서 부활하신 날은 이제 그리스도 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는 특별한 날로 기념되는 것입니다. 이날은 특별히 “주의 날”이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자들의 이른 바 “기독교적 안식일”(Christian Sabbath)인 것입니다.
보스가 잘 말하고 있듯이 “십계명에 편입되지 않은 제 4계명과 관련된 다른 율법의 금지들은 신약 이후에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것들(출 16:23; 34:21; 35:3; 민 15:32; 렘 17:21; 암 8:5)”입니다. 이는 토지의 안식년, 희년 등의 규례를 다 포함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이 모든 것이 그 충분한 의미에서 성취되었으므로 오늘날에는 이러한 것들에서 면제”되는 것입니다. 단지 창조 때 제정된 안식일이 이제 주일로 변화하여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것입니다.
3. 제4계명을 지키는 우리의 자세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온 안식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의 날은 이제 그 안식을 준비하고 그것을 향하여 지향해 나아가던 구약에서와는 달리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안식을 기념하며 즐기는 의미를 지니며, 그 안식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안식을 이루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안식의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즐겨 가야만 합니다.
또한 그 터 위에서 그 안식을 극치에 이르게 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기대를 가지고 그 안식의 극치를 가져다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신약 성도들이 항상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의식인데, 이를 집중하여 드러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인 주일에 우리가 행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날도 그러하지만 주일에는 우리에게 존재와 새로운 생명과 그에 속한 모든 활동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서 그 창조와 구속의 주님께 전심의 경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런 공적인 예배(public exercise of worship)가 되어야 합니다.
그 경배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기리고 찬양하며, 그의 말씀을 듣고 깊이 묵상하는 일이 가장 필수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엄위와 영광에 대한 의식이 점증해 가야 할 것이고, 그에게 속한 백성으로서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 가야 할 일에 대한 사상이 분명하게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치는 말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미리 준비해서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되지 않도록 하고 공적 예배에 시간을 지켜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고 남는 시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보내도록 상세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엄숙한 공적인 예배 모임 사이에 혹은 그 후에 남는 여분의 시간은 [성경을] 일거나 묵상하거나 설교들을 반복하도록 하라. 특히 자신들의 가족들을 불러모아 그 날 들은 설교들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거룩한 예배 모임들과 성만찬에서 행하는 축복 기도들에 대해서 교육하고, 시편을 찬송하고, 병자들을 문병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고, 경건과 자선과 자비 등과 같은 의무들을 행함으로써 안식일이 기쁨의 날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은 율법적인 말로 여겨져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진 안식을 누리는 마음으로 양심의 자유를 가지고 더욱 주님의 뜻을 잘 이루도록 하려는 마음으로 준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나 예배모범도 이런 제안이 주일이 기쁨의 날이 되도록 하려는 제안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의 깊은 정신을 생각하면서 신약적 안식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제4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