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믿음은 참된 회개를 통한 성령의 역사로만 발생된다
진정한 회심은 옛자아가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회심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개종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회심이라는 단어는 회개와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만드셨을 때, 그에게는 의로움과 지혜와 지식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에게서 돌아서서 인간 자신을 위하여 살아갔다. 그래서 인간은 죄와 사탄에게 매여 살아간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즉 회심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죄와 사탄에게서 돌아서서 용서와 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우상적인 것을 모두 버리고 돌아서는 것이 필요하다. 회심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나아오는 것이다(살전 1:9). 이러한 회심에 대해 이사야 31장 6절에서 잘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바울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7-18). 즉, 회심이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분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깨달음으로써 알게 되는 것
이러한 회심은 회개와 믿음으로 구성되는데, 먼저 회개가 중요한 요소다. 회심에 있어서 회개는 먼저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죄를 깨닫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며, 따라서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깨달음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될 때, 그 죄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한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회개는 계명을 세우신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죄인들은 하나님의 심판 또한 깨닫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용서를 구한다. 이때 죄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겸손하게 용서를 구하게 된다. 이렇게 용서를 구하는 죄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은혜의 방편으로 정한 것을 알게 하신다. 죄인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은혜의 수단 앞에 복종하게 되며,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행 20:21). 이러한 회심의 역사는 철저히 성령의 역사다. 성령께서 죄인의 심령을 갱신시키시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요 16:8).
따라서 회심이라는 것은 옛사람이 죽는 것과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포함한다. 이 회심의 효과는 너무나 분명하다. 옛사람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죄와 악에 항상 기울어져 있는 성향이 그 속에 내재해 있다.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창 6:5).
그러나 새사람은 성령에 의해 갱신된 심령을 가지고 있다. 갱신되고 변화된 심령은 선한 것과 거룩한 것에 대해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새사람은 본성적인 것과 죄 된 것에 대항하게 되어 있다. 새사람은 죄 된 본성을 죽이고, 의로운 것을 더욱 증가시킨다(롬 6:4-6).
이렇게 진정한 회심은 그 효과가 분명하기 때문에 거짓된 회심과 구별할 수 있다. 거짓된 회심에는 거짓 회개가 있다. 단지 감정적으로 잠깐 슬퍼하는 것과 입술로만 하는 죄의 고백들은 회개가 아니다. 또한 양심이 잠깐 괴로워하다가 끝나는 것도 회개가 아니다. 이러한 회개는 위선자들이 하는 회개다.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서 잠깐 회개의 고백을 하다가 어려움이 물러가면 다시 죄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왕의 회개가 여기에 속한다. 그의 회개의 고백은 완벽한 것이었지만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으며, 그는 다시 범죄하였다(출 9:27). 단지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슬픔을 회개로 여기는 경우로서, 이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죄에 대해 후회했지만 회개하지는 않았다(마 27:3, 4). 즉, 자신의 죄를 깨달았지만 그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용서 받기 위해 그리스도께로 나아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자신의 죄에 대해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죄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옛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믿음에 있어서도 진정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을 구별할 수 있다. 진정한 믿음은 그리스도께 굴복된 증거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은덕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의지의 행위로 보고, 자기 스스로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의지를 드리면 구원받는다고 강조하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니다. 믿겠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드린다고 해서 변화된 삶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결심들이 약해지면 여전히 과거의 죄 된 삶을 살게 되며, 그 결심들을 다시 강하게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기의 의지일 뿐 믿음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에 의한 진정한 믿음이 발생되지 않은 상태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의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변화된 증거가 나타난다. 이미 그 성향이 변화되어 거룩한 삶에 대한 갈망이 그 속에 있다. 이러한 변화 없이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것을 믿음으로 간주하면 결코 그 사람에게서 새로운 삶의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 거짓 믿음의 또 다른 경우는, 어떤 감정적이며 환상적인 체험을 자신의 믿음의 근거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의 주관적인 체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체험의 느낌들이 사라지면 다시 옛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또한,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거짓 믿음의 유형이 하나 더 있다. 예수를 믿으면 건강해지고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듣고 교회를 다니는 경우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이 아니다. 이러한 잘못된 복음을 듣고 교회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새사람의 증거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죄와 싸우고 죄를 미워하는 것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상적인 삶을 교회 안에서 더욱 증가시킨다. 따라서 진정한 회심을 추구하고 그 참된 회심의 증거가 우리에게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 확인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강력하게 변화시키신 그 은혜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회심을 통하여 우리가 완전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회심했지만 아직도 부패된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죄와 싸우는 것과 의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것 역시 우리를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점진적이고도 지속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특정한 일회적 체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속도는 비록 더디더라도 지속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주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며 피하는 것이 참회개
옛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죄를 슬퍼하고 더욱더 죄를 미워하며 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는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우리의 죄 된 본성을 말한다. 우리의 본성은 죄에 기울어져 있다. 이것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옛사람이라고 부른다. 회개는 죄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새생명이 시작된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사 55:7). 그러나 신자들은 여전히 매일 죄를 짓기 때문에 계속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옛사람을 계속해서 죽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섰다고 해서 완전해진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전진해야 한다. 이렇게 전진할 때, 계속해서 우리의 육신과 충돌이 생긴다(갈 5장, 롬 7장). 이러한 충돌 가운데서 굴복하면 또 다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죄를 죽이는 것이 필요하다. 죄를 죽인다는 것은 죄를 파괴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한다(롬 8:3; 갈 5:24). 우리의 옛 본성은 단번에 죽지 않는다. 따라서 계속해서 죽여야 한다. 물론 이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의 은덕으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가능한 것이다.
죄를 죽이려면 먼저 죄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우리의 심령에 영적 습관으로 형성된다. 이를 위해 성령께서는 먼저 죄인에게 자신의 죄를 알게 하신다. 특히 도덕법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하신다. 그리고 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게 하신다(시 51:3). 성령께서는 계속해서 죄가 얼마나 비참하고 혹독한 것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 죄들이 하나님의 엄위에 대적한 것임을 알게 하신다(렘 3:13).
결국 죄인은 자신의 죄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게 된다(단 9:7; 약 4:9; 욜 2:13; 고후 7:10). 이렇게 죄에 대해 깨달은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들을 인정하게 된다(시 32:3, 5; 요일 1:9). 그리고 용서를 위해 간구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죄로 인한 비참함과, 죄를 없앨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처절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미워하게 되고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하는 영적 성향이 형성되는 것이다(렘 31:19).
이러한 성령을 통한 회심의 과정으로 인하여 진정으로 회심한 자에게는 죄를 미워하고 슬퍼하는 특성이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죄를 짓고서 단지 미안해하거나 섭섭해 하는 감정 정도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렇게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그를 죄로부터 떠나게 만든다.
죄를 죽이는 것은 죄를 더욱 미워하고 피하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죄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미워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롬 12:9; 시 45:7). 따라서 과거에 즐거워하였던 죄들을 이제는 미워하게 된다(시 119:104). 진정으로 죄를 미워하는 자는 죄를 피하려고 애쓴다. 그는 사소한 죄라도 피하려고 하며, 유혹으로 빠지게 하는 기회들에 대해 조심한다(딤후 2:19; 엡 5:4). 죄를 피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진정한 회개를 위해서는 먼저 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죄에 대한 지식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날마다 죄악 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의 부패성을 더욱 잘 알게 된다. 그래서 죄를 더욱 미워하게 되고 그것을 피하려고 애쓰게 된다. 이렇게 나 자신의 죄와 부패성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면, 그것을 피하기 위해 은혜에 의지하게 되며 성령의 도움을 구하게 된다. 이것이 경건의 첫걸음이다(엡 3:16).
-김홍만 목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한국청교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