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지속론/ 김영한
(크리스천투데이)
오늘날 영적 현상에 대한 분별 기준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
머리말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 영국의 청교도들, 그리고 미국의 청교도 신학자 에드워즈는 은사지속론(continuationism)의 입장을 가졌다. 은사가 사도 시대 이후 오늘날에도 지속된다는 견해는 은사지속론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contiuationism이다.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로는 후기 어거스틴(Augustine),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존 웨슬리(John Wesley),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찰스 피니(Charles Finney), D. L. 무디(Moody),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t), 마틴 로이드존스(Martin LLoyd-Jones), G. C. 버르카워(Berkouwer), 존 스토트(John Stott), 웨인 그루뎀(Wayne Grudem), 번 포이드레스(Vern S. Poythress), 존 파이퍼(John Piper), 박윤선, 차영배, 박봉배, 조종남, 김명혁 등이 있다.
그런데 20세기 미국 구(舊)프린스턴 장로교 신학자 워필드(B.B. Warfield)는 성령의 은사가 그쳤으며 오늘날 일어나는 기적은 가짜 기적(counterfeit miracles)이라고 하였다(B. B. Warfield, Counterfeit Miracles, 1918, Miracles: Yesterday and Today. Real and Counterfeit,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65.). 현대의 복음주의 신학자인 제임스 패커(J. I. Packer)도 사도 시대의 은사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미국 마스터스신학교 학장 존 맥아더(John MacArthur)도 2008년 저서 『무질서한 은사주의』에 이어 2013년 저서 『다른 불』에서, 오늘날 일어나는 은사들이 사이비요 “다른 불”(Strange Fire)이라는 사실을 주장하였다(John MacArthur, Strange Fire: The Danger of Offending the Holy Spirit with Counterfeit Worship, Thomas Nelson Publisher, 2013, 『다른 불』, 생명의말씀사, 2014, 12-23).
오늘날 존 월부어(John Walvoord) 등 세대주의 신학자들을 비롯하여 워필드의 견해를 계승하는 일부 개혁정통주의자들이 은사중지론(cessationism)의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성령 은사가 사도 시대 이후에는 중지되었다는 견해를 말한다. 영어로는 cessationism이란 용어의 번역은 은사중지론, 은사중단론, 은사종료론, 은사종언론 등 다양하다. 필자는 은사중지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구 프린스턴 조직신학자 워필드의 입장에 동의하여 은사중지론을 주장하는 학자로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안토니 후크마(Anthony Hoekema), 존 월부어(J. F. Wolvoord),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노만 가이슬러(Norman Geisler), 리처드 개핀(Richard Gaffin), 로버트 레이몬드(Robert Reymond), 박형룡, 신복윤, 정성구, 이종윤, 서철원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은 성경적이기보다는 그들의 신학적 편견에 기인한다. 특히 찰스 핫지(Charles Hodge)와 워필드 등의 구(舊)프린스턴 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부 한국 장로교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러한 신학적 편견에 집착하여, 초대교회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령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시키는 잘못에 빠진 것이 사실이다. 은사중지론(cessationism)의 거두(巨頭)인 워필드가 유신론적 진화론자(theistic evolutionist)였다는 사실은, 세상사에 대하여 초자연적 개입을 인정하기보다는 오로지 다윈 진화론의 적자생존 법칙에 맡기려는 그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 패커는 성경무오론을 강력히 주장한 워필드가 진화론 논쟁과 관련하여 역설적으로 유신론적 진화론을 천명하였다는 사실은 납득이 어렵다는 점을 들면서, 이 점에서 워필드가 엄격한 복음주의라고 보기 힘들다고 언급하고 있다[Alister E. McGrath, J. I. Packer: A Biography, 신재구 역, 앨리스터 맥그래스, 『제임스 패커의 생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4, 336와 331p 참조)]
19세기의 위대한 복음 전도자 찰스 피니(Charles Finney)와 드와이트 무디(Dwight Moody)는 은사 중지는커녕, 그들의 전도의 삶 속에 하나님의 능력에 압도되는 체험을 하였다. 피니는 하나님의 능력에 압도되는 경험을 “흘러 넘치는 사랑의 물결”이라고 하였다. 무디는 뉴욕에서 경험한 하나님 임재의 체험을 “무척이나 성스러운 체험”이라고 묘사했다. 무디는 이 체험 후에 설교 내용은 전(前)과 별다를 바 없었으나 “수백 명의 사람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들은 19세기 복음 전도자들로서, 저들의 전도 집회나 신앙 생활에 일어난 성령 은사의 지속 사실을 놀랍게 증언하고 있다.
18세기 미국의 칼빈주의 목회자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가 목회했던 뉴잉글랜드의 노샘프턴(Northampton)에 크나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에드워즈는 대각성 운동을 관찰하면서 성령(Holy Spirit)의 역사(役事)만이 아니라 악령(evil spirit)의 역사도 여기에 동반되는 것을 경험하였다[George M. Marsden, A Short Life of Jonathan Edwards, (Grand Rapids: Eerdamns, 2008), 정성윤 역,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시대』, (서울: 복있는 사람, 2009), 137-161.)]. 그리하여 신자들에게 임재하는 영들의 분별을 위하여 쓴 유명한 저서가 『신앙과 정서』(Religious Affection)라는 영적 분별의 고전이다. 에드워즈는 은사지속설을 우리들에게 증거해준 개혁주의 신학자요 목회자다.
1. 초창기 한국교회의 은사지속론
한국교회는 130여년 짧은 역사를 지녔으나 1904년 캐나다 감리교 선교사 하디(Robert A. Hardie, 1865-1949)를 통한 원산 감리교 부흥과 1907년 북장로교 선교사 방위량(William Blair)과 장로 길선주를 통한 평양 장대현 장로교회의 대부흥 운동을 통하여, 성령의 지속적 역사를 공교회적으로 경험했다. 평양에서 시작된 성령의 역사는 원산, 서울, 제물포, 목포 등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동일한 성령의 역사이긴 하지만 1907년 한국교회에 일어난 역사는, 1901년 켄자스주 토페카(Topeka) 시에서 찰스 파아함(Charles Parham, 1873-1929)의 사역에서 일어났고 1906년 미국 LA 아주사(Azusa) 거리 등지(等地)에서 교육받은 흑인 윌리엄 시무어(William J. Seymour, 1870-1922)의 사역에서 일어난 오순절 부흥과는 성격이 달랐다. 미국에서 일어난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방언, 예언, 신유 등 신비로운 표적 중심인 데 반해서, 한국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성경공부를 통한 죄의 고백과 회개와 통회와 전도와 성화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초창기 평양의 대각성 운동에서 형성된 성령의 역사 분위기에 힘입어, 초기 평양장로교신학교는 “영세”(靈洗: 성령세례)를 강조한 남경신학교와 북지나신학교 교수 가옥명(賈玉銘)의 성령론에 근거하여 은사지속론을 가르쳤다. 당시 평양장로교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서 “죠선예수교쟝로회” 독노회장이었던 이눌서(李訥瑞, W. D. Reynolds)는 미국 침례교 신학자 스트롱(A. H. Strong)의 조직신학(1886)과 프린스턴의 장로교 신학자 핫지(C. Hodge)의 조직신학 3권(1871-3)을 토대로 쓴 가옥명의 조직신학 6권을 번역하도록 하고 감수하여 조직신학 교재로 사용하였다.
가옥명의 성령론은 중생(重生)과 영세(靈洗, 성령세례)를 구분하면서 둘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중생은 득구(得求)의 초보(初步)인 것이요, 영세(靈洗)는 득구의 진보(進步)한 공(功)이니, 만일 중생은 엇엇으나 영세(靈洗)를 밧지 못한 자는 반드시 연약무력(軟弱無力)함을 면치 못하니 맛치 사도(使徒)가 영세(靈洗)를 밧기 전의 형편과 갓흘지라.”(賈玉銘, 『組織神學 第五冊: 聖靈論』平壤: 長老會神學校, 昭和六年 七月 三十日, 1931, 序文).
가옥명은 신자들이 중생의 도에 대해 말하면서도 “영세”(靈洗)의 은혜를 구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영세(靈洗)는 사도가 반드시 받아야할 성령의 은혜임을 강조한다. 가옥명은 성령받음과 성령세례를 구분한다:
“영세(靈洗)라 함은 즉(卽) 성령(聖靈)이 나면(裸面)에 침투되며 흑 성령이 관투(灌透)되며 또 성령이 충만한다 함이니 이것은 보통(普通) 성령을 밧앗다 함과 분별되나니라.” “신도의 보통으로 밧는 영감(靈感)은 혹 사도들의 오순절 전(前)형편(形便)과 갓하야 진실로 성령의 충만함을 엇지 못하고 다만 세례(洗禮)만 밧음이라. 대개 영세(靈洗)는 사람의 신(身), 심(心), 영(靈)의 전부가 성령의 침윤(浸潤)되고 관투(灌透)되여서 신령한 심성(心性)과 덕능(德能)의 일부분을 가짐이 됨이라.”
가옥명은 “영세(靈洗)의 증거”로 방언만을 주장하는 오순절 견해를 오설(誤說)라고 보며, 방언을 포함하여 기도의 능력, 전도의 능력, 이적과 기사 등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과 함께 성령의 열매를 강조한다
“엇지 방언(方言)만 증거된다고 고집하리오. 반다시 영세(靈洗)가 방언만으로 증거될 것이 아니오. 참으로 영덕(靈德), 영능(靈能), 영력(靈力), 영과(靈果)가 표징이 되나니 누가 영세(靈洗)는 밧으나 이런 영세(靈洗)의 표징(表徵)이 얻다 하나노. 만일 이 표징(表徵)이 업다하면 자기(自欺)하며 기인(欺人)누함이니라.”[(賈玉銘, 『組織神學) 第五冊: 聖靈論), 104.)].
이러한 가옥명의 성령신학은 예정론을 수용하면서도 성령세례를 인정하는 점에서는 정통개혁신학이 보여주는 성령은사론의 약점을 보충하는 은사지속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 은사 지속 교리는 역사적 교회의 경험에 합치(合致)
20세기 화란의 복음주의 개혁신학자 버르카워(G. C. Berkouwer)는 교의학 연구 「하나님의 섭리」(The Providence of God)에서 기적이란 오늘날에도 행할 수 있다고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오순절 이후 지상에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점진적으로 쇠퇴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성경은 성령의 부으심 이후의 날에 있어서 많은 표적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버르카워는 기적을 부인하는 자는 현대과학의 결정주의 사고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영국의 청교도 칼빈주의 감리교 목회자(Calvinist Methodist) 로이드존스(D. Martin Lloyd-Jones)는 카이퍼, 바빙크, 워필드를 비롯한 정통개혁신학자들이 오늘날 성령의 직접적 역사와 은사 중지를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이는 성경 메시지와 교회의 신앙 체험에 맞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로이드존스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그의 성령을 통하여 직접 개입하시고 성경 말씀 안에서 우리들에게 직접 개입하신다고 천명하였다(D. M. Lloyd-Jones, “The Living God”(Sermon): The Evangelical Magazine of Wales 20(2), April, 1981. 16-22.). 로이드존스는 정통 개혁주의 목회자요 20세기의 최대의 설교가로서 이들 정통 신학자들의 정통 교리를 수용하나, 은사중지론에 관하여는 입장을 달리하였다. 이러한 은사중지론은 무엇보다도 사도행전 등 성경의 가르침에 상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회적으로도 교회와 신자들의 신앙 생활의 활력과 부흥을 가로막고, 신자들로 하여금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교리가 아니라고 하였다.
“은사 중지 교리”(the doctrine of cessation of charismata)는 종교 개혁 전통(웨슬리의 감리교와 성결교 등)의 교회와 1907년 대각성 운동, 1960년대, 1970년대 부흥 운동을 체험한 한국교회의 역사적 경험과 합치되지 않는다. 1968년 미국연합장로교회(UPC)도 성령 사역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의 연구 결과를 1970년 『성령의 사역』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는데 “워필드의 견해는 성경 해석학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The Work of the Holy Spirit, Report, 1970, 56.). 따라서 미국 연합장로교회는 성령의 은사에 관한 중단 교리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미국교회의 경험은 한국교회의 경험과 합치한다.
3. 영적 현상에 대한 분별 기준: 하나님 말씀 성경
그러나 영적 현상이 오늘날에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워필드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성령의 역사 아닌 미혹의 영에 의한 신비적 체험의 사건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종 집회나 우리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영적 현상들을 판단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미혹의 영에 의한 영적 체험이 이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지식 없이 대변될 때, 현상적으로는 성령에 의한 영적 체험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양자를 분별하는 기준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기준이란 무엇인가?
영적 현상의 과정은 초월적 영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이성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 임재의 체험을 한 자의 삶의 열매를 분석할 수는 있다. 신적 현상이 임한 당사자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과 그의 신앙고백과 윤리를 점검함으로써, 우리는 그 당사자에게 영향을 끼친 영이 어떤 영인지 추후적으로 알 수 있다.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 로이드존스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치 나뭇잎들이 바삭바삭 소리를 내거나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는 것으로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는 방식도 그 결과로 알 수 있다”(Iain H. Murray, David Martin Lloyd-Jones,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145-146.).
영적 분별(Spiritual Discerning)이란 한 마디로 영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 두 가지가 있다. 좁은 의미로는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영은 우리 눈에 보지 않는 실재이므로, 어느 신자가 영적 체험을 했다고 했을 때 그 영이 성령인지 아니면 다른 영, 즉 미혹의 영인지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영적 분별이란 사도 요한처럼 “영의 세계를 보거나 듣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거짓 선지자의 영이 세상에 나온 사실을 계시로 보았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b). 이것은 영적 직관에 의한 것인데 성령이 사도 요한에게 알게 해 주신 것이다.
둘째, 영적 분별이란 “초자연적인 나타남 뒤에서 역사하는 영”의 정체를 드러내는 은사다.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의 영적 상태를 다음과 같이 분별하였다: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행 8:23). 이러한 은사는 성령이 초월적인 영의 정체를 직관적으로 알려주시는 초자연적 은사이다. 이 거짓 영이란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이라는 것이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 4:3a).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심을 시인하는 영이라고 요한은 기준을 제시한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 4:2).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 영들이 나옴을 분별하였고, 영적 분별의 지침을 제시해 준다. 좁은 의미의 영적 분별(Discerning of spirits)은 사도들이나 특별한 은사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영적 분별이란 넓은 의미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여러 가지의 은사와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분별해내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신비로운 초자연적 직관만이 아니라 성경의 지식, 신학적 지식, 신앙적 경험과 영적 사역에서의 각종 사례 지식 등을 기반으로 하여, 영들의 정체만이 아니라 다양한 신령한 영들의 일에 대하여 폭넓은 분별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사도 요한이 영들을 분별하라고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권면한 것은, 특별한 영적 직관을 소유하라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신앙적 지식을 통해서 영들의 메시지를 들어 보면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심을 인정하는 내용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영적 분별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영적 분별(spiritual discerning)을 말하고 있다.
맺음말
평양신학교는 은사지속론에 입각한 포괄적인 성령론을 가르쳤다. 교회사 학자요 선교학자인 김명혁은 이러한 한국장로교의 성령론 전통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평양신학교가 1930년대에 신학 교재로 사용했던 성령론이 교회 시대를 성령 시대라 지칭한 점, 성령세례를 보통 성령받음과 구별하면서 믿는 자들이 무력한 신앙 생활을 하지 않고 능력 있는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해서 받아야 하는 필수적 은혜라고 한 점,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사모하며, 기도를 힘쓰야 한다고 강조한 것 등은 그 당시 평양신학교가 매우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성령론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필자는 침례교와 장로교의 성령론을 포용적으로 수용한, 초창기 평양신학교의 오래된 에큐메니칼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다.
영적 분별의 기준은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66권이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역사적으로 계승된 정통 교회의 영적 체험 해석과 전통이다. 역사적 교회의 전통과 체험도 중요하다. 그러나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설 수 없다. 선지자와 사도들에 의해 영감으로 계시된 정확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인 66권 신구약 성경만이 영적 분별의 유일한 척도이다. 개혁주의 신학자요 총신대 총장을 역임한 차영배가 천명한 것처럼 성경이 “모든 논쟁을 판단하는 최고의 재판장”(supremus judex controversiaru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