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주의와 교회의 생명력 상실

by dschoiword posted Mar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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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jpg


칼 바르트(1896-1969), 중년기 모습



바르트주의와 교회의 생명력 상실


유럽은 새로운 '땅 끝'입니다. '사도행전 30장 운동'은 유럽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새 땅 끝에 대한 지상명령 수행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독일인 신학자 칼 바르트가 미국 프린스톤신학교에서 특별 강의를 마치자, 어느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바르트 박사님,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바르트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학생이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는 순간에 또는 승천했을 때, 지구의 무게가 예수님의 몸무게만큼 줄어들었다고 믿습니까?” 바르트는 이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강의실을 떠났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내가 예일대 신학 강의 시간에 들은 내용입니다. 히스토리에(Historie)와 게쉬히테(Geschichte)의 차이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예수 부활과 승천을 히스토리라고 믿는가, 게쉬히테라고 믿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이 둘의 차이는 하늘만큼 땅만큼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히스토리에로 보는가  게쉬히테로 보는가에, 교회의 사활이 달려 있습니다. '역사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다른 마당에서 하고 싶습니다.


바르트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묻습니다. 바르트가 예수의 실제적인 부활과 승천을 믿었습니까? 예수 부활 또는 승천 당시 지구의 무게가 예수님의 몸무게만큼 줄어들었다고 그가 믿었습니까?
이 주제는 바르트의 성경관과 구원론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바르트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주관적 차원으로 격하시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닙니다. 인간의 증언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신학구도는 인간의 개인적 경험, 체험을 성경본문과 동등한 지위에 둡니다. 사실상 인간 경험을 신학쟁점들에 대한 '성경'으로 간주합니다. 바르트주의 성경관은 기독교에 위협적인 진리상대주의, 주관주의 그리고 결과적으로 만민보편구원주의와 종교다원주의에 대로(大路)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독일에서 공부하신 신학자님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바르트는 20세기 신학의 거장입니다. 그런데 왜 그의 신학을 받아들인 교회들이 생명력을  상실했습니까? 지난 반세기 동안, 왜 바르트주의를 추종하는 교회들, 바르트가 구원했다고 하는 유럽, 특히 독일교회들이 빈사 상태에 이르렀고, 사실상 조종을 울리고 있습니까? 루터 전통을 따르는 독일교회가 바르트주의를 수용한 뒤에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 구체적인 까닭에 대한 학문적 연구물, 에세이, 논문, 책 등 정보 있으면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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