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핵심 논점에 대한 신학적 고찰

by reformanda posted Sep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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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핵심 논점에 대한 신학적 고찰

 

머리말

 

그 동안 국내에서 논란되어왔던 역사적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10차 총회가 20131030일 부산 해운대 벡스코(BEXCO)에서 개최되었다. 이에 대한 한국 보수주의 교회의 비판의 소리는 높다. 이 지상 위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목사요 복음주의와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보수주의 교회가 WCC 운동에 대하여 선의의 비판하는 것은 신앙양심으로 정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개최를 반대하고 대회 진행을 훼방하는 것은 지나친 행위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신들의 신앙적 의견을 조용하게 표시할 수는 있으나, 외국의 성직자들과 신학자들, 수많은 인사와 교회 지도자들이 초청되어 오는 세계적인 기독교의 축제 모임에 대하여 개최 반대 시위를 한다거나 혹시나 그 모임석상에서 어떤 물리적 방해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고 주의 교회를 욕되게 하며 복음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이번 부산 대회에 참석하는 독일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를 비롯하여 많은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 대회의 토론 가운데서 선의의 비판적 의견을 많이 개진하고, 반영되어 WCC 운동이 새로운 방향, 잃은 영혼을 살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성경적이고 복음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이 모임에 참석한 외국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의 경건과 신앙에 깊은 감동을 받고 돌아가는 등 성공리에 끝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48년 출범 당시에는 복음적 성격을 유지하였다. WCC는 헌장 제1조에 “WCC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라고 분명한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WCC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영성은 구조상 선교, 봉사, 교회일치, 이 세 기둥의 결합체이다. 선교의 영성은 세계복음화와 세계구원을 추구하고, 봉사의 영성은 교리는 갈라지게 하지만, 봉사는 하나되게 한다”(Doctrine divides; whereas service unites)는 기치로 수많은 봉사활동을 전개한다. 교회일치의 영성은 다양성 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 곧 교파전통상의 다름과 다양성을 상호 인정하고 존중한다. 1978년 발표된 방갈로 문서에선 성경은 전 창조세계와 민족들과 개개인의 삶을 다루고 계시는, 한 분이시며 동일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1961년 인도 뉴델리 총회 이후에 신학적 패러다임을 자유주의와 종교다원주의로 바뀌었다. 1970년대 종교 대화프로그램을 통하여 종교다원주의를 추진했다. 그래도 1980년대까지는 그리스도 중심주의기독론적 배타성이 있었으나, 1990년 이후로 신중심적 보편주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고 있다. 1990년 바아르 선언에서 타종교 안의 하나님의 구원활동을 인정하였다. 그러한 흐름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1991년 호주 캔바라 총회에서 무당신학자가 주제 강연을 함으로써 일어난 초혼제(招魂祭) 사건이었다.

 

일방적으로 WCC를 비판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WCC 참여자들은 형제이지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기본적 입장을 천명하며, 부산에서 역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WCC 운동이 제10차 부산총회를 기점으로 복음적 성격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간절한 염원 속에서 WCC의 회원들과 지지자들 가운데 복음주의적 입장을 지닌 자들에 대한 유대감을 가지면서도, 실제로 WCC 신학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비판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WCC의 핵심 논점사항들에 관하여 복음주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WCC 신학의 궤도 수정과 발전을 위한 것이다.

 

 

 

1. 성경의 권위를 부인, 자유주의?

 

WCC에 속하는 회원교회들은 대체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안다. WCC의 성경관은 시대를 거쳐오면서 변화하였다. 1949년 출범 당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워드햄대에서 채택된 워드햄 문서(Wadham Document, 1949)는 성경 중심과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있다. “성경 그 자체가 우리를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한다.”(WCC, “성경해석을 위한 지침,”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 엘렌 플레세만-반리어 엮음, 이형기 역, 서울: 한국 장로회출판사, 1996, 29-33.). 정통주의와 신정통주의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었다. 196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WCC 신앙과 직제위원회 제4차 대회에서 채택된 몬트리올 보고서(Montriol Report, 1963): “성경, 전통, 전통들”(Scripture, Tradition, Traditions)은 전통과 성경의 연관성을 역동적으로 엮는다. “전통은 성경에 선행한다. 이것은 전통이 중요하다는 것과 나아가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보배라는 것을 지칭한다.”(WCC, “Scripture, Tradition, Taditions” para. 42). 1967년 영국 브리스톨 신앙과 직제위원회에서 채택된 브리스톨 문서(Bristol Document, 1967): “에큐메니칼 운동을 위한 해석학적 문제의 중요성”(Significance of the Hermeneutical Problem for the Ecumenical Movement)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역사비평적 방법의 도입을 제안한다. “성경은 일련의 문학적인 자료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그것은 여타 문학적인 자료들의 연구에서 사용되는 방법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연구되어야만 한다.”(WCC, “Significance of the Hermeneutical Problem for the Ecumenical Movement,” Geneva: WCC, 1967.) 벨기에 루뱅에서 모인 WCC의 신앙직제위원회가 채택한 루뱅문서: “성경의 권위”(The Authority of the Bible, 1971)는 성경의 권위를 자체의 영감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영향력이라고 보며 신앙과 행위의 규범 됨을 거부한다. “성경을 우리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답과 표준으로 간주할 수 없다성경은 밖으로부터 우리에게 부과되는 규범이 아니다성경은 많은 영감들 가운데 하나의 영감의 원천이지도 않다.”(WCC, “성경해석을 위한 지침,” 에큐메니칼 운동에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해석, 엘렌 플레세만-반 리어 엮음, 89).

 

1993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모인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산티아고 문서(Santiago Document, 1993): “질그릇에 담긴 보배: 해석학에 관한 에큐메니칼 고찰을 위한 도구”(A Treasure in Earthen Vessels: An Instrument for an Ecumenical Reflection on Hermeneutics)를 채택했다. 이 문서는 교회전통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정합의 해석학과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의심의 해석학을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하는 통일성의 해석학을 제시한다. “기독인들은 이 같은 해석학적 관계 한가운데서 해석이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새로운 문제들이 다양한 컨텍스트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WCC, “A Treasure in Earthen Vessels: An Instrument for an Ecumenical Reflection on Hermeneutics,” Geneva: WCC, 1993, para. 28). 여기서 WCC의 성경관은 권위가 박탈되고 해석학은 잡다한 것들의 정합의 해석학이 되어, 절대적인 기준과 규범과 원칙이 없고 상대주의 해석학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해석학으로 인하여 WCC에는 여러 성향 교회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는 동방정교회 같은 극보수주의가 있는가 하면 상당수는 예장 통합이나 감리교처럼 중도적 보수주의도 있다. 독일의 선교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Peter Beyerhaus)나 별세한 영국의 존 스토트(John Stott) 등은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인정하면서 WCC에 참여하는 비판적 학자들이다. 그러나 WCC를 주도하는 소수 그룹 가운데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부인하는 자유주의적이며 종교다원주의적 경향을 지닌 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예장 통합측 안에서도 WCC의 신앙직제위원회 정식회원인 로마 천주교가 구약 외경을 정경 안에 포함시키는 입장을 받아들이는 역사신학자 이형기의 전통과 권위를 수용하는 성경관에 대하여, 성경신학자 김중은은 다음과 같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복음과 성경 이해에서 이러한 이분법적인 복음 전승의 역사적 우선권 주장과 자유주의 성서 비평학의 전제들과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주의 성경관에서 이탈된 현상을 보여준다.”(김중은, “21세기 한국 장로교회의 진로와 신학노선에 대한 인식과 전망: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2005, Wholistic Theology, PCTS, 2010, http://hopeinx.tistory.com/36.).

 

김재준 신학의 영향을 받아 신정통주의적 성경관을 가진 자들이 중도적 보수주의에는 적지 않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의 불오(infallibility)는 믿으나 무오(inerrancy)는 믿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불오는 성경의 구속사건, 신앙과 구원과 관련된 메시지는 오류가 없다는 목적 영감설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우리들에게 전달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이는 바르트나 브룬너 등 신정통주의자들의 성경관이다. 바르트와 브룬너의 영향을 받은 김재준의 성경관은 목적 영감설이다. 미국에서도 복음주의 좌파에 속하는 학자들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였다. 클락 피녹, 잭 로저스, 다니엘 풀러 등이 불오설의 입장에 섰다.

 

WCC 안에는 성경에 대한 신정통주의적 입장을 지닌 자들이 자유주의적 입장을 지닌 자들보다 훨씬 많다고 보인다. 필자가 생각하건대 WCC 안에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받아들이는 신정통주의적 견해를 가진 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며, 이 가운데는 정통주의적 입장을 지닌 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WCC 참가자들이 모두 적그리스도라거나 또는 WCC 대회 참가 자체가 현대판 신사참배라고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이 매도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판이지 않나 생각된다. 나와 같이 믿지 않는다고 믿음이 작다고 하거나 약한 형제를 질책하는 것은 복음적이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믿음이 작거나 부족한 형제를 질책하기보다는 격려해주고 이들이 더 큰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믿음이 큰 자들의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믿음이 큰 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은 독선에 빠질 수 있는 여지가 있으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해야 한다.

 

신전통주의자들에 대하여 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이 단지 구속사건이라는 목적 메시지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용어와 역사적 연대기나 지리학적 기술 등에 있어서도 오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성경무오설이다. 프린스턴의 정통신학자 찰스 핫지, 벤자민 월필드, 아더 글라서, 제임스 메이쳔, 칼 헨리, 헤롤드 린젤, 제임스 보이스, 에릭슨 등이 성경무오설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으며(Harold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Grand Rapids: Zondervan, 1976), 한국교회에서는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박형룡, 박윤선, 한상동, 주기철, 오병세, 차영배, 신복윤, 김명혁, 김중은, 이수영, 김영한, 정일웅, 심창섭, 권호덕 등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성경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는 성경을 하나의 고대 근동과 유대교의 종교문서로만 본다. 그리하여 신적 영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성경은 하나의 역사적인 종교문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역사비판적·종교사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제시한 자들이 헤르만 군켈과 그의 입장을 수용한 불트만 등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며, 한국에서는 이러한 입장을 수용한 자들은 안병무와 서남동, 변선한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WCC 안에는 이러한 자유주의적 성경관을 지닌 신학자들이 적지 않으며 이들이 주도권을 쥐고 끌어 나기기 때문에 용공, 초혼제, 종교다원주의, 종교혼합, 동성애 등의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2. 종교다원주의 신학?

 

WCC1970년대부터 인도 신학자 사마르타 등을 종교 대화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임명하여 종교 대화를 시작했다. 사마르타, 니터, 토마스 등 인도신학자들은 성경을 타종교의 경전과 같이 취급하고, “타종교에도 그리스도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타종교의 구원을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이다. 1989년 산 안토니오 세계선교와 복음화위원회(CWME)타종교 안에서 하나님은 발견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하나님께서 비기독교 종교들 사이에서 사역하시고, 하나님의 구원 능력에는 한계가 없으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고 있는 하나님께서는 타 종교들의 사람들의 삶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이형기, “WCC의 신앙과 신학이 추구하는 종교간 대화의 영성’,” 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 201353일 자료집). 우리는 1990년 정초에 스위스 바아르(Baar)에서 WCC, 정교회, 가톨릭교회가 함께 논의하고 이끌어 낸 바아르-선언문(Baar Statement)을 주목하게 된다. 이 선언문은 종교다원주의를 시사한다: “타종교인들의 삶과 전통 속에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활동하심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당연하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종교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신비를 다각도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http://www.cyworld.com/dudrka8888/4734415). 이 선언문은 창조주 하나님 내지 성령이 타종교인들 즉, “산 신앙인들의 삶과 전통 속에서 활동하신다는 것과, 타종교들 속에서 구원의 신비를 인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대화에서 그들에게 접근하는 자세라고 주장한다. 2000WCC 산하 CWME그리스도 바깥 구원 가능성을 피력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외에 다른 구원을 이야기할 수 없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어떤 제한을 둘 수 없다. 이상의 두 문장 사이에는 긴장이 있으나, 이 긴장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WCC, “일치를 향한 오늘날의 선교와 전도”,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2000, 135.).

 

2005년도 선교와 전도문서: “교회의 치유선교선언문 73~77항에서 CWME다른 종교에서 유래된 치유요법, 즉 다양한 전통종교의 처방, 요가, 영기(靈氣)요법, 수기요법, () 명상 등에 대한 개방성과 의존성은 교회와 기독교 관련의료기관에서 많이 토의되는 주제이다라고 고백하며, 한편으로는 다른 종교의 치유의 영성과 호환을 희망하며 모든 치료수단에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그리스도인은기독교가 아닌 특정 종교의 세계관과 연관된 위험스러운 치료관습에 정성을 들인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은 겉보기에는 유익하게 보이는 치유 요법 뒤에 숨어 있는 악령의 힘이 자신의 파괴적인 모습을 감추고 있음을 잘 깨닫지 못한다고 하며 무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WCC다른 종교에 뿌리는 둔 치료 요법과 기()치료 등을 대할 때,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치료방법과 고대로부터 내려온 영적 전승을 교회 자체 안에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교회의 치유선교”, Ibid., 234-35.). WCC는 치유에 있어서도 포스트모던적 다원주의 영성을 나타내고 있다.

 

전통 종교적 유산으로 말미암는 치유를 기독교에 수용하는 WCC의 이러한 혼합주의 영성은 창조자의 영과 창조신앙이 없는 범신론자들이나 다신론자들의 능력에 대해서 영분별의 필요성을 전혀 문제 삼는 것 같지 않다. 그러므로 1989년 산안토니오 선언에서 언급된 타종교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계시,” 그리고 1990년 바아르 선언에서 나온 타종교들 속에서 구원의 신비를 인식 가능성,” 2000WCC 산하 CWME가 언급한 그리스도 바깥 구원 가능성사상을 분명히 신학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것이 요청된다. WCC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은 타종교의 구원 문제에 관한 복음주의자들의 비판을 경청하면서 종교다원주의 비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종교다원주의 경향성과 결별하는 분명한 신학적 선언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3. 구속사와 보편사의 혼동?

 

WCC의 일원론적 역사 개념은 호켄다익(Johannes Hoekendijk)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에서 유래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전체 피조물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최종 목표는 교회가 아니다(WCC, 세계를 위한 교회, 세계교회협의회 편, 박근원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70f.). 교회는 다만 세상의 한 조각이며, 세상에 부과된 하나의 첨가물”(postscript)이다. 피조물 전체가 다 오직 하나의 역사인 샬롬(Shalom)의 역사이며, 이 샬롬의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이 샬롬의 왕국을 실현하려면 교회는 교회의 모습”(Statur)과 신분(Status)사멸시키고”(absterben lassen), 세상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 성경적인 근거로 빌립보서 25절 이하에 있는 말씀으로 종의 형태를 입은 메시야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Ibid., 35f. 세계를 위한 교회, 27.).

 

호켄다익에 의하면 교회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며 회개와 개종을 요청하는 것은 세상을 자기 형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는 존재”(Sein)이기를 포기하고 하나의 기능”(Funktion)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사도직의 한 기능에 불과하다. 교회의 존재 방식은 없다. 교회는 전혀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활동성, 즉 사도의 활동성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H. C. Hoekendijk, 흩어지는 교회, 92.). 호켄다익은 교회와 세상을 구별하지 않는 통합체로 보기 때문에 개종선교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4차와 제5WCC중앙위원회 중앙위원장을 연달아 맡았던 M. M. 토마스는 인류연합을 위한 투쟁의 영성”(Spiritualität des Kampfes)에 관해 설명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사회적이건 도덕적이건 문화적이건 간에, 사람을 종속시키는 모든 연합을 파괴하고, 더 성숙한 연합을 위하여 남녀를 해방하며, 이 연합이 다시금 종속적으로 되면 또 다시 파괴해야 한다(Krüger, H., Müller-Römheld, M., Bericht aus Nairobi, Frankfurt, 1976, 251.)고 역설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는 해방하고 연합한다는 제5WCC Nairobi 총회의 주제를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으로 해석하였다. 영적인 시각을 잃어버린 토마스가 투쟁의 영성을 요청한 것은 기독교인과 타종교인과 불신자들의 협력으로 하나의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세계선교와 복음화위원회(CWME)는 여러 종교와 화해 없이는 통전적 의미의 화해와 치유가 성취될 수 없기 때문에 타종교와 함께 선교를 하자고 한다. “화해와 치유의 영적인 자원이 기독교 신앙의 전승으로부터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다른 종교와 문화에 나타난 영적인 유산을 긍정하고 배우는 것이다. 치유와 화해에 대한 다른 전승과 경험은, 특히 토착 공동체의 전승과 경험은 큰 가치를 가진다”(WCC, “화해의 사역인 선교”,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김동선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7, 186.).

 

독일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바이어하우스는 “2013 WCC 총회 사명선언서에 나온 성령·생명·선교·하나님 나라·변혁 등이 복음주의 스타일로 쓰였다고 해서 매혹당하거나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그보다 그 개념들이 진정한 성경적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 총회 준비 문서에 나와있는 선교와 전도의 개념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하였다. “‘함께 생명을 향하여에는 성령·생명·창조·하나님 나라등 성경적 핵심용어들이 사용됐지만, ‘생명에 대한 진정한 기독론·구원론적 이해가 빠져 있다.” “여기서의 생명은 뉴에이지 운동을 포함해 어떤 범신론적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에 의해서도 쉽게 뒤집힐 수 있는 보편적 힘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세계 역사(World history)’구원 역사(Salvation history)’ 간의 혼동을 지적한다. 하나님께서 이 두 영역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하심을 반드시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적 종말론이 빠져 있다. WCC의 역사 이해에는 진보적인 세속사관이 지배한다.

 

그러므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교회가 받은 청교도적 영적 유산을 고수해야 한다. 구속사와 보편사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구속사는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요, 보편사는 세계사를 통한 하나님의 일반 섭리의 역사다. 스위스의 에큐메니칼 신학자 쿨만(Oscar Cullmann)이 말하는 바와 같이 역사 가운데서는 구속사는 보편사 가운데 좁은 선을 지니나 역사의 목적이요 의미이다. 그리고 역사 종국에는 이 구속사 안으로 보편사가 편입된다. 선교의 역사는 보편사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역사, 교회의 역사로 진행한다. 구속사에는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 집행되는 것이며, 지금은 보편사 속에서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보편사는 중단되며, 구속사가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충족하게 된다. WCC는 이러한 성경적 역사 이해를 놓치고 있으며, 구속사를 보편사와 혼동하고 있다. 그러니 선교개념을 영혼구원이라기 보다는 인간화와 사회화, 인권신장 등으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화, 사회화, 인권신장 등은 오늘날 선교에서 보다 넓은 선교 개념으로 필요하다. 인간은 영혼의 구원으로만으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없고 구원받은 영혼이 인간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의 구원이 필요하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독재국가나 공산국가나 빈곤국가에서는 인간답게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영혼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사회의 빈부격차나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이나 지역차별이 없는 사회를 필요로 한다. WCC가 이러한 인간화와 사회화나 인권신장의 차원에 기여를 한 것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혼구원을 받지 못하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는 천하를 얻고도 그 영혼을 잃어 버리는 것이 된다. WCC는 초기의 선교 이념인 영혼구원 열정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4. 개종전도 금지 선언, 선교유예 선언으로 선교 포기?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와 선교회들은 WCC 선언들과 에큐메니칼 활동들에 성경적 기초가 불안정한 것을 우려한다. 복음주의자들은 특히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와 20/40 창 내의 미전도 지역 내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WCC 선언들과 에큐메니칼 활동 공식 의제에서 대단히 하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한탄한다. 독일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바이어하우스는 미국의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1968년 제네바 기획단에 공개적으로 던진 웁살라는 20억을 배신할 것인가?”라는 비판적 도전을 기억한다. 맥가브란이 말하는 20억이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을 들어볼 기회를 한 번도 갖지 못한 사람[오지(奧地)의 미전도 종족]들을 말하는 것이었다(피터 바이어하우스, “2013년 부산 WCC 총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 및 복음주의적 제안”, 한복협 201211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WCC 4차 총회로 모인 스웨덴 웁살라(Uppsala) 총회 섹션별 초안을 보면 복음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러한 미전도 종족들에 대한 세계 복음 전략에 대한 것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웁살라에서 주된 관심사는 제2, 3 세계 사회 정치적 구조의 인도주의화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WCC의 정책은 1950년 한국이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위태롭게 되었을 때 세계에 이를 처음으로 알리는 공헌이 있었으며, 전쟁에 폐허가 된 한국에 유엔 원조를 전달해 주는 데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1960년대 1970년대 주로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정책과 아프리카와 남미의 독재 정권을 전복시키는 게릴라 투쟁에 대한 지원으로 나타났다.

 

세계선교와 복음화위원회(CWME)1982년부터 2005년 사이에 다섯 개의 성명서(1982: 선교적 전도: 에큐메니칼적 확언, 1997: 공동의 증언을 위한 신뢰 관계의 선교와 개종주의 중단, 2000: 일치를 향한 오늘날의 선교와 전도, 2005: 화해의 목회인 선교, 2005: 교회의 치유선교,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를 발표하였는데, CWME의 진술은 2000년도에 일치를 향한 오늘날의 선교와 전도선언문의 고백과 같이, 한편으로 복음주의가 믿고 고백하는 오직 그리스도만 구원이라는 신앙고백을 수용하고, 동시에 종전과 같은 종교다원주의를 그대로 인정하는 혼합주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1961년 동방 정교회가 WCC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제2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가톨릭도 신앙과직제위원회선교와전도위원회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 후로 이들은 상호존중을 훼손하는 개종전도 활동이 교회일치와 공동의 증거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개종(proselytism)전도를 금지하는 선교 모라토리엄(moratorium on mission)을 선언하게 되었다. 박성원은 이애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한다: “‘선교유예는 동아프리카 교회 지도자인 존 가투 목사가 선언한 것이다. 이것은 아프리카 교회의 자립성을 기르기 위해 선언한 것으로, 결코 선교를 포기하거나 중지한 게 아니다. 자력으로 선교·목회하는 교회가 되려면 서구교회로부터 선교사와 선교자금을 받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WCC가 선언한 개종전도 금지란 개신교 선교사들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지역의 명목상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활동과 교회를 세우는 일은 금지하고, 그들의 성상숭배, 성자숭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마리아 숭배 등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WCC, 통전적 선교를 위한 신학과 실천, 92.).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종교화합도 복음에 합당하게 해야 한다. 천주교가 성상을 숭배하고, 성인(聖人)을 숭배하고,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에 대하여는 십계명 중 제2계명에 위배되는 것이며, 그들이 구원을 주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양심과 사랑으로 말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개종전도 금지선언은 WCC 중앙위원회가 1997년 채택한 공동의 증언을 향하여: 선교에 있어 책임있는 관계를 선택하고 개종강요를 비난할 것을 요구함이라는 문서에서 공식적으로 나타났다. 이 문서는 개종강요가 기독교의 증언에 반하는 행위’(counterwitness)인 동시에 증언의 타락이라고 비판했다. 박성원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WCC는 속임수, 물질공세, 강압적 수단과 같은 부적절한 방법을 쓰는 전도방법을 양 훔치기식 전도방식이라고 경계한다. 기존 교회의 성도를 빼앗는 도둑질 선교는 자제하라는 것이다. 복음주의권에서 개종전도금지로 이해하는 개종(proselytism)전도는 에큐메니칼 진영에서 양 훔치기식 전도를 뜻한다. 이것은 복음을 배반하는 행위다.” 여기서 개종 금지란 양 도둑질을 하는 개종전도, 즉 교권주의에 입각한 배타적 개종(Procelytism)전도를 금지하는 것을 뜻한다(연규홍, “‘개종전도 금지주의성서의 무오성집중 검토,” 김진영 기자)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개종선교에 강압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광장에서 허심탄회한 대화와 전도 속에서 더 큰 감화력과 호소력을 가진 종교가 결신자를 더 많이 얻는 것이다. 그리고 회심하는 자에게 이슬람이나 힌두사회에서처럼 어떠한 조직적이거나 사회적인 제약이나 불이익이 주어서는 안 된다. 양심의 결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종교 간의 전향이 허용될 때 진정 종교민주주의가 성립하는 것이다. 종교다원화와 종교다원주의는 구분되어야 한다. 종교다원화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사회적 종교환경을 말하는 것이나, 종교다원주의는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의 구원론에 관한 것이다. 종교다원화는 개종선교를 위하여 사회정책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나,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구원론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신앙양심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 WCC에서는 실제로 전통적 의미에서 선교(복음 전파를 통한 회심 전도)가 유예되고 있다. 미전도 종족 선교는 토착문화를 훼손한다는 명목하에 금지되고 있으며 실시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개종선교보다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의 인권을 개선하고 사회적 소외를 막기 위한 인간화와 사회화 선교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리하여 기독교 선교의 일차적인 과제인 불신자 회심 전도를 등한히 하고 있거나 아예 중단하고 있다. 그 결과로 WCC 회원 교회의 신자수는 오순절 회원이나 보수적인 회원 교회들을 제외하곤 늘지 않거나 감소하고 있다.

 

미종족 전도에 대하여 WCC는 이제 다시 힘을 쏟아야 한다. 여기에 이미 선교대국으로 자리잡은 한국교회는 이바지할 수 있다. 한국은 현재도 가장 커다란 선교적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국력과 세계에 흩어지는 한국 이민자들, 한국 기업체들을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점차 한국 선교는 이런 디아스포라들과 적절한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 한국은 동시에 서구의 여러 선교조직과도 필요한 네트워크를 구성하여서 자원과 경험의 공유에 힘을 써야 한다.

 

5. 무차별적 종교 대화로 인한 종교혼합주의 위험성?

 

1961년 인도 뉴델리 제3차 총회 이후 WCC타종교와의 대화를 중요한 선교의 과업으로 정했다. 이 때까지 대화의 개념은 대체로 기독교적 메시지를 타종교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전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7년 스리랑카(Sri-Lanka)의 칸디(Kandy) 종교간 대화 모임(post-Tambaram 시대)은 제2 바티칸 공의회(1962-1965)와 더불어 하나의 인류(a common humanity) 관점에서 종교 간 대화를 보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 아잘톤(리바논의 Ajaltoun) 선교대회에서 최초로 종교대화가 시도되었다. 독일 함부르크대 교수 마르굴(H.-J. Margull)이 회장이었고, 참석자는 모두 17개국에서 28명의 기독교인과 10명의 타종교인들, 3명의 힌두교인들, 4명의 불교인들, 3명의 무슬림들이었다. 대회 주제는 산 신앙인들의 대화였다(Margull, H. J./Samartha, S., Dialog mit anderen Religionen, Frankfurt, 1972, 17. Dialog zwischen Menschen lebendigen Glaubens.). 이 대회에서 WCC 위원들은 타종교인들과 함께 서로 마음을 열고 몸을 접촉하여 소속감을 강화하는 훈련과 혼합예배를 진행하였다. 이 대회에 참석했던 인도 무슬림 오스마니아 대학 교수 핫산 아스카리(Hassan Askari)는 이 때 경험한 새로운 영성”(eine neue Spiritualität)혼합종교의 영성”(interreligiöse Spiritualität)이라고 묘사하였다. 아스카리는 아래와 같이 WCC의 영적 분위기를 진술하였다:

 

“Dialogue우리를 하나의 새로운 영성으로 이끌었다. 함께 있는 여러 다른 신앙들 사이에서 느낀 새로운 영성을 공동 기도 시간에 가장 강렬하게 느꼈다. 기도 시간에는 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 힌두이건 불교도이건 간에 누가 기도했는지 또는 명상을 했는지는 대수롭지 않았고, 또 무엇을 기도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기독교인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슬림이 아멘하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게 인식된 것은 다만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공동적 인간적 상황이었다.”( H. J. Margull, "Der Dialog von Ajaltoun/Beirut", in: Dialog mit anderen Religionen, hg, H. J. Margull u. S. J. Samatha, Frankfurt 1972, 81.)

 

이러한 영적 분위기는 종교혼합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러한 영성은 야훼 하나님을 브라만이나 알라나 공으로 융합시키는 혼합주의다.

 

1971년에 시작된 WCC대화-프로그램에서는 인도 신학자 사마르타(Samartha)가 실무위원장으로서 타종교인과 함께 진리를 찾아내고자 하였다(S. J. Samartha, "Dialog als ein ständiges Anliegen der Christen", in : Dialog mit anderen Religionen hg. v. H.S. Margull S.J. Samartha, Frankfurt, 1973, pp.142-150). 사마르타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절대자의 상대화로 해석하였다: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이 되는 위험을 감내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자는 역사 속에서 상대화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다원성 가운데 사는 것을 두려워해야만 하는가?”(S. J. Samartha,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종교적 다원사회, 신학사상 39, 1982, 679, 689.).

 

1975년 케냐 나이로비 제5차 총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롭게 하시며 하나되게 하신다’(Jesus Christ Frees and Unites)였다. 나이로비 총회에서 드디어 교회 밖의 구원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나이로비 총회는 하나님의 역사를 교회에만 국한시키지 않았고, 타 종교와의 대화를 적극 강조하였다.

 

혼합주의 영성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제7WCC총회에서 공연된, “광주와 천안문 광장과 리투아니아에서 탱크에 깔려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여!등 각종 혼령들을 부르는 초혼제였다. 총회 주제는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였다. 대회 주제 강사로 정현경은 애굽인 하갈의 영으로부터, 우리아의 영, 입다 딸의 영, 잔 다르크의 영, 원폭 실험 지대에서 녹아버린 어린들이의 영, 인간의 탐욕으로 약탈당하고 파괴되고 착취된 땅과 공기와 물의 혼 등, “십자가에서 착취당하고 죽음을 당한 우리의 형제인 예수의 영과 더불어 한맺혀 죽은 영혼들을 초청하고 사령(死靈)과 혼동한 성령을 초혼굿으로 연출하였다(Bericht aus Canberra 91, Frankfurt, 1991. "Komm, Heiliger Geist - erneuere die ganze Schöpfung, 47-56.). 이에 대하여 동방 정교회 등 회원 교회에서 종교혼합주의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6.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1) 교회가 아닌 세상이 하나님의 선교의 주된 장

 

WCC 지도부는 그들이 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포기했다는 것을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용어 아래 보급된, 선교와 복음화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개발시켜왔다. 이 개념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선교가 주로 교회에 부과된 과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교는 그보다 세상에 임재하시는 삼위 하나님 자신의 일로 이해된다. 이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 그리스도, 혹은 성령이 세상을 정해진 목표인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고 있다.

 

이 개념에 의하면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선교활동의 주된 기관이 아니고 일반 세상의 기관 중 하나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선교 이해 속에서 이 세상에서 선택받고 부르심을 받은 에클레시아(ecclesia)로서의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들은 단지 하나님의 세상 인간화 과정에서 사용되는, 인간적인(human)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교회는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교회가 실패하면, 하나님은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그 도구는 다른 종교들이 될 수도 있고 정치 해방 운동들이 될 수도 있다. (피터 바이어하우스, “2013년 부산 WCC 총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 및 복음주의적 제안,” 한복협 11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WCC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용어를 통하여 교회 중심의 선교에서 세상 중심의 선교로 전환하며, 복음전도와 영혼구원, 그리고 교회 개척과 같은 전통적 선교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회구원을 강조하며 정의, 평화, 인간화, 타자를 위한 교회를 선교의 주요 의제로 삼았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독일의 복음주의자 하르텐스타인(K. Hartenstein)1952년 제5차 빌링겐(Willingen) 세계선교대회(IMC)에서 사용한 선교개념으로서, 삼위일체 선교의 주체이고 선교사의 파송자임을 설명한 개념이었다. 그런데 호켄다익(J. C. Hoekendijk)이 그의 개념을 왜곡하여, 하나님의 선교가 교회와 관계 없이 세상 속에서 시작되었으므로 교회는 이에 참여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호켄다익의 하나님의 선교란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샬롬의 역사, , 인간화, 사회정의 운동, 해방운동, 인권운동 등의 이웃을 위한 운동을 말한다.

 

1960년대 호켄다익은 흩어지는 교회에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전통 공식을 비판하면서 개종 운동을 거부하였다. 그는 1973년 방콕선교대회에서 하나님 선교”(missio dei) 개념을 제창하면서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는 아니다고 하였다. 하나님 선교의 목적은 개종이 아니라 샬롬(shalom)이다. 그는 남미의 민권운동에서 하나님의 선교 형태를 찾는다.

 

2) 교회연합체보다는 세계연합체 부각

 

WCC1965년에 서유럽에 의뢰한 선교연구 과제물에서 호켄다익은 선교의 구조원리”(Mission als Strukturprinzip)을 보편주의적으로 발전시킨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선교에 의해서 인류가 새 인간”, “새 인류가 된 것을 말한다(Mission als Strukturprinzip, Genf 1965, 44f.). 호켄다익은 구원의 신비는 교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J. C. Hoekendijk, 흩어지는 교회, 이계준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8. 92.). 이 선교구조는 하나님 나라-교회-세상’(전통적인 구조)이 아니라, ‘하나님-세상-교회이다(J. C. Hoekendijk, 세계를 위한 교회, 세계교회협의회 편, 박근원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32.). 그는 과거에는 모으고 내보내는선교 구조, 입력 구조”(come-structure)로 이해하고, 선교를 전파(propaganda)로서 이해했으나, 이제는 개종에 몰두하는 것은 반선교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는 출력 구조”(go-structure), 자신을 주는 교회”(self-giving church)이다(J. C. Hoekendijk,세계를 위한 교회, 35-38.).

 

WCC의 하나님 선교(missio dei) 개념은 하나님-세계구조로써 전통적 선교개념인 하나님-교회구조를 대치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적 선교 개념의 왜곡이다. 바이어하우스도 지적한다. “WCC 지도부는 교회의 선교적 소명을 포기했다는 말을 부인하겠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용어 아래 선교와 복음화가 교회에만 부과된 과업이 아니라는 새로운 개념을 개발시켰다.”(바이어하우스 “WCC, 교리적 문제 있지만 총회 개최는 환영해야,”)

 

WCC적 에큐메니즘의 심각한 문제는 교회의 가시적인 일치만을 추구하는 WCC, 정교회와 가톨릭과 비기독교적 타종교들과의 교제를 통해 타종교들과 연합하면서 종교혼합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성이다. 엄청나게 기구적으로 비대해가는 WCC가 결국 진정한 교회연합체가 될지, 아니면 세계공동체연합체가 될지 모호해지고 있다. WCC 에큐메니즘이 교회보다는 세상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 선교에 치중하게 될 때, WCC의 하나님은 교회의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역사)의 하나님이며, 신자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하나님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 선교신학에는 인간화를 위한 선교방법은 회개나 개종이 아니라 투쟁이며, 교회는 싸움터를 제공하는 하나의 광장(forum)이 되어 버린다(J. C. Hoekendijk, 세계를 위한 교회, 138). 그리하여 우주적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은 구원되었다는 만인구원관이 지배한다. 여기서 WCC 에큐메니즘은 참된 인간성의 공동추구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WCC의 하나님 선교에서 두 가지 필수적 구분이 제거되었다. 하나는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 간의 구분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 역사와 인류 역사 간의 구분이다.

 

3) 복음주의자들의 선교 개념 보강: 로잔 언약에서 복음의 사회적 구원 강조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적 구원을 영혼구원과 대립으로 보거나 이를 부차적으로 보거나 또는 비복음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사회구원을 적대시하는 관점은 근본주의적이며, 오히려 성경적이 아니다. 건전한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적 구원을 복음 전파와 함께 기독교 선교의 온전한 짝(paar) 개념으로 본다. 이러한 선교개념은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와 미국의 복음주의 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이 주도한 1974년 로잔 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이미 1973오늘날의 구원”(Salvation Today)이라는 주제로 열린 WCC 방콕 총회에서 오늘날의 구원을 일방적인 사회의 구원으로 규정한 WCC의 선교개념에 자극을 받아, 복음주의 진영에서 1974년 로잔 세계복음화성회를 열어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남미의 진보적 복음주의자 르네 파딜라(Rene Padilla)와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에 의해서 강하게 뒷받침되었다. 파딜라는 복음 선포와 사회 정의 사이의 우선권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였다. 페루에서 온 에스코바도 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며 복음주의자들의 전통적인 정치적 무관심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대회가 진행 중이던 어느 날 저녁 파딜라와 에스코바 등이 주축이 되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따로 모이게 되었다. 이들은 이것을 성명서로 발표하였는데, 때때로 인간의 전체성에 대한 성서적 이해가 무시되고 비성서적인 이원론이 수용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복된 소식의 전체적 차원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로잔대회의 흐름은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선교신학에 있어서 사회적 윤리 확립의 필요성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은 그들이 채택한 15개항의 로잔언약에 반영되었다.

 

로잔언약 5항은 먼저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압박에서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등한시하며, 때때로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한다. 그리고 사람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사회 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 및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따로 보거나 사회적 책임은 개인의 변화에 자연적으로 뒤따르는 결과로만 보아오던 그 동안의 복음주의자들의 근본주의적 태도와는 전혀 다른 큰 진전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로잔언약이 천명하는, 복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긍정적 태도 변화는, 사회구원과 더불어 영혼구원을 필요성을 인정하는 WCC적 진보주의자들과의 여태까지 대립이나 갈등국면을 해소하고 연합과 일치를 가능케 하는 발판을 제공한다.

 

1974년 로잔회의 이후에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 이해에 나타난 가장 중대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 개념이 채택되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통전적 선교 개념 아래 오늘날 WCC 선교와 WEA 선교 개념은 서로 만나게 된다. WCC가 강조하는 사회선교와 WEA가 강조하는 영혼구원은 총체적 선교 개념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선교란 믿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라고 미국의 복음주의 선교학자요 교회성장학자 매가브란(Donald McGavran)이 정의한 것처럼, 오늘날 WCC의 선교개념은 미전도 종족 구원 같은 잃어버린 영혼 구원을 복권시켜야 하고, 복음의 능력이 상실된 서구와 북미교회에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활성화해야 한다. 여기에 WCC 10차 부산총회의 역사적 사명이 있다. 이제 기독교 선교는 이미 WCC 선교 개념을 보완하기 위하여 로잔 언약이 선언한 것처럼, 선교의 총제적인 면(영혼구원과 사회구원, 복음화와 사회적 책임)을 균형있게 실천해야 한다.

 

7. 보편적 다원주의 신학?

 

WCC하나님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신다”(God had no favorites), 교회도 세상도 모두 하나님께 속하며 하나님은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도 역사하고 계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육신 이래 인류와 전체 역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이미 다 구원을 받아서, 구원을 받기 위해 개종이나 신앙고백이나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위험성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성전과 세상의 구분이 없어지고, 구속사와 세속사의 구분이 없어지고, 다른편으로는 그리스도 중심이 약화되고 신 중심적으로 대화의 패러다임이 전환된다(Konrad Raiser)는 점이다. 그리하여 제한적 구원론이 아니라 보편구원론으로 나아가는 경향성이 있다.

 

WCC 신학은 기독론의 우주적 그리스도로의 확대’, ‘성령론의 우주적 영으로의 확대’, 신론의 모든 종교의 신으로의 확대를 통해 그 보편성을 강조하고 세계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 점차 종교혼합 운동을 촉구하게 된 것이다.

 

1990115WCC바아르 선언 : 다원성에 대한 신학적인 시각들’(Baar Statement : Theological Perspectives on Plurality)을 공식문서로 발표하였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들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응답해왔으며, 그 만남을 그들의 고유한 방식으로 증언해오고 있다. 사람인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활동영역을 제한할 수 없다.”. 이 명제는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바아르 선언(Baar Statement)의 핵심은 타종교인들과의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활동이 기독교에만 한정되지 않고 타종교에도 있다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만유와 모든 사람들과 모든 종교들 안에 실존하시고 계신 것으로 보고 있는 점에서 1980년대까지의 그리스도 중심적 보편주의기독론적 배타성을 넘어섰다.

 

바아르 선언문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종교들 안에서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고 보고, 타 종교인들과 불신자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는 자들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암시하며, 그 구원이 그리스도의 양 무리 밖에 있는 사람들(1:16)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건은 모든 인류 역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지(딤전2:4)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바아르 선언문은 만유와 만인과 타종교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내재를 말한다.

 

바아르 선언은 외형상 종교의 다원성(plurality)을 표명하는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주적인 기독론과 보편적인 하나님 나라 개념은 타종교들 안에서의 그리스도를 말함으로써 타종교 안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천명한다.

 

WCC 전 총무 에밀리오 카스트로(Emilio Castro)WCC 신학의 다양성을 말한다. “WCC의 공식신학이란 것은 없다. 그런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한 교회가 아니다. 심지어 산하(傘下) 교회 안에서도 신학의 다양성이 있다.”(Emilio Castro’s Word, one World, Jan.-Feb. 1986, 5).

 

WCC 전 총무 유진 카슨 블레이크(Eugene Carson Blake)도 신앙과 예전의 다원성에 관하여 말한다. “재결합된 교회는.. 신앙의 신학적 형식들의 광범위한 다양성과 예배와 의식과 심지어 비예전적인 예배조차 공교회 안에서 포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Eugene Carson Blake, “A Proposal Towards the Reunion of Christ’s Church,” The Ecumenical Review 38. 1986, 146).

 

바아르 선언이 보편적인 역사와 창조세계 속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시는 구약의 루아흐 야훼(ruah Jaweh)가 예수의 위격과 사역에 선행(先行)하시고 동행하시며 함께 사역하셨다는 영-기독론(Spirit-christology)을 가져와 보편기독론과 보편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 성령론, 기독론, 구원론의 우주적 성령론, 기독론, 구원론으로의 왜곡이다. 타종교 안에서 하나님의 보편적 현존을 뜻하는 섭리적 현존(providential presence)과 교회 안에서 말씀과 성령과 성례를 통한 특수한 현존을 뜻하는 구원적 현존(saving presence)이 혼동되고 있어 두 개념 사이에 구분이 없다. 이것은 보편적 다원주의로 나가는 것이다.

 

피터 바이어하우스는 WCC의 종교대화 프로그램이 교회의 연합이 아니라 온 인류의 연합운동으로 확대됨으로 혼합주의 보편종교(synkretistische Universalreligion)가 발생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포기되고 오히려 사탄의 역사를 끌어들이게 된다고 경고하였다(P. Beryerhaus, Krise und Neuaufbruch der Weltmission, Bad Liebenzell, 1987. 95-97).

 

10차 부산총회에서 고백된 선언문 : “함께 생명을 향하여문서에서 여전히 반개종주의·종교다원주의 항목이 아래의 문장에서 발견된다.

 

93: 영적 다원주의: 하나님의 영은 생명을 긍정하는 모든 문화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성령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하시기에 우리는 다른 신앙전통들 안의 성령의 활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다양한 영성들 안에 고유한 가치와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선교는 다른 사람을 선교의 동반자로 만들며, 선교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94: 대화란 종교적 차원에서 볼 때 우리보다 앞서서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해 오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와 더불어 시작할 때만 가능하다.

 

이 선언서는 영적 다원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선언서는 성령이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다른 신앙전통들(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안에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는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선교의 동반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 대화란 다른 종교 안에 이미 계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대와 더불어 시작한다고 말한다. 종교대화에서 다른 종교 안에 이미 계신 기독교의 하나님을 만난다면 종교적 개종이란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WCC는 모든 종교에 계시는 섭리의 하나님과 기독교 안에서만 구원을 행하시는 구속의 하나님을 구별하지 못하고 혼동하고 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적 사역과 구속적 사역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구분의 철폐는 기독교적 제한주의를 넘어서서 보편주의로 나아가며, 이 보편주의는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의 영과 성령이 타종교에서 역사하는 영으로 봄으로써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8. 용공 및 게릴라 자금지원?

 

WCC는 동서 대결이 첨예했던 1948년 창립총회 때 어떤 인간의 문명이나 이념도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며 복음이 인간의 이념을 우선한다고 천명했다.

 

WCC교회의 연합체로 어떤 특정한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인종차별 철폐운동, 인권운동, 사회정의운동, 평화운동을 벌여왔다.

 

구체적으로 196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백인정권에 대항하는 인권투쟁 단체들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인종철폐운동과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모든 단체들을 지원하는 가운데서 용공 내지 게릴라 자금 지원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WCC 사람들에게는 악명이 높은 미국의 보수주의자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WCC와 공산주의의 관계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그의 책 중 공산당 성직자(The Communist Clergy), 공산당에 의해 조종 받는 교회(Communist-controlled Churches), 공산당이 집으로 복귀(The Communists Return Home) 등의 자료들이 있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들어 있다.

 

동구권의 공산정권 몰락과 이어 1991년 소련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공산주의가 무너졌지만 1950-60년대 당시 공산권 교회의 지도자들은 서방교회를 이용하여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선전요원들이었다(Herman J. Otten, Baal Or God, (New Haven, Missouri: Leader Publishing Company, 1965, chapter 16, Communism, pp. 278-303).

 

루터교 목사인 헤르만 텐이 발행한 루터교 뉴스(Lutheran News)라는 격주 신문도 WCC 와 공산주의의 관계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준다(Carl McIntire, Servants of Apostasy, Collingswood, New Jersey: Christian Beacon Press, 1955, chapters 6, 7, 8.).

 

1) 반인종 차별 투쟁 그룹 지원

 

4WCC 웁살라총회(1968) 그 다음해에 WCC반인종 차별 투쟁 사업”(Program to Combat Racism)을 진행하여 1970년부터 1986년까지 17년 동안 약 250만불을 ANC(Africal National Congress), SWAPO(South West Africa Peoples Organization), PAC(Pan Africanist Congress on Azania)와 같은 반백인 통치 투쟁 단체들과 테러 기구들에게 지급하였고, 전 세계 30개의 100개 이상 기관에 모두 700만 불을 지급하였다(Lefever, Ernest W. 암스텔담에서 나이로비대회까지. 전호진 역, 서울: 한국기독교 교육연구원, 1981, 201). 원조를 받은 단체들의 다수는 소련의 무기 지원을 받는 나라이거나, 마르크스주의 영향권 아래 있는 행동주의 단체들이었다. 이 막대한 돈은 WCC의 예산과 후원 기금으로 지급되었다( Lefever, Ernest W. 암스텔담에서 나이로비대회까지, 57f.).

 

그리고 필립 포터 총무시절 1975년 나이로비 총회에서 WCC는 백인 인종차별 정권과 싸우는 130개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을 총회적으로 승인하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기금의 절반 이상이 공산게릴라 반군에 넘어갔다. 창립교회인 구세군과 아이레 장로교회가 도착된 인종주의라고 항의하면서 일시적으로 탈퇴한 일이 발생하였다(1982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지 “WCC 정체성 해부: 마르크스냐 그리스도냐”, 경향신문 1982923일자.).

 

1970년대 독일 튀빙엔의 저명한 신약학자의 딸이 남미에 선교사로 가서 독일교회의 지원금을 게릴라 반군에게 넘긴 것이 독일교회에서 물의를 빚은 사건을 들은 적이 있다. 이는 무장 투쟁단체를 지원한, WCC의 실책이다. 예수님은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고, 평화란 사랑과 용서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치신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WCC 대변인이 Missio Dei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공산주의 집단들 역시 포함시킨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것은 1989/90년 소비에트 시스템의 붕괴를 통해 전 세계가 뒤집어질 때까지 WCC가 선지자적 주장을 한다고 하면서 공식적으로나 모임에서 했던 정치적 선언 중, 공산주의 통치자들이 자행한 억압과 핍박 행위에 대해 다룬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로 귀착되었다. 그런 억압과 핍박은 빼버리고 그저 선택적인 분노만 표명했다. 이 현상은 북한의 그리스도인 핍박에 관해 침묵을 지키는 듯이 보이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그것은 2013년 부산총회 준비 문서에서 쟁점이 되지 않았고’(피터 바이어하우스, “2013년 부산 WCC 총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 및 복음주의적 제안,” 한복협 11월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부산총회 마지막 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선언문에서도 북한인권 개선과 기독교 박해 중단 촉구는 거론되지 않았다.

 

2) 동구권의 민주화 기여

 

그러나 우리는 WCC가 공산권 국가의 민주화에 끼친 공헌은 인정해야 한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WCC는 제네바에서 동북쪽 교외에 셀리니(Celigny) 마을에 보세이(Boseey)라는 에큐메니칼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WCC의 모든 정책은 이 보세이를 통해 세계교회에 전파된다.

 

1948WCC가 창설되면서 보세이훈련원 멤버들은 WCC 평신도국에 참여했다. 그리하여 보세이는 세계교회 연합운동의 중심지가 되고, 동구권 공산주의 사회에 있는 교회가 자유세계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WCC는 동구권 1960년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체코의 봄을 가져온 둡체크, 소련의 개혁운동을 벌인 서기장 고르바쵸브, 그 결과로 나타난 1980년대 말 동구권 민주화 등을 지원하였다. WCC의 용공은 선교를 위한 공산주의와의 인도주의적 대화이며, 1950년대 용공과는 다르고, 북한식 공산주의를 승인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WCC가 북한의 남침 때에 토론토 회의에서 한국 상황과 세계 질서에 대한 성명을 통해 공산권 교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남한을 도왔지만, 1953년 한국에서의 핵무기 사용을 막기 위해 휴전을 지지한 이후로 한국교회로부터 용공집단으로 몰렸다는 사실이다.(연규홍, “‘개종전도 금지주의성서의 무오성집중 검토,”).

 

WCC는 공산권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회원으로 참여시키며 세계교회와 교제하도록 했다. WCC의 교섭과 활동으로 1983년에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에 성경찬송 5000부가 전달됐고 88년에는 평양봉수교회가 건립됐다. 1986년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그리스도인들을 제네바에 초청해 남북교회가 만났다. WCC는 용공단체가 아니라 공산주의 체제 속에 있는 교회를 지켜온 선교단체다(박성원,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 ‘4대 핵심쟁점지상토론, 종교다원주의일부는 타종교 구원 인정’-‘예수구주 정체성 확고‘ ”).

 

3) 부산총회 한반도 성명서에서 북한 기독교인 박해 중단, 인권개선 언급 침묵

 

오늘날 북한은 제3대 세습과정을 겪으면서 북한 사회의 인권은 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번 WCC가 독일 베를린 발-모스코바-베이징-평양-부산으로 연결되는 평화통일열차를 구상하고 이를 실천하여, 베를린에서 출발하여 모스코바와 베이징을 거쳐, 북한의 반대로 평양으로 가지는 못하고, 중국 단둥에서 배를 타고 인천을 통해서 서울을 거쳐 부산으로 왔다. WCC 집행부가 실시한 한반도 평화통일열차 여행에 80여명의 인사들이 참여한 것은 상징성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 WCC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당신의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주제로 총회를 진행하면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주민을 굶주려 아사하게 하면서까지 개발한 핵폭탄과 미사일 등 군비 확장과 북한 주민의 인권 침해에 관하여, 1970년대와 같은 보다 강력한 성명을 발표하지 않는 것은 용공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독일의 복음주의 선교학자 피터 바이어하우스는 “(WCC 부산총회의) 많은 참관자들과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부산 총회와 총회를 준비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100마일 떨어져 있는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대량으로 그리고 가장 무자비한 방식으로 순교의 죽음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바이어하우스는 북한에서 박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고통에 대한 WCC 집행부의 침묵과 무관심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아쉬움을 나타냈다. “저는 부산에서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거나 공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총회의 준비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조종을 받는 북한 당국의 교회를 초청하려고 했다.” “부산의 WCC 총회가 북한의 고통 당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을 것” “총회는 주님께서 저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참된 통일을 가져다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고 평화로운 통치 아래서 한 나라를 이루도록 위해서 기도를 했어야 한다.”고 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성명서에서 끝내 북한의 인권 현실을 외면한 것에 대해, 한국 교계 지도자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간 온건한 입장에서 WCC의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실망의 충격을 주있다. “WCC(성명서에서 인권 유린의 주체로) 북한을 지목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성명서에) ‘북한의 심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와 특별히 종교의 자유가 회복돼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WCC는 성명서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우회했다. 북한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런 문제가 많다면서 ‘WCC는 바로 그 약자들 편에 서 있다는 식의 간접적인 표현만 쓴 것” “(한반도 평화를 위해) 외세가 다 물러가야 한다고 했고, 핵무기와 핵발전소도 동일시했다. 북한의 핵무기를 없애는 동시에 핵발전소도 없애야 한다고 한 것” “칼은 위험한 물건이지만 그것을 의사가 들면 생명을 살리는 데 쓰일 수 있는데도, 그저 모조리 없애자는 논리를 사용했다. 이러한 WCC의 평화와 정의 개념은 편파적이다(크투, ‘WCC 선도하려던교계 지도자들, 충격 넘어 분노, 김진영 기자: 2013.11.08.).

 

9. 동성애 지지 결의?

 

1)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 결의는 없음

 

WCC는 동성애 결의를 공식적으로 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WCC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어떤 공식적 입장을 취한 적이 없다. 7차 캔버라 총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제기됐으나 교회 분열을 야기시킬 수 있는 민감한 문제라는 판단 아래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지속적인 연구와 대화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리했다(박성원,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 ‘4대 핵심쟁점지상토론, 종교다원주의일부는 타종교 구원 인정’-‘예수구주 정체성 확고‘ ”2013.09.05 국민일보 미션란)

 

동성애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받아들이지, 교리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연규홍, “‘개종전도 금지주의성서의 무오성집중 검토,” 김진영 기자: 2013.10.06)고 한다.

 

8차 하라라 총회(1988)를 기점으로 WCC는 개인의 성윤리, 혼외정사, 유전자 공학과 성, 에이즈, 콘돔 사용 문제, 성폭력 문제 등을 인권 차원에서 제기했다. 이처럼 WCC가 다룬 성 문제는 인간의 성() 전반에 관련된 것이었다. 동성애 문제는 주로 북미나 유럽에 의해 제기되고 있지만, 남반구 교회 대부분은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박성원, 2013.09.05 국민일보 미션란).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 이슈는 WCC 안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다.

 

2) 미네아폴리스회의에서 소속 여성회원들의 동성애 축제

 

그러나 WCC 교단에 속한 여성단체인 재-이미지화(Re-imaging)WCC의 후원을 받아 199311월에 미네소타 주에서 미네아폴리스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WCC 회원 교단에 속한 2천명의 여성 대의원들이 동성애 축제를 벌인 것이 물의를 빚었다. 결혼 문화를 동성애 문화로 바꾼다는 것이다. 지금 WCC 회원교단인 미국 장로교·감리교나 영국 성공회에 속한 진보주의자들이 동성애를 지지하고, 동성애 성직자 안수를 허용하여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러나 WCC 회원인 한국교회는 동성애에 대하여 명료하게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 WCC는 앞으로 동성애 옹호자들과 급진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이 WCC 지원 집회를 주도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3) 부산총회에서 일부 참가회원들의 동성애 지지 선언

 

그런데 이와 유사한 사건이 부산총회 기간에 벌어졌다. WCC 2013 부산총회가 열리는 가운데, 동성애를 인정하는 설명회와 동성애자 쉼터 건립을 위한 모금활동이 진행되었다. 미국과 유럽, 인도네시아와 라트비아, 남아공과 우간다 등에서 온 WCC 참석자 50여명이 11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성애 지지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특히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적 혐오는 기독교가 오랜 전통으로 외쳐온 이웃 사랑과 전면적으로 배치됨을 다시금 새기고, 한국 사회에 이러한 사회적 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서로 연대하면서 함께 기도한다.” “여기 모인 우리는 앞으로 한국교회가 LGBTQIA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이야기 마당을 마련하고, 각 교단의 정책 결정(policy-making)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를 요청한다.”

 

이들 참가자들은 한국 정부를 향해 차별금지법 법제화와 각 학교 및 공공기관 등에 성적 지향 및 성정체성 관련 차별금지 교육 프로그램 마련, 동성애 관련 군형법 조항 폐기 등을 요구했다(크투, WCC 참여 성소수자 단체들 동성결혼 축복해야”, 이대웅 기자: 2013.11.04, 동성애자 목사 안수 등 제한 폐지도 촉구). 이에 대해 WCC 총무는 공식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중립적 입장을 나타냈지만, 일부 참가자들이 서울 중심지에서 동성애 공개지지 선언을 한 것에 대해 WCC측의 아무런 제지나 반대 성명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자칫하면, WCC 부산총회가 동성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4) 동성애문제 대책위원회의 동성애 반대 촉구

 

이 사건에 대하여 주요 교계 단체들이 참여한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가 WCC 총회를 향해 동성애 문제에 대한 올바른 처신을 촉구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WCC 총무는 공식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중립적 입장을 나타냈지만, 일부 참가자들이 서울 중심지에서 동성애 공개지지 선언을 한 것에 대해 WCC측의 아무런 제지나 반대 성명이 없다는 데서 동성애에 관한 WCC의 진정성에 의혹을 갖게 한다.” “한국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는 일반인의 보편적 정서와 문화, 첨예한 남북한의 분단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동성애를 지지하고 군형법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 국민과 문화를 무시하고 한국의 현실적 필요에 반하는 처사이다”. “이러한 WCC 일각의 동성애 지지 입장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은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WCC 집행부의 이중적 태도에 대한 유감표명과 함께 북한주민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웃 사랑과 박해받는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자고 외치는 WCC가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고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WCC가 인권과 평화를 거론하면서, 동성애자의 인권만 중시하고 2,400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를 도외시하는 일이 과연 합당한 처사인지 스스로 묻고 각성하라.”(크투, “WCC, 동성애자 인권만 중시하고 주민 인권 도외시이대웅 기자: 2013.11.04, 동반국, WCC 향해 동성애 문제에 확고한 입장 정립촉구).

 

트베이트 총무는 먼저 동성애문제와 관련, “동성애라는 주제가 WCC의 일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개인적으로 동성애 문제로 인해 상대방을 정죄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을 계속 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크투, WCC 총무 동성애라는 주제가 일치방해해선 안돼김진영 기자: 2013.11.08.)

 

5) WCC 집행부의 중립적 태도가 지니는 문제점

 

이번 부산총회에서 트베이트 총무를 비롯하여 총회 지도자들은 동성애를 인류애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였다. 그러나 동성애는 오늘날 가정 해체의 요인 가운데 하나이며, AIDS 질병의 중요한 전염 경로로 조사되고 있다(AIDS 고위험군 중에서 남성동성애 집단의 추정 감염자가 71.3%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 이러한데 WCC 총무가 동성애에 대하여 지지도 하지 않으나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중립적인 태도를 표명한 것은, 인류 사회에 대하여 하나님의 정의와 뜻을 분명히 표명해야 하는 기독교 기관으로서 세속적인 풍조에 대하여 따라가는 태도를 보인, 영합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동성애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부일처제도와 가정제도가 무시를 당하게 되었다. 교회는 동성애라는 죄적인 행위와 동성애자라는 죄인을 구별해야 한다. 동성애는 경계하고 성경이 명시적으로 지적하는 죄된 행위라는 사회적 교육의 처방을 해야 하며, 동성애자는 하나의 병든 인간으로 치유 받을 수 있도록 목회적 돌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WCC 지도부가 동성애를 하나의 죄로 보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사회적 죄를 용인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맺음말

 

부산총회에서 보았듯이 WCC는 보수와 진보가 모인 다양한 색깔의 기독교 협의회이요, 개회예배에서 누구나 보았듯이 기본적으로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의 신조를 고백하는 기독교 기구이다. 그 안에는 동성애, 한반도 선언, 선교 선언 등에서 다양한 입장을 지닌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극보수인 동방 정교회, 온건한 보수인 한국 감리교, 장로교 예장 통합 등이 회원으로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회원인 보수진영은 일부 진보진영의 극단한 입장을 일일이 트집 잡아 대화를 거부하거나 정죄하려고만 하지 말고, 오히려 이들을 형제로서 대하며 선의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보다 온건하게 나가도록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이 요청된다. 이 지상에는 완전한 교회도 기구도 없기 때문이다.

 

보수진영도 여러 가지 부정부패의 흠을 지니고 있다. 보수교단의 연합체에 일어나는 각종 스캔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사회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라면 인종과 국적과 지역과 교파를 초월하여 서로 인정하는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은 역사와 우주를 창조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므로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가 협력하여 세계 기독교회(WEAWCC, WARC, Global Christian Forum )와 연결되어 지구상에 오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이 나라를 대망하고 함께 참여해야 한다.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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