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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세례.jpg

 

유아세례, 카타콤 벽화(주후 150년 경) 

 

유아세례 비판에 대한 칼빈의 논박

 

하나님은 자비하사 세르베투스의 유아세례에 대한 비판들을 개혁교회들을 대표하여 칼빈으로 하여금 잘 반박하게 하셨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의 유아세례에 대한 견해를 논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재세례파 중에서 보잘 것 없는 자가 아니라 실로 그 파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유들은 투쟁의 무기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Inst. 4.16.31.

 

칼빈은 총 20개의 세르베투스의 유아세례 비판에 대해 잘 반박하였다.

 

1. 세례는 완전을 향한 초청이다

 

세르베투스는 완전한 세례는 완전한 사람을 요구한다고 주장하나, 칼빈은 세례는 완전을 향한 초청이라고 반박한다.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상징들은 완전하므로 그것들은 완전한 사람들을 또는 완전하게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요구한다고 세르베투스는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쉽다. 세례는 죽는 날에까지 연장되는 것인데 세례의 완전성을 어느 한 시점에 국한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그뿐 아니라, 세례는 우리가 일생 동안 한 걸음씩 계속 완전을 향해 전진하도록 초청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첫날에 사람에게서 완전성을 찾는 것은 미련한 생각이다.” Inst. 4.16.31.

 

2. 성만찬은 의미를 아는 성인이 받지만, 유아세례는 그것과 달라 유아는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세르베투스는 세례의 의미를 모르는 유아들에게는 세례는 필요 없다고 말하나, 칼빈은 이것은 성만찬에만 해당되며, 유아세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는 그리스도의 상징들이 기념을 위해서 제정된 것이며 모든 사람은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자기의 머리에서 짜낸 것은 논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그가 세례에 적용하는 말은 각각 "자기를 살피라"고 한 바울의 말(고전 11:28)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성만찬에만 관련시켜야 옳다. 세례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도 이런 말씀이 없다. 그러므로 아직 어려서 자기 성찰을 할 수 없는 유아들에게도 세례를 주어도 좋다고 우리는 결론을 내린다.” Inst. 4.16.31.

 

3.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으나, 신자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복 안에 있다.

 

세르베투스는 하나님의 진노가 유아를 포함한 모든 자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나, 칼빈은 유아들은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았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는 세 번째 반론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두 여전히 죽음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3:36), 믿을 힘이 없는 유아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그리스도께서 이 구절에서 아담의 후손 전체가 얽혀 있는 전반적인 죄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고, 복음을 멸시하고 자기들에게 제시된 은혜를 교만하고 완강하게 거절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경고하신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아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말씀이다. 동시에 나는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시는 사람은 모두 아담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해방된다는 반대 주장을 편다. 따라서 유아들이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므로(19:15; 10:16) 그들은 죽음에서 해방되었다는 결론이 된다. 세르베투스는 성령으로 난 자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3:8 참조)는 성경에 있지도 않은 말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런 말이 성경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신자들이 성령께서 그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데 따라 복종하게 된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 대해서 한 말씀을 전체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짓이다.” Inst. 4.16.31.

 

 

4. 신자의 자녀들도 모태로부터 정죄를 받지만, 그들은 초자연적인 은혜로 거룩하다.

 

세르베투스는 육적인 것이 먼저 오기 때문에 영적인 세례를 위해서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신자들의 자녀들은 초자연적인 은혜로 거룩하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의 네번째 반론은, 육적인 것이 먼저 오기 때문에(고전 15:46) 영적인 세례를 위해서는 나이를 더 먹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육으로 난 아담의 후손이 모두 모태에서부터 정죄를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즉시 대책을 강구하시지 않으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영적 생명의 시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 해를 지정하셨다는 생각을 세르베르투스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바울이 확증하는 바와 같이, 신자의 자녀들도 본성대로 한다면 혹 잃은 자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초자연적인 은혜에 의해서 거룩하다(고전 7:14).” Inst. 4.16.31.

 

5. 천국은 완전한 자가 아니라 절뚝발이와 소경, 불구자들과 어린아이도 들어간다.

 

세르베투스는 시온성은 완전한 자만 올라간다고 주장하나, 칼빈은 하나님은 소경들과 저는 자들과 어린아이들도 초대하신다고 반박한다. “다음에 세르베투스는 비유를 제시하는데, 다윗이 시온성에 올라갈 때에 소경과 절뚝발이들이 아니라 강건한 군인들을 데리고 갔다고 한다(삼하 5:8). 여기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께서 소경들과 저는 사람들을 하늘 잔치에 초대하셨다는 비유를 인용한다면(14:21), 세르베투스는 이 난제를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나는 절뚝발이들과 불구자들이 이전에 다윗과 함께 일한 적이 없었느냐고 또 묻는다. 그러나 독자들은 구약 성경을 읽으면 그것을 곧 알 수 있기 때문에, 순전한 거짓말로 꾸며낸 이 논리를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Inst. 4.16.31.

 

6. 유아에게 세례를 주라는 명령이 없으나, 유아에게 세례를 주지 말라는 명령도 없다.

 

세르베투스는 사도들은 유아들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고 주장하나, 칼빈은 유아들도 인간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또 다른 비유를 말한다. 사도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였지만(4:19) 유아들을 낚는 어부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에 나는 복음의 그물에는 각종 물고기가 가득하다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무슨 뜻이냐고 반문한다(13:47). 그러나 나는 비유 놀이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도들이 가르치는 사명을 받았을 때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지 말라는 명령은 결코 받은 일이 없다고 대반박한다. 또한 필자는 복음서 기자가 그들을 ανθρωπους(이 말은 예외 없이 인류 전체를 포함한다)라고 부르는데, 왜 세르베투스는 유아들을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Inst. 4.16.31.

 

7. 육에서 난 유아들도 하나님은 값없이 선택하시고 성별하신다.

 

세르베투스는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과 조화되기 때문에 영적이지 않은 유아들은 세례받기에 합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육에서 난 유아들을 하나님은 값없이 선택하시고 성별하신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의 일곱째 반론은, 영적인 것은 영적인 것과 조화되는 것이기 때문에(고전 2:13~14) 영적이 아닌 유아들은 세례를 받기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바울의 말을 사악하게 곡해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 바울은 교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들의 허망한 지혜를 너무도 자랑하므로 바울은 아직도 하늘 교리의 초보를 배워야 하는 그들의 미련함을 책망한다. 누가 이 말을 근거로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릴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육에서 난 유아들을 값없이 선택하셔서 성별시키시지 않는가? Inst. 4.16.31.

 

8. 유아들은 세례 받은 후에 성찬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르베투스는 유아들이 새로운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영적인 양식인 성찬을 먹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유아들이 세례받은 후에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는 그들이 새로운 사람이라면 그들에게는 영적인 양식을 먹여야 한다고 반박하는데, 여기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다. , 유아들은 세례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양떼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단단한 음식을 받을 수 있는 어른이 될 때까지는 그들의 입양의 상징(the symbol of their adoption)만 있으면 그들에게 충분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만찬에 관해서 명백하게 요구하신 자기 성찰을 그들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Inst. 4.16.31.

 

9. 성찬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이 받으며, 아이들은 아직 받을 수 없다.

 

세르베투스는 그리스도는 그의 모든 백성을 성찬에 초대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할 만한 준비가 된 자들에게만 성찬을 허락하시며, 유아들이 아직은 준비가 안되었다고 주장한다. “ 후에 세르베투스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백성을 성찬에 초대하신다는 반론을 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기념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만을 허락하시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가 안아 주시기까지 한 유아들은 장성할 때까지 특이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외인이 아니라는 결론이 된다. 세르베투스는 사람이 나서 먹지 않는다는 것은 해괴한 일이라고 반대한다. 나는 대반박한다. 영혼은 성찬(聖餐)을 외형적으로 먹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음식을 받으며, 따라서 유아들은 상징을 받지 않을지라고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음식이 되신다. 그러나 세례는 경우가 다르다. 세례에 의해서는 교회에 들어가는 문이 그들 앞에 열릴 뿐이다.” Inst. 4.16.31.

 

10. 청지기가 양식을 집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말씀은 세례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세르베투스는 착한 관리인은 적절한 때에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이 말씀은 유아기는 세례 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Servetus)는 착한 관리인은 적절한 때에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 준다고 다시 항의한다(24:45). 나는 이 점을 기꺼이 인정하지만, 그는 어떤 표준으로 우리가 세례 받을 때를 결정하며 유아기는 세례 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것인가? 그뿐 아니라, 그는 주께서 밭이 희어졌을 때에 속히 추수하라고 사도들에게 명령하셨다고 덧붙인다(4:35). 그러데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의 뜻은 사도들이 자기들이 수고한 목전(目前)의 결실을 보고 더욱 분발해서 전도하라고 하신 것일 뿐이다. 누가 이 말씀에서 추수 때만이 세례에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릴 것인가?” Inst. 4.16.31.

 

11. 신자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므로 세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세르베투스는 제자와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말이므로 유아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유아들도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반박한다. “그의 열한번째 논거(論據), 초대 교회에서는 제자와 그리스도인이 동일하였다는 것이다(11:26). 그러나 우리는 이미 부분에서 전체를 추론하는 그의 서툰 논법을 보았다. 제자라고 한 사람들은 성인(成人)으로서, 이미 가르침을 받고 그리스도께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율법 아래에서 유대인들이 모세의 제자가 된 것과 같다. 그러나 올바른 논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이 사실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가족이라고 확증하신 유아들을 외인이라고 추측하지는 않을 것이다.” Inst. 4.16.31.

 

 

12. 유아들이 성찬에 참가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도 유아들을 안고 축복하셨다.

 

 

세르베투스는 유아들은 성찬에 참가하지 못하므로 우리의 형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유아들을 안으셨다는 것은 그들을 택하셨다는 진정한 증표였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형제들이지만, 유아들은 성찬에 참가하지 못하므로 우리의 형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만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는 원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유아들을 안으셨다는 것은 그들을 택하셨다는 진정한 증표였다. 이 선택에 의해서 유아들은 어른들과 연합되었으며, 유아들이 일시 성찬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라는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십자가 상에서 회개한 도적(23:40~43)은 성찬에 참가한 일이 없었지만 경건한 사람들의 형제가 될 수 있었다.” Inst. 4.16.31.

 

 

13. 믿음으로 양자의 영을 받으나, 신자의 자녀들은 은밀한 방법으로 부르신다.

 

 

세르베투스는 오직 믿음으로만 양자의 영을 받고 우리의 형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믿음으로 부르시는 것은 일반적인 방법이나, 은밀한 방법으로 유아들을 부르신다고 반박한다. “후에 세레베투스는 양자의 영(8:15)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우리의 형제가 될 수 없으며, 양자의 영은 오직 듣고 믿음으로써 받는 것이라고 덧붙인다(3:2). 나는 그가 항상 그릇된 논법으로 돌아간다고 대반박한다. 여기서도 어른들에 대해서만 한 말을 유아들에게 적용함으로써 전후를 전도(顚倒)한다. 거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부르시는 일반적인 방법(ordinary manner)은 자기가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서 신실한 교사들을 일으키고 그들의 사역과 수고를 통해 자신의 손을 뻗치심으로써 택하신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신다고 가르친다(10:17; 3:5). 이 말씀을 근거로 원칙을 세워, 하나님께서 다른 은밀한 방법(another secret means)으로 유아들을 그리스도께 접붙이시는 것을 감히 금하시려는 자는 누구인가?” Inst. 4.16.31.

 

 

14. 성령을 받은 후에 세례 받기도 하고, 세례 받은 후에 성령을 받기도 한다.

 

 

세르베투스는 고넬료는 성령을 받은 후 세례를 받았으므로 유아세례는 불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한 가지 예에서 일반적인 원칙을 끌어내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는 고넬료가 성령을 받은 다음에 세례를 받았다고 반론을 제기한다(10:44~48).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예에서 일반적인 원칙을 끌어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내시와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를 보면(8:27~38; 8:12), 주께서는 다른 순서에 따라 세례가 성령의 은사들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Inst. 4.16.31.

 

 

15. 신자는 중생으로 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세르베투스는 사람들이 중생으로 신들이 된다고 신성모독적인 주장을 한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을 왜곡해서 주장하는 것은 파렴치하다고 비판한다. “열 다섯번째 이유는 어리석음의 정도를 넘는다. 세르베투스는, 우리가 중생에 의하여서 신()들이 되지만, 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므로(10:34~35 ; 82:6 참조) 이것은 유아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신자들에게 신성(神性)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의 한 가지 망상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을 검토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시편의 한 구절을 곡해해서 이런 전혀 다른 뜻으로 바꾼 것은 참으로 극히 파렴치한 행동이다. 예언자가 왕들과 집권자들을 "신들"이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명하신 직책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노련하다는 해석가는 특수한 통치 명령에 관련하여서 일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복음의 교리에 적용해서는 유아들을 교회에서 추방하려고 한다.” Inst. 4.16.31.

 

 

16. 말씀으로 사랑들이 중생하나, 유아들은 하나님의 중생 예정표대로 된다.

 

 

세르베투스는 유아들은 말씀에 의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은 자신의 중생 예정표를 따르신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는 유아들이 말씀에 의해서 나지 않았으므로 새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여러 번 말한 것을 여기서 되풀이한다. 복음의 교리는, 만일 우리가 그것을 받기에 참으로 합당하다면 우리를 중생케 하는 썩지 않는 씨이지만(벧전 1:23), 우리가 아직 배워 이해할 만한 나이가 아닌 때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중생 예정표에 따르신다’”. Inst. 4.16.31. God keeps his own timetable of regeneration.

 

 

17. 초태생의 양과 염소도 하나님의 것이듯이, 유아들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세르베투스는 율법에서 갓난 양을 희생으로 바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초태생을 하나님께 구별하며 드렸고 일년 된 어린 수컷은 희생물로 사용되었다고 반박한다. “ 세르베투스는 다시 비유(allegory)로 돌아가서, 율법에서 갓난 양과 갓난 암염소는 희생으로 바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을 비유적인 해석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나는 즉시 그것을 반박할 수 있다. , 초태생은 모두 성별해서 하나님께 드렸고(13:2), 양이나 염소나 일년 된 어린 수컷은 희생물로 사용했다(12:5). 여기에서 우리는 결코 강건한 성년 시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최근에 태어난 아직 어린 것을 희생으로 택하신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Inst. 4.16.31.

 

 

18. 그리스도가 축복하신 유아들은 아무런 준비 교육 없이 축복을 받았다.

 

 

세르베투스는 세례 요한이 준비한 사람들만 그리스도께 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은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신 어린아이들은 요한에게서 준비교육을 받은 일이 없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는 요한이 준비한 사람들만 그리스도께 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요한의 직무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 같으나 이 점은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안아 주시고 축복하신 어린아이들은(19:13~15; 10:13~16; 18 ; 15~17) 요한에게서 예비 교육을 받은 일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세르베투스와 그의 그릇된 원칙과는 작별을 고하라!” Inst. 4.16.31.

 

 

19. 하나님은 어른들만이 아니라 유아들도 거룩하게 씻기신다.

 

 

세르베투스는 거룩한 씻음은 어른들에게만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은 유아들을 자기에게 성별케 하신다고 반박한다. “세르베투스는 트리스메기스투스와 여자 점장이들을 끌어들여, 거룩한 씻음은 어른들에게만 적합하다는 증거를 구한다. 그리스도의 세례를 이교도들의 불경스런 의식에 일치시키려 하며 트리스메기스투스의 뜻에 따라서만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세르베투스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얼마나 존경스럽게 생각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한다. 하나님께서는 유아들을 자기에게 성별케 하시며, 비록 나이가 어려서 그 효력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거룩한 상징에 의해 그들을 받아들이신다. 그리고 우리는 이교도들의 의식에서 무엇을 빌려다가 우리의 세례에 적용함으로써 할례에 관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원불변의 법칙을 변경하는 것을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Inst. 4.16.31.

 

 

20. 유아세례를 장난으로 파괴할 수 없다.

 

 

세르베투스는 어린이들이 장난삼아 세례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칼빈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분별력이 없는 유아들이 할례를 받았으며, 하나님의 제도를 파괴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끝으로, 세르베투스는 만일 분별력이 없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줄 수 있다면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이 장난삼아 세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가 이 문제에 관해서 하나님과 논쟁을 하도록 내버려 두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직 분별력이 없는 유아들이 일반적인 할례를 받았다. 그런데도 어린이들을 위한 할례를 장난삼아 집행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를 파괴할 수 있었는가? 그러나 버림받은 자들이 미친 듯이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생각들을 끌어다가 자기들의 오류를 변호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교만과 고집을 이런 불합리한 생각으로 처벌하신다. 나는 세르베투스가 그의 재세례파 형제들을 지지하는데 있어서 논거가 빈약하다는 것을 밝혔다고 믿는다.” Inst. 4.16.31.

 

조창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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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이단판별 1] 이단판별의 기준과 주체

          이단 판별의 기준과 주체   [이단판별 1] 정당한 기준부터 세우라      ‘이단’이라는 주제는 교계의 뜨거운 감자다. 올해도 적지 않은 교단이 이단 문제를 다뤘다. 교회는 이단 판별, 이단 정죄라는 엄중한 과제를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이단 판별의 기...
    Date2023.09.04 Byreformanda Reply0 Views349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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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김세윤 교수의 로마카톨릭 칭의론

      김세윤 교수의 로마카톨릭 칭의론    아래의 글은 기독교사상연구원 리포르만다 주최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 “트렌트공의회 칭의론과 칼빈의 해독문: 김세윤의 로마가톨릭 칭의론과 관련하여” 도입과 개요 소개 내용이다. 유뷰트 동영상으로도 시청할...
    Date2023.08.30 Byreformanda Reply0 Views405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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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 유감

        김세윤 교수의 ‘유보적 칭의론’ 유감 (재차 기고문)     신약신학자 김세윤 교수(풀러신학교)는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역설한다.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이론에 결함이 있다고 본다. 자신이 주장하는 새로운 칭의론이 종...
    Date2023.08.30 Byreformanda Reply0 Views61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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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유아세례 비판에 대한 칼빈의 논박

      유아세례, 카타콤 벽화(주후 150년 경)    유아세례 비판에 대한 칼빈의 논박   하나님은 자비하사 세르베투스의 유아세례에 대한 비판들을 개혁교회들을 대표하여 칼빈으로 하여금 잘 반박하게 하셨다.   칼빈은 세르베투스의 유아세례에 대한 견해를 논박...
    Date2023.08.16 Byreformanda Reply0 Views368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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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능동-수동 순종, 머레이와 맥클라우드의 견해

        능동-수동 순종, 머레이와 맥클라우드의 견해     최근 한국교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수동 순종과 능동 순종 논의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스도의 두 가지 순종을 찬성하는 분들의 글들을 읽어보면 최근에 이 주...
    Date2023.07.28 Byreformanda Reply0 Views498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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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의 핵심이론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의 핵심이론     기고: <선교와 교회>(Vol. 11, 2023 Spring), 20-44   A. 들어가는 말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는 현대판 자유주의 신학의 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탈구조주의, 혼합주의, 민족문화 그리고 종교의...
    Date2023.07.08 Byreformanda Reply0 Views761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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