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만찬의 초대
주님: 나의 아들딸아, 포기하라. 무조건 포기하라. 이것이 내가 네게 요구하는 전부이다. 네 소유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바치는 선물이 아니라 바로 너이다. 너를 가지고 싶어 한다. 너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을 소유할지라도 만족할 수 없다. 너 자신을 바치지 않는다면 무엇을 바칠지라도 나는 기쁘지 않다. 너 자신을 내게 바치고, 너 자신을 모두 바치라. 그리하면 내가 네 제물을 받을 것이다.
거룩한 만찬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요 6:51).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마 26:26).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 6:56).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나: 주 예수여, 이 모든 가르침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단번에 말씀하시거나 한 곳에서만 기록한 것이 아니지만 모두 주님의 영원한 진리이기에 감사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즉 이 말씀은 내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입에서 내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이 말씀은 부드러운 사랑의 말이기에 나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두렵습니다. 나는 양심 때문에 괴롭고 죄책감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부드러운 말씀이 나를 부르시지만 나는 죄에 짓눌려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고 싶다면 주님께로 담대하게 나아오라,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누리기 원한다면 불멸의 음식을 받아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나의 주 하나님, 무엇보다 거룩한 주님의 몸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초라하고 부족한 나를 불러주시니 이 죄인의 귀에는 이보다 더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초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여,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주님께 나갈 수 있습니까? 보옵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왕상 8:27) 주님은 “다 내게로 오라”(마 11:28)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더할 수 없이 겸손하고 사랑스럽게 초대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얼마나 무가치한지 알고 있는데, 어찌 그것을 생각이라도 하겠습니까? 주님의 더없이 자비하신 마음을 그토록 자주 상하게 한 내가 어찌 주님을 집으로 모실 수 있겠습니까?
천사와 천사장들이 주님 앞에서 경외하며, 절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떨지만 주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주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누가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그것을 명하지 않으셨다면 누가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노아는 방주를 만드느라 백 년간 노력했지만 몇 사람을 구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세상을 만드신 분을 한 시간 안에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며 특별한 친구인 모세는 썩지 않는 나무에 정금을 입혀 법궤를 만들어서 율법이 적힌 계명을 보관했습니다(출 25:10-16). 나는 타락한 피조물입니다. 내가 감히 율법을 만드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을 어찌 그토록 쉽게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왕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려고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고(왕상 6:38), 8일 동안 성전 봉헌을 기념했습니다. 그는 화목제를 일천 번이나 드렸고, 나팔 소리와 커다란 환호 속에 언약궤를 그 안에 엄숙하게 모셨습니다(왕상 8장).
그런데 누구보다 불쌍하고 비참한 내가, 30분도 진정으로 기도에 힘쓰지 못하는 내가, 어찌 감히 주님을 나의 집에 모실 수 있겠습니까? 30분 만이라도 값지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그들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부족한지 모릅니다. 성찬을 나누려고 얼마나 짧은 순간을 준비했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마음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물리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내가 모시는 분은 일개 천사가 아니라 천사들의 주인이십니다. 옳지 않은 생각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방해하지 아니해야 하고, 어떤 피조물이라도 나의 마음을 차지하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닥칠 일을 상징하는 율법 시대의 제사와 과거의 모든 제사를 성취하는 주님의 몸을 드리는 진정한 제사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런데 어찌 나는 주님의 놀라운 임재를 간절히 찾지 않는 것일까요? 어찌 간절한 마음으로 거룩한 상징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거룩한 족장과 과거의 예언자들, 국왕과 군주들과 전체 백성이 주님을 위한 거룩한 예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경건한 왕 다윗은 과거에 조상들에게 베푸신 복을 떠올리면서 하나님의 궤를 마주하고서 힘껏 춤을 추었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시편을 짓고 기쁘게 찬송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에 영감을 받아 수금을 연주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노래로 하나님을 송축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다윗이 이처럼 과거에 언약 궤 앞에서 커다란 믿음을 실천하고 거룩한 찬송을 계속했다면, 주님의 이 거룩한 성찬의 예식에 참여하는 나와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제 얼마나 더 큰 경외하는 마음과 헌신의 자세를 가져야겠습니까!
눈으로 볼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살피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주님이 선택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니 어찌 그리 다정하고 자비하신지요. 이것은 진실로 인간의 모든 이해를 넘어섭니다. 특별히 경건한 사람의 관심을 끌고 열정에 불을 붙입니다. 심지어 믿음생활을 바로잡는 데 일생을 바친 진정 성실한 주님의 사람들까지 성찬에 참여하여 헌신의 은총과 덕에 관한 사랑을 적잖이 누리게 됩니다.
성찬에 감추어진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성실한 종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나 죄의 노예들은 그 은총과 의미를 결코 깨닫지 못합니다.
이 성찬을 통해 영적인 은총이 베풀어지고, 잃었던 영혼의 힘이 회복되고, 죄로 말미암아 일그러진 이전의 아름다움이 다시 되살아납니다. 이 은총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때로 헌신적인 믿음을 충만하게 하기에 정신은 물론 연약한 육체에도 큰 힘이 됩니다.
우리의 냉담함과 무관심은 정말 안타깝고 딱할 정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열심히 영접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아야 할 모든 사람의 희망이 그분께 달려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의와 구속입니다. 그분은 성도들의 영원한 즐거움이고 순례자들의 위로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이 이 거룩한 신비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 예수여, 영원한 목자이신 주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비참한 우리에게 주님의 고귀한 몸과 피로써 새로운 힘을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의 입술을 통해 주신 말씀으로 이 신비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Thomas a Kempis, De Imitatione Christi, Part 5.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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