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사랑함에 대하여
예수님의 하늘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드물다. 많은 사람이 위로를 원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고난을 소망할 뿐이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식탁에 함께 앉고자 하지만 많지 않은 자들만이 금식에 동참한다. 누구나 그분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려 하지만 그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떡을 나눠주시는 그분을 따르려고 하지만 고통스러운 자기희생의 잔을 마시려고 머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그분의 기적에 감명 받지만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문제를 겪지 않으려 한다. 예수님께 어느 정도의 위로를 받을 때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자신을 감추고 심지어 잠시 그들을 떠나기라도 하시면 그들은 불평하기 시작한다. 금방 낙심하고 만다.
어떤 특권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언제나 그분을 경배한다. 크게 위로를 받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어떠한 어려움과 괴로움을 겪을 때에도 경배한다. 비록 그분이 두 번 다시 그들을 위로하지 않으실지라도 변함없이 찬양하고 감사한다. 자기 이익이나 자기 사랑에 물들지 않았으면서도 예수님을 순수히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 아닌가!
언제나 위로를 기대하는 이들을 설명할 단 한 마디는 “고용된 사람”이라는 단어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작 자신의 이익과 유익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기꺼이 섬기는 사람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가? 그와 같은 영적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하고 어떤 피조물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이를 알고 있는가?
이와 같은 사람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다.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 “사람이 그의 가산 전부를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또한 자신이 지은 죄를 배상하고자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최상의 교육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사뭇 덕스럽고 헌신에 열심이라도 여전히 핵심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다.
모범적인 사람은 모든 것 특히 자신을 포기하고 이기심의 흔적조차 없앤다.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고 나서도 그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한다. 칭찬하는 사람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실제로 평범한 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이 점을 인정하고 나면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해질 것이며 시인처럼 노래하게 될 것이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시어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시 25:16).
모든 것 특히 자신을 포기하고 이기심의 흔적조차 없앤 사람보다 더 부요하거나, 더 능력이 있거나,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기를 포기하고 이기심의 흔적조차 없앤 사람은 자신과 모든 물질을 포기할 수 있고, 또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Thomas a Kempis, De Imitatione Christi, Part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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