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폴리나리우스주의자가 아니다
-초대교회사 기독론 강의를 듣고서-
나는 어릴 때부터 기독교인이었다. 사도신경을 외우며,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성경의 무오성을 믿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 사건과 부활과 재림을 믿었다.
그런데 막상 전도를 하라고 하면 내가 믿는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막막하고 어려웠다. 그래서 회피했다. 때때로 ‘4영리’를 가지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부활하셨으며 영접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고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까운 이웃들에게 예수님을 전할 때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주시는 분’ 정도로만 소개했다. 하나님을 실제로 존재하셔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분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그냥 좋으니 우선 교회에 가자고 얼버무렸다.
최덕성 교수의 <인간론-기독론>과 <초대교회사> 강의를 들으면서, 정통 기독론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수에 대해 내가 믿는 진리가 정통적인지 이단적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웠다. 만약 내가 이 강의를 듣지 않았으면, 나는 여전히 부지중에 접한 이단적인 사상을 식별하지 못한 채, 무식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다. 오순절 날에 성령을 받고,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유대인들에게 외쳤다. “여러분이 십자가 달아 죽인 그 예수님이 구약에서부터 오실 것으로 예언된 그 메시야가 확실하니,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어 구원 받으십시오.”
그 이후 바울의 전도를 받은 많은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로마 정부의 종교 핍박에 당당하게 맞서고 순교함으로 그리스도의 증인된 사명을 다했다.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어 기독교가 지중해 지역으로 확산될 무렵, 영지주의가 정통기독교회를 괴롭혔다. 영지주의는 이원론적 우주관에 입각하여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를 구분했다. 영적인 것은 선한 것이고, 물질은 악한 것이라고 했다. 영적 깨달음(비밀스러운 지식)이 육체 구원과 해방의 원동력이라 주장했다.
영지주의는 유대교, 동방의 종교 사상, 이교 철학, 그리스 신화가 혼합된 것으로, 예수님의 인성과 성육신을 부인하고, 부활도 의미가 없다며 가현설을 주장했다. 폴리캅의 제자이며 프랑스 리용의 감독인 이레니우스는(140-203) <이단 논박>에서 영지주의를 고발하였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의 밀라노 칙령(313)으로 기독교 신앙이 공인된 이후, 초대교회는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에 대한 신학 논의를 활발하게 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의 관계’를 정의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규정했다. 교회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헬라 문화의 사상과 철학의 지배 아래 있던 때였다. 플라톤 ‘이데아론’의 계급주의가 압도적으로 편만했던 시대였다.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정통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은 이러한 대립적이고 비판적인 시기에 정립되었다. 정립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여러 신학적 논쟁은 4차례의 공의회를 거치면서 정리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이단은 아리우스주의였다. 이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250-336)를 중심으로 좌파 오리겐 학파 루키안의 제자들이 주창하고 나섰다. 우파 오리겐 학파의 인물인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와 신학적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 교회를 분열시켰다.
아리우스주의의 핵심은 로고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시작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등장한 로고스인 예수는 피조물이라는 것이었다. 양자론이나 역동적 군주론처럼, 성부와 성자를 구별하고 종속관계를 주장했다. 성자는 영원하지 않으며, 성부에게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에 성부와 동일하지 않다고 했다. 니케아 공의회(325)는 이 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아리우스주의는 이단으로 정죄되었지만 다시금 로마 황제와의 친분으로 세력을 얻어 아타나시우스를 비롯한 정통주의 신학자를 박해했다. 정통기독론을 이단사상이라고 정죄했다. 정통이 이단이 되고, 이단이 정통이 되었다. 이것을 뒤집어 정통 기독론을 교회의 공식 신학으로 정착시킨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295-373)였다.
초대교회의 역사에 등장하는 이단사상 가운데서 내가 특별히 주목한 것은 아폴리나리스주의이다. 아폴리나리우스(310-390)는 아타나시우스와 함께 ’성부와 성자는 동일한 본질을 지닌다’는 니케아 신조의 정통교리를 지켜내기 위해 큰 세력의 이단 아리우스주의를 반대하는 데에 큰 힘을 쏟았다.
그러나 훌륭한 개인적 헌신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성자의 본성’을 정의함에 있어, 플라톤주의 해설법을 사용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이단자로 정죄되었다. 그는 “성자의 인성을 강조”하는 안디옥 학파에 대항해 “성자의 신성을 강조”하려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편만한 철학사상인 이데아론에 너무 치우쳐 버린 것이었다.
아폴리나리우스는 360년, 라오디게아 감독이 된 후,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에 불변하는 하나님의 영(로고스)이 결합되었었다고 주장했다. 불변하는 로고스의 영혼이 인간의 이성을 대신함으로써, 육체는 사람이지만 영혼은 하나님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불완전한 인간의 이성을 지니지 않았다며,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가진 예수님을 오해했다. 아폴리나리우스의 사상은 당시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갑파도기아 신학지들은 아폴리나스주의를 비판했다. ‘예수가 인간의 이성을 지닌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는 아폴리나리우스를 이단자로 정죄했다.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은 칼케돈공회의(451)에서 정해진 그리스도의 존재 방식인 4가지 부정문 곧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혼동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혼합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연합체라는 정의에도 위배된다.
초대교회사 강의를 듣기까지 나는 아폴리나리우스주의가 틀렸으며 이단인지를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아폴리니라우스주의자가 그 사상을 가지고 나를 설득했으면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 여겨 동의하고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단자가 될 수도 있었다. 초대교회사에 등장하는 기독론 이단들과 정통신앙을 구별하여이해한 것은 신학수업의 소중한 선물이다.
아폴리나리스주의를 포함한 초대교회의 기독론 이단사상은 우리의 구원론에 직결되어 있다. 만약 예수가 완전한 인성 곧 육체와 정신과 영혼과 마음 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면 그것들을 가진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초대교회사를 수강한 덕분에, 부지중에 시대에 흐름과 문화의 영향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극복하지 못한 아폴리나리우스주의 같은 이단사상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큰 폭으로 줄였다.
초대교회 신학자들은 많은 댓가를 치러내면서 정통기독론을 정립했다. 초대교회사 강의를 수강하면서 순교자들과 여러 신학자의 업적, 또 이단사상을 배우게 되었다. 상식을 넘어서는 정통 기독론을 접하게 되어 무척 감사하다. 지속적인 신학공부를 통해 지성이 다음어지고, 고착된 생각이 교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올바르고 안전한 교리의 품에서 참된 신앙을 가지며 참된 진리를 전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조정주,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 1학년
[편집자 주] 이 글은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이 2023년 봄학기애 개설한 <인간론-기독론>과 <초대교회사>(최덕성 교수 담당)의 글쓰기 과제로 제출한 학술 에세이이다. 논지는 “초대교회사를 수강한 덕분에, 부지중에 시대에 흐름과 문화의 영향을 직시하지 못하거나 극복하지 못한 아폴리나리우스주의 같은 이단사상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큰 폭으로 줄였다”이다. 강의에서 배운 것을 간명히 정리하면서 논지를 이끌어 간다. 글쓴이의 주장(논지)과 논거(주장의 근거)가 일치한다. 학술 에세이 쓰기의 모범적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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