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어전회의, 하나님의 뜻
창세기는 창조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의 기록을 단수가 아닌 복수로 표현한다. “나의 형상을 따라 나의 모양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로 기록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성경에는 '우리'의 사례들을 '천상어전회의' 개념을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 용례들이 있다(왕상 22; 욥 1; 시 29; 사 6; 단 10; 눅 2).
성경에는 ‘하나님의 공의회’ 또는 ‘천상어전회의’라는 구체적인 용어가 없다. 그러나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특정 구절에서 “주님의 공의회” 또는 “하늘의 공의회”에 대한 언급은 있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하나님의 조언에 참여하는 천사와 다른 천상의 피조물들을 포함한 신적인 존재들의 천국 집회를 의미한다.
예컨대,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 무릇 구름 위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신들 중에서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시 89:5-7).
이 구절은 쉬운 말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하늘은 거룩한 자들의 모임에서 주님, 주님의 신실함도 주님의 경외를 찬양합니다. 하늘에서 누가 주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존재 중에서 주님과 같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거룩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하나님은 크게 두려워하십니다. 하나님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보다 더 위대하십니다.”
욥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욥 1:6-7).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존재를 복수형으로 표현하는 것은 복수의 신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들은 위엄이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해 복수형이 사용될 수 있는 히브리어의 문법적 특징을 반영한다. 창세기 1장 26절은 하나님이 인류를 '우리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복수형을 사용하는 것은 여러 신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함과 위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유대인의 신은 유일신인가? 여러 신들 중 하나인가? 이영진 교수(호서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런 문법 형태는 하나님의 복수형 명사 엘로힘(אֱלוֹהִים)에 종속되도록 고안한 결과일 것이다. 즉 하나님 자체를 단수 형태 엘로아(אֱלוַֹהּ)가 아닌 복수형태인 엘로힘으로 썼는데 이 복수 형태를 현대식 복수인 하나, 둘, 셋…으로 이해하는 것은 히브리어 문법과는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복수 엘로힘은 갯수가 아니라 전체의 (충만한) 신성을 하나로 복속(통합)한다는 취지를 담은 신명이다.
이를 테면 이 구절 한참 앞에 나오는 하늘 솨마임(שָׁמַיִם)임은 두 개를 뜻하는 쌍수 명사이지만, 이것을 ‘하늘’이 두개라고 이해한 고대인은 없다. 하나님의 영이 감시했다고 하는 ‘물’도 마찬가지이다. 물 마임(מַיִם) 또한 두 개를 뜻하는 쌍수 명사이지만 이 역시 두 개의 물로 이해한 고대인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의 ‘우리’ 또는 ‘엘로힘’을 복수(plural)의 신 또는 삼위일체로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히브리어 경전에 대한 오역 내지는 오독이다.
신학자 이영진은 제1세기에 그리스도교가 태동하면서 훗날 이 구절을 삼위일체로 수용한 것은 우의적인 시도로 시작해서 조직 내지는 해석학적 신조로 삼은 결과라고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창세기 1장의 ‘우리’를 예수 또는 성령으로 특정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한다.
창세기의 인간 창조 설명에 나오는 ‘우리'는 천상어전회의의 표현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엄이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해 복수형이 사용될 수 있는 히브리어의 문법적 특징을 반영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함은 성급한 판단이다.
신학용어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카운슬”(Council of God)을 천상어전회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나는 이를 ‘하나님의 뜻’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한다.영국교회의 대주교 비솝 조셉 버틀러(Joseph Butler, 1692-1752)는 명저 <종교의 유비>(The Analogy of Religion, Natural and Revealed, to the Constitution and Course of Nature, 1736)에서 이신론을 반박하려고 이신론의 논리를 도입하여 기독교의 진정성을 변호했다. 나는 예일대학교에서 이것을 분석하는 한 편의 논문을 썼다.
나의 논문은 버틀러 감독의 주장이 담고 있는 논리적 신학적 헛점을 논한다. 버틀러 감독이 논리적으로 실패했음을 밝힌다. 내일이 존재하고 내세가 존재하는 것은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Council of God)에 달렸다고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대학원은 이 글과 다른 한 편의 글을 근거로 나를 그 학교의 철학박사 학위(Ph.D.) 과정 입학을 허락했다. 나의 이 글(1980)이 조만간 한글로 번역되기를 희망해 본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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