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자와 개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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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으로 생겨난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황권의 문제였지요. 전쟁이 시작되자 처음에는 승리했지만, 그 후로 십자군이 연패하자 기사 계급은 몰락의 길로 내몰렸고, 교황의 교도권도 역시 의심받기 시작합니다. 전쟁 때문에 중앙집권적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전쟁 때문에 상인은 교역으로 돈을 벌었고, 돈을 번 상인들이 시민계급을 점차 두텁게 만들면서 중세 계급사회에 새로운 변화가 촉진됩니다.
다시 말해 상인과 시민들의 자금에 힘을 얻은 지방 호족들이 득세하면서 지방 도시의 교회들이 교황청과 거리를 두고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 시작한 것이지요. 교황청의 교도권이 위협받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런 때 교황권을 보호하기 위해 강조된 이론이 중세 ‘보편 실재론’(Realism)입니다. 플라톤이 '동굴의 비유'를 무척 재미있게 들려주는데 거기 나오는 이데아 사상이 바로 이거예요.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은 모두 이데아의 그림자라는 거지요.
이것을 교회정치와 연결해 보면, 보편자가 존재한다는 실재론의 입장은 로마 교황으로 대표되는 보편교회(catholica)를 인정한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교황권의 강화를 바라는 이들은 실재론을 주장하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유명론을 주장하면서 교황권보다 개교회의 중요성을 설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적 대립의 단초를 십자군 전쟁이라고 했는데, 실재론과 유명론의 대립은 교회 환경의 변화에서도 확인됩니다. 우리가 초대교회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교회가 부패하거나 상황이 어려워지면 제도권 교회를 벗어나 제3의 장소에서 대안적 신앙을 찾는 운동이 일어나잖아요. 초기 교회에선 요한 공동체나 사막교부들이 그런 식이었고, 중세엔 십자군 전쟁 가운데 시작된 제2의 수도원 운동도 같은 예입니다. 지금 우리로 따지면, 가나안 성도들의 신앙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 시기에 중요한 두 갈래 수도회가 생겨나는데, 하나는 아퀴나스처럼 제도권 교회의 규율을 중시하는 도미니크파 수도회와 다른 하나는 기독교적 삶을 중시하는 프란시스파(보나벤투라, 둔스 스코투스, 옥캄)가 그것입니다. 이 둘은 사실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집니다. 13세기부터 이들의 신학 노선은 갈라지는데, 도미니크파는 일명 주지주의(intellectualist), 프란시스파는 주의주의자(voluntarist)라고도 불립니다.
주지주의자들은 늘 하나님의 진짜 능력은 창조질서에서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피조한 자연 세계가 조화롭게 잘 유지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인 질서의 능력(potentia dei ordinata) 때문이라는 것이예요. 질서가 있다면 무엇이라도 예상이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인간의 이성으로 이런 세계의 질서를 잘 파악하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악한 이들이 망하고 선한 이들이 복 받는 것 등등,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이성, 질서, 규칙 따위입니다. 이 논리를 잘 따라가 보면, 실재론을 바탕으로 논리가 전개되는 걸 알 수 있어요.
이에 비해, 프란시스파로 대비되는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은 그런 것에 매이지 않는 ‘절대적인 능력’(potentia dei absoluta)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질서와 규칙처럼 일정한 틀이나 예상 가능한게 아니라 피조 세계의 질서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자유가 진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능력이란 인과율이라는 모든 틀을 아주 우습게 뛰어넘는 그분의 자유에 있다는 것이지요. 매일 해가 뜨고 지지만, 이런 경험과 규칙은 영원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맘만 먹으면 ‘올 스톱’ 될 수도 있고, 규칙이 단번에 바뀔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 맘이라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절대 능력이라고 프란시스파가 설명합니다.
그래서 둔스 스코투스나 가브리엘 비엘 같은 이들은 하나님의 의지는 인간 이성이 판단하는 올바름이나 잘못됨과 독립된 것이며, 창조질서도 하나님의 의지(자유)에 종속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이성이 최고다 어떻다’ 하는 건, 이들에게 다 부질없는 소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론 하나님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자유와 의지를 중시하는 주의주의자들의 논리가 곧 유명론과 연결됩니다.
어떤 면에서 이 사람들은 교황청 중심의 교회 교도권을 의심하는 이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유명론이 실재론을 우습게 여긴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을 버린 것 아니냐고 보기엔 아직 이릅니다. 왜냐하면, 옥캄을 비롯한 유명론자들은 개별자의 세계에선 보편자를 파악할 방법이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한계를 가진 각각의 개별자(유한자)가 보편자이며 무한자인 신을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신이 인간에게 준 의로운 ‘약속’(pactum)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 즉 그분이 인간을 만나고 구원하겠다는 약속이 없다면 신과 인간 사이의 접촉점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실제로 옥캄은 성찬이 신적이고 거룩하다고 설명하는데, 그 이유는 보편자이며 무한자인 그리스도가 개별자인 인간에게 자신이 빵과 포도주에 임재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옥캄이 ‘예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거부하고, ‘공재설’을 주장했다는 것도 짚어야겠어요. 사실 공재설이란 건, 사제가 사도적 권위로 떡과 잔을 변화시킨다는 사제의 권위를 살짝 비꼰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공재설은 ‘떡과 잔 주위에 그리스도가 실재(임재)한다’는 교설인데, 우리가 잘 알듯,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루터가 성찬 이론을 전개하는데 인용하는 중요한 바탕이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성찬 이론이 이렇게 차이 나는 건, 모두 교회 권력에 대한 밀당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보편자인 하나님이 개별자인 인간과 관계하지 않을 수도 있다?(실재론의 부정),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반(反) 이성주의)?. 이렇게 옥캄처럼 정통교리에 반기를 든 인물들의 교설을 가만 살펴보면 교회 권력자 눈엔 아니꼽기 이를 데가 없겠지요. 떡과 잔을 예수의 살과 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화체의 능력이야말로, 주교의 안수로 주입받은 가장 강력한 사제들의 사도적 계승권인데, 유명론자들은 이걸 아주 우습게 여기거든요.
그래서 프란시스파 계열 학자들이 이단 시비에 내몰리기도 해요. 이걸 설명하기 위해 유명한 정식 하나 소개해보지요.
한쪽은 ‘보편자는 개별자 앞에 존재한다’(universalia ante rem)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보편자는 개별자 뒤에 존재한다’(universalia post rem)고 말합니다. 전자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이어받은 기독교 주류 실재론의 입장이고, 후자는 유명론의 입장이예요. 여러분은 어느 쪽 말에 더 마음이 가나요? 보편자인 신이 있어야만 각각의 개별자인 인간과 피조물의 존재가 가능하다는 도미니크파의 실재론과 달리, 프란시스파의 입장은 개별자인 인간이 다 사라지고 없다면, 보편자인 하나님의 존재가 뭐 그리 대단하냐는 겁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신학을 전개하면, 아담의 원죄나 예수의 십자가 구원사건 같은 인류를 대표하는 사건을 설명할 길이 묘연해집니다. 그러니 이단으로 몰리기 딱 좋았던 것이지요.
이런 위기에서 이들을 구출한 사람이 독일의 스콜라 신학자인 가브리엘 비엘(Gabriel Biel, 1420-1495)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쾰른 대학교에서 아퀴나스를 공부한 다음 에르푸르트 대학에선 옥캄을 공부해요. 아퀴나스와 옥캄은 도미니크파와 프란시스파로 소속도 다르고, 사상의 방향도 확연히 다른데 가브리엘 비엘은 이 둘을 종합하게 됩니다. 이성을 중시하는 도미니크파의 실재론적 신학 방법론을 ‘고전적 방법론’(via antiqua), 영국의 둔스 스코투스와 옥캄처럼 유명론적 신학 방법론을 ‘현대적 방법론’(via moderna)라고 부르는데, 비엘은 이 둘을 종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페터 롬바르두스 명제집 해설>은 중세 신학의 표준 교과서로 남게 됩니다. 이 책이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루터의 신학, 종교개혁 신학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겠어요. 이제껏 우리 방식은 가톨릭과 개신교 양극단으로 갈라서서 서로의 말을 들어보려고 시도조차 안 하면서 5백 년 전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500년이란 시간이 흘렀잖아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예요. 실제로 둘 다 엄청나게 변했어요. 그 안에서 담긴 말도 변했어요.
우리 애가 이제 막 지구를 구하러 중학교에 입학했어요, 한동안 안 만나던 친구가 얘를 보고는 깜짝 놀라요. 몰라보게 키도 크고 말하는 것이며 표정이며 태도며 다 바뀌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데요. 얼마 만에 만났냐면 딱 1년이에요. 1년만 지나도 사람이 이렇게 다 바뀌는데, 가톨릭과 개신교의 관계는 500년이 지났어요. 그러니 얼마나 많이 변했을까요? 만나서 오해도 풀고 하면 좋지 않겠어요? 오해하고 있는 거, 또는 변한 걸 언급해야 할 것 같아요.
개신교에서 가톨릭을 향해 늘 손가락질 하는 것 중 하나가 ‘쟤네들은 공로 신학을 추종한다!, 이단 삼단이다.’라는 말이에요. 개신교는 ‘오직 믿음 오직 말씀 오직 은혜’를 강조하는데, 가톨릭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행위로, 공로로 구원받는 종교라서 우리랑 상종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말이 맞을까요 틀릴까요?......
오늘 저는 <역사로 만나는 루터신학 이야기>라는 주제로 여러분 앞에 섰는데, 사실 제가 이미 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 역사, 그리고 루터의 저작, 종교개혁 예배론 같은 것들을 너무 많이 강연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만 찾아보면 여기저기 동영상 자료와 글을 수없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다시 반복하는 게 무의미할 것 같아서 이렇게 종교개혁 신학이 오기까지 중세의 역사와 신학을 듬성듬성 짚어보았습니다.
끝으로 여러분에게 꼭 당부드릴 게 하나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신학에 관한 ‘말’입니다. 신학을 한다는 건, 역사의 사건을 다면적으로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런 관찰에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없는 ‘객관’이라는 건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 내 지식, 내 고정관념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고 말과 사건을 살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역사와 함께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고, 오늘의 우리를 더 깊이 성찰할 수 있게 됩니다. 종교개혁의 신학뿐아니라 모든 성숙한 신학은 바로 그런 사건과 말의 결과이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도 그런 사건과 말의 열매라는 걸 잊지 맙시다. 길고 지루한 시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주환 목사 페이스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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