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SFC
최근 일련의 죽음이 SFC와 내가 깊이 엮여 있음을 알게 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 구포제일교회 중등부원이 되면서 SFC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나의 평생의 큰 목표가 되었고, 지금도 그 의미를 찾아 공부하는 중입니다. 내게 있어 SFC는 개혁신앙을 알게 하고, 개혁주의를 배우게 한 통로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며 나는 SFC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나의 길이라 생각하고 SFC 간사가 되었습니다. 포항공대를 졸업하고 간사가 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좌절하셨고, 누나들은 아쉬워했습니다. 내게 있어 개혁신앙과 신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은 최고의 소명이고 존재 자체였었으나 그것은 내 부모님과 형제들을 크게 좌절케 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나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했는데 당시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은 내가 SFC의 평신도 간사로 사역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무직자로 이해하셨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그 목사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시로서는 너무도 섭섭하고 마음이 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그 목사님만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모 교회의 목사님은 내가 SFC 같은 곳에서 일하려고 한다며 부모님을 실망시켰다고 만날 때마다 혼을 내시곤 했습니다. 모두가 사랑으로 하신 말씀들이었지만 당시에는 마음을 시원케 하는 말씀들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나는 개혁주의와 SFC를 동일시 하고 있었고, 개혁신앙과 SFC는 같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물론 강령이 그러했기에 더 그랬고, 강령이 그러하면 그러해야 한다는 나의 고지식한 인식이 그렇게 나를 몰아 갔던 것 같습니다. 포항공대 SFC의 간사로, 본부의 간사로, 신촌지역 사역자로, 그리고 총무 간사로 그렇게 SFC와 개혁주의, 개혁신앙, 개혁신학은 함께 묶여 갔습니다.
그랬던 내가 미국에서 성령님을 체험하면서 나는 큰 혼란을 느꼈습니다. 당시 김상수 목사님께서 잘 지도해 주셨고, 이후 한국에서 SFC가 아닌 교회의 목사로 부름을 받으면서 나는 SFC와 개혁신앙, 그리고 성령님과 교회에 대하여 새로운 배움과 앎과 이해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는 SFC와 개혁신앙은 성령론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았고, 항상 말씀만을 강조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령님의 조명에 대해 안 배운 것은 아니나 성령님과 개혁신앙, 그리고 SFC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었습니다.
당시 나와 SFC는 내가 교회로 부름을 받으면서 사역지를 바꾸면 정리가 되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SFC와 성령 하나님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개혁신앙과 성령님, 그리고 교회와 성령님은 어떻게 이해하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회피할 수 없는 명료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 싶어 성령님을 존중하고 그 현재성을 강조하는 모임들에 참여도 해보았고, 능력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을 다녀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노력들은 능력과 은사를 이해하고 배우는 좋은 계기였으나 개혁신앙과 성령님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성령님과 개혁신앙이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칼빈의 성령론을 깊이 들여다 보아야 했습니다. 물론 최근에야 헤셀링크가 칼빈의 성령론 연구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칼빈의 신학 전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칼빈의 성령론을 논할 수 없다고 정리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만나보지도 못한 좋은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사실 개혁신앙과 성령님은 멀리 있지 않고, 결코 그럴 수 없는 데 내가 무지하여 개혁신앙과 성령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성령님을 은사주의 운동으로 환원하는 현재의 모든 성령 운동도 원인이었습니다. 성령님하면 능력과 은사만을 강조하다보니 마치 능력과 은사만이 성령 운동인 양 오해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은사주의는 단성론의 위협과 단일신론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하면 이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은사와 능력은 결코 자연을 포섭하는 초자연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는 초자연적 하나님이실뿐만 아니라 자연적 존재인 인간으로 존재하심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중생과 회심, 그리고 회개와 새로운 삶, 그 안에서 체험하는 은사와 초자연적 삶은 반드시 자연과 함께 하는 은혜의 결과임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대부분의 은사 체험은 결과적으로 이단의 길에 빠지는 위험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침내 나는 개혁신앙 안에서 성령님을 알게 되었고, 청교도와 언약도들 안에서 회심과 회개의 삶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최고의 관심인 양심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개혁신앙은 성령님을 부정하지 않는 신앙이며, 개혁신학은 성령님의 조명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는 성령님의 신학이며, 개혁 교회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집으로서의 교회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SFC는 성령님께서 교회에 생명을 부어 주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성령님의 학생운동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나는 그런 성령님의 학생신앙운동을 새롭게 만나고 싶습니다.
최근 나는 송도제일교회를 담임으로 섬기며 교회와 함께 있는 복음병원 장례식장에서 세 명의 귀한 SFC 출신 사역자들의 장례에 참여했었습니다. 뉴질랜드 더니든에서 세계 복음화의 꿈을 꾸며 헌신하다 먼저 떠난 고 김경인 목사님, 8영도 교회를 섬기다 부름을 받으신 고 김희택 목사님, 그리고 이번 주에 부름을 받고 떠나신 초장동 교회를 작은 예수로 섬기신 김종선 목사님의 죽음과 장례식은 나와 SFC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성령님의 신학과 신앙인 개혁주의, 성령님의 교회인 개혁 교회를 섬기는 나와 성령님의 학생신앙운동인 SFC는 주님께서 엮어 두신 큰 끈으로 하나가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린 시절 내 인생의 엄청난 과제였던 개혁신앙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대소교리문답은 개혁신앙을 성령님이 주신 믿음의 신앙이며,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경건의 삶임을 가르칩니다. 영적 양심을 각성하여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 온전한 믿음과 삶의 열매를 이루는 것, 말씀을 통해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깨닫고 따르는 길, 그것이 개혁 신앙입니다. 이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전수하고 가르치는 일, 그것이 교회의 몫이고 SFC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와 SFC는 끊을 수 없이 연합한 존재임을 확인합니다.
장례식장을 다녀오며 삶의 날이 길지 않음을 새롭게 깨닫곤 합니다. 벌써 다음 세대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할 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참된 개혁 신앙, 성령님의 신학과 신앙을 전수해야겠습니다. 내 자녀들에게, 그리고 내게 맡기신 교회의 성도들과 그 자녀들에게 참된 개혁신앙을 전하는 일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
김형렬 목사
송도제일교회 담임목사
울런공 한인 장로교회 Senior Pastor
불꽃교회 Senior Pastor
구포제일교회 부목사
Student For Christ 총무간사
Calvin Theological Seminary 역사신학 전공
고려신학대학원 졸업
포항공과대학 기계공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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