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목사복권과 ‘교회교’ 전통
1. 신사참배거부운동
신사참배거부운동(신사불참배운동)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킨 기독교 신앙운동이면서, 애국애족적인 항일운동이었다. 일제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저항한 운동이자 민족정신을 기리고 독립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일제는 신사참배거부운동을 국체변혁(國體變革) 운동으로 규정하여 관련자들을 붙잡아 여러 해 옥살이 시켰다. 식민정책에 반하는 민족주의 운동 혹은 민족해방운동으로 간주했다. 국체(國體)란 침략 전쟁에 혈안되어 있던 이른바 ‘천왕’ 중심의 일본제국의 실체를 뜻한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의 동력(動力) 한상동 목사는 이것을 전체 조선의 ‘정치운동’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구성원들은 경찰, 검찰의 심문을 받으면서 일제가 곧 멸망한다,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정의로운 나라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기독교 종말론의 전천년설 또는 세대주의의 사상에 연향을 받은 확신이었다.
일제 패망 예언에 일제는 경악하여 신사참배거부운동자들을 악질 민족주의자로 규정하고서 치안유지법 위반 죄, 보안법 위반 죄, 그리고 국체(國體)의 주인공인 천왕에 대한 불경죄 등의 죄목을 씌워 처벌했다.
필자는 오늘 모임의 제1회 세미나에서 “한상동과 주기철의 교회관”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국가가 신사참배거부운동과 그 일을 주도한 ‘출옥성도들’의 항일투쟁의 공로를 인정을 함이 마땅하다는 역사적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참석한 역사학자, 교회사학자, 보훈처 직원, 독립운동연구소 연구원 등은 국가차원의 인정이 정당하다는 요지에 공감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신사참배거부운동을 항일운동으로 지금까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독교계조차 이 운동원들에 대한 보훈 추서를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광복 후 한국교회는 친일파 인사들이 장악했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기독교 다수 세력은 진리성에 입각한 평가를 거부한다. 국가가 이들을 추서하지 않는 까닭은 우리 사회의 명확한 과거사 청산의 부재와 친일파 전통의 우세한 탓이라 여겨진다.
한국 기독교계를 장악한 친일파 전통은 ‘교회교’(Churchanity)라는 특성을 지니고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 ‘교회교’란 교회라는 조직체의 결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가진 교회관이다. 로마가톨릭교회 교회관과 일치한다.
교회는 사회를 지도하는 양심의 교사이다. 그러나 현 한국교회의 주류 세력은 역사왜곡, 역사날조, 사실호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양심결핍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의 불순한 기질, 전통, 의식(意識), 정신적 유산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제말기의 불행한 과거사와 직결되어 있다.
필자는 이러한 요지를 담아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2000)을 출간했다. 한국기독교 해방 10년사를 개혁교회론 관점으로 분석한다. 이 책의 출판 이후 지금까지 그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비판이나 정당하지 않다는 반론이 없었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는 이 책의 학문성과 기여도를 근거로 필자에게 ‘신학자대상’(2001)을 수여했다.
2. 주기철 목사면직
한국기독교의 혈관에 흐르는 친일파 전통의 가장 뚜렷한 현상은 ‘교회교’ 발상이다. 교회라는 조직체의 결정을 절대시 하는 로마가톨릭교회 식의 교회이해이다. ‘교회교’ 사고방식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은 주기철 목사 복권, 목사 복직 사건이다.
주기철 목사(1897~1944)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사직을 파면당했다. 그의 ‘죄’는 신사참배 곧 우상숭배를 하기로 결정한 총회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장로회보> 1940년 1월 24일자 7면은 이 사건을 “교역자로 국가의식 불응은 총회 결의 정신 위반-평양노회 수 면직 결의”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평양노회 구내 산정현교회 목사 주기철 씨가 신사참배에 찬응치 아니함은 소화 13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장로회 제27회 총회 개회 모두(冒頭)에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요 종교가 아니므로 국민 된 의무상 의당히 참배하기로 함’ 하고 결의한 정신에 위반이므로 작년 말 소화 14년 12월 19일 평양노회 임시노회를 남문외예배당에서 회집하고 노회장 최지화 목사의 사회 하에 준엄히 면직처분의 결의를 하였다.”
평양노회는 처음 주기철의 산정현교회의 목사직만을 해임시키려고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나 기독교 친일파 세력의 압력과 힘의 논리에 따라 노회는 그의 목사직을 파면했다. 노회가 목사명부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함으로써 면직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주기철은 신사참배거부운동을 펼치거나 주자(走者)로 활동하지 않았다.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여겨 거부했다. 한상동 목사가 주도하는 신사참배거부운동에 동조하고, 일제에 항거하는 기독교 민족주의자들과 맥을 같이 했다.
당시의 한국장로교회는 ‘순일본적기독교’에 충실했다. 초대교회 이단자 마르시온처럼 성경을 편집했다. 성경에서 유대민족의 이야기를 삭제했다. 예수를 왕 중 왕으로 고백하는 신학을 폐기하고 그러한 가사를 담은 찬송가들을 제거했다. 교회당을 팔아 일제 전비(戰費)로 바쳤다. 교회의 대표자들은 “천조대신이 예수보다 높다”는 고백문서에 서명했다. 주일예배 제1부는 일왕을 신으로 섬기는 예배로 진행했다.
한국교회 대표자들은 자진하여 성지(일본) 순례를 동경과 오사카 나라 지역의 신사들을 방문하며 일제의 대동아전 전승과 미국과 영국의 패망을 기원하는 신사참배를 솔선수범(率先垂範)했다. 기독교 친일파 인사들의 주도하에서 한국교회는 백귀난행(百鬼亂行)을 저질렀다. 교회라는 조직체의 보존과 개인적인 영달과 안위 목적의 친일 활동에 진력했다.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이다. 당시의 한국교회 지도자들, 주한 외국 선교사들, 일본교회는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는 사실에 이의를 갖지 않았다. 그래서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는 자진 폐교했고, 대부분의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교회의 주한 선교부는 자진 폐쇄했고, 우상숭배를 거부한 선교사들은 이 땅을 떠났다.
3. 목사복권
주기철이 면직된 약 70년 뒤에 한국장로교권 안에서 “주기철 목사복권, 목사복직” 릴레이가 시작됐다. 산정현교회(서울 강남) 중심의 독노회가 최초로 주기철의 목사복권과 선포식을 했다. 몇 년 후 예장 통합 서울동노회와 평양노회가 주기철 목사복권, 목사복직 행사를 가졌다.
예장 합동 제100회 총회(2015)는 주기철 목사복권을 결정하고 선포했다. 총대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면서 환영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목사 장립과 파면 그리고 복권 등은 노회의 고유한 업무이다. 왜 노회가 아닌 총회가 주기철의 목사복권을 결정하고 선언했을까?
2016년경, 예장 합동의 다섯 개 노회가 각각 주기철 목사 복권, 복직을 결정했다. 평양노회, 동평양노회, 서평양노회, 남평양노회, 평양제일노회 등이다. 주기철은 독노회의 복권결정으로 이미 목사직이 회복되었다. 그럼에도 왜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의 주기철 복권 릴레이에 열을 올렸을까? 순교자 주기철을 ‘상품’으로 삼아 자파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는가?
주기철 목사복권, 목사복직은 어처구니 없는 넌센스 사건이다. 프로테스탄트교회와 장로교회의 정신과 치리 원칙과 개혁교회론을 위반한다. 현재의 한국교회가 과거사 청산을 똑바로 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이 배교 집단인 ‘순일본적기독교’의 연장임을 확인시켜 준다.
4. 모순
‘복권’은 면직 된 자를 원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복직’은 휴직, 직위해제 상태에서 원래의 직분을 회복시킴을 의미한다. 주기철의 목사복권은 아래와 같은 모순과 무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첫째, 프로테스탄트교회는 죽은 자를 치리회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죽은 자를 치리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자(死者)를 순교자, 복자, 성인(聖人)을 추대하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교 전통과 일치한다. 장로교회는 죽은 자 만이 아니라 인격체가 아닌 서물(庶物)과 짐승 그리고 인격체일지라도 천사나 악마를 치리회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둘째, 목사 복권, 목사 복직은 그것을 결의하고 선언한 시점까지 당사자가 목사가 아님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죄는 우상숭배이다.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사직을 파면당한 것이 과연 효력을 가진 결정인가? 주기철은 2000년대에 독노회가 복시직을 복권시키기 전까지, 또는 목사복권 릴레이를 하지 전까지는 목사가 아니었는가?
셋째, 목사복권은 주기철의 목사직을 면직시킨 일제 말기 총회의 결정이 복권 당시까지도 효력 있음을 의미한다. 1938년의 신사참배 결의가 복권, 복직을 결정한 시점까지 유효함을 전제로 한다. 주기철 목사복권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목사직을 파면한 우상숭배하고 배교하던 교회의 결정에 법적 유효성을 부여한 넌센스 사건이다.
넷째, 목사직을 복권시키거나 목사직을 복직시키는 일은 교회의 재판부가 재심하여 결정할 사안이다. 목사직 면직은 정식 재판을 통해 이루어지고, 복권이나 복직도 정식 재판 절차를 거친다. 주기철 목사복권, 목사복직들 경주는 치리회 규정에 따른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재심 재판 없이 결정했다. 일제 말기 교회의 “결의를 취소하고 무효화하여 주기철 목사의 성명을 당시 노회원 목사명부에 원상태로 복적하여 목사직을 복권한다”고 선언했다. 절차상의 하자를 가진 복권 선언은 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다섯째, 장로교회 원칙에 따르면 면직된 자의 목사직 회복은 다시 목사 안수 절차를 밟아 성립된다. 장로교는 면직된 목사를 복권시키지 않고, 다시 목사로 장립한다. 목사복권, 목사복직을 시키려면 치리 규정을 따라 다시 목사로 안수를 함이 마땅하다.
여섯째, 장로교회의 규례에 따르면 목사의 재 안수는 면직를 결정하고 치리한 해당 노회만 할 수 있다. 주기철은 평양에 존재하는 평양노회기 임시회를 열어 성탄일을 닷새 앞둔 시점에 결행했다. 주기철 목사직 회복 결정은 평양노회의 권한이다. ‘평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 안의 노회들은 북한에 있던 평양노회의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평양노회로부터 복권이나 재 안수의 권한을 위임받지 않았다.
일곱째, 예장 통합 동서울 노회의 산정현교회의 담임목사는 주기철 목사복권을 명예훼복 목적으로 시행했다고 말한다. 주기철에게 한국교회 안에 설 자리를 마련해 줄 목적이었다고 한다. 목사직은 명예직이 아니다. 주기철은 한국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고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여덟째, ‘사정(事情)변경의 원칙’에 저촉된다. 법조계에서 통용되는 이 원칙은 과거 결정의 기초인 특별한 사정이 그 뒤 현저히 변경되어 당초의 결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강제함이 신의와 공평의 원칙에 반하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일컫는다.
5. 사정변경의 원칙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르면, 주기철의 목사복권은 그가 친일행각과 우상숭배를 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만 할 수 있다. 친일파 인물이었고, 우상숭배와 친일행각을 마다하지 않은 친일분자, 우상숭배자였음에도 교회가 그 사실을 간과하고 부당하게 면직시켰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후대의 교회가 반성의 의미로 과거사에 대해 무엇인가를 결정하려면 철저한 참회와 함께 치리회 원칙에 따른 처벌을 시행함이 마땅하다. 한국교회를 배교하는 교회로 전락시키고 우상숭배를 하게 한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처벌이 선행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장로교회는 죽은 자를 치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기라성 같은 기독교 친일파 인사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주기철의 목사복권, 목사복직을 결의 선언하는 ‘교회교’ 사고방식으로는 처벌이 가능하다. 죽은 자 주기철에 대한 결의는 하면서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처벌 결의를 하지 않음은 공정성 원칙에 위배된다.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은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교회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주기철의 목사복권, 목사복직 결의와 선언은 친일파 전통과 ‘교회교’ 전통의 민낮이다. 이 전통들은 개혁교회의 원리와 개혁신학을 무의미하게 한다. 장로교회로 하여금 치리회의 질서를 무시하게 하고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넌센스 해프닝을 연출하게 한다
6. 교회의 결정은 절대적인 것인가?
‘교회교’는 교회가 무엇이든지 결정하면 그것을 절대적이며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 일제말기의 한국교회는 ‘순정일본적기독교’로 바뀐 배교 집단이었다. 그 교회는 순수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기독인이 교회의 결정에 순종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교회의 결정을 절대시함은 옳지 않다. 교회의 결정이 항상 옳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교회(대회, 노회, 총회, 공의회 포함)가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있고 또 범해 왔음을 지적한다, 교회 조직체의 결정이 항상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며, 기독인의 신앙과 교회생활에 도움을 주는 ‘보조 수단’이라고 한다.
“사도시대 이후 모든 총회(Synod)와 공의회(Council)는, 보편공의회이든 지역공의회든지 간에, 과오를 범할 수 있으며, 여러 번 과오를 범했다. 그러므로 교회회의의 결정을 신앙과 생활의 법칙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에 도움을 주는 보조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제31조 제4항).
기독교 역사에 새벽별처럼 등장한 ‘위대한 이단자들’은 교회 조직체인 대회, 총회, 공의회가 오류를 저지르고, 실수하고, 범죄해 왔음을 확인시켜준다. 교회는 상을 주어야 할 자에게 벌을 주기도 했다. 정통신앙인을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목사직을 정직, 면직시켜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나라 사역을 하지 못하게도 했다.
네덜란드개혁교회는 교회라는 조직체가 저지르는 실수와 관련하여 교회헌장에 ‘자유’ 조항을 도입했다. 교회헌장 제31조는 교회가 성경이 가르침에 ‘명백하게’ 위반되는 무엇을 결정하고 시행을 요구 또는 강요할 때 교인은 그 결정과 굴레에 예속될 필요가 없음을 명시한다. 교회의 결정과 가르침이 성경에 ‘명백하게’ 불일치하는 경우, 기독인은 그 결정에 복종할 필요가 없고,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할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네덜란드개혁교회 해방파’ 또는 ‘자유파’(liberated)는 예장 고신의 자매교회이다. 교회헌장 재31조에 근거하여 1940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로 출발했다. 통칭 “31조파”라고 일컬어진다.
장로교회의 정치원리는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 원칙’을 제시하면서 교회의 결정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표방한다. 다음과 같다.
“양심의 주재자는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이 양심의 자유를 주어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위반되거나 탈선되는 사람이나 집단의 명령과 교리를 받지 않도록 하셨다. 누구든지 신앙에 관계되는 사건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각자의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아무도 침해하지 못한다”(정치원리 제1조).
“양심의 자유가 개인에게 있음과 같이, 어느 기독교회 또는 교회협회 또는 교파든지 교인의 입회 규칙과 세례교인과 직원의 자격과 교회 정치와 조직을 예수 그리스도의 정하신 대로 설정할 자유권이 있다”(정치원리 제2조).
7. 존 칼빈과 민경배
종교개혁신학자 존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4권에서 우상숭배를 하는 집단에서 떠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와 일치임을 역설한다. 로마가톨릭교회 안에 교회의 흔적이 없지 않으나 우상숭배하는 그 집단은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고 한다.
칼빈의 교회론을 적용하면 일제 말기의 우상숭배하던 한국교회는 교회의 조건을 갖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한국교회사가들은 이 교회가 변절, 훼절했다고 기술한다. 승자의 일방적인 기록, 다수시각과 힘의 논리를 기준삼은 교회사 평가는 교리사와 교회사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우상숭배를 하던 일제말기의 제도적인 한국교회는 변절, 훼절을 한 것이 아니라 배교했다. 배교한 집단이었다. 그 집단 안에 그리스도의 교회의 흔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조직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었다.
칼빈의 교회론을 적용하면 일제말기의 한국교회를 떠나는 것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일이었다.
개혁교회론 관점에서 보면 일제말기의 진정한 교회는 ‘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였다. 기존의 교회조직의 교회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진행되었다. 이 교회는 주로 경상도, 평안도, 만주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기철, 최상림, 김윤섭을 포함한 수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했다.
역사는 대부분 승자의 기록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위대한 이단자들인 바울, 저스틴, 아타나시우스, 피터 왈도, 존 위클리프, 얀 후스, 토마스 크랜머, 주기철 등은 실패한 승리자들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진리성과 신앙고백적인 관점으로 평가함이 마땅하다. 힘의 논리, 다수 세력의 관점으로 기술한 교회사는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친일파 전통과 ‘교회교’ 사고방식으로 편찬한 한국교회사는 흑을 백이라고 하고 백을 흑이라고 기술하기도 한다.
이러한 한국교회사 기술의 대표적인 학자는 전 연세대학교 교수 민경배 박사이다. 예컨대 민경배는 한상동 목사와 주기철 목사의 교회관이 같지 않았다고 한다. 한상동을 분리주의 교회관을 지닌 인물로, 주기철은 개혁 교회론을 지닌 위인으로 평가한다. 필자는 이 모임의 제1회 세미나에서 민경배의 이 주장이 근거 없고 정당하지 않음을 밝혔다.
민경배의 영향 하 있는 예장 고신의 구성원인 어느 교회사 연구가는 신사참배거부운동을 교회 분리주의 운동으로 평가한다. 신사참배거부운동의 동력(動力) 한상동 목사를 분리주의자라고 비난한다. 신사참배거부운동교회를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민경배는 교회사를 진리성과 신앙고백적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힘의 논리, 다수 시각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한국기독교회의 역사를 성공회 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론으로 평가한다. 교회교 사고방식과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의 시각으로 기술한다.
8. 예장 고신 분열
한국 기독교의 ‘교회교’ 전통은 한국장로교 제1차 분열인 고신교단의 태동에서 그 민낯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친일파 배교자들은 광복 후 출옥성도들이 제시한 과거사 청산과 교회의 새로운 출발 안에 당황하여 그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았고, 한국장로교회의 첫 번째 분열을 가져왔다.
개혁신학과 장로교회의 치리 기준을 무시하고 ‘해방’이 자신들의 과거사를 다 용서하고 해결해 준 것으로 해석했다. 광복 후 죄인 석에 앉아 판단을 받아야 할 친일파 인사들은 스스로 심판석에 앉자 자신들에 무죄를 선언했다. 우상숭배를 거절한 자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아 제거했다.
한국의 교회교 전통은 모순투성이의 해프닝을 낳았다. 치리회 원칙에 부합하는 참회 권징을 거부하는 자들의 ‘갑질’은 용인했다. 첫 번째 교회분열을 가져왔다. 고신 분열의 주범은 친일파 인사들 곧 교회교 사고방식을 가진 교권주의자들이었다.
그럼에도 힘의 논리와 다수 세력의 관점으로 교회사를 쓰는 사가들은 출옥성도들과 고려신학교 중심의 예장 고신이 독선적인 자기 의를 과시하고 교회를 분열해 나갔다고 기술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진리성과 신앙고백교회 관점이 아니라 힘의 논리와 다수 세력의 관점으로 교회사를 기술하는 학자들은 교회교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사건을 로마가톨릭교회의 관점으로 기술한다. 교회교 발상은 주기철 목사복권이라는 릴레이 해프닝을 연출했다.
예장 고신은 신사참배거운동교회의 맥을 잇고 있다. 이 교회의 존재는 한국교회의 친일파 전통과 교회교 발상을 찌르는 비수 역할을 하고 있다.
9. 역사날조
한국기독교 친일파 전통과 교회교 특성은 신학계얼 대학교들의 역사날조에서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낸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설립과 졸업 차수를 날조한다. 이 학교는 1948년에 서울 남산의 전 조선신궁에서 시작했다. 그런데도 1901년에 출범한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를 끓어 당겨 자신을 장구한 역사를 가진 학교로 포장한다. 2021년에 설립 12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했다.
총신대학교도 장로회신학대학교와 동일하게 학교의 설립연도와 졸업 차수를 날조한다. 박용규 박사는 최근에 “총신 120년이 역사 신앙, 평가”라는 제목의 글 몇 편을 발표했다. 어째서 이 학교가 12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인지 주장의 근거를 밝히지 않으면서 ‘총신 120’년을 앞세운다.
평양에 있었던 장로회신학교와 서울의 장로회신학교(1948)는 같은 학교가 아니다. 후자가 전자를 계승한다고 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없다.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와 서울의 장로회신학교가 연결성을 가지려면 운영주체, 이사회, 교수회, 학생회, 캠퍼스가 동일해야 한다. 민족의 불행한 역사를 고려해도 이 가운데 두세 가지라도 일치하면 계승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도 연결되지 않는다.
주기철이 수학한 장로회신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1938년에 폐교되었다. 이 학교의 소유주는 선교사연합공의회였다. 조선예수교장로회의 학교가 아니었다. ‘채필근신학교’라는 별명을 가진 평양신학교(1940 설립)는 이 학교와 무관한 학교이다. 평양신학교가 교사(校舍) 양도를 요구하자 장로회신학교 소유자인 선교사 공의회는 단호히 거부했다.
필자는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가 무엇을 근거로 개교 120년이라고 하는지 알고 싶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알려 달라. 누군가 총신대학교의 경우는 예장 합동 총회가 결정하여 통일시킨 것 같다고 한다. 신학교는 교육기관(Educational Institution)이다. 총회는 교육기관의 설립연도과 졸업생 차수를 고쳐 쓰라고 결정할 권리와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회는 만장일치로 주기철을 자기 학교의 졸업생으로 복적시킨 적이 있다. 주기철은 서울의 장로회신학교가 설립되기 이전에 신사참배 거부를 하다가 자진 폐교한 평양에 있던 학교의 졸업생이다.
양심 부재의 친일파 전통과 ‘교회교 전통’이 만나면 역사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힘의 논리로 해석, 날조하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신학교와 교회들의 눈을 어둡게 한다. 양심을 마비시킨다.
개혁신학 전통의 모토는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이다. 어찌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학문공동체가 구성원들로 하여금 부정직한 역사에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가? “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또는 총신대학교 제 몇기 졸업생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 두 학교의 동문들에게 묻는다. 여러 분은 친일파 전통과 교회교 사고방식이 만들어 낸 수치스런 역사날조의 피해자임을 알고 있는가?
한신대학교(전 조선신학교)는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신학교임을 앞세운다. “복음적 신앙에 기(基)한 기독교 신학을 연구하여 충량유위(忠良有爲)한 황국(皇國)의 기독교 교역자 양성을 목적(目的)으로 한다”는 모토로 설립되었다(조선예수교장로회 제29차 총회록, 1940, 43쪽). 1990년 경, “현 조선교회가 요구하는 건전한 교역자 양성”(한신대학교50년사, 13쪽)이라고 날조했다.
한신대학교는 역대 이사장의 명단을 날조한다. 진정률 장로는 제1대 이사장으로, 순천중앙교회 박용희 목사를 제2대 이사장으로 설정한다. 박용희는 오늘날의 종교다원주의 사상과 동일한 ‘이명동일신론’을 주창한 인물이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록의 ‘조선신학교 설립 보고서’는 함태영 목사가 초대 이사장이라고 기술한다. 한신대학교의 이사장은 초대 함태영 이후 일본인들이 이 학교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마츠모토 다타오 씨와 무랴야마 기요히코 씨였다.
<한신대학교 50년사>는 일본인 이사장들을 제외하고 한국인들만으로 엮고 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역사를 그렇게 편찬한다. 한신대학교가 순전히 한국인이 세우고 운영한 학교라는 인상을 줄 목적이거나 수치스런 과거사와 친일행각을 감출 목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날조한 것으로 보인다.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정직하게 기술한 교회사가 유익하다. 성공보다 실패가 주는 교훈이 교회에 더 많은 교훈을 제공한다.
장로신학대학교, 총신대학교, 한신대학교 양심의 교사를 양성하는 선지학교이다. 역사를 날조 미화 하면 사회를 향한 양심의 교사 자격을 상실하고, 개혁신학이 강조하는 ‘코람데오’ 정신에 위배되며, 무엇보다도 실패한 역사가 주는 자양분을 깡그리 잃게 된다. 교회가 양심의 교사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교훈과 기회를 앗아간다.
10. 사실호도
예장 통합 제106회 총회(2021)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지지 않는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이 단체에서 탈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총회는 노회들의 탈퇴 청원 헌의를 심의한 에큐메니칼위원회의 보고를 받아 이를 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천명했다.
종교다원주의는 여러 종교들이 동일동가(同一同價)의 신앙공동체라는 전제에서 출범한다. 핵심은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 한 가지 이상이라 것이다. 첫 번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그 길이 아닌 구원의 길이다. 여러 가지 종교들이 다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
WCC는 여러 가지 문서들에서 종교다원주의를 직접 간접적으로 천명한다. WCC 제10차 총회(2013, 부산)는 종교다원주의를 담은 “선교전도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3)를 일방적으로 공표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는 제한이 없다” 또는 “하나님의 구원에 제한을 둘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는 제한이 없다”는 주장은 종교다원주의의 상징적인 구호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기독교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예수 밖에도 하나님의 은총의 길 곧 구원의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사회의 양심의 교사이다. 양심의 교사의 권위는 정직성에 달려 있다. 예장 통합이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확언하고 이를 천명함은 사실호도이다. 예장 통합은 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큰 조직체를 가진 교회이다. 무엇이 부족하여 사실호도로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가? 왜 신도들과 한국기독교계를 기만하는가?
예장 통합이 WCC가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식 천명함은 무지 탓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교단에는 지성인들이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예장 통합의 사실호도는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장 통합의 교세는 WCC 2013년 부산 총회 이후 서서히 그리고 대폭 감소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함은 교인 이탈을 막을 목적의 기만술로 보인다.
맺음말
주기철 목사복권, 목사복직 릴레이에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기미가 다소 엿보인다. 교회의 장래와 역사의식을 소중히 여기는 동기도 엿보인다. 신사참배와 같은 우상숭배의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하는 다짐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주기철 목사복권 목사복직 릴레이는 배교, 우상숭배, 백귀난행 등의 과거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음을 웅변적으로 시사한다. 친일파와 그들의 기질, 정신, 사고방식, 발상, 역사의식을 이어받은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과 교회교 정신성이 가져다 준 불행한 해프닝이다.
‘교회교’ 사고방식은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의 민낯이다. 불순한 이 전통은 지금도 친일파 교회 계승을 장자교단이라는 이름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단 교회들의 심장을 누비고 있다. 신사참배거부운동에 대한 국가차원의 인정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이 신사참배거부운동의 항일투쟁 공적을 인정함은 공정하고 합당한 일이다. 한국기독교 친일파 전통, 교회교 전통의 민낯을 드러낼 수 있다. 양심의 교사인 교회의 과거사 참회를 촉구할 수 있다. 한국기독교로 사회적 신인도 회복에 이바지할 수 있다. 교회로 하여금 다시 양심의 교사로 우뚝 서게 할 수 있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모닝포커스, 친일청산학회 발표, 2023년 1월 13일 국회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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