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과 팔공산 그리고 이재명
왕건은 신라를 후백제의 위협에서 구하려고 출전했다가 현 대구 팔공산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후백제의 견훤에게 참패했다.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를 당했다.
두령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신하 신숭겸 장군(申崇謙, 927 몰)은 자신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을 빌려 입고 미끼삼아 후백제군을 유인하여 따돌렸다. 한고제 유방을 살리려고 미끼가 되어 죽은 기신을 본 딴 영웅적 결단이었다.
왕건은 일반 군졸의 옷을 입고 탈출에 성공했다. 신숭겸의 희생 덕분에 왕건은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후백제군은 신숭겸이 왕건인 줄로 생각하고서 그를 추격했다. 신숭겸이 태조 왕건을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두령 왕건은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신숭겸과 함께 유인 작전에 나선 김락, 김철, 전이갑, 전의갑 형제, 전의갑 형제의 사촌동생인 전락, 개국공신 평장사 호원보, 대상 손행을 포함한 8명의 장수가 왕건을 살리려고 유인 작전에 가담하여 장렬히 전사했다. 대구 팔공산은 이 8명의 장수들을 기리는 이름이다.
참수된 신숭겸의 시신은 머리가 없었기에 왼쪽 발밑에 북두칠성 모양의 사마귀를 근거로 밝혀졌다. 왕건은 황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같이 그의 시신을 매장했다. 신숭겸의 죽음을 애석하여 여겨 자기의 무덤으로 정해 놓은 자리에 뭍었다.
올해 대한민국 대선에서 낙마한 정치인 이재명 씨와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진 4명이 자살을 했다. 모두 상식을 가진 건강한 시민으로 보인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이 소문의 관련성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비약적인 추정이 사실처럼 유포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갈 수록 추측성 확신은 신속한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이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위 자살자 4명이 이재명 씨와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다소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카더라 방송'은 그들이 이재명을 살리려고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상식과 판단력을 가졌을 법한 민주 시대의 건실한 국민 4명이 자살한 것은 정말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사법부가 정의로운 국가 건설에 일조할 수 있는 길은 이재명 씨의 행적과 4명의 자살자들의 관계를 조사하여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범죄자를 억울한 누명을 쓴 의인으로 만들 수 있다. 이재명 씨와 그의 정치적 지지자들은 사법부의 수사를 ‘정치적 복수’으로 여기지 말고, 국가 차원의 진실 밝히기에 적극 협조함이 마땅하다.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법의 요구에 응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국가는 국민이 자신의 불명예를 벗어나도록 사법부를 만들어 돕고 있다. 자신에게 쏟아진 불명예에서 벗어날 방법은 검찰의 수사이다.
사법부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법정은 모든 것에 열려 있다.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곳이 아니라는 반어법적인 주장은 상식이 되어 있다. 사법부의 판단 뒤에는 양심의 판단, 역사의 판단, 하나님의 판단이 기다리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오판, 부실한 판단에 때문에 판관 빌라도는 천추(千秋, 오래고 긴 세월, 또는 먼 장래)에 모욕적인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빌라도는 죽었어도 그 오판이 가져온 오명은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재명 씨의 오해와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은 한 가지뿐이다. 사법부의 판단 곧 국가 차원의 조사만이 4명의 자살자들이 신숭겸 등 팔공산 용사 8명의 장군처럼 자신들의 군주를 살리려고 스스로 자살한 사람들이라는 '카더라 방송'아 옳지 않음을 밝힐 수 있다. 이재명 씨가 누명을 벗을 다른 길은 없다. 누명을 벗을 목적으로라도 적극적으로 검찰의 조사에 응함이 마땅하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법관자유심증주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 법관의 심증만으로도, 즉 증거 없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다. 이재명 씨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분이다. 만약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 판결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면, 그의 억울함은 우리나라 법조계가 청정지역이 아니라 공해가 심한 영역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줄 것이다. 법조인인 이재명 씨는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법조계의 한계를 체험, 실감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한 괴물 '법관자유심증주의 원칙' 폐지운동에 앞장설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조사가 신속히 이루어지지 않거나, 국회 다수당의 당수 정치인이라고 하여 조사를 기피 지연하면, 이재명과 민주당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각인 전쟁에서 패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의 등극의 기초인 촛불혁명은 무엇을 말하는가? 광장의 목소리가 각인전쟁에서 사실보다 훨씬 더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재명 씨가 대한민국의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치보복이라는 까닭으로, 공정한 조사와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상식을 구실삼아 검찰의 조사를 거부하고 지연시키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재명 씨는 법조인이다. 법조계를 통솔할 대권에 도전한 비범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법조인이 사법부를 무시하거나 폄훼하거나 냉소적으로 여김은 자기 모순이다.
팔공산은 현재 국립공원이 아니라 도립공원이다. 신라시대부터 불교문화의 중심지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정치권력의 덕을 톡톡히 본 불교 사찰 동화사(桐華寺)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의 파계사(把溪寺)는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 시대에도 왕실의 보호를 받았다. 현재 수십 개소에 사찰들이 팔공산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팔공산을 지날 때마다 신숭겸 같은 결기에 찬 용장의 비장함이 절실해 진다. 배신이 일상인 시대에 충신의 고귀함을 일깨워 준다. 신숭겸-팔공산이 정치인 이재명 씨를 근거 없이 매장하는 사례로 비유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 진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