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변화와 신학교육 개혁

by reformanda posted Feb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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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신학대학원 교정

 

 

지형변화와 신학교육 개혁

 

 

 

기독교 인구의 지형변화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에서 선포한 선교와 전도 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3)지형변화’(changing landscape)라는 용어로 유럽, 북미, 대양주의 주류교회들을 퇴락, 몰락을 지적하고 있다. 21세기에 이르러 기독교 인구는 지구의 남반부인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WCC는 지형변화의 까닭을 규명하고 선교정책에 대한 대책을 세우거나 개혁하는 일이 시급함에도 거미줄처진 탄광처럼 썰렁해진 교회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지 않는다. 슬그머니 지형변화의 까닭을 이민 현상이라고 말한다. 유럽과 북미와 대양주의 백인계 기독인들이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로 이민한 탓으로 지형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인가? 아킬레스 건을 피하고 싶은 궁색한 진단으로 보인다.

 

 

유럽과 북미와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상대주의 진리관 흐름 속에서 조종을 울려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교회의 죽음과 인구 축소는 신학교 지원자가 비례적으로 줄어든 것과 일치한다. 교회의 죽음과 신학지원자의 급격한 축소는 신학교육의 개혁을 요구한다. 여러 방면의 신학교육의 개혁이 논의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는 무엇일까?

 

 

이 질문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는 기독인 증대와 함께 신학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신학교육을 제공받지 못하는 까닭과 맞닿아 있다. 부흥하는 교회들은 부흥하지 못하고 퇴락하는 교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복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헌금으로 교역자 생활비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진리에 목말라하고 신학을 배워 복음전도자로 나서고 싶어 하지만 하루 세 끼를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므로 고액 수업료를 지불하고 신학공부를 할 수 없다. 선교단체나 교회가 그들에게 숙식과 교통비를 제공하며 심지어 개척교회 의도를 가진 목사후보생에게 개혁자금을 지원해 주는 실정이다. 신학교육의 개혁의 과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초점이 모아진다.

 

 

풀러신학교의 축소 이전

 

 

미국 풀러신학교는 2018년 로스앤젤러스 파사데나 지역 캠퍼스를 모두 매각하고 3년 안에 같은 도시의 동부지역 포모나 지역으로 축소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총장 마크 래버튼는 지난 몇 년 동안 점점 더 어렵고 혼란스러워지는 대학 교육 환경을 경험하면서 재정 발굴, 예산 검토, 고통스러운 삭감 등을 겪어 왔으나 현재의 긴축 경영으로는 변화 수위에 충분하게 대처할 수 없었다고 했다. 캠퍼스의 축소 이전이 향후 수십 년 동안 학교를 존립시킬 수 있는 길이며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토로했다. 기존 캠퍼스를 매각하면 학교와 관련된 모든 채무를 없앨 수 있고, 학생 및 교직원의 생활비를 현저히 감소할 수 있다고 했다(1: 포모나 캠퍼스는 4.5 에이커 정도의 부지에 세워진다. 패서디나 캠퍼스는 약 13에이커이다. 새 캠퍼스 규모는 옛 캠퍼스의 1/3 수준으로 축소된다).

 

 

풀러신학교는 캠퍼스 축소로 당면한 재정 문제를 타개하고 디지털 학습 토양을 조성함으로써 교육의 효율성을 최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캠퍼스라는 외형적인 하드웨어를 축소하고 그 대신 온라인 수업을 개설하는 등 디지털 교육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교육에 공간과 거리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 건물이나 외형적 규모는 갈수록 불필요해진다. 이제부터는 신학생들이 과거 교회 역사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역동적인 온라인 학습과 더욱 폭넓은 세계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학교는 미국 최첨단 소프트웨어 업체인 'VMware‘(경영자 팻 겔싱어)와 협력하여 디지털 교육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풀러신학교의 2013~2017년 사이의 온라인 과정 등록은 50% 증가했다. 같은 기간의 지역 캠퍼스 등록률은 30% 감소했다, 등록률 감소는 학교 재정 상태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고 캠퍼스 폐쇄로 이어졌다(2: 풀러신학교는 목회자 양성 과정인 목회학 석사 과정(M.Div.) 정원의 미달 사태가 계속돼왔다. 4년 전에는 기숙사 건물 일부를 매매시장에 내놓았다. 이 학교는 한인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학업을 제공하여 일부 재정을 충당했다. 2016년에 이르러 한인 교직원 6명을 해고했고, 한인 프로그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17년에는 오렌지카운티 지역 어바인 캠퍼스, 워싱턴 주 시애틀 캠퍼스, 캘리포니아 주 북쪽 지역의 멘로파크 등 3곳의 지역 캠퍼스 폐쇄를 결정했다. 애리조나 주 피닉스 지역 캠퍼스가 운영하던 목회학 석사 과정 등 4개 학위 과정도 중단했다).

 

 

풀러신학교의 캠퍼스 이전 결정은 오늘날 교육 환경이 급변하며 그 흐름에 너무도 긴박함을 의미한다. 이 변화가 교계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첫째는 교회의 퇴락을 중단시킬 복음회복이다. 둘째는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교회의 생존과 세계복음화에 이바지하는 신학교육의 개혁, 변화를 환영하는 것이다.

 

 

신학교들의 위축

 

 

주지하다시피 오랫동안 복음의 요람이던 유럽의 기독교는 급격한 퇴락을 맞이했다. 신학교 지원자 수가 급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신학교들도 큰 폭의 학생 감소에 직면해 있다. 2007~2017년 사이, 자유주의, 보수주의 등 신학 성향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신학교들이 학생 대폭 감소 추세를 보였다. 풀러신학교의 2017-2018년 전체 학생 수는 2897명이다. 10년 전(2007-2008)3885명과 비교하면 약 1000명 정도 줄어든 셈이다(3: 이와 같은 기간에 샌프란시스코신학교(459160), 드류신학교(549320), 골든게이트신학교(현 게이트웨이신학교14521297), 루터신학교(829489), 프린스턴신학교(669502),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16031101), 웨슬리신학교(877535)가 큰 폭의 학생 감소를 경험했다. 사우스웨스턴뱁티스트신학교, 서더런뱁티스트신학교, 사우스이스턴뱁티스트신학교 등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학생 수가 4분의 1로 축소된 학교도 있다고 한다).

 

 

학생 감소는 재정 압박과 학비를 대폭 인상해야 하는 결과를 불러왔다(4 신학교의 대표적인 전공 학위인 목회학 석사(M.Div.) 과정 학비를 보자. 2017년 풀러신학교의 목회학 석사 학비(1, 풀타임 기준)19920달러였다. 2014년도 학비(17760달러)에 비하면 3년 만에 무려 2000달러가 증가되었다. 클레어몬트신학교(16440달러21120달러), 리폼드신학교(15900달러18197달러), 게이트웨이신학교(6075달러7800달러) 등의 학비도 대폭 인상됐다). 신학교 학비인상은 지난 10년간 평균 물가상승지수(27%)와 고등교육학비상승지수(38%)를 웃돈다. 신학교 관계자들은 이러한 위기를 (1) 기독교 교세 감소, (2) 신학 지원자 감소, (3)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학교 운영의 어려움, (4) 교단과 교회의 재정 지원 감소, (5) 유학생 감소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미국 신학교들은 백인 학생들의 입학이 줄어들자 새로운 장을 개척하려고 한인을 비롯한 여러 종족 학생들을 유치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스페인어 사용 학생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2017년의 북미신학교연맹(ATS) 인준 학교에 등록한 히스패닉 학생은 총 4820명이었다. 이는 2013(3751), 2014(4057), 2015(4290), 2016(4492)에 비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학생 수의 감소는 재정난으로 이어지고, 풀타임 교수들이 파트타임으로 속속 전환하는 현상을 도래했다. 대안모색으로 돌파구를 찾은 신학교는 '위기'라는 절벽으로 낙하지 않아도 된다. ATS는 북미주 지역 400개 이상의 신학교 현황을 분석하여 오늘날 신학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총 6개의 특징을 추려냈다. (1) 백인 학생 19% 감소, (2) 30세 이하 학생 6% 감소, (3) 목회학 석사 과정(M.Div.) 학생 14% 감소, (4) 비백인 학생 10% 증가, (5) 50세 이상 학생 16% 증가, (6) 목회학이 아닌 일반 신학 관련 학위 개설 11% 증가 등이다.

 

 

미국 신학교들의 몸집은 기독교가 성장할 때 형성되었다. 신학교의 영향력 확대는 미국 기독교의 발전과 맥을 같이했다. 그러나 근년에 이르러 기독교 세력이 퇴락하면서 신학교의 몸집도 줄어들고 있다. 신학교의 몸집은 기독교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현 시대에 맞게 재구조화되어야 할 처지이다. 2030년이면 일반 대학교들도 현재보다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골든게이트신학교는 2016년 재정난으로 캠퍼스 전체를 팔아 칼리포니아 주 남부의 온타리오로 이전했고, 학교 이름을 '게이트웨이신학교'로 변경했다. 2017년 클레어몬트신학교는 윌라메트대학교와 합병하여 캠퍼스를 오리건 주로 이전한다고 공지했다. 현재의 구조로는 학교를 유지해 나갈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신학교인 보스턴지역의 앤도버뉴턴신학교(1807년 설립)는 예일대학교 신학부와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학교의 폐쇄와 다름없는 학교 병합 결정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5: 한인 목회자 양성학교인 로스앤젤러스의 세퍼드대학교는 재정 관리의 불투명성과 경영 문제 등을 지적당한 뒤 파행을 겪었다가 폐쇄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학생 비자로 학생들을 유치하고, 주먹구구식 행정, 대리 수강 묵인, 재정 운용의 불투명한 탓 등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전전긍긍하다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퇴락하는 주류 교회들 곁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복음적인 교회들이 있다. 예컨대 보스턴은 청교도 후예들로 구성된 회중교회, 아메리칸뱁티스트교회, 미합중국장로회(PCUSA)들의 많은 지역이다. 이 교회들은 죽음 직전의 상태이다. 그러나 그레이스채플(초교파 복음주의교회), 하이락교회(언약교단), 그리고 한인교회들이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다. 생명력을 잃은 고목 곁에 새 순이 돋아나고 있다. 보스턴 지역의 고든콘웰신학교는 2017-2018년 사이에 1734명에서 2134명으로 늘어났다. 보스턴캠퍼스, 샤롯캠퍼스를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다. 수업료를 적게 받고 있다. 19950달러에서 18750달러로 낮추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신학교들은 저조한 학생 지원으로 현상유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를 제외한 나머지 신학교들은 정원미달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신학대학원은 2000년대에 180명을 선발하여 졸업시켰다. 근년에는 100명 미만의 학생들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원을 낮추어 모집하므로 정원미달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신학교 지원자 수는 그 학교를 운영하는 그룹의 교세에 비례한다.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을 운영하는 예장 고신은 2018년 교인수가 전년보다 2565명 감소했다(6: 2017년 예장고신 교인 수는 452932명으로 집계됐다. 2004년 이후 최저치다. 교회와 목사 수는 증가했다. 교회는 2067, 목사는 3788명으로 전년보다 각각 11, 53명 늘었다. 목사가 아닌 남교역자(강도사·전도사)와 여교역자 수도 각각 633, 583명으로 전년보다 증가했다. 시무장로는 4049명으로 지난해 보다 96명 감소했다). 총신대학교를 운영하는 예장 합동은 2018 전년 대비 교인 수와 교회 수가 소폭 줄었다(7: 교인은 2.7%, 교회는 0.1% 줄었다. 총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31일 기준 예장합동 교인 수는 20162764428명에서 2688858명으로 2.7% 75570명 줄어들었다. 교회도 11937개에서 11922개로 15개 줄었다. 같은 기간 목사 수는 23440명에서 23726명으로 286(1.2%) 늘어났다. 전도사와 강도사 역시 각각 288(2.4%), 13(1.5%) 증가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운영하는 예장 통합은 2018 한 해 동안 세례교인 수가 16053명이 줄어들었다. 2017년에는 12천여 명이 줄어들었다(8: 교회학교 부서는 전체적으로는 전년대비 1918명 감소했지만, 영아부의 경우는 2685명 늘어났다).

 

 

신학교

 

 

가장 오래 된 신학교는 2세기 말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가 가르친 알렉산드리아 학교라 할 수 있다. 정상적인 목회자 양성은 4세기 이후에 등장했다. 감독, 장로, 목사의 서재에서 이루어지던 목사후보생 교육은 13세기의 대학들의 등장과 더불어 대학교육의 핵심 영역이 되었다. 신학의 학문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종교개혁 시대 이후에는 종합대학교 안에 개신교 계열 신학부가 많이 설치되었다. 신학교는 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신학연구원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신학 강습소나 신학 교실을 통해서 신자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신학교는 대부분 신학대학원의 목회학 석사 3년 과정을 의미한다. 신학교는 정규 대학과 신학대학원을 포함하여 목회자를 양성하는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신학연구원들까지도 포괄한다.

 

 

성직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 곧 성소(聖召)를 받았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 신학교에 입학한다. 신학교 입학은 본인의 내적 외적 소명과 당회의 천거와 노회의 인준을 받는 절차를 따라 진행된다. 대부분의 신학교들의 교육은 교회의 목사후보생 위탁교육 형태로 이루어진다.

 

 

신학교는 기독교 계열의 성직자 양성기관이다. 기독교 목회자(성직자)나 신학자를 양성하기 위한 4년의 신학사(B.Th) 과정, 3년의 목회학석사(M.Div)과정, 2년의 신학석사(Th.M)과정, 3년의 신학박사(Th.D) 또는 철학박사(Ph.D)과정의 교육을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의 신학교는 대부분 3년의 목회학석사(M.Div )과정 교육에 주력한다.

 

 

개혁신학 전통과 선교-전도

 

 

개혁신학 전통은 복음전도와 영혼구원 그리고 선교 현장에서 탁월성을 지니고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혁파 전통은 교회와 정치가 일치된 종교사회의 유산이다. 비기독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개종, 회심시켜 형성된 교회 전통이 아니다. 개혁신학이 표방하는 칼빈주의는 예정론과 함께 개인의 구원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므로, 복음전파의 긴급성을 가지지 못하고, 영혼구원과 복음전도의 시급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대한 신학자 사도 바울은 개혁신학 구원론을 제시했다. 바울은 칼빈주의자였다. 즉 칼빈주의 구원론 형성에 결정적인 신학적 이론을 제공했다. 바울이 제시한 칼빈주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포함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통하여 확산되었다.

 

 

또 다른 아이러니는 칼빈주의가 복음전도에 탁월하지 않다는 일반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역사는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선교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이 거의 다 칼빈주의자들이었다. 교회사적 증거는 칼빈주의가 복음전도 현장에서 탁월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신학체계라는 비판을 무색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칼빈주의가 표방된 곳에서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교리를 마음 깊이 간직할 때, 가장 융성하게 드러났다. 구둣방을 박차고 나가 인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의 열정을 생각해 보라. 케리는 견실한 칼빈주의자였다. 침례교 선교부를 창설하는데 기여한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침례교도 앤드류 풀러(Andrew Fuller)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인뿐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신앙의 사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가 한 다음 말을 깊이 생각해 보자. “나는 그 때 두 가지 욕망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내 자신의 성화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불러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 중 한 사람은 조지 윗필드(George Whitefield)는 칼빈주의자였다. 칼빈주의가 그의 복음 전파를 결코 방해하지 못했다. 세평(世評)은 그가 신적인 연민의 정을 가지고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권면했다고 전해진다.

 

 

칼빈주의는 영국의 설교자 로버트 머레이 맥세인(Robert M. M'Cheyne)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었다. 저 위대한 신앙부흥의 지도자이며 중국 선교사인 앤드류 보나르(Andrew Bonar)와 윌리암 번즈(William Burns)가 외친 기쁜 소식의 골자였다. 수많은 순교자들, 교회개혁자들, 그리스도의 지상 교회의 지도자들이 전하다가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복음체계였다. 누가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거나 택하신 백성에게 주는 은혜의 복음을 두드러지게 선언했는가? 마르틴 루터, 쯔빙글리, 존 칼빈, 존 낙스, 윌리엄 틴데일(Tyndale), 라티머(Latimer), 위샤르트(Wishart), 파킨즈(Parkins), 루더포드(Rutherford), 번연(Bunyan), 오웬(Owen), 차녹(Charnock), 굿윈(Goodwin), 플라벨(Flavel), 왓슨(Watson), 헨리(Henry), 왓츠(Watts),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 뉴톤(Newton), 스펄전(Charles H. Spurgeon) 등은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의 진리를 증거한 일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칼빈주의는 그들의 왕성한 영혼구원과 복음전도를 방해했는가?

 

 

칼빈주의는 위대한 전도자들에 의해 생명력과 복음적 능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진리체계로 사용되어 왔다. 영국의 설교자 찰스 스펄전(C. H. Spurgeon)은 칼빈주의 가르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관점을 피력했다. “우리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믿는다. 그러나 이 5대 교리가 동료 크리스천의 늑골을 찔러도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이 십자가를 빛나게 해주는 5대 등불로 여긴다. 아니 그 보다는 우리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스런 언약에서 솟구쳐 올라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위대한 교리를 설명해 주는 다섯 가지의 빛나는 발광체로 간주한다.”

 

 

네덜란드의 신학교수 제임스 아르니우스(James Arminius, 1560-1609)가 죽자 그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들은 아르미니우스주의 5대 교리를 구체화했다. 그때까지 네덜란드 교회는 유럽의 다른 주요 개신교회들과 함께 벨직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그교리문답에 찬동하고 있었다. 이 신앙고백서들은 종교개혁 교리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이 주장을 변경하려고 항의 형식의 교리 5개 조항을 작성하여 네덜란드 의회에 제출했다(9: 칼빈주의 5대 교리를 태동시킨 아르미니우스주의 5대 교리를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유의지, 혹은 인간의 능력: 인간이 타락의 영향을 받았지만 영적 선()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을 얻고자 하면 스스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2) 조건적 선택: 하나님께서 복음에 응답하리라고 알고 계신 각 개인들을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로 또 본래의 타락한 상태에서 (물론 아르미니우스주의 제1교리에 따르면 완전히 타락한 것은 아닌)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을 선택하셨다. (3) 보편적 구속: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다.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것은 사람들이 믿을 때에 가능해진다. (4) 중생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는 인간 의지의 제한을 받음: 성령이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끌려고 역사하기 시작할 때 사람에게 거절을 당할 수 있다. 성령의 뜻이 좌절될 수 있다. 죄인이 자진해서 생명을 받겠다고 하지 않는 한 성령은 새 생명을 줄 수 없다. (5) 은혜에서 떨어짐: 구원받은 사람도 종국에 가서는 구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만일 인간이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면 최종 결과에 대한 책임은 인간 자신이 져야 마땅하다).

 

 

아르미니우스주의 5대 교리가 제출되자 1618년 도르트라는 동시에 총회가 열렸다. 이 모임은 아르미니우스의 가르침을 성경에 비추어 검토했다. 7개월에 걸쳐 153차의 회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아르미니우스파의 견해와 하나님의 말씀에 제시하는 것과 조화될 만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총회는 종교개혁기에 개진되었고 프랑스 출신 신학자 칼빈이 체계화한 주장을 재확인하면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공식화했다. 아르미니우스주의 체계에 대항하는 이론체계의 영어 머리글자들을 모아 ‘TULIP’이라고 한다. T (전적 부패, 즉 전적 무능력), U (무조건적 선택), L (제한된 속죄, 곧 특별한 구속), I (불가항력적 부르심 혹은 은혜), P (성도의 견인)이다.

 

 

도르트총회는 복음에서 빗나간 신앙 체계의 흐름에 대처했다. 종교개혁 계승자들로 구성된 이 총회는 기독교 진리 5개조를 명료하게 체계화했다(10: 이 교리체계는 반세기 전에 작고한 제네바의 종교개혁가 존 칼빈의 이름과 연계가 되어 칼빈주의 5대 교리로 불린다. “칼빈주의라는 명칭은 본래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이 처음 사용한 선전 용어였다. 개혁주의 신앙 옹호자들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용어가 구원이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교리를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받아들였다).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인류의 타락이 전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구원해야 한다면 하나님은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원하는 자를 구원할 자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대로 구원할 자를 선택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는 그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유효하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셨고, 성령은 그들을 효과적으로 불러 구원한다. 구원이 처음부터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마지막 결과도 역시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성도들은 지속적으로 신앙을 유지하여 영원한 구원과 그 영광스런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교리이다.

 

 

설교가 찰스 스펄전의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구원에 대한 외침을 들어보자.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설교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분노하며 입술을 물어뜯고 이를 가는 것을 경험해 왔다. 오늘날 공소한 이론가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그가 한 분 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 우리는 과도파라고 매도를 당한다. 목사들은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며 우리들을 향하여 호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신적 주권과 그의 신적 선택과 그의 백성에 대한 특별한 사랑에 관해 확고한 견해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칼빈이 전했고, 어거스틴이 전했고, 바울이 전했던 그 옛 진리는 오늘날 내가 전해야 할 진리이다.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내 양심과 내 하나님께 거짓이 될 것이다. 나는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나는 한 교리의 울퉁불퉁한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것과 같은 그 같은 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존 낙스의 복음이 곧 나의 복음이다. 스코틀랜드를 진동시켰던 그것이 다시 영국을 진동시켜야 한다.”

 

 

칼빈주의는 선교와 전도를 강화시키는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탁월한 교리체계;. 그런데도 칼빈주의가 복음전도 현장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현장에서 올바른 복음전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거짓복음 또는 온전하지 않은 복음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칼빈주의가 모종의 이유로 곡해되고 있음을 뜻한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의미가 예정과 선택에 제한되고 왜곡되어 있다. 셋째, 칼빈주의와 복음전도신학을 연결시키는 신학적 접촉점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학적 접촉점이 없는 변론은 설득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주권과 복음전도

 

 

복음전도의 노력을 등한히 하는 칼빈주의자들과 그 칼빈주의를 폄하하는 자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칼빈주의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반면 인간의 책임, 영혼구원의 노력을 배제한다고 오해이다. 전도를 불필요하게 여기지는 않아도 하나님의 선택 또는 은혜의 구원 계획에 들어 있는 자는 전도하지 않아도 예수를 믿게 된다고 보는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자들이 있다. 미국 프로테스탄트 개혁교회(PRC)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책임에 해당하는 전도의 노력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요점은 십자가 구원이다. 인간의 전적타락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계획과 저항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의 위대성을 찬미하고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성도의 견인 교리로 구성된다. 전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소망 없는 죄인이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적 구원 계획에 따라 주어진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대속사역을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인간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이신칭의 교리는 죄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믿음과 구원을 주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전도자의 노력으로 확장된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는데 어찌 들을 자가 있겠는가(10:14). 전도자가 복음진리를 전할 때 하나님은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들 안에 역사한다(13:48). 성령께서 복음을 듣는 자의 마음을 열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한다(16:14). 하나님이 역사하면 죄인인 인간 안에 믿음이 생긴다.

 

 

하나님은 인간의 믿음과 복음전도 노력을 요청한다. 그리스도의 지상명령(28:19-20)은 제자 삼는 복음전도자의 노력을 요구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11:25),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2:28),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 등 수많은 가르침이 인간의 책임을 요구한다. 제자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5:42). 바울은 성경의 뜻을 풀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가르쳤다(17:3). 그가 예수 복음을 전하자 주께서 복음 듣는 자의 마음을 열어 믿게 했다(16:14).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했다( 18:5). 전도자는 잘 의도된 복음전도로 비기독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한 자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자이다.

 

 

흑백논리란 검정색이 아니므로 흰색이며,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논리적 오류판단이다. 만사를 검정과 하양만으로 파악하는 평면적 사고, 단세포적 사고는 반립적 사고(antithetical mode of understanding) 형태로 나타나며, 만사를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파악한다. 범주착각의 오류(category mistake)는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을 그렇다고 생각하고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오류이다.

 

 

사물을 반립적으로 보는 눈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대립적인 관계로 본다. 인간의 믿음과 복음전도의 노력을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거나, 인간의 믿음의 공로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흑백사고와 범주착각의 오류에 빠지면 하나님의 구원 진리에 대한 역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하는 것과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선물이라는 두 가지 명제는 역설의 진리이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인 신애세인, 도성인신, 사자부활, 대속구원,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양식과 마찬가지로, 두 명제는 상충되지 않으며 모순되지 않는다. 구원은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합작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신적 계시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들, 역설의 진리들은 한계를 지닌 인간의 합리성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단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송영(doxology)으로 끝내야 하는 진리들이다.

 

 

인간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책임과 전도자가 잘 의도된 복음전도의 책무를 배제하지 않는다. 필자의 견해는 칼빈주의 영국인 신학자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가 칼빈주의 5대 교리에 나타난 주권과 예정이 전도와 선교를 향한 우리 인간의 열망과 책임을 희석(稀釋)시키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칼빈주의는 구원론 교리체계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와 복음전도학의 접촉점은 하나님의 주권(Sovereignty)이다. 칼빈주의의 선택과 예정이라는 이중예정론이 복음전도왁 관련하여 인간의 책임을 등한히 하는 오해를 유발시키는 듯하다. 예정과 선택은 칼빈주의 구원론의 논리적 귀결(a logical terminal)이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신학적 산물(a theological outcome), 일종의 논리적 연상(a logical implication), 최종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a process for the destination)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성경적 진리의 핵심을 잘 드러내도록 인도하는 촉매제(觸媒劑)이다.

 

 

미시오 데이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기독교 선교신학은 미시오 데이’(Missio Dei)라는 개념에 초점을 모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교학자들은 선교신학의 신학의 중심점을 이것에서 찾고 있다. 인류와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사역을 강조한다. WCC1960년대에 수용한 미시오 데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그 중심개념으로 간직하지만 그것은 칼빈주의가 강조하는 대상과 전혀 다르다. ‘미시오 데이는 선교를 선교대상(교회, 구원, 사람)에 의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의하여 정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직접 움직이는 하나님의 선교 곧 미시오 데이에 교회가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시오 데이의 중심의미가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라는 주장은 구원이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임을 주장하는 칼빈주의 교리와 동일한 선상에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대상은 인간구원이 아니라 피조물 구원, 사회혁명, 인권, 차별금지, 환경, 공해 등이다. 만약 하나님의 주권을 이런 측면에서만 적용하면 신학교는 사회혁명가 양성소이며, NGO 활동을 연구하는 이른바 선교학 학교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칼빈주의의 중심개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이다. 칼빈주의는 구원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있다. ‘미시오 데이는 세상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활동 곧 선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있다. 칼빈주의와 미시오 데이는 노선을 달리한다. 칼빈주의 구원론은 교회의 에너지를 영혼구원과 교회설립에 투여한다. 교회의 에너지를 비복음적인 것에 소진시키지 않는다.

 

 

WCC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의 영역에는 무관심하고 일반은총 사역에 동참하는 미시오 데이에 매진하고 있다. 부산총회의 선교전도 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2013)는 하나님의 구원에 제한이 없다고 선언한다. 모든 역사적 종교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므로, 구원이 기독교에만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근련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문화신학, 공공신학, 해방신학 등은 미시오 데이와 함께 복음 없는 기독교에 함몰될 가능성이 있다.

 

 

공공신학

 

 

칼빈주의를 영혼구원과 복음전도와 무관한 것으로 인식시키는 것 큰 흐름 가운데 하나는 칼빈주의 문화관이다. 칼빈주의는 사람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며, 전 영역 안에서 하나님이 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WCC와 진보계 선교신학에 혼신을 다하는 미시오 데이는 일맥상통한다. 네덜란드인 비셔트 후프트를 비롯한 WCC의 초기 인사들 상당수가 칼빈주의 문화관을 접한 개혁신학 전통에서 자란 인물들이다. 근년의 개혁파 신학자들은 카아브라함 카이퍼, 클라스 스킬더의 칼빈주의 문화관을 공공신학 안에 다루기도 한다. 공공신학은 기독교세계관과 칼빈주의 문화관 그리고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를 강조한다. 칼빈주의 문화관과 해방신학과 미시오 데이와 궤를 같이한다.

 

 

공공신학은?하나님을 회중들과 신자의 마음만을 다스리시는 분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삶을?주관하는 천지의 대 주재로 부각시킨다. 정치 사회?경제 문화에 대한 거대 담론을 하며 그것을 넘어 종교적인 가치에 의하여 영향을 받고 있는 일상생활을 다룬다. 이 세상에 대한 기독인의 참여를 강조한다. 세상 참여는?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의 본성에?함의되어 있는?내용이라고 본다. 신앙의 개인화와 개인주의에 반대하면서, 세상의 적극적 변혁, 변혁활동을?강조한다. 성도들의 삶이 교회 내적 윤리로 제한되거나 환원되는 것을 반대한다. 사회참여의 당위성을 넘어 그 방법의 정당성을 고민한다. 공공신학과 해방신학은 손을 잡는다. 둘은?대립적이지 않고 서로를 긍정의 관점으로?바라본다.

 

 

공공신학은 해방신학과 미시오 데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의?주변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부차적인 것에?교회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 반면?복음과 영혼구원과 교회설립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인류 전체의 삶을?주관하는 천지의 대 주재이시다. 세속사 안에서도 현존하신다. 기독인은 정치 사회?경제 문화 등?모든 창조세계에?대한 거대 담론의 책임이 있다. 기독교인의 세상 참여는 당연하다. 그러나 공공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개인화와 개인주의에 반대하고?세상의 적극적 변혁, 변혁활동을?강조하는 동안 사도직임인 복음전파와 영혼구원 임무 수행을 소홀히 하는?취약성을 보인다. 복음을 공공성과 동일시하거나 동등한 위치에 두지 않는지 의문스럽다.

 

 

영혼선점선교, 세계복음화

 

 

유비쿼터스 왕국은 국경, 문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다.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신세계다. 대량 정보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람들에게 단숨에 전달할 수 있다. 그래서 교육 플랫폼을 갖춘 신학교육 선교 시스템은 상상을 초월하는 확장성, 팽창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의 인구 약 70억 명 중 약 25억 명이 18세 미만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의 디지털지능지수는 매우 높다. 젊은 세대는 온라인 동영상 강의에 익숙하다. 책이나 출판물보다 스마트 폰, 아이패드, 컴퓨터를 거치는 정보 접근과 동영상 강의를 선호한다.

 

 

교회는 기독교가 퇴락하는 위기의 시점에서 기독교 부흥 시대를 열 사도적 직무를 수행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절실하다. 저비용 고효율 대량 방식의 신학강의를 공급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현대 개념의 신학교는 하나님의 진리와 예수 복음을 명료하게 효과적으로 전하는 전도자와 목회자를 훈련시킨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영혼구원의 기적을 실제로 일으키는 제자를 양성한다. 영혼 선점 선교(Soul-Searching Mission)에 매진한다.

 

 

기독교의 퇴락 원인은 신자들이 영혼구원에 목표를 둔 복음전도 곧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고 영원한 생명(zoe)을 얻게 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에너지와 자신들의 시간을 영혼구원과 영적인 생명보다 덜 중요한 선교 활동에 소진(消盡)한 탓이다.

 

 

칼빈주의 구원론에 기초한 복음전도는 구원받을 영혼을 찾는 전도자, 목회자, 설교자를 양성하는 신학강의 공급선교 플랫폼(platform)을 선호한다. 저비용, 고효율, 대량 방식의 투자대비 폭발적인 성과를 올리는 신학교육 채널, 수요자와 공급자가 인터넷 공간 또는 현대정보통신 방식으로 만나는 곳을 중요하게 여긴다.

 

 

현대 정보통신기술(IT)의 촉매적 혁신(catalytic renovation)은 유비쿼터스 방식의 저비용, 고효율, 대량 방식의 신학강의 공급을 가능케 한다.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을 수 있다. 신학교수가 비행기를 타고 선교 현지에 가지 않아도, 고액 비용이 없이도, 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통역자 없이도, 고급인력 에너지를 반복적으로 쏟아 붓지 않아도 신학교육을 할 수 있다.

 

 

교육은 눈과 눈을 마주보며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이 바람직하지만 놀라게도 기술의 발달은 높은 수준의 학습(學習: learning process)이 가능하게 한다. 온라인대학교들이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온라인신학교는 동영상 강의와 함께 강의안 텍스트와 모범 질문과 답을 공급할 수 있다. 현지 지도자는 교수가 만든 질문을 가지고 학생과 함께 교실에서 토론한다. 국가별 질의응답 센터를 만들어 질의의 응답을 인터넷과 스마트 폰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학교를 건물로 이해하는 시대는 사라져 간다.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동영상으로 교육하는 글로벌 캠퍼스 학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신학강의는 선교사들과 선교현지 목회자들에게 온라인 또는 유에스비(USB)나 테러바이트 용량의 기기에 동영상 강의를 담아 공급한다. 모일(MOBILE)에 연결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제공한다. 소시얼 네트웍(SNS Network) 방식은 시간과 공간과 국경의 벽을 넘어선다. 기독교 선교를 금지하는 불교권, 이슬람권, 공산주의권의 여러 나라 또는 온라인 통신 설비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가난한 나라에 적합하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위험지역의 선교사들과 현지인 사역자들의 위험부담을 줄여준다. 자국인이 미디어를 이용하여 외국인의 동영상 신학강의를 수용하는 것이므로 외국인포교금지법이나 강제포교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신학교육과 통합성

 

 

신학교 개혁은 많은 주제들과 관련되어 있다. 소명, 인격, 영성, 인간관계, 통합성, 학문성, 상식, 성경과 교리지식에 탁월한 사역자 양성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는 능력, 성경 히브리어와 코이네 그리스어 독파력, 한 편의 설교를 조직하는 합리성, 신앙적 자각과 결단을 가지게 하는 설교를 조직하는 상상력, 감동 있게 제시하는 상상력을 배양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도 학교 경영의 투명성, 합리성, 효율성을 갖추지 못한 학교들의 제도 향상도 개혁의 대상이다.

 

 

바람직한 신학교육은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 비평적 사고, 충분한 성경 지식을 가진 자들을 가르쳐 하나님의 진리를 골고루 균형 있게 가르치고, 성경을 구속사 관점으로 해석한다. 바울처럼 성경 본문을 읽고, 성경 안에서, 성경의 뜻을 풀어내도록 한다(17:1-9).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7:1-3; 8:4)을 명료하게 가르친다. 예수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영생을 얻게 하며 거룩하게 살게 한다.

 

 

우리 시대에도 필요한 신학교의 강조점은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생기와 활력이다. 복음진리를 설교하는 자와 함께 하고 그 메시지 복음을 듣는 자의 마음을 여는 하나님의 영의 기적과 강력한 역사(役事)를 보여준다.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리고 기도와 경건의 삶으로 극한의 영적인 힘을 이끌어낸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사람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이 청중의 귀에 들려지게 한다. 하나님의 언어를 이해하며 홀로 하나님과 대화한다. 고독한 시간을 마다하지 않는다. 상처 난 무릎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린다.

 

 

맺음말: 두 가지 급선무

 

 

유럽과 북미와 대양주의 주류 교회들의 죽음, 퇴락하는 지형변화의 시기에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변화시켜 교회의 역사를 지속시키고 있다. 위기는 변화와 개혁을 요청한다. 현대 신학교육의 개혁의 급선무는 구원론 강화(强化)이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사도적 직임 수행에 초점 둔 신학교육이 요청된다. 신학도들이 복음전도와 영혼구원에 탁월성을 가지는 방향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바꾸는 개혁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책임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신학 공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 가르친 이신칭의와 십자가 중심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명료하게 제시하여 영혼구원에 앞장서는 전도자 양성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위대성 선전에서 시작하는 복음전도에 초점을 맞추고, 가능하다면 한 명의 영혼도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신학교수 직을 맡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음이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이해하는 자를 목회자로 세우도록 한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교육 플랫폼을 구축하여 잠자는 동안에도 지구마을 이곳저곳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당이 텅텅 비고 신도가 없는 마당에 교회의 에너지를 미시오 데이등 비복음적인 일에 소진하도록 가르치는 신학교육은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학교가 복음전도자를 양성하는 곳인지 혁명가 또는 사회사업가 양성소를 배출하는 곳인지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신학교는 사도직무를 수행한 자들을 양성하는 학교이다. 사도직의 기본은 복음전도와 영혼선점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반은총 차원의 착한 사마리아인 선교, 긍휼선교, 사회봉사, 의료, 교육, 문서 선교를 하고, 교회당을 짓고, 노숙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고, 사회개혁, 정의사회 구현, 인권확립, 환경보호, 공해방지, 핵억제, 인종차별 폐지, 평화 증진에 힘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을 복지사업, 교회당 건물 세우기, 기도원 짓기, 구제활동, 인원동원 등에 고립시킬 필요가 없다. 교회당이 거미줄처진 폐광처럼 썰렁하고 텅텅 비어가는 마당에 교회와 기독인이 영혼은 구원하지 않고 사회봉사에 열성을 보임은 아이는 낳지 않고 노인복지시설 확충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과 같다. 예장 통합이 반세기 동안 외쳐 온 영혼구원과 사회구원의 병행하는 통전적 선교는 사실상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현대 신학교육의 개혁은 '직접선교'에 매진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 구축에서 시작한다. 영혼선점(Soul-Searching)과 교회설립 활동에 진력한다. 글로벌 캠퍼스, 글로벌 클래스랄 24시 운영한다. 지구 이 편에서 잠을 자는 동안 저 편에서 신학강의를 듣도록 무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의 신학생들을 다수 양성한다. 저비용 고효율 방식의 동영상 신학교육 플랫폼은 예수의 사도들이 투신한 복음전도와 목회자를 양성하는 복음전도 마당이다. 예수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영생의 길과 바른 삶의 모습을 제시하는 헌신자들을 양성하여 사탄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입국시키는 영혼선점 사역에 진력하게 한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개혁신학포럼, 16차 학술회 발표 논문 (2018.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