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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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도 종교혼합주의와 종교다원주의를 선호하는 신학자, 목사들이 없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 곧 기독교의 유일성을 부인하고 범신론적인 종교다원주의를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기독교인의 기도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며, 예수만이 보편적으로 유일한 구원자, 구속자라고 보지 않는다. 각 종교가 다 구원의 길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해 왔다.
이러한 신학사상은 오래 전 미국 유니온신학교의 교수 폴 틸리히가 주도하는 종교사학파와 관련되어 있다. 틸리히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일본종교계를 둘러보면서 어느 신도(神道) 사제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만약 일본에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신도사제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서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기독교신자가 된 것이고 당신은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신도사제가 되었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것은 기독교나 신도가 외형적인 차이가 있을 뿐 종교로서는 동일하다는 신념을 단면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종교혼합주의를 포함한 극단적인 진보주의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회가 가진 신학양식과는 다른 새로운 신학양식(Theological Paradigm)에 기초를 두고 있다. 신학양식은 몇 가지 신학적 혹은 철학적 전제를 가지고 사물을 이해하는 사고의 틀이다.
진보주의자들이 갖는 으뜸 되는 두 가지 전제를 손꼽는다면 그 첫 번째는 상대주의적 진리관이다. 절대적인 진리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자 칸트의 인식론에 큰 영향을 받은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무엇을 안다는 것은 객관적인 실체가 어떤 지식을 인간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 속에 생래적으로 주어진 인식기능이 무형의 인지덩어리를 구실로 삼아 지식의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미꽃을 보고 그 빛깔이 빨갛다는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장미가 빨갛다고 알려주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것은 빨갛다고 규명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마음이 인지의 자료들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과정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지식에 있어서 인간은 수동적이 아니고 능동적이다. 따라서 모든 합리적 지식은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검증 불가한 전통적인 교리에 집착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실존적 삶에 관련된 현실적 주제들 즉 사회악과 구조 악을 제거하며 환경을 개선하고 질병을 퇴치하는 등의 일이 곧 구원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지식이 상대적이며 주관적이기 때문에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능력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이상의 어떤 것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경험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진리에 관한 합리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다. 신의 존재, 영생, 성육신, 부활, 동정녀 탄생 등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는 믿을 만한 합리적 지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이 그것을 가르치나 그것은 신화일 뿐이며 선의의 거짓말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특정 종교를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종교라고 주장하거나 유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독단이요 허구라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은 윤리, 선, 인간다움 등 을 추구하는 일이며, 이것들을 추구하는 종교는 모두 다 동일한 가치와 고귀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WCC가 전통적 교리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영혼구원, 교회의 설립 등의 선교적 관심을 탈피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검증 불가한 전통적인 교리에 집착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실존적 삶에 관련된 현실적 주제들 즉 사회악과 구조악을 제거하며 환경을 개선하고 질병을 퇴치하는 등의 일이 곧 구원사역이라고 생각한다.
남미의 해방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등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학사조들이다. 이러한 삶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들로부터 인간을 해방(구원)시키는 것이 선교과업이며, 이를 위해서는 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연주의이다. 이것은 만사가 자연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여 나간다고 믿는 사고유형이다. 자연주의에 입각한 진보주의적 신학자들은 성경에 나타나는 초자연적 역사들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이며, 어떤 종교적 신념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무의식적 환상 혹은 은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동정녀 탄생, 물위로 걸으심,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심, 대속적인 죽음, 부활사건 등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윤리적 목적 수행 그 이상은 아니다. 예수는 탁월한 윤리선생이었고, 정치적으로 희생당한 혁명가, 해방운동 선구자라고 생각한다.
WCC 제7차 총회가 ‘성령’을 주제로 삼고 ‘기도’를 강조했다는 점이 주목을 끄는 것은 그동안 이 단체가 자연주의에 입각한 진보주의적 신학에 의해 주도되어 왔기 때문이다.
WCC를 이끌어 가는 신학자들은 ‘성령’을 에너지, 정령, 혹은 기(氣) 등으로 이해하고 있다. 초자연적인 신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기본적인 신념을 드러낸 것이다. 영적 실체를 인정하는 듯한 자들도 있으나 대체로 그것에 대한 합리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한다. 또한 영적실체는 자연법칙을 거슬러 행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 같으나 실상은 그 신의 직접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활동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기도의 유심(唯心)적 기능을 강조한다. 만사는 인간의 마음에 달렸고 인간이 마음을 비우면 스스로 신이 된다고 믿는 것이 이들의 지배적인 신념이다. 기도의 대상은 결국 인간의 마음이다. 정현경의 기도의 대상인 성령의 이미지는 관음 곧 깨달은 존재[覺者]며 언제나 스스로 열반에 들어갈 수 있으나 만물이 해방될 때까지 들어가기를 스스로 부인하는 존재이다.
관음은 불교의 부처 곧 인간을 뜻한다. WCC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신학자들은 마술적인 해결책을 기대하는 유아기적 신앙의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전능한 분으로 믿으면서 수동성 안에 갇혀서 모든 형태의 삶과 연대하여 투쟁하지 아니하고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다. 기도는 인간 자신이 투쟁하여 얻으려 하는 갈망, 희망, 바램, 소원이다.
해방신학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은 자주 영성(Spirituality)을 강조한다. 그것은 성령활동에 기초한 신자의 영적 각성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의 유심성(唯心性)을 의미한다.
이러한 몇 가지 ‘전제’를 ‘신앙’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을 부인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만 그리스도는 예수 한 분뿐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무명의 그리스도’ ‘익명의 그리스도’ 이론을 진리로 신봉하는 자들이 많다. 이들은 그리스도는 언제 어디서나 현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예수만이 그리스도라고 여기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가 있다. 그리스도는 중국에서 도포를 입은 도사로 나타나 인간을 구원해 왔다. 한국에서는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무명의 촌장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구원해 왔다.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노조 지도자로, 탱크 밑에 깔린 자들의 위로자로, 운동화 제조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서울에서, 남미에서, 아프리카에서, 남아시아에서, 산호섬에서 인간들을 구원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념가들은 기독교를 유대종교공동체의 경험적 산물 및 타종교와의 혼합체로 여긴다. 유대종교와 고대 근동지방의 종교 또는 신화의 혼합체로, 유대사상과 헬라사상의 혼합물로, 유대전통과 다양한 헬라, 로마 등의 다양한 이방종교와의 혼합의 산물로 본다. 그래서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다른 종교 혹은 문화적 양태와 혼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와 무속 신앙을 혼합 혹은 접목하므로 새로운 종교 이론을 구축해 보려는 노력은 바로 이러한 신념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인 기독교는 객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앙은 앞에서 열거한 진보주의자들이 가진 것과는 다른 신학양식(Paradigm)에 기초해 있다. 이 양식 역시 두 가지 신학적 전제는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 하에 ‘특별계시’라는 방법을 통해 진리를 인간에게 계시하셨다고 믿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입을 의탁하여 온전한 진리를 말하게 하시고, 역사적 사건을 통해 진리를 계시하셨고, 그것을 성경에 기록되게 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초자연적 역사에 대한 확신에 기초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제한된 인식 능력과 시간적, 문화적인 제약성을 초월하여 신적 진리를 인간에게 초자연적으로 계시하셨다. 그래서 이 초자연적 능력의 산물인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요 객관적이며 불편(不偏)한 진리라고 믿는다.
성경에 기록된 구속사에 등장하는 기적사건, 초능력적인 사건들은 모두 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의 산물들이다. 이 능력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이 능력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4. 교회에 대한 개방적 자세 요구
현대 신학계 내의 갈등은 이처럼 상이한 신학양식 간의 암투이다. 세계교회협의회 내에서도 이러한 암투는 자리 잡고 있다. 둘 다 지적 형태의 신념이지만 상반되는 전제와 사고양식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신앙적인 체계이지만 상반된 기초에 근거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내에도 이러한 암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회원교회가 다 극단적인 진보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교회협의회에 속한 회원교회 모두가 탈기독교적이거나 종교혼합주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경향이 동 협의회의 주도적 경향이란 것은 명백하다. 전통적 신앙고백과 신학양식에 근거하지 않는 이 같은 이들의 가르침이 ‘다른 복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교회들을 향하여 폐쇄적인 태도를 버리고 곧 전통적인 기독교 가치를 버리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향한 개방이란 말인가?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표준으로 수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과 역사하심을 부인하면서도 참된 ‘기독교’ 신자가 될 수 있는가?
전통적인 신앙을 고백하고, 전통적인 신학양식을 갖고도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앞장설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성경이 기독교인의 문화적 사명의 지엄함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WCC 신학자들은 역사적 기독교의 신학 양식으로는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다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본다. 교회의 총체적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보호, 공해, 핵무기, 구조악, 빈부, 질병, 노사갈등 등 세상이 직면한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정통주의 신학으로는 이 과업 수행이 불가능하며, 교회의 일치성, 나눔, 참여 그리고 세상의 정의, 평화, 인권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담대하게 행동할 수 없다고 본다.
복음주의자들은 WCC가 교회의 절대 과제로 여기는 세상사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백인우월주의, 식민지주의, 서구 제국주의적 발상에 오리엔테이션이 된 보수주의자들, 복음주의자들은 대체로 이 일에 꾸물거린다. 망설이고 주저하고 두려워 해 온 것은 사실이다.
정통적인 신앙을 고백하고, 역사적인 기독교 신학양식을 갖고도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앞장설 수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성경이 기독교인의 문화적 사명(cultural mandate)의 지엄함을 가르치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한 맺힌 자들에 대한 외면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외면이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최덕성, "초혼제와 세계교회협의회," <월간고신> 1991년 6월호, 54-63쪽의 글을 옮겨 자구 수정하여 게재한 글이다.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할 당시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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