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2021
WCC 바로알기 5
슈뢰딩거의 고양이: WCC의 사고유형
1. 미북장로교회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학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진보계 에큐메니칼 운동을 주도하는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의 생각, 사상,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이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 태도를 지닌 WCC의 사고유형(mode of thinking)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북장로교회가 1930년대에 현대주의와 근본주의가 프린스톤신학교를 중심으로 갈등을 겪을 때 아주 중대한 결정한 했다. 1923년 12월 26일에 뉴욕 주의 오번에서 열린 총회에서 목사 1293명이 서명한 선언서를 받아들인 것이다. (1) 성경의 무오성(無誤性), (2)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3)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4)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5) 그리스도의 기적들의 사실성 등은 하나의 이론일 뿐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프린스톤신학교의 좌경화와 관련하여, 미북장로교회 총회는 위 다섯 가지 근본도리를 믿지 않아도 교단 안에서 유급직원 곧 목사, 전도사, 기관목사, 신학교수를 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자유주의 신학과 근본주의 신학을 동시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신학의 양립을 택했다. 두 가지 완전히 다른 것을 동시에 수용하는 사고유형을 보여주었다. 역사적 기독교와 성경이 명확히 제시하는 것을 부정하는 자도 목사, 신학교수를 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WCC 신학, 에큐메니칼 사고방식을 이해하자면 두세 가지의 논리학 이론들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2. 양시론
세종대왕의 가장 신임을 받은 재상은 황희 정승(1363-1452)이다. 18년 동안 영의정으로 재임했다. 현명함과 냉철한 판단력의 소유자이고 정치적인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너그럽고 포용적이었다.
어느 날 황의가 두 하인이 싸우는 것을 보고 그들을 불러 까닭을 물었다. 한 하인이 말했다. “저 자식이 소인을 때렸습니다.” 황희가 말했다. “화가 날만 했구나.” 다른 하인이 말했다. “저 녀석이 소인을 먼저 욕했습니다.” 이번에도 황희가 말했다. “너도 화가 날만 했구나.” 지켜보던 황의의 부인이 말했다. “대감, 시비를 가려주어야지 둘 다 옳다 하면 어떡합니까?” 황희가 말했다. “부인 말씀도 옳소.”
논리학에서 황희의 판단은 양시론(兩是論)에 해당한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판단이다. 서로 맞서는 주장을 모두 옳다고 하여 수용하는 사고유형이다. 포용적이고 아량이 넓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여유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양시론 곧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식의 포용적인 판단은 논리적 불일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둘 가운데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경우에 “둘 다 옳다”고 하면 책임을 회피하는 꼴이 된다. 양시론이라는 논리적 함정을 일컬어 거짓긍정이라고 한다. 양시론은 갈등과 부담을 피하려는 비겁한 행동일 수 있다.
정확한 진리, 교리, 신학을 따져야 하는 신학의 장이나 학문 마당의 양시론은 학문과 기독교의 근간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다. 초대교회를 영지주의가 위협했듯이 양시론과 마찬가지로 아래에서 소개할 특수 논법에 근거를 둔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는 역사적 기독교를 위협한다. 이것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WCC 중심의 에큐메니칼 신학의 특징들이다.
흑백논리는 만사의 원소가 두 개만 있고 서로 대립한다고 보는 사고 유형이다. 흑의 반대가 백이고 백의 반대가 흑이라고 생각한다. 양시론은 둘 다 옳다는 것으로 논리적 함정을 지니고 있다.
3.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시론 형태를 지니면서도 논리적 함정이 없다고 주장되는 사고유형이 있다. ‘슈뢰딩거(Schrödinger)의 고양이’ 논법이다. 어떤 존재가 죽은 동시에 살아 있다고 보는 사고 양식 유형이다. 실세계에서는 죽은 고양이이지만 특정 영역 곧 가상 세계에서는 동시에 살아 있다고 판단하는 이론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논법에 따르면, 하늘은 땅이고 땅은 곧 하늘이다, 흑은 백이고 백은 흑이다, 남자는 여자이고 여자는 동시에 남자이다.
양시론은 모순을 가진 거짓논리이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고 함은 논리적 함정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유형을 가진 자들은 실제로 이것이면서도 저것이며 저것이면서도 이것이라는 것이 실제로 특정 영역에서 역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은 1935년 오스트리아-아일랜드 물리학자 어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가진 토론에서 성립시켰다. 양자역학 해석의 이론을 탐색하는 토론에 자주 등장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에서 양자 중첩의 역설(paradox of quantum superposition)을 보여주는 사고방식 곧 사고경험에 대한 실험 결과이다. 죽은 고양이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고양이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무작위의 아원자적 이벤트(random subatomic event)와 연결된 운명 때문에 이 고양이는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의 적용범위보다 훨씬 더 폭넓고 복잡한 난제들을 설명하는 지적 기술을 만들어 냈다. 확률, 함수, 방정식, 조화진통 등의 공식과 개념을 동원하여 세간의 인식과정과 달리 동시에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며, 일어났으면서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유형의 사고방식, 사고유형을 창출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다. 가상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진리, 교리, 신학을 다루는 마당에서 이 논법은 모순 덩어리이다.
4. 야잉(ya/ing)
유럽과 북미와 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교회들은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합법화 하고 있다. 먼저 국가가 결정하고 교회가 그 정책을 수용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2021년 현재 31개국이다. 동성결혼을 수용하는 교회들은 대부분 WCC 회원이다.
영국감리교회 총회(2021)는 신도들의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결의안은 찬성 254명, 반대 46명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통과시켰다. 무엇이 대부분의 WCC 회원 교회들로 하여금 성경이 금하는 것을 그토록 가볍게 시행하게 하는가?
영국감리교회는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으면서 동시에 성경이 금하는 것을 교회법으로 받아들이는가? 성경보다 교회 구성원 다수의 의사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은 무엇인가?
영국감리교회의 동성결혼 허용, 합법화 결정과 관련하여 영국판 <크리스천투데이>(2021.7.5.)가 그 까닭을 설명하면서 ‘슈뢰딩거(Schrödinger)의 고양이’ 사고방식을 언급한다. 영국감리교회가 동성결혼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인정한 것은 음과 양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사고 형태인 ‘야잉’(Ya/ing)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야잉’은 양과 음의 영어 발음의 첫 글자들을 합성한 것이다.
주필 베이커는 “영국감리교회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를 같은 문장에서 다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은 남녀의 결합인 동시에 동성 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정당하다”는 교회의 진술을 꼬집는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하는 사고 패러다임으로는 이를 이해할 수 없다. 음인가 양인가? 감리교인들은 양이면서도 동시에 음인 ’야잉‘(Ya/ing)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베이커는 영국감리교회의 이 결정에 대하여 위가 아래이고, 왼쪽이 오른쪽이고, 안이 밖이고, 음이 양이며, 나아가 음양을 결합시킨다고 꼬집는다.
5. 정합신학
베이커는 이어서 “정합신학”(整合神學,coherent theology)을 지지하는 사람은 이 점에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다. 자칭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하나의 교회법 진술에 서로 다르고 모순되고 상충하는 진술을 담아내는 것에 이의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합(整合)은 ‘가지런한 정’과 ‘합할 합’의 결합이다. 정합신학은 규범적 신학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신학은 진리가 맥락적, 상황적, 상대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면(integrally) 그것을 무모순성을 지닌 진리로 받아들인다.
정합신학은 진리대응론(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에 상반되는 진리정합론(coherence theory of truth)과 직결되어 있다.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모든 진리는 주관주의, 상대주의적이라고 한다. 절대적인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점에서 오늘날의 탈구조주의, 포스모더니즘과 궤를 같이한다.
정합신학은 구성원들 다수가 일치하는 일관된 진리를 도출하는 과정(process)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여러 방향에서 신학적 탐구를 진행하며 그 탐구 과정에 관심을 가진다.
정합신학자의 정답은 ‘예’와 ‘아니오’로 제시되지 않는다. ‘예’이면서 ‘아니오’ 이고, ‘아니오’ 하면서 ‘예’라고 말한다. 예와 아니오가 하나로 제시되기도 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흑백이 하나로 결합된 된 사고양식을 유지한다.
6. WCC와 정합신학
어느 누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논리적 모순을 역설이라는 구실로 진리로 받아들이는가? WCC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이 그러하다. WCC는 오래 전부터 정합적인 과정을 거쳐 진리로 천명해 왔다(Jose Miguez Bonino, "The Concern for a Vital and Coherent Theology," The Ecumenical Review, WCC, April 1989). 진리는 정합론적으로 결정된다. 다수가 동의하는(integrally) 것은 무엇이든 참이라고 보아 왔다. 회원 교회가 동의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진리로 여긴다. 성경의 가르침에는 개의치 않는다. 구성원들의 정합적 동의, 합의에 따른다.
WCC는 정합론적 방식으로 ‘전통론’ 또는 ‘대문자 T 이론’은 개발했다. 궁극적으로 로마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일치시키려는 의도로 창안한 것이다.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명하면서도 그것을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이다”(is)라고 믿지는 않는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은 신학 지식의 ABC에 속한다. WCC가 존재론적인 개념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이다.
하나님의 은혜 곧 구원에는 제한이 없다고 하는 WCC의 선언은 정합적 사고 구도의 결과이다. WCC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서도 종교다원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이시라”(딤전 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어느 누구도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 14:6). 상당수 진보계 에큐메니칼 신학자에게 이 같은 성경 메시지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정합신학 구도에서, WCC는 복음에 제자도라는 개념을 부여하여 평화, 정의, 생명, 인권투쟁, 공해방지, 환경오염 방지 등 세상적인 활동을 선교와 전도로 여긴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에너지를 세상 활동에 쏟아 붓게 한다. 정부, 국가연합, 비정부기구, 사회단체가 할 수 있는 세상적인 일에 고갈된 교회의 에너지를 쏟아 붓게 한다.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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