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대 몇 기 졸업생입니까?
장로회신학대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나는 장신대 제 몇 기 졸업생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여러분은 장신대 몇 기 졸업생인가? 그 졸업 기수는 언제부터 시작하여 계산되어 내려왔는가? 졸업 기수를 말할 때 주저함이 없는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하고 반문하고 싶은가?
장로회신학대학교는 2021에 개교 12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 학교가 1901년에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2020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을 제114회 졸업식과 함께 2월 10일에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거행했다. 이 날, 학사보고자는 이 학교가 1901년에 시작했고, 1903년에 주한 한국선교부들의 '장로교공의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교역자 양성기관으로 이 학교를 설립했다고 한다. 1907년에 제1회 졸업식을 한 것으로 간주하여 114년째 졸업식을 한 것으로 계산한다.
신임 총장 서리 김용운 박사는 서슴치 않고 장로회신학대학교가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랑스런 학교라고 소개한다. 정말 그럴까? 이 학교 개교연도와 졸업생 차수 계산은 역사날조로 보인다. 이 학교의 설립 연도를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1948년 이전으로는 갈 수 없다. 졸업생 차수도 1948년에 제1회 졸업식을 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 학생들 다수를 부산에서 서울 남산으로 데려 와서 1개월 가르쳐 졸업시킨 것이 제1회였다.
평양신학교(일명 채필근 신학교)는 1940년 평양에서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광복 후에 김인준 목사의 지도 아래 개편하여 계속되었고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서도 지속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치는 신학교로 자리매김했댜. 어느 시점애 중단되었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 다시 문을 열어 3년제 목사 양성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학교의 이름은 '평양신학교'이지 평양의 장로회신학교가 아니다. 평양신학교(채필근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1901년 설립, 1938년 폐교)는 별개의 목사양성 교육기관들이었다.
장로회신학대학교가 평양신학교를 자신의 역사에 편입시켜 계산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역사날조이다. 필자는 장로회신학대학교가 현재 주창하는 설립연도와 졸업생 차수를 정당화 하는 공적인 문서를 보고싶다. 이 학교의 교수회록이나 이사회록에 기록에 담겨 있을 성 싶다.
장로신학대학교의 설립연도와 졸업생 차수 역사날조의 배후에는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이라는 흑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설립연도와 졸업생 차수 계산은 한국교회와 이 학교의 저변에 흐르는 친일파 전통의 표출이다.
신학교는 양심의 교사를 지도할 목회자와 신학자를 양성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선지학교들의 역사날조를 어떻게 이해야 할까? 장로신학대학교의 학교 설립연도와 졸업생 차수 역사날조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하기오그래피 수준을 넘어 범죄수준으로 보인다. 과거사를 은폐하려는 의식적 무의식적 동기가 만들어낸 양심불량의 역사날조로 보인다.
어설픈 주장을 담은 것이라도 좋으니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공식 입장 곧 설립연도와 졸업생 차수 계산에 대한 설명을 담을 문서를 읽고 싶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개교 연도와 졸업생 차수에 대한 역사날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신사참배 곧 우상숭배의 연장이다. 그 배후에는 일제말기와 광복 후 10년 동안의 기득권 세력의 갑질, 행악, 배교, 광복 후의 폭력, 흑역사가 시커먹케 자리 잡고 있다. 역사를 감추고 미화하려는 의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도무지 용납하지 않아야 할 양심애 저촉되는 사안이다.
아래의 글은 장로회신학대학교가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 것과 관련하여 역사날조을 하며 양심의 교사를 배출할 학교답지 않은 역사날조를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한국기독교언론회가 개최한 한국교회 과거사 청산 학술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한국교회 과거사 청산과제 10가지"(2005)를 <뉴스앤조이>가 보도했고, 누군가 장로회신학대학의 역사날조에 관한 부분만 아래와 같이 스크랩한 것 같다. 이 주제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한국교회친일파전통>(서울: 지식산업사, 2006)이 하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당국자들과 교회사 교수들과 이 주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요청하는 바이다. 필자의 주장이 옳지 않으면 교회사 기록형태로 공개적인 반론을 제기해 주기 바란다. 예장 통합을 포함한 한국교회를 사랑하기에, 양심을 말할 수 있는 역사적 진실성을 가진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옭겨 게재한다. 위 글 8항의 소제목은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역사날조"이다.
한국장로교 교단들은 총회 회수를 1912년에 모인 제1회 총회에서 시작하여 계산한다. 그러나 1912년에 설립된 한국 장로교단은 1943년에 해산되었다. 그러므로 광복 후 재건된 교단의 총회는 '후기 제1회' 등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된다. 고신교단이 첫 총회를 제1회로 시작한 것과 같이 말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 그리고 개신대학원대학교조차 2001년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다채롭게 가졌다. 음악회, 학술강연회, 동문회, 개교100년사 출간기념회 등을 가졌다. 1년 내내 행사가 진행됐다.
그러나 이 학교들이 100년의 역사를 가졌는가는 따져봐야 한다. 장신대학과 총신대학은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 학생들 절반가량을 데리고 가서 남산의 조선신궁 건물에서 시작한 장로회신학교(1948)로부터 시작되었다.
장로회신학교(평양)는 1938년에 신사참배 문제로 스스로 문을 닫았다. 그 학교와 1940년에 세워진 평양신학교는 무관한 학교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와 개신대학원대학교가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1) 이사회 (2) 교수회 (3) 교사(校舍) (4) 학생회 (5) 운영 주체 중 어느 하나라도 연결되면 일제의 강압과 민족적인 수난기를 넘기는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위 학교들이 설립 연대를 장로회신학교(1901)의 설립에서 시작하는 것은 장로교 총회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는 데 근거를 둔다. 총회가 1948년에 설립된 신학교의 역사를 장로회신학교(평양)를 계승하기로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역사기록은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예컨대 대한민국 광복일이나 건국일을 교회가 결정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교회는 초대대통령이 누구였는가를 결정하는 전권을 지니고 있지 않다.
장로회신학교(평양)는 한국장로교 총회가 운영한 학교가 아니다. 선교연합공의회가 운영했다. 그 학교의 소유권은 선교사연합공의외에 이었다. 조선예수장로교 총회가 최초로 설립하여 직영한 신학교는 1940년에 세워진 평양신학교(일명 채필근신학교)이다. 그 학교를 운영하던 총회는 1943년에 해체되어 사라져버렸다. 서울의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는 광복 후에 재조직된 남한의 장로교 총회가 여러 해 뒤에 운영하기로 하고 받아들인 신학교들이다.
학교라는 공기구의 설립연도를 교회의 총회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넌센스를 넘어선다. 이는 교권주의 발상이다. 설립연도와 졸업생 차수 표기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총회가 학교의 설립연도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 그 시각은 한국교회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친일파 전통의 한 단면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자신의 역사를 평양신학교(채필근신학교)와 연계시킨다. 이 학교는 1950년에 폐교되었고, 이를 운영하던 장로교단은 1943년에 해체되었다. 이 교단과 1946년에 남한에서 새롭게 조직된 장로교단 사이에 공동체적 관련성은 있으나 법적인 연속성은 없다. 과거에 장로교회였던 교회들이 지역 노회를 재조직하고, 그 노회들이 다시 남부총회라고 하는 가설(假說) 총회를 구성했다.
공동체적인 관련성만으로는 학교라고 하는 법적기구의 연속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이족침략, 동족상잔의 전쟁이라는 삶의 상황을 고려해도, 평양의 장로회신학교와 서울의 장로회신학대학교를 연결시켜 1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역사 날조가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장신대학 70년사>와 <장로회신학대학교 100년사>를 대조하면 알 수 있다.
총신대학교는 여기에서 한 술 더 뜬다.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다채롭게, 성대히 가졌으며, <총신대학교 100년사>(2002)라는 방대한 책을 편찬 출간했다. 그런데 이 책은 평양신학교(채필근신학교)와 총신대학교가 무관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총신대학교가 장로회신학교(평양)에서 출발했지만, 그 역사에 친일, 우상숭배를 하던 '채필근신학교'의 역사를 포함시킬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학교가 2001년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진 것은 모순이며 넌센스이다. 개교를 기념한 출간한 책 제목은 <총신대학교 100년사>인데, 그 책의 본문은 이 학교가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서술한다.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과 과거사 청산 부재가 낳은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저작권자 ⓒ 리포르만다, 무단 전재-재배포-출처 밝히지 않는 인용 금지
choicollege@naver.com
<뉴스앤조이> 기고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