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남중국해.jpg

 

 

 

성탄과 절기에 대하여

 

 

김효남 목사, 계신 역사신학

 

 

1. 나는 개인적으로 강동구에 있는 모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할 때 성도들에게 들었던 가장 큰 불만 중에 하나가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이기에 부활절과 성탄절을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 외의 절기는 거의 지키지 않았다. 성탄절과 부활절도 그 전에 해왔던 규모에 비해서는 축소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 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교회에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내가 해야 할 것(설교) 정도만 준비했다. 나머지는 성도들이 알아서 했다.

 

 

2. 그래서 종종 열심이 특심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로부터 절기 헌금봉투를 나눠주지 않아서 혹은 당일에 나눠줘서 헌금을 못한다는 불평(?)을 들었다. 그만큼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절기도 헌금도, 그 때마다 헌금은 교회에서 하라고 그 전 주에 나눠줘야만 할 수 있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었고, 성도들의 신앙이라는 것이 그만큼 교회, 혹은 목사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절기와 절기헌금을 강조하지 않는 방식을 통해서 성도들이 더욱 자율적으로 신앙생활 하도록 도와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3. 이제 성탄절이 다가 온다. 내가 사랑하는 개혁신학, 그리고 함께 하는 형제들 중에는 절기에 대한 비판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한국교회에서 절기를 없애야 하고, 거기에는 성탄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개혁신학의 역사는 그래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6, 17세기의 예를 들곤 한다. 물론 나는 그 시대 개혁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4. 나는 그들의 견해에 동의한다. 내가 만약 16,7세기를 살았더라면 분명히 절기를 없앴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는 성탄과 부활절과 같이 한국 신앙인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절기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물론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5.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이 문구는 17세기 네덜란드 네데르 리포르마티(Nadere Reformatie)의 신학자였던 요도쿠스 판 로덴슈탄인이 처음으로 사용한 문구다. 이 문구의 정확한 의미는 “(진리 혹은 교리가 온전히) 개혁된 교회는, (세월이 흘러 각 시대의 문화와 사상의 흐름 속에서 개혁된 교리 혹은 진리에 따라 실천도)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이들의 생각처럼 시대에 따라 교리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6. 16, 17세기 우리 개혁신학의 조상들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 있는 진리, 혹은 개혁된 교리이다. 이들은 이 진리를 지키기를 원했다. 이 진리대로, 말씀이 가르치는 원리대로 세상이 되어져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교회의 정치도, 예배도, 가정도, 회사도,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7.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절기를 지키지 않도록 했을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이 말하는 진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서양사회에서 천년에 걸친 로마카톨릭 신앙 속에는 비진리가 너무나 많았다. 혹은 비진리로 성도들을 인도하는 외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개혁자들과 특히 청교도들은 그 외적인 요소들을 바로 잡기를 원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외적인 요소는 사람들의 내면의 요소와 무관한 것이 아니어서 이 때문에 성도들이 진리에서 떠나게 되는 위험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8. 그 중에 하나가 교회 안에 있는 성상과 그림과 같은 요소였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그런 것들을 치웠던 것이다. 그래야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이 가르치는 진리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에 시각적인 분이 아니신데, 무지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알게 한다는 명목하에 그림과 성상을 교회에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점점 더 교회로 하여금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하였고, 성도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했기 때문에 마땅히 치웠어야 했다.

 

 

9. 오늘날 다시 교회의 예배당은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온갖 장식과 문구가 교회를 가득 채운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조명과 꽃들이 교회를 꾸민다. 물론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닫기에 도움이 된다며 얼마든지 허용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치워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교회를 치우느냐 꾸미느냐가 아니다. 어느 것이 성도들로 하여금 더욱 진리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욱 참되게 가르치느냐에 어떤 것이 더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외적인 행위에는 반드시 신학적인 기반이 있어야 한다.

 

 

9. 절기도 마찬가지다. 16, 17세기 개혁파 선조들이 절기를 금지한 것은 그것이 성도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시간과 모든 날의 주인이시며, 우리는 삶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여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리이다. 하지만 로마가톨릭은 거룩한 날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성속을 구분하였다. 그렇게 되면 거룩한 절기는 특별한 주님의 날이지만, 그 외의 날은 우리의 날, 인간의 날이 된다. 그러므로 이 구분을 없애는 것은 당시 성도들의 신앙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이었다. 절기를 없애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날의 주인이시며, 모든 날이 거룩한 날이라는 생각을 가지도록 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10. 이제 우리는 더 이상 16, 17세기를 살지 않는다. 우리의 환경과 형편은 많이 바뀌었다. 물론 그 때와 비슷한 점도 많고, 어쩌면 중세보다 더 중세스러운 모습도 한국교회 안에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원리는 변하지 않는다. 개혁된 진리를 가진 교회는 그 시대의 상황 속에서 그 진리에 따른 개혁된 실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개혁교회가 16, 17세기 개혁교회의 모든 것을 따라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11. 물론 그들에게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기에 상당히 많은 부분은 그들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안전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 왜냐하면 위대한 우리의 선조들은 그 시대에 맞춰서 개혁된 교회를 이루었고 그 시대에 맞춰서 개혁된 실천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12. 그렇다면 절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루터가 말했던 개신교회의 원리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보름스 회의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양심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했다. 무엇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선택하는데 있어서 최종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개혁파 신조도 칼빈도 누구도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신조와 칼빈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 견해가 옳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지, 칼빈의 말이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물론 칼빈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때 그 결정을 한 이유는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매인 나의 양심이다.

 

 

13. 쉽게 말하면, “칼빈이 말하기 때문에 진리다가 아니라 칼빈이 해석한 것이 가장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가깝다고 내 양심이 말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선택한다고 말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내 양심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신조나 칼빈이나 청교도는 모두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내 양심이 분별하는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14. 절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16, 17세기와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절기를 지키는 것과 지키지 않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지금 성도들의 상태에서 진리를 알고 깨닫는데 유익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절기를 지키는 것이 어떤 면에서 성도들에게 해악이 될까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혹시 지나치게 교조주의에 빠지게 될 염려는 없는가? 이러한 주제들도 고민해야 한다.

 

 

15. 그리고 만약에 절기를 지킨다면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개혁자들이 말한 절기를 지키는 것과 오늘날 개신교회가 지키는 절기는 교회마다 그 의미가 전혀 다를 수 있다. 어떤 교회는 그저 그날 모여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기회를 삼을 수도 있고, 어떤 교회는 성탄예배를 드리면서 구세주의 성육신이 주는 의미를 서로 되새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내가 4년간 정식 회원으로 다녔던 미국 그랜드래피즈의 헤리티지 개혁회중(Heritage Reformed Congregation, 조엘 비키 목사 시무)는 부활절 이틀 전 금요일 저녁에 금요예배(Good Friday Service)를 드렸다. 물론 성탄절에도 예배를 드렸다. 심지어 1231일 저녁에는 신년이브예배(New Year’s Eve Service)도 드린다. 이 때 한 해 동안 소천하신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인생이 얼마나 짧고 덧없는지, 우리가 왜 영원한 나라를 소망해야 하는지 되새기는 기회로 삼는다. 개인적으로 그들과 함께 이런 예배를 드리면서 내 영혼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목회를 해도 이런 방식은 유익하다고 믿기에 한국에서도 일부 시도했었다. 중요한 것은 본질을 얼마나 세우느냐 어떻게 지키느냐 하는 것이지 지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6. 나는 이 원리가 절기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요소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특히 목사를 비롯한 교회의 직분자들은 진리 위에 분명하게 서야 한다. 이를 위해 성경을 알아야 한다(성경).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 가장 성경적이라고 개인적으로 믿는 개혁신학에 능통해야 한다(교리).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그 진리를 그 시대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알아야 한다(교회사). 그리고 우리 시대의 문화와 교회의 형편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이런 것이 선행되어야 우리는 교회의 외적인 요소에 대한 가장 성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깨워놔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과 조명을 구해야 한다.

 

 

17.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개혁교회가 기계적인 방식으로 16, 17세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리적으로는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실천적인 면에서 그들은 아주 귀중한 참고서이지 모든 시대가 따라야 할 완전한 모델은 아니다. 그들은 그 시대에서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시대에 같은 원리를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의 정신을 구현할 수 없다. 교리적으로 개혁된 교회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실천에 있어서 개혁되어야 한다.

 

 

[출처]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성탄 및 절기에 관하여 |작성자 구재일 목사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

  1.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인의 자기 이해

        종교다원주의와 기독교인의 자기이해    세계교회협의회   Religious Plurality and Christian Self-Understanding World Council of Churches     [소개문] 이 문서는 2002년 WCC 중앙위원회가 신앙과 직제, 종교 간의 대화국, 선교와 전도에 관한 세 팀...
    Date2022.01.12 Byreformanda Reply0 Views612 file
    Read More
  2. 박누가 선교사 님, 존경합니다

        박누가 선교사 님, 존경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박누가 선교사 님, 우리는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리포르만다>)   아름다운 의료 선교사의 이야기   동남아 오지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박누가(본명 박병출) 선교사가 지난 26일(2019년 4월)...
    Date2021.12.06 Byreformanda Reply5 Views20065 file
    Read More
  3. 세대주의와 개혁주의이 차이

          세대주의와 개혁주의 차이   김명도 교수   1. 세대주의의 기원   세대주의의 기원은 1820년대의 영국 더불린(Dublin)이라는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 1800-1882)라는 사람은 기성교회에서 목사만이 안수 받은 특수층인...
    Date2021.09.25 Byreformanda Reply0 Views799 file
    Read More
  4.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高麗神學校 設立趣旨書)   1. 우리 조선교회(朝鮮敎會)는 과거(過去) 육십여성상(六十餘 星霜)에 양적(量的)으론 장족진보(長足進步)를 하였다고 자타(自他)가 공인(公認)하는 바임니다. 그러나 질적(質的)으로 신학(神學)이 어리...
    Date2021.07.22 Byreformanda Reply0 Views507 file
    Read More
  5. 성탄과 절기에 대하여

          성탄과 절기에 대하여     김효남 목사, 계신 역사신학     1. 나는 개인적으로 강동구에 있는 모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할 때 성도들에게 들었던 가장 큰 불만 중에 하나가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이기에 부활절...
    Date2021.06.19 Byreformanda Reply0 Views334 file
    Read More
  6. 게르하르트 마이어와 유대인

      게르하르트 마이어와 유대인   아우쉬비츠는 폴랜드에 있는 나치 수용소이다. 이곳에서만 유대인이 백만 명가량 학살되었다. 아우쉬비츠는 홀로코스트 곧 유대인 집단학살의 대명사가 되었다. 독일의 패전 뒤에 “아우스비츠 이후의 신학”(Theologie nach Au...
    Date2021.06.13 Byreformanda Reply0 Views774 file
    Read More
  7. 코로나 상황 예배 지침, 예장 고신

        코로나 상황 예배 지침, 예장 고신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이하 예장 고신)은 교회를 "구원받은 기독인들의 예배공동체"로 규정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선포하고, 성례를 올바르게 집행하고, 권징을 정당하게 시행해야 함을 천명한다.  ...
    Date2021.03.17 Byreformanda Reply0 Views317 file
    Read More
  8. 어느 신천지인의 독백

        어느 신천지인의 독백   코로나바이르스 집단감염 사태로 사이비 사단(邪團)  총회장 이만희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민들을 향한 사죄(謝罪)의 큰 절을 했다. 그 다음 날(2020년 3월 4일), 신천지 멤버인 최완규 씨가 '이긴자' 이만희의 패배를 시사하는 ...
    Date2021.03.04 Byreformanda Reply0 Views324 file
    Read More
  9. 성서는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다!

      그림: 평양기생학교 그림엽서 (일제말기, 일본어 판)   최정철의 아래의 두 글은 기독교 신앙에서 크게 이탈된 내용을 담고 있다. 성경보다 진화론과 우연성을 진리로 천명하며, 동성애반대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노예제도폐지 반대와 동일시한다. 글쓴이는 ...
    Date2021.02.20 Byreformanda Reply0 Views421 file
    Read More
  10. 국가적 비상 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성찰

        국가적 비상 상황과 공예배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성찰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1.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빠른 전파로 인해 한국 사회 전체가 큰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성도들 가운데 바이러스에 감염된 분들이 생겨나면서, 급기야 주일예배를 취소...
    Date2021.02.15 Byreformanda Reply0 Views270 file
    Read More
  11. 조셉 바이든 씨(미국 제46대 대통령)에게

      조셉 바이든 씨(미국 제46대 대통령)에게   샬롬나비 논평, 바이든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요점: 바이든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결별하고 글로벌 보편주의로 복귀함을 지지한다.  바이든은 미국의 건국이념과 선조들의 가치인 청교도 정신을 되살리...
    Date2021.02.02 Byreformanda Reply0 Views577 file
    Read More
  12. 왜 유아세례를 베푸는가?

    부산중앙교회 유아세례 장면   왜 유아세례를 베푸는가?   종교개혁시대의 재세례파 기독교인들과 오늘날의 침례파 교회들은 '유아세례'(infant baptism)를 베풀지 않는다. ‘성인세례’(adult baptism) 또는 '신자세례'(belioebers baptism)만이 진정한 세례라...
    Date2021.02.01 Byreformanda Reply0 Views557 file
    Read More
  13. 게르하르트 에벨링의 신학적 해석학

    게르하르트 에벨링의 가족 게르하르트 에벨링의 신학적 해석학 최덕성 해석학 강의록 19   1. 신해석학의 주역   게르하르트 에벨링(Gerhard Ebeling, 1912∼2001) 만큼 많은 정력을 신학의 해석학적 문제를 성찰하고 그것을 보급하는 데 바친 금세기 신학자는...
    Date2020.05.24 Byreformanda Reply0 Views958 file
    Read More
  14. 어네스트 푹스의 신해석학

      마브르크성, 루톨프 불트만 거리에서 본 전경 어네스트 푹스의 신해석학 최덕성 해석학 강의록 18   1. 신해석학의 등장   바르트와 불트만 이후에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삼아 조립된 그리고 이들의 사상을 넘어서는 ‘신해석학’(New Hermeneutics)이 출...
    Date2020.05.24 Byreformanda Reply0 Views598 file
    Read More
  15. 불트만의 신학적 해석학

    마부르크대학교 교정의 불트만 상 불트만의 신학적 해석학   최덕성 해석학 강의록 17   1. 불트만의 해석학의 초점   루돌프 불트만(Rudolf Karl Bultmann, 1884-1976)은 독일 고백교회 구성원이었으며, 국가사회주의를 비판한 루터파 교회 신자이다. 마르부...
    Date2020.05.24 Byreformanda Reply0 Views1329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 51 Nex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