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 따라가면 교회가 죽는다
WCC 제11차 총회, 2022,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는 제11차 총회를 2022년 8월 31일부터 9월 8일까지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계를 화해와 일치로 이끈다”(Christ’s love moves the world to reconciliation and unity)이다. 총회 로고는 위 그림과 같다. WCC 예비총회가 총회 개최 전 며칠 동안 같은 장소에서 모인다고 한다.
WCC 총회는 8년마다 한 차례씩 열린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역병 탓으로 한 해 연기하여 내년에 모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이 호전될 것을 전제로 개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러스가 번창하지 않는 한 회집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WCC 총회는 진보계 기독교 올림픽을 방불하게 한다. 회원 교회들의 공동의 소명을 협력 모색한다. 교회들의 연대를 확인하고 다짐한다. 프로그램들을 점검하고 정책을 결정한다. 다음 8년 동안 봉사할 차기 중앙위원회 위원들을 임명한다.
카를스루에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는 약 30만 명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독일 연방재판소가 있는 곳이다. 북쪽에 하이델베르크, 남쪽에 바덴바덴, 동쪽에 슈튜트가르트와 튜빙겐이 있다. 서남 지역은 =프랑스 국경과 접해 있다. 국경을 넘으면 마르틴 부써 목사가 목회를 하고 신학자 존 칼빈이 기독교강요를 저술하기 시작한 스트라스부르크가 나타난다. 이곳엘 가려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용하면 된다.
WCC 임시 총무직을 맡고 있는 요안 사우카 박사(Rev. Prof. Dr. Ioan Sauca)가 이러한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제11차 총회가 다양한 기독인들의 모임이므로 교회들의 가시적인 일치와 공동의 증거를 중심으로 더욱 단결하고 깊이 있게 일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행사를 넘어서 WCC의 에너지를 갱신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에 모이는 총회는 독일복음교회(EKD), 바덴개신교회, 독일교회협의회, 알사세-로레인 개신교회연합, 스위스개신교회가 초대했다. 유럽에서는 암스테르담과 웁살라에게 이어 세 번째로 모이게 된다. 아시아에서는 인도 뉴델리에 이어 한국 부산(2013)에 회집했다.
제11차 총회의 주제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계를 화해와 일치로 이끈다”는 참으로 멋 있다. 하나님은 교회와 기독인이 세상 또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원한다.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책임을 다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WCC가 말하는 그리스도, 사랑, 세상, 화해, 일치가 무엇을 의미하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WCC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역사적인 기독교의 신학과 고백에 사용해 온 용어들에 다른 개념을 부여하여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명칭은 같은데 내용이 다르다. 예컨대 WCC가 말하는 선교와 전도는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장로교회들이 이해하는 개념과 불일치한다.
WCC가 말하는 그리스도, 사랑, 세계, 화해, 일치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가? 그런 것 같다. 이 단체가 포용하거나 에큐메니칼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신학자들 가운데는 석가모니 그리스도, 마호메트 그리스도, 공자 그리스도, 모택동 그리스도, 김일성 그리스도 등 많은 그리스도가 세상을 사랑하고 이끌어 왔고 이끌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가, 아니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가능한 인류의 보편적 사랑공동체 형성을 의미하는가? 화해는 중보자 예수의 희생제물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에 기초한 것인인지 의문스럽다.
일치는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회 간의 일치를 넘어 프로테스탄트교회들을 로마가톨릭교회 교황좌 아래로 귀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기독교와 불교, 기독교와 이슬람, 기독교와 힌두교 등을 일치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WCC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학자들 가운데는 예수 외에도 많은 그리스도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없이도 가능하다. 화해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를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있다. 일치는 기독교와 이슬람, 불교, 힌두교 등과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WCC 2013년 부산총회 이후 세계 신학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출발하여 한국에까지 신학 쓰나미를 몰려온 바울의 신학에 대한 새관점학파는 바울이 선교적 동기로 이신칭의의 교리를 억지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한국인 신약신학자 김세윤 박사는 새관점학파 전통에 걸맞는 "유보적 칭의론"을 주창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칭의론의 짝퉁과 다름없는 칭의론이다. 나의 반박 때문인지 그는 반발을 불어온 칭의론을 다소 수정했다.
부산총회 이후 WC 신학에 그다지 바뀐 게 없다. 현재 WCC의 가장 중요한 문서는 부산총회가 공표한 "선교와 전도선언서: 함께 생명을 향하여"(Mission and Evangelism: Together towards Life, 2013)이다.
선교와 전도 선언서는 '미시오데이' (missio dei) 중심의 기독교 활동을 '선교와 전도'로 본다. 반면에 역사적 기독교와 정통신학이 천명하는 구원론과 기독론 중심의 복음전도와 복음적 선교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 문서는 탈복음적 기독교 활동을 '선교와 전도'로 보는 반면 역사적 기독교와 정통신학이 천명하는 구원론 중심의 복음전도는 언급하지 않는다.
WCC의 탈기독교적 문서를 만든 ‘선교와 전도위원회’의 유급총무는 한국인 금주섭 박사이다. 예장 통합 소속 목사이며, 현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특임교수로 봉직하고 있고 조만간 싱가포르에 스테이션을 둔 오랜 역사를 가진 세계선교회 유급 책임자로 부임한다고 한다.
금주섭은 자신을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주의자라고 말할 성 싶다. 한국인 복음주의자가 탈기독교적인 WCC의 선교와 전도 문서 작성을 주도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주도하면 만든 위 선교와 전도 선언서는 "하나님의 구원에 제한이 없다“는 말로 종교다원주의를 담고 있다. 예수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부산총회가 개최되기 전, 한국의 복음주의자들은 WCC에 "들어가서 변화시키자"고 했다. "WCC에 가담하여 신학의 일탈을 막자“고 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만년 대표인 김명혁 목사이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은퇴하고 강변교회의 목사로 봉사했다.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의 교수들 가운데도 김명혁과 동일한 주장을 한 자들이 있었다. 할렐루야교회의 김 모 목사는 음악의 하모니를 예로 들면서 WCC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 단체를 성경적으로 변화시키자"고 주장했다.
WCC는 복음주의자들이 이 단체의 신학을 성경적으로 바꿀 신학적 공간이나 관용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형성된 신학노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WCC 제10차 부산총회는 이 단체를 지지하면서 들어가서 신학을 바꾸자로 했던 복음주의자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WCC는 자신의 신학을 담은 선교와 전도 선언문 “함께 생명을 향하여”를 총회 석상에서 토론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래서 "들어가서 변화시키자", "가담하여 신학의 일탈을 막자"고 외치던 복음주의 신학자들을 당혹케 했다. 부산총회는 복음주의와 개혁신학 진영의 지식인들을 난처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신뢰도를 저하시켰다. WCC가 자신의 에큐메니칼 신학을 바꿀 것이라는 그들의 발상이 철저히 오판임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부산총회는 "생명의 하나님"(God of Life)을 주제로 모였다. WCC가 앞세우는 "생명"은 일반적인 생명이 아니라 풍요로운 생명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의 생명 곧 생물학적인 생명(bios, biological life)이다.
WCC가 "생명"을 강조하면서 전거로 삼은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10장 10절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데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구절의 "생명"은 '비오스'(bios,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다. '조에'(zoe)는 질적으로 풍성하고 충만한 생명을 의미한다. 일반 생명체들의 생명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생명을 뜻한다. 곧 그리스도를 통해 얻어지는 생명, 영원한 생명을 일컫는다. 요한복음은 '조에'를 영원한(everlasting, eternal)과 결합하여 사용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오직 이것들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 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WCC가 생명(zoe)을 피조물들의 생명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식의 성경인용은 견강부회 식이며 아전인수 격이다.
부산총회에 참관한 뒤 나는 "WCC 새 선교-전도 선언서(2012) 분석"(리포르만다)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단체가 현재 지향하고 있는 탈역사적 기독교 신학과 선교 개념을 요점적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 부산에서 통곡하다”는 제목의 글을 써서 언론사에 기고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없는 교회들의 총회에 참석했다면 통곡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십자가에 달리고 피흘려 세운 교회냐고 진노했을 것이다. 부산총회 선교와 전도문서가 종교다원주의 진술을 담고 이신칭의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 현주소를 보고 분노를 참지 못했을 것 같다.
왜 WCC에 가담하고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다원주의와 에큐메니즘 등을 지향해 온 교회들이 퇴락하는가? WCC는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WCC가 부산총회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힌 “선교와 전도 선언문”은 그 까닭을 지형변화(changing landscape)라는 용어로 언급한다. 유럽의 기독교회는 큰 폭으로 줄어들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복음주의 기독교가 흥성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아프리카나 아시아로 이민을 갔기 때문이라는 말인가?
WCC 회원교회들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예수께서 부산총회에 참석했다면 통곡하지 않았을 것인가? 역사적 기독교에서 일탈한 교회연합운동 단체의 총회를 보고도 진노하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둘째, 왜 세계교회가 퇴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왜 언론은 영국의 감리교회가 죽었다고 태서 특필하는가? 성경이 금하는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미합중국장로교회(PCUSA)는 아직도 살아 있는 교회인지 의문스럽다. 자유주의 신학과 궤를 같이 하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이 현대 주류 교회의 쇠락과 죽음의 유일한 까닭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무관하다고 하거나 주요 핵심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제11차 총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이바지하는 모임이기를 바란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서 일탈한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기본 노선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관심을 표할 까닭이 없어 보인다. “WCC 바로알기” 시리즈 강의가 이 단체가 성경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최덕성/ 브니엘신학교 총장,. BREADTV-리포르만다 대표
이 글은 BREADTV(빵티비)의 시리즈 신학강의 "WCC 바로알기 1"의 원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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