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glossolalia)은 신앙생활에 유익한가?

by reformanda posted Apr 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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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glossolalia)은 신앙생활에 유익한가?  마무리 작업 중이니 옮기지 마세요

 

 

1. 방언의 재출현

 

바울의 고린도교회의 방언에 대한 가르침 이후초대교회 400년 동안 자신들이 방언을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몬타누스와 그를 추종하는 이단자들이었다종교개혁신학자 존 칼빈은 제네바교리문답 제247문에서 “그렇다면 방언으로(알지 못하는 말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고 “이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며 일종의 사악한 위선입니다고 답한다종교개혁운동 시대에도 고린도의 이교풍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방언 연구자들에 따르면, 17세기 말프랑스 남부 세벤(Cevennes) 지역에서 전투를 하던 한 무리가 예언을 하고 환상을 체험하고 이상야릇한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18세기에 얀센주의자들(Jansenists)이 방언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이들은 종교 개혁자들의 이신칭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로마가톨릭교회 지지자들이었다미국의 기독교계 소종파 세이커교도들은 무아지경과 비슷한 상태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했다고 알려진다.

 

오늘날의 방언 현상이 본격 등장한 곳은 1901년 미국 캔사스 주 토피카 시에 있는 어느 성경대학이었다교장 찰스 팔함 목사가 학생들에게 "성령을 받은 증거가 무엇인가"를 연구하여 발표하라고 했다사도행전이 말하는 성령받은 증거는 방언이라는 답을 얻은 그들은 함께 방언 받기를 소원하는 기도를 했다뜨겁게 기도하는 학생들 중에 이상야릇한 방언을 하고 이른바 '성령세례'를 경험한 자들이 있었다. 1906년에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러스 아주사 거리에서 윌리엄 시무어 목사가 설교 중에 갑자기 이상야릇한 방언을 했다당시 언론은 팔함의 제자 시무어(아프로아메리칸)가 이끄는 아주사 집회가 지진 같았다고 보도했다.

 

팔함과 시무어의 주도 아래서 20세기 초에 등장하여 지금까지도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의 방언은 사도행전의 방언과 완전히 다르다사람과 사람 사이의 초자연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방언의 내용을 타인이 알아들을 수 없고방언하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린도풍 또는 이교풍 방언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혁신학을 지향하는 교회는 사도행전의 방언이 사도시대의 마감과 더불어 그쳤고오늘날의 방언은 고린도교회를 어지럽힌 이교풍 방언의 재등장이라고 본다하나의 언어적 일탈 현상으로 여긴다.

 

바울은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지만 예언도 폐하고 ‘방언들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8)고 한다. 헬라어 동사 ‘그치다’(pauo) ‘영원히 그치다는 뜻으로, 무엇이 일단 그치면 다시 나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바울이 “그치리라고 한 방언들은 에베소에서 목격한 표적 방언으로 보인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기적이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거나 믿으려 하거나 믿는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인에게 주어진 표적이었다초자연적인 표적 방언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포함하는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였음을 알리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온순절날의 성령강림과 방언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막힌 담은 무너졌고하나님이 모든 민족에게 그리고 모든 언어로 말씀하기 원함을 알렸다방언은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의 저주의 상징이었지만 교회가 출범하면서부터는 온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회복, 복 주심,  언약 시대의 징표로 주어졌다예루살렘가이샤라에베소에 각각 하루 동안 일여났다가 그쳤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사도적 기적은 약 58년경 멜리데 섬에서 있었던 보불리오 아버지의 신유사건이다( 28:7-20). 요한은 계시록을 완성한 96년까지 방언을 언급하지 않는다사도적 권위와 메시지는 더 이상 표적으로 확증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사도 요한의 죽음과 함께 사도시대가 끝나자 사도적 표적은 현실에서 사라졌다(고전 12:12 참고). 사도적 권위를 가진 초자연적 기적과 특별 계시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신약성경 마가복음과 요한계시록도 방언을 언급한다. 요한계시록이 여러 차례 언급하는 방언은 로마제국 안의 여러 지역과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을 의미한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 5:9-10).  그러나 우리가 논의하는 방언을 언급하는 성경은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 뿐이다. 

 

바울은 신약성경에 포함된 약 14권의 서신서들을 썼다. 고린도전서 외의 책에는 우리가 논의하는 방언(glossolalia)을 언급하지 않는다베드로는 방언을 언급하지 않는다. 요한, 야고보유다의 글들도 언급하지 않는다방언이 기독인의 신앙생활에 그토록 유익하고 중요하고 두드러진 기독교 신앙의 특징이라면 사도들과 신약성경의 나머지 책들이 이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위에서 언급한 성경들 외의 나머지 신약 성경들은 사도 시대가 종료되기 이전에 쓰여졌지만 방언 은사를 언급하지 않는다방언을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방언이 그토록 중요한 기독교의 특징이라면  하나님의 종들과 교회의 사역자들을 선출하는 조건으로 제시되지 않았겠는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열두 번째 사도를 뽑을 때(1:21-28) 제시된 조건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와 함께 다녔던 사람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1:22)이라는 것이었다. 방언은사, 방언 체험은 조건이 아니었다. 예루살렘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6:3)을 택했다. 안디옥교회가 최초의 선교사들을 뽑을 때(13:1-3)도 방언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사도행전이 말하는 방언은 사도시대 이후에도 그치지 않았고 지속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사실을 입증할 증명부담의 의무는 방언 지지자들에게 있다. 방언, 방언기도가 진정 성령이 부어주는 영적 은사임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2. 방언과 말하기

 

방언 지지자들의 방언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방언을 방언기도로 여기는 사실이다. 방언과 방언기도는 같지 않음에도 이것들을 동일시하거나 동의어 또는 교차적 용어로 사용한다왜 방언을 기도로 여기는가? 나타나는 방언이라고 하는 것의 현상이 기도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자신이 경험하는 독특한 소리 현상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믿고 싶은 까닭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방언은사가 오순절 날로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자신들의 방언, 방언기도가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서 시작된 방언과 동일하다고 여기기 때문인 듯하다.

 

성경이 제시하는 방언 형식은 '기도'가 아니라 '말하기'(laleo, speaking)이다. 방언은 말로 이루어지는 설교나 증언이다성경은 방언과 말하기를 병합하여 "방언으로 말하다"라고 한다.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고 한다방언은 혀를 움직여 말을 하는 활동이다(고전 14:9). 방언은 다른 불신자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알아 듣도록 "말하는것이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 곧 복음의 메시지를 증거하고 말하는 활동이다말하기는 문법체계를 가진 언어를 수단으로 하는 의사전달 행위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방언' '말하기' 아래와 같이 병행시킨다. "방언을 말하려면 통역을 하라." "나팔처럼 분명한 소리를 내라"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라."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을 말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외국인-야만인이 된다." "청중이 알아듣는 방언으로 축복해야 '아멘'으로 응답할 수 있다." "나는 여러분보다 더 많은 방언들을 말한다." "방언을 말하려면 두세 사람이 차례 차례하라." "통역자가 없으면 방언을 말하지 말라." "깨닫는 마음으로 말하는 다섯마디가 방언으로 일만 마디 말하는 것보다 낫다." "율법에 기록된 바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는 여전히 듣지 않는다." "온 교회가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미쳤다 하지 않겠는가," "만일 누가 방언을 말하려거든 두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라."

 

바울은 딱 한 번 방언을 기도와 연관시켜 언급한다.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전 14:14)라고 한다회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어 방언으로 기도하면 자신의 영에는 거리낌이 없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으며마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따라서 유익하지 않다는 뜻이다. 바울은 자신도 타인도 알아 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를 하라고 하지 않는다. 방언은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다.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의 열매로 하는 방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언어활동 곧 말하기이다. 

 

3. 방언성령의 기도인가?

 

조용기 목사(전 순복음중앙교회)는 오늘날의 방언을 '성령의 기도'라고 한다방언 운동의 대부인 그는 방언, 방언기도의 정당성을 로마서에 호소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8:26-27). 다수의 방언 지지자들이 이 성경구절을 조용기 식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방언 기도에 적용한다.

 

로마서 8장은 믿음으로 죄의 권세를 이겨낸 기독인의 승리를 설명한다구원, 하나님의 자녀됨, 구원의 확실성기독인의 영적 신분을 서술한다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었고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신분의 자녀이고 상속자임에도 인간적 연약성 때문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때 성령이 탄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함을 말한다.  결과로 우리가 소망을 가진 신분의 사람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친히 성부 하나님께 기도한다기독인은 고통이 인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강렬할 때공적인 발언보다 오히려 마음에서 신음하거나 한숨이 나올 때우리는 그것이 성령의 속삭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내주동행하는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한다

 

위 구절은 방언, 방언기도 또는 령이 우리로 하여금 이상야릇한 이교풍 방언기도를 돕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다. 이 본문이 방언, 방언기도와 무관함은 바울이 이 본문의 기도와 간구의 주체를 사람이 아니라 성령으로 설정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인격자이신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다면 그 기도는 상호간의 인격적인 대화 형식을 취하기 마련이다. 성령이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께 구한다면 그가 기도를 직접하지 우리의 발음기관을 빌려 해야 할 까닭이 없다.

 

조용기의 명백한 오류는 오늘날의 방언의 모범을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 사건과 그 날의 표적 방언에서 찾는 것이다. 그는 사도행전 방언과 "영으로 신에게" 하는 만트라같이 알 수 없는 오늘날의 소리현상을 동일시한다(유튜브 동영상. "방언의 유익," 2021.04.23. 접속).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방언 지지자들의 방언 관련 강의와 설교를 들어보면 조용기의 오류의 영향이 광범위하고, 성경과 부합하지 않은 그의  주장이 한국교계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4. 방언이 주는 유익들

 

방언 지지자들은 방언, 방언기도가 많은 유익들을 제공한다고 한다. 카리스마(은사)로 주어진다는 오늘날의 방언, 방언기도의 유익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이 주장의 진실성과 성경적 신학적 정당성은 논외로 하고, 일단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유익들을 유형별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첫째방언은 영의 기도이며, 성령께서 친히 간구하는 기도이다기도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도록 마귀를 따돌리는 하나님의 비밀스런 장치이다방언을 하면 우리의 혀가 의의 병기로 사용된다깊은 기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오래 기도할 수 있다성령은 방언기도를 수단삼아 우리의 견고한 진을 부수고, 사탄의 견고한 진을 파쇄한다말씀이 날선 검처럼 힘차게 우리 안에 역사하게 한다.

 

둘째방언, 방언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영적 교제의 수단이다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순종케 하고말씀 따라 걷게 한다방언을 하면 성령이 우리 안의 마귀를 제거하며 마음을 옥죄는 것들을 제거한다축사(逐邪)가 일어난다성령께 순복케 하며-생각과 육-정욕을 제어한다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들부정적인 느낌들을 제거한다마음의 눌림답답함우울증을 해소한다. 강한 사슬이 풀어지는 느낌을 준다. 영적으로 감미롭고행복하고평안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는 깊은 단계에 진입한다방언방언기도를 하면서 성경을 읽으면 그 안에 담긴 영적 비밀들과 성경의 계시가 풀린다.

 

셋째, 방언, 방언기도는 학습을 하면 받을 수 있다. 방언을 받으려면 큰 소리로 기도하라. 기대하고 간구하고 부르짖으라. 방언을 받으려면 또는 받게 하려면 신비감을 조성하는 음악이나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음률을 사용하라방언의 은사  방언기도 체험은 놀랍고 소중하므로, 방언, 방언기도를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이론과 학설들을 대적하거나 귀담아 듣지 말라

 

어느 여인은 어릴 때 교회를 다녔지만 반세기 동안 하나님을 등졌다가 불행한 상황에서 예수를 주로 믿고 예배하는 개종 첫날부터 이상야릇한 방언을 경험했다눈을 감으면 무아지경의 황홀감에 도취되어 잠시나마 정신적 고통을 잊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경험을 한다자신이 숨을 쉬고 살아있음은 그러한 체험 덕분이라고 한다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그리스도에게서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학교 교사로 재직하는 어느 여인은  오랫동안 악령에게 이끌려 간질 증상같은 고통을 당해 왔다유명하다는 무속인과 불교 사찰을 전전했다귀신에게 사로 잡혀 여러 가지 험난한 시련을 당했다어느 날 교회 예배에 참석했고그 날부터 방언을 했다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해 오다가  7 뒤 교사직을 그만두고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공부를 마무리하고 있다위 두 여인의 경우, 오늘날의 방언, 방언기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와 사랑의 징표이며극심한 사탄 활동의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는 경험이다

 

오늘날의 방언이 성령이 준 은사의 나타남인지마귀 장난의 결과인지심리적 현상인지를 정확하게 판별할 방법이 없다. 검증불가능한 것에 연연하고 매달리면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방언, 방언기도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라도 판단할 수 있다면 그 기준은 방언하는 사람들의 삶의 열매나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유익들이 아니다 유일한 척도는 영원한 진리를 특별 계시로 인간에게 알려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의 가르침이다.

 

5. 방언그 불편한 진실

 

방언, 방언기도에 집중하다가 단호히 버린 기독인들이 상당수 있다방언기도를 해도 진정한 평안만족능력기쁨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증언하면서 지금은 방언퇴치운동을 펼치고 있다. <빙안 그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을 펴내고, 방언비판 강의에 앞장서기도 한다도대체 무슨 까닭일까왜 황홀한 체험이 주는 감정적 흥분을 되풀이하기가 점차 더 어려워지고결국 환멸로 끝나는 경우가 그토록 많은가

 

방언, 방언기도가 일련의 기독인들에게 유익하다면,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기독인들의 신앙은 그들보다 훨씬 뒤떨어지는가?  누가 방언을 하는 신자들이 방언을 하지 않는 기독인들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거룩하고 더 일관된 삶을 산다고 진지하게 말할 수 있는가오순절주의은사주의신사도주의를 지향하는 교회들이 방언을 거부하는 역사적 교회신앙과 행위의 모든 것을 성경에만 호소하는 교회들보다 전반적으로 더 건전하다는 증거가 있는가어느 그룹이 성경의 가르침에 더 충실한가오순절주의은사주의신사도주의 그룹이 상대적으로 더 영적인 기독인이나 신학적으로 더 탁월한 지식인을 배출하는가방언, 방언기도를 달가워하지 않는 기독인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품을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의정부지방법원 형사합의13(부장판사 이영환) 2018 6 8자살교사 혐의자 임 모 씨(64·)에게 징역 5년의 형을 선고했다부모의 자살을 방조한 딸 이 모 씨(44)에게는 징역 1년을 선고했다. 2017년 말임 씨는 피해자 부부에게 "용에 씌었으니 회개하고 하나님 곁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임 씨는 방언직통계시하나님의 음성듣기예언 등을 앞세우며 영적인 우월감과 하나님과 직통하는 선지자라는 것을 앞세우는 사기 조직망의 두목이다이 조직은 미국과 중국의 동포들 사이에 그리고 한국에서 상당히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피해자 김 모 목사(83)는 성령이 주는 방언을 하고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하는 ‘여 선지자’ 임 모 씨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임 씨는 방언을 하고서, 하나님이 그에게 속히 하나님께 가는 것을 원하다고 말했다. 임 씨의 방언과 계시는 하나님이  자살을 원한다, 하나님이 속히 오라고 말씀한다는 식으로 나타났다. 피해자의 부인과 딸도 임 씨의 충실한 제자였다. 남편과 부인은 임 씨의 방언기도, 예언, 계시, 암시에 따라 한탄강에 투신 자살을 했다.  

 

피해자 김 모 목사 부부는 ‘여자 목사로 알려진 임 모 씨를 이 시대의 살아 있는 선지자로 추앙했다방언, 방언기도를 열심히 하는 임 씨의 예언이 우연히 적중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그는 예장 통합 교단에서 목사로 장립을 받았으며, 2000년대 초반 가족과 함께 미국 뉴저지로 이주해 이민목회를 시작했다그 교회는 상당히 성장했다그는 미국 한인교계에서 명망 있는 지도자였다기독교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는 필자에게 자신이 뉴저지한인교회연합회 회장을 역임했고중국 연변의 모 대학교 설립 때 거액을 돈을 모아 보내는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어느 유튜브 방송인은 자신이 귀신방언, 가짜방언을 잡아내는 전문가라고 한다. 대부분의 방언이 진짜이지만 약 1퍼센트 정도가 가짜라고 한다. 어떻게 이 수치를 이끌어 냈는지 궁금하다방언 지지자들은 가짜 방언마귀 방언사이비 방언이 있다고 하면서 조심하라고 한다어느 여성 유튜버는 "방언의 종류"에서 방언의 종류들을 열거한다. 단방언(외마디방언, 랄랄랄라 등 모르스부호같은 방언), 권능방언, 언어방언, 대인방언(영과 영이 통하는 방언), 대신방언(하나님께 올리는 방언), 대물방언(강아지 방언, 이사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방언), 대국방언, 기합방언(외마디 고함으로 견고한 마귀의 진을 파쇄하는 방언), 예언방언, 무전방언 등이 있다고 한다. 

 

여러 기도원들을 순례하면 방언하는 사람들방언기도자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어느 기도원의 여성 예배인도자들은 식당에서 고성으로 서로 욕하고 싸우다가 고객이 들어오면 신속히 옷을 바꿔 입고 강단에 선다.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면 금방 방언이 터진다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송한다그 중 한 명은  "홀리니스 도미니"를 만트라처럼 반복했다. 몇 년 동안 지켜보았지만, 그는 이 두 마디만을 반복하면서 이를 방언이라고 했다. 방언, 방언기도는 고액의 돈을 바치도록 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교회 주변에서 순진한 성도들을 속이는 자들, 사기성(詐欺性)이 농후한 방언팔이 장사꾼들의 상품으로 전락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6. 방언학습행동

 

오늘날의 방언방언기도는 다분히 심리적 학습행동의 결과로 보인다방언 공동체는 방언을 가르치고 학습하기도 한다방언 학습자는 노골적으로 ‘의지적 통제에 대한 수동적 포기’ 상태로 들어가도록 교육을 받는다긴장을 풀고 마음을 비우고 자기의식에 대한 자신의 통제를 포기한다집회 참석자들이 거의 다 방언을 하므로 자기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보통 사람들은 방언방언기도 소리를 들어보고 약간의 훈련을 받으면 혀가 꼬이고 특이한 소리를 발음하는 현상을 보인다지도자가 “당신은 방언을 받았습니까?”라고 묻고 “일단 시작하세요할렐루야와 아멘을 반복적으로 되풀이 하면 방언이 터집니다라고 말한다방언 공동체, 방언 집회는 구성원들에게 방언을 하도록 무언의 집단적 압력을 준다. 참석자가 방언을 못하면 왕따 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은사주의 공동체 구성원들의 최대공약수는 방언, 방언기도이다방언은 그들에게 기독교 영성과 정통성과 영적 성숙의 보편적 기준이다방언이 성령의 은사라고 강조하는 어느 목사는 유튜브 채널에  "방언은사 받는 법"이라는 동영상을 게시했다은사는 성령이 주시는 일방적인 선물이며 성령이 특정인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시려 한다면왜 그것을 받는 사람이 방언을 하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가 '방언 받는 법'을 학습해야 하는가성령의 은사는 그것을 받는 사람의 노력연습갈망기대희망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노력이나 학습의 결과로 방언이 주어진다면 그러한 방언은 성령이나 은사의 초자연성과 무관함에 틀림없다.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젊은 연예인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어린 십대 소년 소녀들을 보라흥분감격열정굉음 속에서 자신들의 성대와 근육에 대한 의지적 통제를 포기한다집단적 심리최면무아지경기억자극정신적 카타르시스 해소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다자신이 자기의 의지 통제를 포기하면 무의식적인 중언부언이나 의미 없는 소리를 반복하거나 무아지경 또는 황홀감을 느끼는 행위를 지속 반복할 수 있다방언이라고 하는 '언어 이상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오늘날의 방언, 방언기도에 '종교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은 낯설고 이상한 가르침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으로 화답한다눈을 감으면 즉각 방언을 하고 자신이 자기의 의지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쉽게 진입한다심리적 암시 능력에 가볍게 복종한다무슨 암시를 받든지 그대로 행동에 옮긴다감정이 고조되고 정신적 압력이 올라간 상태에서는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성령이나 초자연성과 무관한 언어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실어증 환자들의 상태와 이교풍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똑 같은 언어해체 현상을 보인다마귀적이든 심리적이든 간에 언어에 대한 자기의 의지적 통제 포기가 이루어진다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언어 통제가 방해를 받을 때 의미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이상야릇한 방언을 초래하는 자연스런 심리 기제들은 여러가지이다.

 

하나님이 신앙생활에 유익하고 영적 성숙에 도움을 주는 방언은사를 준다고 가정해 보자하나님이 주시는 은사가 그것을 받는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타인도 알 수 없고 전문가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발음 현상으로 나타날까

 

바울은 ‘자기 부정을 강조한다. 방언을 수단삼아 자기를 세움은 바울의 일관된 '자기부정가르침에 역행한다바울은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방언을 칭찬하지 않는다(고전 14:4). 자기를 과시하고 앞세우려는 은사 활용은 은사를 주는 목적에서 이탈한다사랑의 원칙을 무시하는 행동이다(고전 13:5).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 헬라어 본문에는 ""이라는 단어가 없다. “자기를 세운다"는 것은 집을 건축하듯이 자기를 아세워 높인다는 의미이다. 이는 문맥에 따라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 의미로 해석될  있다. 바울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고린도교회의 신도들이 이상야릇한 방언에 치중하는 까닭이 이기적으로 자기를 세우려는 동기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 말이다바울은 자신이 타인에게 신령한 신자로 보이려고 눈에 띄는 방언을 하는 자기중심적 욕망을 경계한다자기 과시 동기에서 하는 방언에서 유익을 얻는 사람은 당사자 밖에는 없다그들에게 방언은 결국 자기의 영광을 구하고 자신을 세우는 일이다바울은 지속적으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고 한다.

 

7. 방언 검증하기

 

바울은 교회질서 차원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교회를 무질서하게 만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집단 방언을 금하고, 통역 없이는 방언을 하지 말라고 한다. 바울의 가르침을 자세히 읽으면 방언이 영의 언어가 아니며,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개인기도가 아니라고 가르친다방언이 개인의 영적 체험에 국한되는 수수께끼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각종 방언 말함”(고전 12:10) “방언들 통역”(고전 14:28)을 동시에 강조한다여러 가지 방언들을 말하는 것과 방언들 통역은 의미를 지닌 단어들과 문법 체계를 가진 언어외국어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방언, 방언기도의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는 묘안이 있는가? 간접적이만 주효한 방법이 있다. 방언지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방언통역 은사를 받은 자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바울 시대에 없었던 녹음기가 있다최초의 음성녹음은 1877년 발명왕 에디슨의 목소리였다. 1860년에 에두 아르 레옹 스콧의 녹음이 최초라는 설도 있다. 녹음기로 방언, 방언기도를 녹음하여 방언 통역의 은사를 가졌다고 하는 자들에게 통역을 의뢰해 보라통역자들의 정보를 차단한 채 여러 명에게 통역을 부탁해 보라통역자 수만큼이나 다른 내용을 내놓을 것이다. 생명력 없는 녹음기 앞에서 방언, 방언기도와 관련된 사기성, 허구성, 기만성이 드러난다. 

 

만일 10명의 방언 통역자들 가운데 두세 사람이 내놓는 내용만 일치해도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동안의 기독교 역사에서 고린도풍 방언을 통역하여 그 내용이 일치한 경우가 있었다는 보고는  없다. 지금까지 오순절주의자은사주의자신사도주의자들이 과학적 검증으로 방언의 진정성을 확인하거나, 통역이 가능한 방언을 확인한 사례는 없다.

 

어느 한국인 부흥사는 자신이 방언감별사라고 선전한다. 진짜방언과 가짜방언을 감별한다고 한다. 미국의 어느 교포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며 방언, 방언기도를 강조하다가 마지막날에 방언은사를 가졌다는 참석자들을 한 사람씩 강단으로 불러올려 방언, 방언기도를 하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진짜방언인지 가짜방언인지를 분별해 주었다고 한다. 가짜방언을 놓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감별하고 또 자신이 감별 능력을 가졌다고 하는 것 자체가 거짓이다.

 

영리하고 교활한 마귀가 크게 활동하는 영역이 오늘날의 방언, 방언기도일 수 있다. 마귀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을 호시탐탐 유혹하고 넘어지게 한다. 기독교인이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비우면자기가 자기 통제의 기능을 포기하면 '얼씨구 좋다'고 하면서 그 빈 마음에 들어가 그것을 자기의 집으로 삼고 왕성하게 역사한다(마 12:45; 눅 11:26)자기를 천사나 성령으로 가장하고 활동할 수 있다

 

마귀는 방언, 방언기도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받을 자(anathema Jesu)라고 할 수 있다. 방언이라는 가짜 능력을 덧입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방해할 수 있다긴 시간 동안 성도들이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사탄은 진리를 흉내 내는 전문가이다(고후 11:12-15). 모든 거짓 종교의 배후에 존재한다(고전 10:20). 이 사실을 인지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딤전 4:1)고 말한다

 

8. 맑은 정신의 기도

 

방언은 기독교가 전유(專有)하는 소리현상이 아니다심리학자들과 종교학자들에 따르면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또는 무속 신앙에도 그 종교의 신자가 무아지경에 빠져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영감을 받아 중얼거리는 방언 현상이 있다고 한다. 불교 일련종(남묘효량게쿄), 티베트 승려들회교도에스키모인인도 힌두교도들일부다처제를 가진 미국의 몰몬교 신자들이다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컬트 샹고교에티오피아의 컬트 조르교아이티의 컬트 부두교남미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샤먼(shaman)들에게서 발견된다고 한다로마가톨릭교회 권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명백하게 마귀의 역사로 방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진짜 무당들은 신들림 가운데 자신도 알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아프리카 동부에 귀신에 사로잡혀 스와힐리어나 영어로 유창하게 말한다고 한다아프리카의 통가족(Thonga)은 줄루족(Zulu) 언어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귀신을 쫓아 낼 때 보통 줄루어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마귀의 역사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은 ‘방언의 기적으로 줄루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이 사례들은 방언이 사탄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이교의 만트라(matra)는 신들을 부르는 마력적(魔力的)인 어구이다. 불경 <천수경>에 나오는 "옴마니반메훔," 불자들이 반복적으로 외우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창가학회가 되풀이하며 외우는 "남묘호랑게쿄," 증산도의 스물세 글자 주문 "태을주"(훔치훔치 태을천 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는 모두 자기의 의지, 의식을 뒤로 하고 무아지경의 황홀체험 , 무의식의 힘을 강조하는 자기암시의 경구이다. 이를 만트라(mantra), 밀주(密呪), 진언(眞言), 밀언(密言)이라고 한다.

 

방언, 방언기도는 자기 교만과 영적 우월감 과시만이 아니라 사기, 속임수심리적-사회적-언어적 트릭(trick)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직통계시예언투시입신, 계시, 환상환시, 환청, 신의 음성 듣기신들림, 웃음, 쓰러짐, '임파테이션,' 영매, 축사 등 불건전한 신비주의 특징들과 직결되어 있다. 교회 주변에서 사람들을 속인다. 심각하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부류 가운데 하나는 영적인 은사들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멀리 계시지 않는다.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바울은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4:6)고 한다맑은 정신으로 자기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담아 성 삼위일체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맑은 정신으로 올리는 기도를 들으신다언어체계에 따라 의미를 지닌 단어들로 구성된 자기 언어로 기도하기 원한다온전한 정신 상태로 드리는 기도와 예배를 원한다예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면서 방언이나 방언기도를 가르치지 않았다언어체계를 가진 기도의 모범적 모델을 제시했다( 6:9 이하주기도문).

 

기도는 의미없는 중얼거림혼잣말독백(獨白)이 아니다기도하는 자신이 그 내용을 알지 못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가 아니다. 자신도 타인도 알지 못하는 소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만휼이 여기는 행위이다. 통역할 수 없는 소리의미 없는 소리불분명한 소리는 우리의 영적 전쟁을 실패로 이끈다전쟁터의 나팔은 전진과 퇴각 등을 알리는 분명한 소리를 낸다바울은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고전 14:9)고 한다

 

9. 방언체험, 허용적인가?

 

역사적인 기독교는 "오소서 성령이여 재창조의 영이여,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하면서 성령의 충만과 임재를 간구한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임한 성령 그 분은 오늘 우리들 가운데서 역사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내주동행한다. 성령충만 안에서 신비한 일들을 체험하게 한다. 영적인 체험과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나님이 원하면 초자연적인 현상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기독인 각자가 겪는 영적 체험은 소중하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호흡하고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한다. 이처럼 우리가 신비한 영의 세계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가르치는 범위 안에서만 그 세계를 수용함이 바람직하다. 영의 세계는 신비롭기는 하지만 혼란스럽고 위태롭고 무질서할 수 있다. 사탄의 장난이 심한 영역이다. 공중의 권세 잡은 영은 항상 궤계를 부린다. 

 

성숙한 기독인은 타인의 신앙체험을 존중한다.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정상적인 기독인은 자기의 체험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기록인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를 검증(檢證)한다자신의 방언 체험이 성경적이지 않으면 자기 체험을 뒤로 하고 성경말씀에 자신의 믿음을 바로 세운다. 기독인의 바람직한 신앙, 하나님의 말씀의 궤도 위에 올려진 신앙은 성경에서 탈선하지 않는다. 베뢰아 교회 성도들처럼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고 주관적인 체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충실하려 한다.

 

기독교는 체험종교이다. 기독교 신앙의 내면적 체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죄사함 받고 구원 받는 영적인 경험이다. 방언 지지자들이 하는 방언, 방언기도라는 경험 양태는 체험자에 따라 다른다. 기도하는 중에 떨림과 진동을 경험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고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으로 기도하거나, 안수를 받을 때 뒤로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한다. 큰 소리 내어 엉엉 울기도 하고 미친듯이 웃기도 한다. 시끄러운 악기들의 연주와 고성 찬송 소리를 들으며 황홀경 상태에서 정신을 놓아버린다. 환시(幻視), 환청(幻聽) 등 주관적 체험은 사자에게 굉장한 무게를 가진 신령하고 영적이고 체험처럼 다가온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인 체험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그 영인 성령에 사로잡히는 경험을 뜻한다. 이 때의 체험은 감각적이거나 감정적인 느낌이나  황홀경이나 방언기도 체험이 아니다. 그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영적인 교제, 인격적인 만남이다생의 목표, 가치관, 사고구조, 생활방식이 혁신되는 영적인 기적이다영적인 체험은 이성적이며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실제적인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영적인 변화와 경건을 의미한다영적인 깊이란 방언기도의 길이가 아니라 경건의 깊이를 말한다경건은 거룩함이고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모습을 닮음이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비정상적인 현상이나 영적인 방법을 수단 삼아 자신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오고 신앙이 자라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마른 막대기를 사용하실 수 있다위대한 구원의 역사에 이집트바벨론앗시리아로마를 들어 사용했다하나님의 섭리 과정에서 우리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체험들을 하게 할 수 있다. 그 체험이 신자 개인의 신앙증진 측면에서 '자기 세움' 유익하고 영적 삶의 풍요로움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중립적일 수 있다. 

 

요즘 성행하는 무당작두타기식 방언, 신성모독 방언, 헛소리 방언, 환각 방언, 귀신 방언, 기만 방언, 이교풍 방언은 교회를 무질서하게 만들며 어지럽힌다. 방언, 방언기도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인간의 육체와 정신과 심리에서 연유한 발성체험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만트라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 혀에 마비현상이 오고 성대(聲帶)에 이상이 생긴다. 정신적인 착란(錯亂) 상태에서 자율신경계에 혼란이 일어난다. 환각상태에서 내는 중얼거림(ecstatic utterance)일 수 있다아무 생각 없이 무엇에 이나타나는 습관적인 발설 음성일 수도 있다. 

 

은사주의 방언운동이 왕성하게 일고 있는 선교현장의 기독교 사역자들은 방언, 방언기도를 어떻게 이해할까? 방언, 방언기도를 "사적인 기도언어"로 이해하는 듯하다. 공개적 방언기도를 권하지 않으며, 사적인 방언기도를 금하지 않는다. 신앙생활의 자유를 허용하는 측면에서 골방이나 산속에서 홀로 은밀히 하는 기도를 금하지 않는다. 방언이 마귀와 무관함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그리고 개인 신자가 신앙향상과 영적 활기 증진에 유익하다며 단호하게 방언, 방언기도를 하려고 하면 홀로 골방이나 기도굴이나 산속에서 하라고 권함이 옳을 듯하다.

 

방언, 방언기도에 유익들이 많다고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수용하기에는 의심스럽고 조심스런 점들이 너무 많다교회가 방언, 방언기도를 허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악령에게서 온 것이 아니며 심리적 현상이거나 잠시동안 성령에 사로잡혀 신비한 경지에 들어가는 경우이다.  방언을 지지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혹시라도 성령의 은사를 잘못 판단할 수 있고, 진짜를 가짜라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까봐 조심한다.

 

맺음말

 

우리의 논의는 오늘날의 방언이 사도행전의 방언과 같지 않으며,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경계하라고 가르친 것과 동일한 소리현상으로 보인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럼에도 교회와 자신의 신앙증진과 영적 향상에 유익하다면, 교회의 품위와 질서유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을 수 있다. 성경은 영을 분별하라고 한다. 오늘날의 방언, 방언기도는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령의 은사 여부가 불명확한 상태이므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음이 마땅하다.

 

왜 오늘날  방언, 방언기도가 확산되고 있을까? 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의 나타남능력성령이 주는 카라스마를 기대하는가? 답은 세 가자 중 하나이다. 첫째는 극심한 마귀의 간계 때문일 수 있다. 둘째는 신령한 체험, 감각적인 것을 기대하는 심리 때문일 수 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함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차갑고 생기 없는 기독교 현실에 대한 반작용 때문일 수 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영적인 굶주림을 채울 수 없었고, 입술로는 성령 충만을 외치지만 실제 생활에는 영적인 활기가 메말라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방언 지지자들은 말한다. 성경은 분명히 방언이 있다고 말해요. 방언은 오순절 날 성경강림의 표징이었요. 왜 방언이 없다고 하세요?"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기도예요." "사도 바울은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했어오." 이들의 맹목적인 확신의 근거는  무엇인가? 자기가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방언을 지도하는 교역자의 가르침이다본인이나 지도자가 진짜 방언이라고 우기거나 일단 그런 식으로 자신이 경험한 소리현상을 성령의 은사로 이해하면 더 이상 성경적 신학적 합리적 논의나 검토가 불가능하다. "내가 하는 방언이 마귀 방언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며 바울이 엄히 경계하는 고린도풍 소리 현상을 버리지 않으려 한다.

 

사람은 자신의 체험과 선이해에 따라 만사를 판단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선이해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한다이 과정에서 견강부회식 성경해석, 성경적용이 이루어진다. 정체불명의 체험 토대에 형성된 사고 체계와 주관적 신념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어뚱한 결론에 이른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해석 가능성을 부정한다. 적대시하고 공격하기도 한다이러한 접근방법은 옥스퍼드대학교의 교수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신이라는 망상, 2007)에서 자신의 경험으로 기독교 자체를 비하하고 속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학문은 본질상 열려있는 배움의 과정이다새로운 주장이 정당하면 기꺼이 받아들인다본문을 해석하는 관점세계관은 선이해와 무관하게 작동하지 않는다그래서 학자는 편향성이 개입하거나 사실을 왜곡할까봐 혹독한 비평과 검증 과정을 거친다자신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는지 잘못 해석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한다신학자는 자신의 판단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기록한 성경과 합리적 이해에 충실한가를 거듭 점검한다.

 

방언, 방언기도를 하는 기독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형제자매이다그들은 성경을 권위 있는 책으로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성경의 가르침 대로 믿고싶어 한다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희생적인 죽음과 육체적 부활을 믿고 고백한다이신득구(以信得救), 순종과 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뜨겁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며열심히 구원의 복음을 전한다 자기가 하고 있는 방언을 의심하고, 진짜가 아니라면 기꺼이 버릴 각오를 가지기도 한다. 

 

방언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신앙을 유지하고 "사랑 가운데서 진리"( 4:15)를 따라 믿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동기로 이루어지고 있다. 방언하는 자들에게 방언에 대한 자신의 무조건적인 옹호 태도가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의적 성경 적용, 성경 본문의 견강부회식,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다방언이라는 주관적 체험 콘텍스트가 기독교 신앙과 생활의 최고 최종 권위인 성경이라는 분명한 텍스트의 해석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교의학 교수

 

성령론 강의록, 2021 봄학기, 브니엘신학교 신학대학원 과정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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