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순종과 관련된 문제점들

by reformanda posted Feb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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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 순종과 관련된 문제점들

 

아래 기사는 <리폼드 뉴스>를 발췌한 것이다. 서철원 박사(전 총신학교 신학대원 조직신학교수)는 근래에 예장 합동의 한 기구가 주선한 자리에서 "능동적 순종과 관련된 문제점들"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흔히들] 율법의 성취는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였으므로 죄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성취한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피 흘려 죄값을 갚으므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성취하셨으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완전히 면제되었다"라고 하는 기존 관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칼빈은 율법을 생활의 규범으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에서 나아가 율법에 구원 기능을 부가하였다. 율법이 그리스도 밖에서는 죽이고 망하게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와 함께는 구원하는 기능을 행사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후기 유대교의 주장과 같다."라고 주장했다.

 

서철원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 완전한 의를 얻었다는 주장으로 그리스도가 그 의로 자기도 구원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본래 죄인이었는데 율법을 잘 지켜 의를 얻어 자기를 구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것이다. 그가 율법을 다 지켜 의를 얻었으면 구약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려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 완전한 의를 얻었다"는 주장은 "그리스도가 그 의로 자기도 구원 받았다"는 주장이 됨으로 이는 "이단적 주장을 단호히 배격한다"고 한다. 이 같은 "능동적 순종은 그리스도는 율법을 주신 입법자이므로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었다. 그런데 율법을 자발적으로 지켰으므로 능동적 순종이라고 한다."라고 하면서 이런 능동적 순종은 헤르만 바빙크, 루이스 벌코프, 박형룡 박사 등도 포함된다며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19세기 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가 능동적 순종의 주장을 아무런 반성 없이 자기 신학에 받아들이므로 20세기 화란계 미국인 루이스 벌코프(lewis Berkholf)가 그대로 자기 신학에 받아들였다. 박형룡 박사 또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대로 벌코프의 조직신학 책을 번역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므로 능동적 순종 주장과 그리스도의 율법 준수로 의를 획득한 것이 정통신학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17세기에 생긴 그릇된 신학을 21세기 한국에서 고치려고 함으로 이런 어려움과 논란이 생겨난다. 성경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자기 피로 죄용서를 이루시므로 의를 완전하게 세우신 것만 바른 진리로 받는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히 지켜 의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그것을 전가해서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단적 주장을 단호히 배격한다. 심지어 박형룡 박사까지 이단적인 능동적 순종 주장을 정통신학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봤다. 이제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 완전한 의를 얻었다"는 말의 의미가 서철원 박사의 주장대로 "그리스도가 그 의로 자기도 구원 받았다"는 말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철원의 강의

 

제목 : 능동적 순종과 관련된 문제점들 I. 창조경륜의 견지에서 칭의 개념의 이해

 

1. 창조경륜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 시 창조경륜을 가지셨다. 경륜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가지시거나 백성을 회복하려고 하실 때 다른 위격들과 협의하심을 말한다. 창조경륜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로 하신 의논을 말한다.

 

2. 창조경륜의 시행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기의 백성으로 삼아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며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도록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심은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사역의 방식을 따라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심을 말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격으로 계시고 인격으로서 일하신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지으심은 하나님의 인격임에 근거하여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심을 말한다. 하나님을 섬김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잘 살았다.

 

3. 언약의 체결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으므로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라고 하실 수 있다. 그러니 창조주는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셨으므로 그 인격체임을 존중해서 언약을 체결하심으로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라섰다. 곧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언약을 체결하셨다. 하나님은 사람과 언약을 체결하여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로 작정하셨다. 언약을 체결하심으로 사람을 자기 백성으로 가지신 하나님이 되기로 하섰다. 언약을 체결하심으로 사람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서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만을 뜻하신 것이 아니리 창조 가운데서 백성들의 찬양과 경배 받으시기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언약백성이 의존해서 살 계명을 주시기로 하셨다. 그리고 언약을 맺어 사람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므로 자기의 백성되는 표로 하나님의 임재를 백성 가운데 두기로 하셨다.

 

언약을 체결하실 때 하나님은 선악계명으로 언약을 체결하셨다. 선악계명은사람과의 언약을 성립하게 하는 근거요 조건이지만 또 언약백성이 의존해서 살 규범이다. 언약체결의 근거인 선악계명은 사람의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계명이다.

선악계명은 창조주만 하나님으로 섬기고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다. 선악계명의 선은 창조주를 하나님으로 섬기면 그것이 선이어서 생명에 이르고 악은 창조주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는 것이어서 죽음에 이르게 하신 법이다. 그런데 창조주는 선악계명을 한 나무에다 매셨다. 금한 과실을 먹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으로 간주하기 위해서이다. 선악 계명으로 언약을 체결하심으로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섬기게 되었다.

 

4. 언약백성으로 삶

 

언약 체결 후 아담은 언약백성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다. 아침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점심때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저녁에도 또한 잠자리에 들 때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일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뿐만 아니라 땅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따라 아담은 자기가 사는 주변 세계의 사물들을 탐구하였다. 사물을 탐구하면서 아담은 사물에 들어있는 성질과 법칙들을 보게 되었다. 사물의 성질과 법칙들은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의 결정체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담은 사물들의 성질과 법칙이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의 결정체인 것을 알고 창조주의 지혜와 권능을 감탄하고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였다. 아담의 일상생활은 하나님 경배의 연속이었다. 아담에게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은 완전히 일치하였다.

 

5. 자주자가 되라는 유혹이 왔다.

 

아담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고 있을 때 유혹이 왔다. 그 유혹은 바로 언약체결의 근본목적에 어긋나는 유혹이었다. 유혹자의 유혹은 다음과 같았다. 너도 하나님의 형상인데 창조주의 언약체결의 법에 매여서 종노릇하지 말고 선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주자가 되라는 유혹이었다. 하나님이 선악계명으로 너희들을 묶어놓은 것은 종으로서 하남님을 섬기게 하기 위함이다.

 

선악과를 먹는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너희들이 신약계명을 정할 수 있다. 선악과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결고 죽지 않는다. 그러니 네 스스로 선악을 결정해보라. 선악과를 먹는 것이 선악결정을 스스로 하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악결정에 매이지 않고 자유인이 되어 스스로 선악을 결정하는 자주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유혹과 충동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계명과 언약체결을 무시하고 자주자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6. 반역을 감행함

 

선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주자가 되라는 유혹자의 유혹을 받아 아랍과 하와는 선악결정을 스스로 하기로 작정하고 그 작정을 실행에 옮겼다. 하나님의 창조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으로서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한 약정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 선악을 결정하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의 신분을 버리고 자주자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선악결정을 스스로 하는 자주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 섬김의 약정인 언약을파기하기로 한 결정이다.

 

곧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섬김을 기부하는 반역을 작정하고 실행한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계명을 범하여 하나님 반역을 감행하였다.

 

7. 죽음과 저주가 선언됨

 

하나님은 언약체결에서 말씀하신 저주와 죽음을 범죄자들에게 선언하였다(317-19). 죽음의 선언은 언약체결 시 약속되고 예정되었다(2:1),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와 언약을 체결하셔서 사람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창조와 언약체결의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이다. 아담은 거룩하고 엄중한 책무를 버리고,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기로 작정하고 하나님을 반역하였다. 이렇게 하나 섬김을 거부하여 하나님을 반역하였으니 그 죄벌은 죽음이 마땅하다. 그래서 창조주는 언약체결에서 미리 말씀하신 대로 반역자들에게 저주와 죽음을 선언하셨다. 죽음이 인륜세계에 들어왔다. 죽음만 아니라 저주가 들어왔다. 사람은 출생하지만 죽음으로 작정되었다. 인륜세계에 죄로 인해 죽음과 저주가 들어왔다. 이로써 창조세계에서는 죽지 않을 존재가 전혀 없게 되었다.

 

8. 죽음과 질병으로 병들어 다 죽게 되고 온갖 고난을 다 당하다 멸망하게 되었다.

 

인륜세계에 죽음이 저주와 함께 들어옴으로 모든 생명체들이 다 죽게 되었다. 죽음에는 질병이 함께 들어왔고, 전쟁과 기근과 홍수 가뭄 등이 넘쳐나서 사람의 생명이 과격하게 줄어들었고 온갖 고생을 하다가 죽게 되었다. 저주와 죽음이 왕 노릇하는 세상에 살면 결국 온갖 고생을 하다가 죽고 그 후에는 영원한 형벌과 멸망만이 있게 되었다. 온갖 질병과 재난이 늘 반복되어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다. 그리고 범죄로 미움이 생활의 방식이 됨으로 종족들과 국가들 간에 전쟁이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반역자들은 죽은 후에 영원한 형벌을 받아 영원한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살아서도 고생과 재난의 연속이고 죽어서도 고통은 끝이 없어서 영원한 탄식과 질고뿐이다.

 

9. 반역한 백성을 돌이켜 다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심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반역하였음으로 합당한 형벌을 받고 있는 백성을 돌이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반역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므로 반역을 무효화해야한다. 죄를 용서받으려면 반역한 백성들의 죗값을 갚아야 한다. 죗값을 지불해야 죄를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다.

 

사람이 범죄 하였으므로 범죄자가 죗값을 치리야 한다. 곧 사람이 범죄 하였으므로 사람의 본성에서 죗값을 갚아야 한다. 10. 사람 중에는 아무도 죗값을 갚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대신 죗값을 갚으시기로 하셨다.

 

사람이 죗값을 갚지 않으면 모든 사람은 다 죽어 멸망하며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어 있다. 죗값을 반드시 갚아야 죄를 용서받는다. 그러려면 사람의 죗값을누군가는 갚아야 한다. 죗값을 갚지 않으면 사람은 원한 형벌을 받아 멸망하는 길밖에 없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류를 불쌍히 여기사 영원한 형벌에 처한 사람들을 다시돌이켜 자기의 백성 삼기로 하셨다. 곧 하나님이 사람의 죗값을 대신 갚으심으로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다시 자기의 백성으로 삼기로 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의 죗값을 갚으신다고할 때 그것은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죗값을 갚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자리에 오셔서 사람으로서 사람의 죗값을 대신 갚으시기로 하신 것이다.

 

11. 사람의 죗값을 대신 갚으시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반역죄를 저지른 인류를 불쌍히 여기셔서 인류의 죗값을 대신 갚으시므로 그들을 용서하여 다시 자기의 백성 삼기로 하셨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기로 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는 사람이 되어 오시는 통로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후손들을 애급에서 양육하기로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애급에서 4백 년 동안 한 민족이 되도록 번창하게 하셨다.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으로 세우셨다. 그리하여 그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기로 하셨다.

 

12. 대신 속죄제사의 법으로 인류를 돌이키기로 하셨다.

 

하나님이 대신 속죄제사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속죄제사의 법을 아브라함에게 가르치셨다. 이삭의 번제로 대신 속죄의 법을 아브라함에게 가르치셨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시내산 혹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그 백성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그 배성이 의존해서 살 계명으로 신제명과 율법을 주셨다. 그리고 율법으로 범죄가 많아지므로 백성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속죄제사의 법을 펴셨다. 속죄제사기 설립된 이후 이스라엘 배성은 어린양으로 제사함으로 대신 속죄제사를 배우게 되었다. 때가 차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대신 속죄제사로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다.

 

13. 율법을 주신 것은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주셨다.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율법을 지켜 의를 얻어 구원 얻는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울법을 지켜 의를 얻을 수 없다. 아무도 율법을 지켜 의를 얻어 영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왜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주시고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는가? 그것은 사람이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

 

사람이 율법 지키는 것을 더욱 힘쓰고 열심을 내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범함에 이르게 된다. 율법을 잘 지키려고 힘쓰면 결국 자기는 자기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율법의 사명이다.

 

율법은 아무리 잘 지키려고 해도 결국 지킬 수 없고 범함만 많아짐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율법의 소임이다.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에 열심을 다해 지키려고 애쓰다가 결국 자기는 율법을 지킬 수 없으므로 절망하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어서 율법의 완수자를 보내주시옵소서 하는 절규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율법은 자기 사명을 다한 것이다. 이렇게 절규할 때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때가 찼다는 뜻이다.

 

14. 대신 속죄제사로 인류의 값을 감으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대신 속죄제사로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다.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오셨으므로 어린양 곧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

 

구약 제사에서 제사 때는 레위인들이 제물을 집아 제단에 올리면 제사장이 제사하였다. 그러나 속죄제사 때에는 제사장들이 어린양을 잡았다. 잡은 제물을 지성소 제단에 올리면 대제사장이 속죄제사를 하였다. 그 속죄제사는 죄를 속하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의 속죄제사를 가리기는 연습용 속죄제사였다.

 

구약의 제사로 백성의 죄가 속량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의 속죄제사로만 모든 죄가 속량된다. 구약의 속죄제사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속죄제사를 예표하고 가르치는 제사였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드린 대신 속죄제사로만 속죄가 이루어졌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이 어린양으로 오셨다.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는 일을 1500년간 반복 연습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잡아 십자가에 달므로 그들의 소임을 다하였다.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로 이스라엘은 그 존재목적을 다 하였다 따리서 하나님이 디도장군의 손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고 백성들을 다 도륙하여 이스라엘의 민족적 국가적 존재를 마감하셨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속죄제사로 모는 죗값을 다 갚으셨다. 이 속죄제사를 믿는 자들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

 

15. 그리스도의 속죄제사의 구원사역을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사 그들을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죄를 용서 받아 구원 얻는 일에 사람이 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주 예수께서 대신 속죄제시를 하로 내 죄를 다 용서하셨다고 믿는 것뿐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피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의이다. 죄용서 곧 의를 백성들에게 적용하서서 우리를 죄 없다고 선인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생을 주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속죄 제물로 자신을 바쳤다. 그리고 그의 인격으로는 대제사장이 되어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드림으로 완전한 속죄제사를 하였다. 이 속죄제사로 죄를 용서하시고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셨다. 그리스도의 피가 죄 용서를 이루고 죄과를 완전히 제거함으로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하셨다. 그리스도가 피 흘려 죗값을 갚은 것이 의이고 믿는 자들에게는 죄용서가 의이다.

 

그리스도의 피가 죗값을 다 지불함으로 사람이 지은 죄가 다 무효가 되었다. 그리스도가 자기 피로 죗값을 갚아 지은 죄를 무효화한 것이 의이다. 죄용서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다른 의는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죗값을 다 갚은 것이 의이다. 믿는 자들의 죄를 다 용서하셔서 죄를 없게 하셨다. 이렇게 주 예수의 속죄사역을 자기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의롭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었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의를 얻어 그 의를 믿는 자들에게 전가하므로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주장은 거짓 신학이고, 갈라디아 이단과 같은 것이다.

 

신약은 오직 한 가지 의만 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죗값을 다 지불하고 믿는 자들의 죄를 다 용서한 것이 의이다.그리스도의 피가 율법을 지켜 의를 획득하여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함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신학적 주장은 신약의 가르침과 전적으로 배치된다.

 

II. 능동적 순종에 의한 의

 

1. 능동적 순종과 피동적 순종

 

17세기부터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관하여 새로운 논의가 개혁신학에 도입되었다. 이제까지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죗값을 치러 의를 획득하였다는 신학만 있었다. 이 구속사역을 믿는 자들에게 죄를 용서하셨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믿는 자들에게서 죄과를 제거하심이 의이다. 의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죗값을 지불하심으로 믿는 자의 죄를 용서하심이다. 신약에 이 가르침 외에 다른 구원의 도리는 없다. 죄용서 받으므로 죄가 제거된 것이 의이다. 이 의는 죄용서와 영생을 포함한다. 주 예수의 피 흘리심을 믿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죄 용서로 영생이 오고 당연하게 영생을 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는 자들이 죄 용서를 받고 곧바로 영생을 얻는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사 죗값을 지불함으로 이루어졌다. 영생을 위해 그리스도가 또 다른 구원사역을 하신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17세기 청교도들 특히 그 신학자인 존 오윈 (John Owen)이 능동적 순종을 도입하였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피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으로 나누었다. 피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작정을 따라 십자가에 죽어 피 흘리심으로 구원사역을 이룬 것이므로 피동적 순종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능동적 순종은 그리스도는 율법을 주신 입법자이므로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었다. 그런데 율법을 자발적으로 지켰으므로 능동적 순종이라고 한다.

 

2. 능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준수하여 이를 얼어 백성에게 전가함으로 백성들이 영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구속사역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자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피 흘려 죄용서를 이루셨지만 영생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이를 획득하여 그 의를 백성들에게 전가함으로 그를 믿는 사람들이 영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피 흘리심으로 구속사역을 다 이루셨으면 33년이나 살고서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33년이나 살았다는 것은 다른 사역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그 기간에 율법을 열심히 준수하였다.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므로 의를 얻으셨다. 이 의를 백성에게 전가하여 그들이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3. 율법 준수로 얻은 의를 전가하여 영생에 이르렀다는 주장은 신약이 전혀 가르치지 않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구속을 완전히 허는 반기독교적인 이단사상이다.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다는 가르침만 있다. 그러므로 그를 믿음으로 죄용서 받아 영생을 얻는다. 그리스도 자신이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범죄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것은 그가 피 흘려 죗값을 갚으므로 믿는 자들에게서 죄과를 제거하여 그 죄를 용서한다. 이 죄용서가 의이므로 죄용서 받은 자가 의인으로 인정되어 의인이라고 선포하신다. 그리스도가 피 흘려 죄과를 다 제거하셨으므로 그의 구속 사역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자들은 죄용서를 받았으므로 의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왜 율법을 지켜 다른 의를 이룩해야 할 것인가? 갈라디아서에 나오는이단들은 예수 믿음과 율법을 지기 완전한 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능동 순종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구속사역을 다 이루셨는데도 율법을 다 지켜 새로운 의를 추가해야 완전한 구원이 되어 영생한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단들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켜 새로운 의를 획득해야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무효화하는 것에 이른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피흘려 사람들의 죄과를 제기하고 믿는 자에게 모든 죄를 용서하시므로 의 곧 완전한 구원을 얻게 하셨다.

 

믿는 자가 율법을 잘 시켜 의를 얻어야 한다고 하는 이단적 주장이나 그리스도가 율법을 잘 지켜 새로운 의를 추가해야 한다고 하는 이단적 주장이나 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을 무효화하는데 이른다. 율법을 지켜 의를 얻는다면 율법을 지켜 의를 얻을 수 있는데 굳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므로 죗값을 치르는 일을 할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4.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 완전한 의를 이루었다는 주장은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 새로운 주장을 한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다 지켜 완전한 의를 얻었다는 주장으로 그리스도가 그 의로 자기도 구원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그리스도가 본래 죄인이었는데 율법을 잘 지켜 의를 얻어 자기를 구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것이다. 그가 율법을 다 지켜 의를 얻었으면 구약백성들이 율법을 잘 지킴으로 의롭게 되려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능동적 순종 주장은 17세기에 나온 새로운 주장이다. 비록 존 오원이 이런 주장을 했어도 뒤따라오는 신학자들이 이 주장을 수정하거나 논박하였으면 우리에게 이런 피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19세기 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가 능동적 순종의 주장을 아무런 반성 없이 자기 신학에 받아들이므로 20세기 화란계 미국인 루이스 벌코프(lewis Berkholf)가 그대로 자기 신학에 받아들였다.

 

박형룡 박사 또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대로 벌코프의 조직신학 책을 번역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므로 능동적 순종 주장과 그리스도의 율법 준수로 의를 획득한 것이 정통신학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17세기에 생긴 그릇된 신학을 21세기 한국에서 고치려고 함으로 이런 어려움과 논란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자기 피로 죄용서를 이루시므로 의를 완전하게 세우신 것만 바른 진리로 받는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히 지켜 의를 이루시고 우리에게 그것을 전가해서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이단적 주장을 단호히 배격한다.

 

5. 율법의 성취는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였으므로 죗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성취하신 것을 말한다.

 

에스라의 가르침에 의하면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한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율법을 범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가르침은 구약전체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배치된다. 모세 5경과 모든 선지자들이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것은 그들과 언약을 맺어 자기 백성 삼으신 여호와 하나님 섬김을 비리고 우상들과 이방신들인 귀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에스라가 율법주의 유대교를 세우므로 율법을 범함이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한 근본 원인이 되었다. 에스라 이후에 누가 율법을 다 지켰는가? 또 누가 율법을 다 지킬 수 있었는가? 에스라 이후에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을 범한 것은 바로 안식일 성수를 범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므로 의를 얻어서 그 의의 전가로 우리가 영생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조목이 있다. 그리스도가 율법 조항들을 다 지켜서 의를 얻었는가? 그리스도는 안식일에 병자를 세 사람이나 고쳤다. 안식일 계명을 범했기 때문에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율법을 완벽하게 준수한 그리스도가 어찌 안식일을 법하여 안식일에 세 명의 병자를 고칠 수 있었는가?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한 것은 율법의 조항들을 다 지킨 것이 아니다. 그는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셨다. 범죄하였으므로 죗값을 갚으라는 것이 율법의 요구이다. 그리스도가 피 흘려 우리가 범죄함으로 얻은 죄벌을 완전히 해결하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흘린 피로 우리가 범한 죄의 값을 다 갚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지킬 모든 의무가 면제되었다.

 

칼빈은 율법을 생활의 규범으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에서 나아가 율법에 구원 기능을 부가하였다. 율법이 그리스도 밖에서는 죽이고 망하게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와 함께는 구원하는 기능을 행사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후기 유대교의 주장과 같다.

 

아무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리스도도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율법을 지켰다면 그도 죄인으로 율법을 지킨 것이므로 결코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해야 맞다.

 

율법의 성취는 율법의 요구 곧 범죄하였으므로 죗값을 갚으라는 요구를 성취한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피 흘려 죗값을 갚으므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성취하셨다. 이것이 율법의 성취이다. 그리스도가 피 흘려 죗값을 갚으므로 율법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완전히 면제되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 얻는 것은 성경에 아무런 자리가 없다. 우리는 자기의 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충족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죄용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받았다.

 

우리가 영생을 받은 표가 성령의 내주이다. 성령의 임재는 방언으로 시작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을 때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 기도하는 것이 성령 받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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