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코로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이러스들 중에서 최강의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바늘로 100번을 찔러도,90도 이상의 열을 10분 이상을 가해도, 파괴되거나 찌그러지지 않고 원상을 유지하는 괴력을 보인다고 한다. 탄성 강도도 놀라울 정도이고, 환경 적응력도 탁월하고, 변이도 잘 하는 등 여러 가지 사실을 볼 때 코로나 바이러스는 소멸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상당 기간 동안 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상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면 전세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의 태풍이 지속될 것이고,교회 역시 엄청난 변혁의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지금도 이미 몇 달에 걸쳐서 제대로 된 회집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인데, 이런 형태가 1년, 2년 더 장기화된다면, 교회가 직면하는 변화는 문자 그대로 쓰나미와 같을 것이다. 교회가 스스로 의도해서 벌이는 혁신이 아니라 외부적인 상황의 변화에 의해 떠밀려지는 형국인 것이 민망하긴 하지만, 교회에 불어닥치는 변화의 해일은 이미 왔고, 앞으로도 멈춤이 없이 교회의 전반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메스를 강제로 들이댈 확률이 높다.
코로나 시대는 코로나 이후의 교회의 모습을 많은 부분 바꾸어놓을 공산이 크다. 코로나로 인해서 프로그램이나 행사나 찬양워십, 교육이나 제자훈련, 기관모임, 성가대, 구역모임, 오후예배, 점심식사 등 많은 것이 제한을 받거나 축소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무엇이든 한번 중단되면 다시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치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차제에 코로나와 유사한 시대가 지속된다고 가정해보고, 아예 지금까지의 교회 운영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모든 모임을 다 지속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면, 제1순위, 제2순위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를 매겨보면서, 교회의 본질에 거리가 먼 것부터 제외해버리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미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와 비교해도, 청교도시절의 교회와 비교해도, 초창기의 교회와 비교해서도 너무 많은 프로그램과 모임과 행사들로 인해 교회가 아니라 기업체처럼 분주복잡하다는 내부불만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주일이 ‘안식의 날’이 아니라 오히려 더 몸을 피곤하게 하는 ‘죽일 날’이라는 소리도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는 불필요한 것을 가지치기해서 오히려 더 교회의 핵심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교회의 생명력 유지에 핵심적인 요소들만 남기고, 나머지 군살들을 빼서 영적인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예배에 있다. 지금도 이미 50명 이하로만 예배를 모일 수 있는데,코로나가 획기적으로 진정되거나 백신이 개발되어 치료의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한, 예전처럼 대규모로 모이는 예배가 상당기간 어려울 수 있을 것을 상정해봐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기독교는 로마제국 시대의 크리스텐덤 이전 시대로 시계바늘이 되돌려지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핍박받던 시절이 아니라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국교화 되면서 너도 나도 사회적 혜택과 교제를 위해 교회로 몰려와서 결국은 교회당을 건축해야만 했던 시절과도 같았다. 차제에 혹시나 지금까지의 교회가 진정한 제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아무나 다 와서 구원의 확신은 없어도 성도의 친교라는 그물속에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의 피난처는 아니었나,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반강제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결국 주후2-3세기 기독교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며, 그렇다면 진짜 영혼이 갈급한 신자들만 예배로 나오게 될 것이고, 교회는 자연스럽게 신자들 가운데서 옥석이 가려지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진정한 신자, 그리고 이름뿐인 신자, 두 종류의 신자가 명확히 분류되어버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코로나는 어쩌면 그렇게 해서 알곡들로 구성된 새로운 교회의 정화작업이 시작되는 발화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규모가 축소되어 어려운 여건가운데 예배가 계속 드려진다면 한 번의 예배마다 소중한 감격이 회복될 것이다. 그런 예배는 거추장스런 모든 요소들을 걷어낸 복음중심적 예배로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그야말로 문자적으로 하나님께만 오롯이 집중하는 예배,그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을 경배하는 데에 전심을 쏟는 예배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특별히 말씀선포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다. 원색적인 복음 그 자체가 증거 되는 설교,그리고 성경에 기반을 두면서 삶을 터치하는 설교, 귀에 쏙 들어오면서 영혼을 뒤흔드는 영감 있는 설교가 더 소중해질 것이다. 목회자들은 이전 시대보다 더 혼신의 열정을 설교준비에 투신해야만 할 것이다.어차피 자주 모이지 못할 것이기에 한번의 예배로 성도들을 하나님과 접속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시대는 어쩌면 영적인 빈익빈 부익부를 더 가속화할 것이다. 지금도 영상예배를 자주 드리면서 오히려 본교회의 예배영상보다 더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를 영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믿음이 있는 자,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는 코로나시대가 와서 분주 복잡한 일상들이 정리되면서 오히려 더 주님 한분께 몰입하는 영적성장이 일어날 수 있다.반대로 믿음이 희미한 자,교회당 마당만 밟던 신자들은 있는 믿음마저 까먹게 될 것이다.남은 신자들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 잡초처럼 더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로 성장하게 될 것이며, 그 남은 자들을 통해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새로운 부흥의 세대가 일어날 수도 있다. 교회의 덩치는 이전보다 작아질지 몰라도 더 견고하고 더 은혜로운 소수정예 제자들의 공동체로 변혁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작지만 강한 교회가 많이 탄생하는 발판이 만들어질 것이다.
코로나는 피치 못하게 교회에 제2의 종교개혁을 몰고 오는 태풍이 될지도 모른다. 태풍이 불면 인간사회에는 재난이지만 바다는 크게 정화되듯이, 코로나는 교회에도 태풍과도 같은 영적 정화작용으로 기능할 것이다. 코로나는 지금까지 교회에 덕지덕지 묻어있던 비계살이 떨어져나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교회의 알맹이를 잠식하던 거대한 거품들이 걷어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코로나는 ‘아드 폰테스’(ad fontes-근원으로, 본질로, 원래대로)라는 구호 그대로, 교회에 붙어있던 비본질적인 요소들을 다 제거하고 더 단순하게, 더 순수하게, 더 원색적으로, 진정한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박관수 목사/ 구영교회 (페이브북 글, 2020.09.21)
박관수 목사 (페이브북 글,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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