釋迦,Cherry Moya (사진 Esther Lee )
교회론과 예배론을 재정립하라
예장 고신 총회 지도부가 개회 예배를 드리면서 온라인 성찬을 하기로 했다고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총회가 성찬을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지적은 신학교가 '교회'이며 따라서 성찬식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논의와 일맥상통하다. 회중교회주의는 총회가 교회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장로회는 총회가 교회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회예배 때 성찬을 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나의 관심은 동영상으로 성찬을 하는 게 옳은가 하는 것이다. 인류가 '뉴 노멀' 시대에 진입했고, 기존의 장로교회나 개혁교회의 예외 규정으로도 온라인 성찬, 온라인 세례가 가능하다. 예장 고신이나 미국 개혁교회의 헌법이 성찬과 세례를 예외 규정으로 두고 있다. 기존의 교회법을 적용해도 비대면 성찬, 간접대면 성찬과 세례가 가능하다.
코로나19는 신학자들과 교회에 '교회론'과 '예배론'을 재정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10년 4월 13일 대한민국 방역본부장 권준욱 박사는 아주 또렷하게 "인류는 코로나 19 이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브리핑을 했다.
위기에 직면한 교회들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드 노멀’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나도 그것을 기대한다. 과학자들의 판단이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방역 과학자들은 되돌아갈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까지 나타나는 현상은 과학자들의 말이 옳음을 보여준다.
뉴노멀 시대의 교회의 과제는 교회론과 예배론 재정립이다. 정립할 책임을 가진 신학자들이 바빠지게 되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병훈 박사와 고신대학교의 우병훈 박사가 비대면 성찬에 대한 모종의 글을 발표했다. 그들의 주장은 답이 될 수 없다. ‘올드 노멀’의 사고 구도 안에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천지창조 이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시대에 진입했다. 가을이면 각 교단 총회가 모인다. 총회가 정작 논의하고 답을 내 놓아야 할 과제는 뉴 노멀 시대의 교회론-예배론이라는 신학정립 과업이다.
아래는 대국에서 목회를 하는 임종구 목사의 글이다.
코로나의 상황에서 흥분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를 많이 해야겠다고 느낀다. 코로나는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다. 비단 예방의학이나, 방역뿐만 아니라 교회와 신학에도 엄청난 연구 과제를 제시하였다.
1. 코로나는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정교분리의 문제, 교회론과 예배학, 기독교윤리학과 자유론의 문제를 던졌다. 동시에 당회와, 노회, 총회 및 교단의 역할에 관한 과제를 던져주었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 교회와 신자들은 빨리 즉답을 얻고자 할 정도로 혼란한 가운데 있다. 당장에 총회를 온라인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도 당면한 과제이다.
2. 코로나와 온라인 환경, SNS의 활성화는 신학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이제 신학의 문제는 몇몇 신학자들이나 교수들의 문제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딜레마가 되었다. 신학의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답답한 상황이다. 모두가 유튜브와 SNS를 통해서 소리 지르는 바람에 이제는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는지, 어떤 수준에서 다루어야 할지도 애매하게 되었다.
3. 이런 일련의 문제는 당장에 용어의 혼란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가령, ‘개혁주의’, ‘복음주의’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청교도’라는 용어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단이 ‘신천지’를 사용해버렸고,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정치상황에 뒤섞어 버렸다. 거기다가 WCC, WEA와 같은 단체에 대한 신학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오해가 난무하다. 팩트 중심의 진중한 연구보다는 진영논리와 카더라가 판을 치고 있다.
4. 보수교단에서의 동성애에 관한 연구와 대처도 근시안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동성애에 관한 단일사안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성경무오가 무너지면서 여성안수와 동성애로 연결되는 맥락을 놓치고 있다. 웨인 그루뎀이 이 부분을 충분히 전개하였다. 슐라이어마허에서부터 종교개혁의 신학은 큰 균열이 시작되었다.
5. 거기다가 다시 과거의 문제까지 상정하면 정말 혼란은 걷잡을 수 없다. 한국교회사에서 교단분열의 역사를 다시 소환하여 경중과 과오를 다룬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규오와 이영수를 소환하고, 박형룡과 박윤선을 소환하여 증인석에 세우는 것은 공동체에 상처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과거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 그러나 갈등과 분열을 가져오는 과거역사의 소환은 정말 싸움을 붙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모름지기 현자란 시대를 읽는 자이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아는 자이다. 지금 그런 현자가 필요로 하다.
임종구 목사/ 페이스북 글 20200908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