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로마
저스틴 3: 순교자들의 합창
5. 순교자 저스틴
철학자 플라비우스 저스틴(Flavius Justinus, c. 100-165)12은 예수신앙인들이 가장 극심한 공격을 당하던 시기에 예수 진리를 변호하고, 자신의 피로써 예수구원의 복음의 진정성을 보여준 변증가이며 최초의 기독교 철학자다. 그는 이교도 가정에서 자랐다. 지혜를 얻으려고 철학의 문들을 두드렸다. 스토아주의, 소요학파, 피타고라스주의, 플라톤주의를 접했다. 높은 수준의 고전 학문과 철학사상을 공부하고 폭넓은 독서를 하고 방대한 정보를 기억했다.
저스틴은 어느 날 바닷가에서 낯선 노인으로부터 히브리 선지자들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의 강림을 예고했고, 그 예언이 예수의 생애와 사역에서 성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구원의 복음을 들은 것이다. 복음서들이 말하고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책들이 계시하는 무오하고 진정한 철학을 알았다. 저스틴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 환영 신앙하고, 회심 뒤 기독인 무리를 찾아가 예수복음의 역사와 교리를 배웠다. 저스틴은 곧장 전도자로 나섰다. 철학자 신분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했다. 로마에서 이단자 마르시온과 논쟁도 했다. 에베소에서 유대인 친구들을 설득하여 기독교 신앙을 가지도록 이끌었다.
저스틴은 견유학파 철학자들에 의해 고발되고 처형당하는 과정에서, 법관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비밀을 설명해 보라는 질문을 받았다.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는 그분의 위대함을 말하기에 너무 왜소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것 밖에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난이 그분의 두려운 심판대 앞에서 우리에게 구원과 기쁨을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민이 그 심판대에 서야합니다.”13 저스틴은 복음진리를 선양하고 박해받는 기독인 형제자매를 변호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용감하게 신앙고백을 했다.
저스틴의 주요 저서는 『변증』과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이다. 『변증』은 이교도들의 비방과 박해에 맞서서 예수신앙을 변호한다. 기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죄 처형 판결을 받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간청한다. 하급 법원들의 횡포와 군중의 폭력 그리고 상급법원의 정당하지 않은 처사에 이르기까지 기독인들에 대한 부당한 현실을 고발한다. 지혜롭고 철학적인 통치자들이 공정한 심문을 하면 틀림없이 기독인들을 무죄 방면할 것이다. 박해는 귀신들이 사주한 결과이다. 그 귀신들은 장차 쫓겨날 것이라고 한다.14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관점으로, 성경―구약성경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독인들이 어찌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고백하면서 계명들을 어길 수 있으며, 어찌 고난과 죽음을 당한 그리스도를 어찌 부정하겠는가 하고 탄원한다. 설정된 질문을 중심으로 대화를 전개한다.15
저스틴은 믿음을 지킨 예수신앙의 증인들, 멸시와 박해를 당하면서도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 기독인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그는 예수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 정직, 진실을 가지고 밖에서 오는 공격과 신앙공동체 안의 타락에 맞선다. 저스틴이 기독교를 변론하는 글은 정교하다. 유려한 문체에는 확신과 활기가 넘친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적기도 하고 기억에 의존하여 쓰기도 한다. 종종 두서가 없고 공상적이며 집중력이 부족한 면이 보이기도 한다. 어려운 조건 탓인지, 강렬한 복음변증 의무감과 신선한 공동체 유지에 치중한 탓인지 수사학적 완성도와 미적인 효과 같은 글쓰기 방법은 신경 쓰지 않는다.
저스틴의 예수신앙 내용은 어디서 왔는가? 그의 신앙고백은 성경 복음서들과 초대 기독인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구약성경과 복음서들을 자주 인용한다. 바울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나 바울이 쓴 여러 서신들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많다. 저스틴은 신약성경 전부를 다 알지 못했지만 마르시온을 반박한 것을 보면 복음서들과 바울서신들을 개괄적으로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저스틴의 구약성경 해석 방식은 변증적이고 예표적이며 알레고리적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한다.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구분하지 않는다.
저스틴은 후대의 정통신앙의 잣대로 판단하거나 유대기독교와 정통기독교의 관점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사도시대가 끝나고 교부들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에 살았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관련성,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다. 죄의 심각성과 구속의 은혜, 죄인을 의롭게 하는 믿음의 능력에 대한 이해도 불분명했다. 회심 전에 배운 학문과 이교개념을 회심 뒤에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철학이 계시와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다.16 회심 뒤 교회와 회당의 대립관계를 식별했고, 바울이 제시한 정통신앙을 고백했다. 기독인이 하나님의 참 백성이며 언약의 진정한 상속자라고 믿었다.
저스틴이 생각하는 예수복음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 대한 신앙이다. 그리스도는 죄의 세력을 타파하고, 사죄와 중생을 거쳐 새롭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 밑에는 선한 천사들과 악한 천사들이 있다. 선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심부름꾼들이고, 악한 천사들은 사탄의 종들이다. 사탄의 종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철저히 타도될 것이다. 인간은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모든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자기 행위에 따라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저스틴은 소크라테스와 그리스도의 차이, 훌륭한 이교도와 비천한 기독인의 서로 다른 특징을 간파했다. “소크라테스의 교훈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그를 신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소크라테스 보다 덜 알려졌지만 철학자들과 학자들만이 아니라 예술가들과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까지도 신뢰를 받는다”17고 했다.
저스틴 신학의 핵심은 로고스 사상이다. 그는 로고스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산출적(産出的) 로고스 곧 자연의 창조적 힘, 우주적 이성이다. 이 로고스는 전체 우주와 개체 사물들을 산출했다. 만물의 씨앗이 로고스 안에 내포되어 있다. 둘째, 내재적 로고스 곧 성부의 생각 또는 마음이다. 셋째, 성부의 생각의 외적 표현인 성육한 그리스도이다. 선재(先在)하는 그리스도는 성부의 생각, 성부의 마음이 창조와 계시에 드러났다. 그 로고스는 성부 안에서 성부의 이성적 성품으로 존재하다가 성부의 의지 작용에 의해 출생했다. 이 로고스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체를 가지고 사람이 되었다.
저스틴은 로고스를 성부의 지성 또는 하나님의 이성으로 파악했다. 로고스는 특수 기능을 가졌다. 로고스는 우주를 창조하고 질서 있게 만든 하나님의 대행자이며 인간에게 진리를 계시했다. 저스틴은 삼위일체 이론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품격’으로 묘사하고 삼위가 대등하게 통합되어 있다고 했다. 로고스는 모든 사람에게 이성과 자유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저스틴은 이방인 철학 용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지성인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 신학을 철학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신학의 만남을 시도했다. 이 만남은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과 클레멘트 그리고 힙포의 어거스틴에게서도 감지된다. 플라톤주의는 위디오니시우스에 의해 기독교 안에 진입(c. 532)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스콜라주의 시대에 이르러 명쾌하고 논리적인 진술에 적합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의해 밀려났다.
저스틴에 따르면, 로고스는 성육하기 전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진리의 씨앗들을 뿌렸다. 유대인과 헬라인과 야만인, 특히 이방종교의 예언자들인 철학자들과 시인들에게도 뿌렸다. 로고스의 예비적 빛에 순응하여 도덕적으로 산 사람은 비록 기독인이라는 이름을 지니지 않았어도 사실상 기독인이다. 소크라테스는 비록 자기 자신은 몰랐지만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기독인이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모세와 선지자들로부터 빛을 빌려다 썼다. 저스틴은 이처럼 구원의 문을 너무 넓게 열었고, 기독교와 철학의 국경선을 넘나들었다.
라틴 신학자 터툴리안은18 주후 200년경에 저스틴 식의 신학적 발상에 항거했다. “아카데미와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플라톤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예루살렘과 아테네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했다. 터툴리안은 “나는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했다. 인간이 가진 자연적 은사인 이성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지만 이단을 논박할 때는 이성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다.
맺음말: 증인들―순교자들의 합창(신앙고백)
초대교회 기독인들이 받은 박해는 일제말기에 한국교회가 겪은 것과 비슷하다. 로마제국의 황제숭배와 일제의 이른바 천황숭배는 정확히 일치한다. 정하은 교수(전 한신대학교)는 신사참배와 일왕숭배를 우상숭배로 여겨 반대한 주기철 목사와 신사참배거부운동자들의 저항과 순교를 가능케 한 신념체계인 정통신학을 깎아내린다. “근본주의 신학에 의한 사상의 동결 내지 교리에 의한 자기소위의 희생”19이었다고 폄하한다. 김재준 교수(전 한신대학교)는 일제말기의 순교자들을 ‘신경증적 자학증환자들’로 간주하면서, 그들이 정통주의 신학 체계 때문에 불나방이 불을 향해 달려들듯이 죽음을 선택했다고 본다. “정통주의 신학에 의한 사상의 동결”20의 결과라고 한다. 두 신학자들의 해괴한 주장은 영지주의를 연상시킨다.
영지주의는 초대교회 순교자들의 신앙모습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극심한 박해가 진행되고 있을 때 영지주의자들은 기독인들의 희생적 죽음―순교를 업신여겼다. 그들은 제재를 받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 순교는 생명을 헛되이 여기는 무가치한 일이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어겼다. 예수는 신적 본질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죽음과 고난을 겪지 않았으며 참 예수는 영적인 존재이며, 육을 지니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증거할 목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다면서 하나님은 인간 제물을 원하는 ‘식인(食人) 신’이 아니라고 했다.
왜 초기 기독인들이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는가? 왜 고문을 자초하고, 조롱을 받고, 채찍질에 맞고, 결박당했는가? 감옥에 갇히고서도 구차한 석방을 거부하고, 칼과 돌에 맞아죽고, 톱질을 당했는가? 양과 염소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사자의 밥이 되고, 가난과 고난과 학대를 겪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살았는가?
저스틴에 따르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때문이었다. 순교자들은 잠시 뒤 다시 살아나 더 나은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믿고 확신했다(히 11:35). 로마의 그리스어 교사 히폴리투스는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과 수난에 관한 정통교리, 정통신앙만이 기독인들로 하여금 박해를 참아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순교자들은 제자들과 바울이 가르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구원자 예수’라는 역설적 복음을 믿고 고백하고 증거했다.
그리스어 마르투스(martus)는 ‘순교’와 ‘증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순교자들―증언자들은 목숨을 바쳐 예수가 주이며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고 증언하고 싶어 했다. 증인됨을 영광스럽게 여겼다. 나무 위에 달려 처형 받은 구원자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었다. 초대 기독인들의 신앙고백 내용은 단순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저스틴은 “우리의 스승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다시 부활했다”고 했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임을 확신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마 10:32)는 주의 말씀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다. 순교자들이 증언한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나무―십자가에 달려 죽은 구원자―그리스도다. 이 진리는 바울이 가르친 정통신앙과 정확히 일치한다.
최덕성 지음, <위대한이단자들: 종교개혁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2장 3부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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