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대교회당, 런던
마키아벨리와 현대 개혁주의
1. '역사적 개혁주의'는 실패했는가?
시대의 문필가요 탁원한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 지금은 비록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한줌의 흙으로 누워있지만 그가 남긴 시대적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그가 남긴 상대적 가치의 ‘유용성’과 목적을 위한 ‘이기적 도덕률’의 허용은 세속과 교회를 가리지 않고 맹위를 떨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를 달성하기위한 ‘수단과 방법’에 면죄부를 허락한 그를 우리시대가 가장 순수하고 진솔한 정치사상가로 평가하는 것은 시대적 아이러니다.
르네상스 시기를 통해 펼쳐진 그의 인생족적과 주요저서인 ‘군주론’에는 공화제 피렌체의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의 경험과 사고(思考)가 잘 드러나 있다. 프랑스왕국, 스페인왕국, 신성로마제국, 교황령 등 유럽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던 이탈리아의 냉혹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현실 아래서 그가 택한 해법은 후세(後世)인 오늘에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 - 1492)에게 헌사(獻辭)된 이 책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 주고 있는가?
군주론의 모델인 전직 추기경이자 이탈리아 공국 발렌티노와 로마냐의 공작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1475 – 1507년)는 잘 아는 바와 같이 율리우스 2세(( Julius II 1503 - 1513)의 사생아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함과 처세술은 그의 치세에 유감없이 드러났고, 그 시대와 우리시대를 통틀어 리더쉽의 표본으로 굳게 자리 잡았다. 목적의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던 인물인 그는 종교, 정치, 사회적 혼란기에 조국 이탈리아를 구원할 인물이라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악명 높은 르네상스의 교황들인 식스투스 4세(Sixtus PP. IV, 1471- 1484), 율리우스 2세( Julius II 1503 - 1513), 레오 10세(Leo X, 1475~1521)가 어떤 인물들이었는지, 그들이 ‘주님의 교회’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르네상스의 건축과 미술의 아름다음에 매료되어 그들이 주님의 교회를 파괴하고 타락의 깊은 심연(深淵)으로 교회를 인도 했다는 역사를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교황의 통치하에 있던 이 시대 교회는 더 이상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반은혜가 미치는 일반시민사회의 전 영역들을 마비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무서운 과거의 교훈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역사상 나타났던 가장 무거운 책임이, 당시 무너져 내리고 있던 교회에 주어졌다. 교회는 자신이 지배하기에 이롭게 망가뜨린 빛바랜 교리를, 모든 폭력적인 수단까지도 함께 아울러 참된 진리라고 우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도 자신을 해칠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니고 극심한 타락에 빠져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교회는 국민들의 정신과 양심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였다. 그러자 내면으로부터 교회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무 신앙과 절망의 팔 속으로 떨어졌다.”
2. 르네상스와 문화
난세(亂世)에는 어떻게 군주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가? 군주가 권력을 쟁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권력의 달성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권력달성에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능하고 도덕과 ‘말씀’에 구애 받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근대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당시에는 어색하기 그지없던 가치들이 근대를 거쳐 우리시대에는 보편화 되었다. 탁월한 리더쉽의 결정체로 인정받는 반종교개혁적 가치들은 급기야 오늘날 교회에 흘러들어 아주 자연스럽게 ‘계시’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유용성’이란 명분 하에 ‘수단과 방법’은 그리 중요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 이는 개혁교회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고이자 표현이다. 소위 ‘실용성’과 ‘유용성’의 폭에 따른 ‘역사적 개혁주의’에 대한 평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저급한 교회성장론을 앞세우고 있다.
소위 대형교회로 맹위를 떨치는 개혁주의 교단 교회의 목사들은 “개혁주의가 무엇이냐?”라고 반문하기도하며 “신학생 때부터 개혁주의로부터 부흥한 교회가 없다는 사실에 깊이 절망하고,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오늘날 대형교회를 이루었노라”고 자신의 소회(所懷)를 피력하기도 한다. 사실 누구의 말처럼 개혁주의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신학적 이론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오늘 이렇게 ‘개혁주의’에 대한 나름의 변증과 한탄할 이유조차 없을 것이다.
개혁주의를 처음 듣고 배우면서 한번 이를 의심해 본적 없는 본인으로서는 적잖은 충격이고 도전이다. 이는 세상과 이단의 조롱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무엇보다 개혁주의에 대한 실용적 수용과 이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는 개혁주의 교회에 속한 목사와 신학교수가 있다는 점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일선목회현장의 따가운 눈총을 거스르지 못하며, 그 도구적 헤게모니 속에 녹아버린 한국 개혁교회와 신학의 현주소는 가히 절망적 수준이다. 항간에 난무하는 “개혁주의는 전도와 선교를 막는다. 칼빈이 이 시대에 온다하더라도 그는 한국을 대표할 만한 신학자가 되지 못한다. 칼빈식으로 우리가 어떻게 한국에서 사역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한다. 칼빈에게는 전도론이 없다”는 외침과 가르침에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오늘날 개혁교회라 일컫는 많은 교회들이 ‘말씀중심’에서 ‘이성과 경험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다. 사실 역사적 개혁주의는 칼빈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시작부터 존재해 왔다. 칼빈(Jean Calvin, 1509 - 1564)은 종교개혁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교회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시대 교회가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는 교회의 계속성을 하나님 자신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믿었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과 그의 다함이 없는 신실하심 속에서 교회의 보존과 계속성의 근거를 찾았다.
오늘날 계시된 말씀의 절대성을 신앙하는 개혁주의 교인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한 세대 전만해도 이런 저급한 견해들이 냉소의 대상이 되었지만 오늘날 우리의 형편은 그렇지 못하다. 주님의 교회내 깊이 자리잡은 마키아벨리식 교회관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이러한 형식적 개혁주의에 대한 평가는 이미 여러 곳에서 경계된 바 있다.
한국교회는 칼빈주의란 이름만 받아들였을 뿐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전통적 의미에서 의 참된 칼빈주의와 거리가 멀다. 즉 칼빈주의라는 형식만 가지기 원했을 따름이며 진정한 칼빈주의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대다수 한국교회는 칼빈을 거의 모르고 있으며 칼빈주의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칼빈의 이름에 익숙하여 그의 신학사상에 대한 막연한 맹신만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칼빈과 칼빈주의를 항상 앞세우고 있지만 칼빈의 사상과 칼빈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지식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칼빈주의에서 이단시하는 알미니안주의를 말로 이단시하면서, 실제로는 알미니안주의 신학을 훨씬 지나쳐 있는 이상한 모순에 빠져 있다. 특히 전도와 선교의 문제에 있어서는 알미니안주의자들 보다도 더욱 심각한 인본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다수 교회 지도자들은 스스로 칼빈주의자라고 하는 자기 인식과 특이한 종교현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장로교에서 주장하는 한국식 칼빈주의는 전통적 칼빈주의의 신앙고백이나 신앙적 삶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3) 이광호의 ‘칼빈주의와 한국교회’를 읽고
무익한 전쟁과 성 베드로성당 건축을 위한 면죄부의 판매, 축첩과 사치와 방탕으로 얼룩진 성직자의 사생활, 유린된 교회의 모습은 빛바랜 추억과 역사교과서의 편린이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주목한 체사레 보르자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했던 군주로서, 그 자신이 교황의 아들이라는 점(기독교적 권위)과 갖은 책략(배신, 사기, 암살 등)을 이용하여 잠시지만 이탈리아 대부분을 장악했던 인물이었다. 아마 당대 교회와 세속의 지지를 받은 이태리의 통일 가능성을 보여준 유일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시대적으로 마카아벨리가 주목한 ‘유용성’은 정합성(整合性)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역사적 개혁주의’와는 반대의 길에 서 있음이 분명하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교회성장’ 빌미로 마키아벨리식 ‘유용성’을 차용하고 급기야 ‘개혁주의의 실패’를 운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를 경계하지 못하면 한국교회는 영원히 ‘역사적 개혁주의’와 결별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와 동일한 시대를 보냈던 개혁주의자들의 ‘계시 의존적’ 삶에 돌려지는 평가를 듣노라면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우리시대 개혁주의 교회라 일컬어지는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눈을 돌려 시대적 ‘유용성’을 쫓아가는 세태에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삶이 고리타분하며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비춰지는 것이 일반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마키아벨리식 ‘유용성’을 쫓아가는 무감각한 많은 교회들을 보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싶다. ‘개혁주의’가 유용성의 잣대로 시대의 평가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개혁주의'는 시대를 쫓아가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들은 불과 500년 전 종교개혁전야에 개혁자들이 흘린 피와 땀을 잊고 있다.
글쓴이: P 형제
최재호 장로(전 기독교 언론인)가 2020.05.05에 위 글을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 글을 올린 글이다. 글쓴이 이름을 알 수가 없다. 최재호는 글쓴이에 대한 아래와 같은 소개문을 남겼다. “약 10년 전에 소식이 끊어진 P형제가 그립다. 함께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던 그. 깊은 인문학적 소양과 개혁신학에 대한 이해, 날카로운 논리를 갖춘 그와 교제하며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립다. 고현봉 아우에게 많이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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