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삶이 아름답다 (가본)
예문: 단순한 것이 아름답고 편리하다
1. 최첨단 기계
나는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기 전에 여러 해 목회자로 봉사했다. 목회를 하는 동안 교회당을 건축한 적이 있다. 약 2만 평의 부지에 총 면적 약 500평의 ㄱ자 건물을 지었다. 6백여 명의 신도들을 일시에 수용할 수 있는 건물과 부속 교육관을 지었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탓으로 내가 직접 건축가 역할을 했다. 목수의 도움을 받아 건축의 각 단계에 필요한 전문가들을 불러 작업을 시켰다.
새 건물에 입당한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을 때 실내온도가 너무 높았다. 온도 조절기를 켰으나 찬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냉방시설이 작동하고 있었지만 실내 온도는 내려가지 않았다. 그 냉방 장치는 고액을 지불한 최첨단 설비였다. 기술자가 두어 차례 점검을 했으나 무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기술자는 기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사람들이 모여드는 시간에는 찬바람이 세차게 나오지 않았다. 날은 덥고, 사람들은 많이 모여들고, 고액을 들여 만든 냉방장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기술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답답했다.
냉방시스템은 정상 가동되고 있었다. 문제의 원인은 자동조절기에 있었다. 이것은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아도 영구히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기계였다. 기억장치에 입력을 시켜 놓으면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에 저절로 켜지고, 헤어지는 시간에 저절로 꺼졌다. 켜고 끄면 그만큼 조작이 더 복잡해 지고, 가동이 지연되었다.
이 조절기는 값비싼 기계였다. 그러나 나는 단순한 조절기로 바꿨다. 더우면 즉각 켜져 시원해 지고, 추우면 즉각 꺼지는 기계를 설치했다. 새로 부착한 기계는 값이 아주 저렴했다. 누구든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과학이 발달할 수록 “편리함”을 제공하는 현대문명의 이기들이 등장한다. 이동통신, 인공지능, 정보전달 방식, 플랫폼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젊은이들은 복잡한 것을 잘 수용하고 따라잡니다. 편리한 것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불편하고 복잡하다. 사용하려고 하면 복잡하여 나이든 사람들을 포기하고 만다. 복잡한 것을 잘 따라 하는 젊은이들도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많아진다. 순발력이 떨어진다.
복잡한 것은 잔잔한 평안을 빼앗아 간다. 기계만이 아니다. 무엇이든 복잡한 것은 성가시다. 복잡한 생각, 복잡한 논리, 복잡한 인간 관계는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단순한 것이 손쉽고, 편리하다. 만족감을 준다. 단순한 마음 가짐은 정직하다. 단순한 활동은 경제적이다. 단순한 모양은 곱다. 단순한 느낌은 순수하다. 단순한 약속은 신실하다. 단순한 삶은 아름답다. 단순한 사고와 행동과 생활은 행복감을 준다.
현대 문명의 이기는 유익하다. 이 공간에서 인간은 복잡한 것들과 씨름하면서 마음마져 복잡해 진다. 현대인은 단순성을 상실한 채 복잡성의 노예로 살아간다.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고 그것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아이에게 단순성의 가치를 가르쳐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복잡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다.
2. 탁발(托鉢) 수도사
우리 시대의 상업주의와 배금주의는 소비자를 왕으로 만든다.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소비시키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광고를 쏟아낸다. 물질을 숭상하는 분위기를 고무시키고, 인간의 탐욕을 자극한다. “돈이 최고다” 하는 생각을 심는다. 고가(高價)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상업주의는 정신적 가치를 공허한 것으로 만든다. 사람의 정신과 삶을 황폐화시킨다. 단순한 삶을 즐기고 그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누리는 데서 멀어지게 한다. 밑 터진 항아리같이, 가졌으면서도 더 가지고 싶어하고, 즐기면서도 더 즐기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돈을 사랑치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삶이 행복을 준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서양 중세기의 성자로 추앙을 받은 프랜시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단순한 삶에서 행복을 발견했다. 탁발(托鉢: 거지) 수도사들은 많이 가지는 것은 피곤한 일이며, 적게 가지면 그 만큼 무게가 줄어들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빈곤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구라파 전역으로 다니면서 일평생 가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남을 돕는 자로, 가난한 자의 이웃으로, 순례자로 살았다. 프랜시스 정신은 중세 사람들의 갈망과 영성(靈性)을 잘 드러냈다. 질병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가난 속에서, 변하거나 없어질 세상에서 영원한 것, 영원히 변치 않는 것, 영원한 복락(福樂)을 사모하는 정신을 심었다.
우리 주변에는 돈을 들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일출, 일몰, 뭉게구름, 아지랑이, 저녁노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막내의 익살스러움, 형님의 구수한 이야기, 누이의 다정함, 옛 친구와의 대화 등, 너무도 많다. 지혜로운 부모는 방에서, 식탁에서, 길을 걸으면서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과 편리함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약속 시간과 장소에 약속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속이 상한다. “자동차를 놓쳤는가 보다,” “길을 잃어버린 것인가” “소요 시간 계산을 잘못했는가” 하고 걱정한다. “날 무시하는 건가,” “시간 개념이 흐릿한 사람이로구나,”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생각이 오가는 동안에 그 사람에 대한 불신감이 증대된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약속 시간을 지킨다. 약속 장소에는 약속한 시간보다 몇 분 전에 도착하겠다는 각오로 출발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불필요한 긴장, 초조, 분노, 불신을 제거할 수 있다. 서두르게 달려가다가 발생할 수 있는 교통 사고의 위험을 줄인다. 일찍 도착하면 그곳에서 사람들을 사귈 수도 있다. 다음 순서에 여유 있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용돈이나 수입의 몇 퍼센트는 쓰고, 몇 퍼센트는 저축하고, 몇 퍼센트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준다는 원칙을 단순하게 지킨다. 계획 없는 것에 돈을 써 버리고, 정작 필요한 것에 쓸 돈이 없어서 헤매는 일이 없다. 이러한 생활이 유쾌한 마음을 제공한다.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건을 고를 때도 단순한 것을 선택한다. 단순하게 조작할 수 있는 기계는 단단하여 고장날 가능성이 적다. 우리가 많은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기계들은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기능들을 많이 갖고 있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구입한 셈이다.
가게에서 산 케이크보다는 어머니가 직접 구운 케이크가 더 좋다. 옷가게에서 산 비싼 옷보다는 누이가 직접 만들어 준 옷이 더 가치 있다. 가게에서 호화롭게 포장한 선물보다 직접 만들고 포장한 선물이 더 소중하다. 버려진 나무 판자들을 가지고 책꽂이를 만들어 사용하면 비싼 돈을 주고 사서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다.
단순성은 상호간의 신뢰를 촉진한다. 과장되지 않은 표현, 실제로 일어났던 것, 곧 참이라고 생각되는 바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믿을 만하다는 평을 받는다. 아첨하는 말, 과장된 친절, 선의의 거짓말은 불신감을 준다.
3. 진실한 말, 단순한 약속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다. 생각이 단순하고, 말을 단순하게 하고, 행동을 단순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단순한 사람은 한 남자, 한 여자를 “사랑한다”고 고백했으면 그 고백이 흔들리지 않는다. “결혼하자”라고 했으면 그 약속을 지킨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도 처음 약속을 지킨다. 결혼식에서 남녀가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으면 그것을 신실히 지킨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는 단순성을 해치는 말들이 많다. “힘들어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우스워 죽겠다”는 따위의 말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것들은 정직한 표현이 아니다. 사상범 수용소나 포로 수용소에서 정말 힘들어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가까운 북녘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파서 죽었다. 지금도 심한 허기를 느끼며 산다. 우스워 죽는 사람은 없다.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거나 과장되게 하지 않는다. “힘들다,” “배고프다,” “우습다”고 표현한다.
받기 곤란한 전화가 올 때, 아이에게 “아빠 집에 없다고 해라”고 하는 것은 단순성을 해치는 말이다. 별로 예쁘지 않는데 참 예쁘다고 칭찬하고, 별로 가치가 없는데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말하는 것도 단순성을 상실한 표현이다.
단순한 사람은 극단적인 표현을 피한다. “매우,” “절대적으로,” “확실히,” “반드시,” “객관적으로” 따위는 극단적인 표현이다. “나는 그것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말하기보다는 “나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단순한 사람은 아이들과의 가벼운 약속도 신실하게 지킨다. 지킬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 약속하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공원에 놀러가겠다고 약속을 했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 약속을 지킨다. 축구경기, 음악회, 학예발표회,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약속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행한다. “남아일언중천금”이란 교훈은 성인에게만이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소중하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서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자란다.
사후 변명은 너무 얄팍한 것이다. 변명이 잦으면 신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녀로부터 “아빠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비록 그것이 어린아이가 하는 말일지라도 아버지의 권위와 신실성에 대한 커다란 경고이다.
어느 목회자는 아이에게 주말에 어느 곳에 함께 놀러 가기로 약속했다. 약속된 시간에 차를 타고 가족이 함께 막 출발을 하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 교우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인가,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두고 한참 생각했다. 그는 아이들을 택했다. 목사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과 약속한 것을 먼저 이행하기로 했다. 『다락방』이라는 잡지에 실린 이야기이다.
불가피하게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는 아이가 실망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한다. 자세히 설명을 해 주고, 아이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자녀를 왕대로 키우는 부모는 자녀가 단순성을 사랑하도록 키운다. 단순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아이가 신문배달을 하겠다고 회사와 약속을 했으면 그 일이 하고싶지 않아도 다른 대안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하도록 한다. 친구하고 한 약속은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지키고, 소홀히 하지 않도록 지도한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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