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높여야 두뇌가 좋아진다(가본)
예문: 어린이-우리의 희망, 가능성 덩어리
하나
어린이는 작은 우주이다. 상상력의 천재이며, 가능성 덩어리이다. 그 가슴에는 원자탄의 정력과 고양이의 호기심과 시인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의 혼, 독재자의 허파, 마술사의 적극성을 가지고 있다. 그 입에서는 기관총 같은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티없이 맑고 고운 눈동자는 수평선 너머를 본다. 곧잘 나비와 함께 춤을 추며, 새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이다. 잠시 후면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서서 우리를 평가하고, 그들 나름의 삶과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가족의 복지도, 민족의 번영도, 국가 경제의 발전도 그들의 손에 달렸다.
우리 민족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 기술을 발명했다. 세계 최초로 거북선 모양의 철갑선을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비행기(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군사를 실어 나른 날틀)를 만들었다. “한글”이라는 독창적인 문자를 고안해 냈다. 이것들은 우리 민족의 탁월한 예지와 과학정신을 입증한다. 어디 그뿐인가? 주변 강대국들과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수없이 침략 당하고 민족 상잔의 비극을 겪었지만 오뚜기처럼 일어섰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바로셀로나의 마라토너 황영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바둑의 명수 이창호, 소프라노 조수미, 골프의 박세리, 야구의 박찬호는 세계에 한국인의 이름을 드러냈다. 우리 민족의 특유한 저력과 자질을 발휘했고, 우리의 자녀들이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둘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에 청소년들이 지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화재로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도처에 탈선이 목격되고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택시를 타려니 온보현이 겁나고, 걸어가려니 지존파가 무섭고, 그냥 막 가버리려니 막가파가 두렵고, 버스를 타려니 다리 무너질까 두렵고, 세금을 내려니 세도(稅盜)들이 생각난다”는 말이 유행한 때도 있었다. 유행어는, 주로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우리 사회의 실상을 정확하게 드러내 준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멀쩡한 청년이 부모를 살해하는 일이 있었다. 대학교수가 아버지를 죽였다. 한강의 다리가 무너지고, 경부선 철로가 내려앉고, 서울의 백화점이 붕괴된 기억들이 생생하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배가 침몰되고, 유람선이 불타고,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나라 살림을 맡은 자들이 잘못하여 경제 대란(大亂)을 겪었다. 코비드19 바리러스의 공격을 받아 불안과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범죄와 사고가 없는 사회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대학교수들이 모이면 이구동성으로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사고, 생활 패턴, 새로운 과학 환경은 지적인 퇴보를 가져오기도 한다 정치, 사회, 문화 종교, 경제, 교육이 와해되고 있다고 한다. 자괴감(自壞感)이 생긴다.
우리 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충과 효를 최고의 윤리 덕목으로 삼는다. 그러한 이 나라에 이처럼 충격적인 범죄와 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 교육에 커다란 허점이 있다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으면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 지·정·의, 진·선·미, 그리고 인성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이 같은 사건들이 무더기로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행한 환경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올바른 가치관과 합리적 판단 능력을 제대로 길렀다면 여기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은 국경 없는 정보시대,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했다. 정신, 생활 방식, 국제관계가 놀랍게 바뀌고 있다. 경제, 문화, 정보 체계에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 같은 세상에서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탁월한 교육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세상에 역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강한 독자성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슬기, 위기관리능력, 융통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
셋
해마다 연말이 되면 외국으로 유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추천서를 써 달라고 찾아온다. 서양 학교가 요구하는 추천서는 “이 사람이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므로 이에 적극 추천합니다”는 식이 아니다.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듯이 상세한 것을 요구한다. 책임감, 성실성, 판단력, 비평력, 위기관리 능력, 가치판단, 성실성, 친화력, 이성에 대한 태도, 금전 문제, 상대방의 조언을 듣고 경청하는 자세, 타인과의 사귐의 능력 등을 묻는다. 지적 능력은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서양 학교들이 원하는 것은 전인적인 평가이다. 국·영·수 중심의 내신 성적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대학이 요구하는 추천서와는 사뭇 다르다.
탁월한 인물의 배후에는 그것을 가능케 한 환경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가정에는 선대로부터 전수되어온 훌륭한 교육 원리와 전통이 있다. 건실한 지혜, 신념, 철학, 태도가 있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했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왕대밭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다. 자녀교육의 지혜를 배우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열정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B.C. 412)는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아테네의 거리를 다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을 멈추고 그 까닭을 묻자 질문하는 사람의 얼굴에 등불을 바싹 갖다대고 “나는 사람다운 사람이 있는가 하여 찾고 있소이다”고 말했다.
한 사회가 건실하게 발전하려면 철통같이 나라를 지키고 일순간에 적을 무찌를 수 있는 군인이 있어야 한다. 노벨상을 받는 탁월한 정치가도 필요하고, 능수 능란한 외교가와 문필가도 필요하다.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다.
우리 민족이 정말로 필요한 인물은 사람다운 사람이다. 꿈을 가지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돈, 명예, 지위를 티끌같이 여기는 사람, 진실하고, 용기 있고, 정신적 힘을 가진 사람이다. 무질서하고 음탕한 세상을 개선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인류의 복지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다.
어린이는 우리의 희망이다. 강인하고 창조적인 민족의 특성을 살리고 계승할 수 있는 한국인, 세계를 주름잡는 인물, 사람다운 사람을 교육하는 일은 결코 사사로운 과업이 아니다. 한 가정의 미래의 행복이 달린 일이며, 나라와 민족의 장래의 번영이 결정되는 일이다.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8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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